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라! 中 '소림 축구'의 새로운 도전

[이종훈의 영화 같은 스포츠] 화려한 무공 꿈꾸는 중국의 대규모 투자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월드컵 축구 대표 팀이 중국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1차전에서 3-2로 승리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최종 예선 첫 경기부터 승점 3점을 챙기며 첫 단추를 비교적 잘 꿰었다. '비교적'이라는 다소 야박한 평가가 붙는 이유는 슈틸리케 감독이 지적하듯이, 연이어 2골을 내주며 불안했던 마지막 20분 때문이다.

우리 대표 팀은 후반 30분과 32분에 연이어 2골을 허용했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공격 주도권을 내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탓에 승점 3점을 챙긴 우리가 마치 내용으로는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대로 패배한 중국은 비록 원했던 승점은 챙기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큰 자신감을 얻고 돌아가는 듯하다. 이는 경기 후 "한국의 골은 운인지 경험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 경기는 향후 중국 팀의 자신감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오홍보 중국 대표 팀 감독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 31전 18승 12무 1패라는 역대 전적만 놓고 본다면 중국은 대한민국이 상대하기 수월한 상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은 한국을 만나면 언제나 공포에 가까운 부담감을 느껴왔다. 때문에 등장한 단어가 '공한증'이다. 하지만, 이번 최종 예선 1차전 경기에서 봤듯이, 최근 중국 축구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과거 중국 축구의 대명사는 소림 축구였다. 소림 축구는 쓸데없이 거칠고 비신사적이기로 유명한 중국 축구 특유의 플레이를 비꼬는 말이다. 하지만, 조만간 이 소림 축구라는 단어가 다른 뜻으로 사용될지 모르겠다.

저