"한국, 자기 안위 위해 사람 매장시키는 사회"

[민들레] 세상을 변화시키는 청소년들의 모임 '사람숲'

우연한 만남이었다. 지나는 이들에게 세월호 관련 서명을 받는 서울 광화문 농성장엔 주로 어른들이 서 있다. 그 사이 앳된 얼굴이 도드라져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는 청소년 모임 '사람숲'의 대표를 맡고 있다는 박상헌(17세) 님과 시작한 사적인 대화는 본능적으로 녹음기를 들이밀며 예기치 않게 인터뷰로 이어졌다.

▲ 단원고 2학년 2반 김수정 양은 2014년 4월 16일 제주도 수학여행 길에 유명을 달리 했다. 중학생 때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박상헌 군은 지금 김 양과 같은 고등학생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1주기, 안 되겠다 싶어서 중학생들이 모였죠"

장희숙 : 어떻게 이런 청소년 모임을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박상헌 : 지난해 세월호 1주기 집회가 있었잖아요. 집에서 뉴스로 봤어요. 깜짝 놀랐어요. '경찰이 이렇게 강경하게 진압하다니. 야, 이건 안 되겠다' 싶었죠. 같은 뜻을 가진 중학생들이 모였고, 이참에 우리도 단체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사람숲'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의 모임을 시작하게 됐죠.

장희숙 : 어떤 활동을 하는데요?

박상헌 : 여러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어요. 일단, 거의 모든 집회에 참석해서 머릿수를 채우는 거. 노조에서 하는 집회든, 세월호 집회든 꼬박꼬박 가고 있어요. 인원이 부족한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단체의 취지를 말하자면 전반적인 사회문제에 대해 해결 방안을 찾는, 그렇게 해서 세상을 좀 바꿔보려는 거라고 말할 수 있죠. 처음엔 회원이 열일곱 명 정도 됐어요. 그때는 세월호 문제와 노동 문제, 특히 비정규직에 대해서 독서모임이나 토론도 했는데, 고등학교 올라오고 나서 다들 공부하느라 바빠서 연락도 끊기고 대부분 유령회원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사실상 저 혼자 활동하고 있어요.

장희숙 : 혼자라서 그만두기도 좋겠는데, 왜 이 모임을 유지하고 있어요?

박상헌 : 사실 혼자서 하다 보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런 생각 안 하려고 만든 게 이 단체인데…' 스스로 나무라면서 마음을 다잡곤 해요. 단체 이름을 걸고 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책임감이 생겨서 좋아요. 다른 단체와 합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 싶어서 혼자라도 끝까지 해보려고요.

ⓒ프레시안(최형락)

장희숙 : 세월호 사건을 목격했을 때는 중학교 2학년이었죠?

박상헌 : 네. 그때는 무섭고 그냥 안타깝다는 생각만 했어요. 참사 당일, 학교에서 사고 소식을 잠깐 듣고 '전원 구조'라니까 잘 끝났겠지 했어요. 근데 저녁에 집에 와서 보니까 상황이 심각했어요. '전원 구조'는 오보(誤報)였고, 몇 달이 지나도 계속 그대로인 걸 보고 '선진국 대열에 오른 나라가 어떻게 물에 빠진 사람도 못 구할 수가 있나', '배 한 척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못 구했는데, 어떻게 국민 모두를 책임질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을 했죠. 그때만 해도 세월호 사건이 이렇게 커지고 길어질 줄 몰랐어요. 알았으면 진작 뛰어들었을 텐데….

장희숙 : 처음 집회에 참석하게 된 동기가 있었나요?

박상헌 : 어른들이 뉴스를 보면서 "저 사람들(세월호 유가족) 돈 받아먹으려고 하는 거다"라고 하는 걸 듣고, "정말일까?" 싶어서 광화문에 와봤어요. 그때 유민 아버지가 단식하고 계셨거든요. 와서 보니까 어른들 말처럼 '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 거예요. 그러고는 저도 이 길에 들어서게 됐죠. 광화문에 나오다 보면, 세월호 특조위가 어떻게 됐고, 진상규명과 배 인양 작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빠르게 접하게 되더라고요.

"십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장희숙 : 사람숲 활동을 하기 전에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박상헌 : 통일 문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수업시간에 이산가족 이야기를 듣고 나서, 혼자 임진각에 갔었거든요. 정말 어떤가 보려고요. 바로 눈앞에 북한 땅이 보이더라고요. 이렇게 가까운데 왜 못 만나고 있나, 그런 생각을 했죠.

장희숙 : 중학생 혼자 임진각에 갔다고요? 원래 호기심이 많아요?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봐야 하는 성격인가 봐요

박상헌 : 네. 안 그러면 뭔가 찝찝하더라고요. 뉴스만으론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장희숙 : 혼자 집회 나왔을 때 놀라진 않았어요? 경찰들 줄지어 있는 거 보면 무섭고 위축이 될 텐데….

박상헌 : 처음엔 진짜 무서웠어요. 경찰들이 쫙 깔려 있는 거 보니까. 근데 곧 적응되더라고요. 한 번 겪고 나니까 다음부터는 물대포 맞아도 그냥 목욕탕에 온 것 정도로 생각되고 무섭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이제는 안 그래요. 익숙해진 거죠.

▲ 10대 청소년 80여 명은 2014년 8월 세월호 참사 후 처음으로 집회를 열었다. 한 학생은 이날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며 "세월호를 통해 절망도 많이 했지만, 내 옆자리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지 배우게 됐다. 일상 속에서 세월호를 실천해나가야 한다. 그럼 살아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최형락)

장희숙 : 어른 되고 나서 해도 되는데, 왜 청소년 시기에 이런 단체 활동을 하느냐 그런 얘기하는 분들 많죠? 어떻게 생각해요?

박상헌 : 저는 오히려 10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봐요. 어른보다 학생들이 나서서 움직이는 게 시선을 끌기에도 좋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문제해결에도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서게 됐어요.

장희숙 : 활동하려면 돈도 만만치 않게 들 텐데, 아까 보니까 빵을 사와서 서명대에 있는 어른들 나눠주던데요. 활동비는 어디서 나와요?

박상헌 : 제일 든든한 정치자금은 세뱃돈이죠. 저번 설에 한 바퀴 돌면서 세뱃돈 받은 걸로 단체 깃발도 만들고, 방송 장비도 사고, 필요한 굵직굵직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놨어요. 그러고 나니까 크게 돈 드는 건 없어요. 그래도 많이 돌아다니니까 차비가 많이 들고, 가끔 전단지 만들어 뿌리거나 할 때 돈이 필요해요. 그럴 땐 중고장터에 이것저것 내다 팔아요. 안 읽는 책도 중고서점에 내놓고.

장희숙 : 다른 많은 청소년들은 이 시간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하잖아요.

박상헌 : 그렇게 자기 공부만 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만 챙기고 보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남이 쓰러져 있든 죽어가든 신경 안 쓰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죠. 그러면 그 사람들이 점점 도태될 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텐데,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만 챙기는 태도는 문제가 있잖아요.

장희숙 : 친구가 없을 것 같은데?(웃음) 보통 청소년들은 이런 문제에 별로 관심 없잖아요.

박상헌 : 아, 아니에요. 친구는 많아요.

장희숙 : 친구들이랑 얘기가 통해요?

박상헌 : 주로 제가 알려주는 식이죠. 세월호 얘기는 좀 아는 편인데, 최근 구의역 청년 사망 사고나 그런 건 아예 몰라요. "아니, 너는 뉴스도 안 보냐?"라고 하니까 "뉴스를 왜 보냐?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지" 그래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모르고 살더라고요. 제가 말해주면 그런 일이 있었냐고, "신기하다"고 그래요. "이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기도 하고.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은데, 저한테 이런 걸 묻고 관심 갖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요. 이렇게 해서 그 애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낼 테고, 그게 사회 변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죠. 어느 책에서 봤는데, "한 가지 불의에 눈을 뜨게 되면 또 다른 불의에도 눈을 뜨게 된다"는 대목이 있었어요. 그게 딱 맞는 말인 거 같아요. 제 경우를 보니까 한 가지 일에 관심을 가지니까 그게 다른 분야로도 번지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도 이런 사회적인 문제도 많이 가르치고 알려야 한다고 봐요.

ⓒ프레시안(최형락)

장희숙 :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세월호에 대해서 뭐라고 하세요?

박상헌 : 선생님들은 굉장히 말을 아끼시더라고요. 교장 선생님 눈치도 보이니까. 근데 제가 만화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담당 선생님이 전교조 교육지에 만화를 그리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그분하고 대화했더니 말이 좀 통하고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더라고요.

장희숙 :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잖아요. 이렇게 돌아다니는데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아요?

박상헌 : 몇 점 오락가락하는 정도라 큰 지장은 없어요. 주말에 돌아다니는 대신, 평일에 더 열심히 하게 돼요. 팍팍 떨어지진 않아서 그렇게 티 날 정도는 아니에요.

장희숙 :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은데, 또 관심 있는 분야가 있나요?

박상헌 : 노동 문제요. 몇 년 뒤면 저도 알바를 할 거고, 학생보다 노동자로 살아갈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노동문제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장희숙 : 한국에선 '노동'이란 단어가 왜곡돼 있어서 본인이 노동자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어른들도 많은데요.

박상헌 : 초등학교에서 노동자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니, 대부분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대기업에서 일하든 다른 직종에서 일하든 대부분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 문제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대한민국의 현실, 절망적이기 때문에 의욕이 생겨요"

장희숙 : 이런 활동 하는 거,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박상헌 : 부모님은 모르세요. 그냥 도서관 간다고 하고 나와요. 부모님이 워낙 보수적이시라 알게 되면 얼굴 붉힐 일만 생기니까 그냥 비밀로 하고 있어요.

장희숙 : 어떻게 모르실 수가 있죠? 이렇게 자주 돌아다니는데….

박상헌 :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놨죠. 진짜로 도서관에 가는 날에 사진을 많이 찍어놔요. 여러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포즈도 바꾸고, 층별로도 찍고, 낮과 밤이 구별되게 시간대별로도 찍고. 엄마가 이따금 "너 어디야?"라고 문자 보내면서 인증샷을 요구할 때가 있거든요. 그럼 미리 찍어놓은 사진 중에 적당한 걸 골라서 하나씩 보내죠.

장희숙 : 인원이 조금 더 늘어나면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어요?

박상헌 : 저희 단체가 주도해서 집회도 열어보고 여러 가지 활동도 기획해보고 싶어요.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않으면 지금 하는 공부도 결국 다 헛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사진 왼쪽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6반 권순범 학생의 명찰이 보인다. 10대들에게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프레시안(최형락)

장희숙 : 이런 활동을 하면서 눈으로 확인한 대한민국은 어떤 곳인가요?

박상헌 : 소외된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연대하는 게 아니라, 아픈 사람들이 '우리 좀 봐달라'고 하면 오히려 매장하려는 사회. 자식 잃은 유가족들에게 '돈 받으려고 그런다, 종북 빨갱이들이다' 그런 말을 거침없이 던지는 비인간적인 사회죠. 아까 보셨죠. 저기 <동아일보> 앞에서도 '세월호 척결, 종북세력 척결' 주장하잖아요. 청와대를 봐도 그렇잖아요. KBS에서 세월호 문제 보도하는 걸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이 통제했어요.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서 소외된 사람들을 매장시키는 사회죠.

장희숙 : 본인의 실천이 이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행동할수록 오히려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든지, 무기력하다든지 그렇진 않아요?

박상헌 : 절망적이에요. 절망적이긴 한데, 그렇기 때문에 의욕이 생겨요. 앞으로 이 나라에서 적어도 수십 년은 더 살 텐데, 그럼 뭔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의지가 생기죠.

혼자라도 계속 할 거예요. 안 하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하는 게 낫다면. 천천히, 늦게라도 저라도 참여하는 게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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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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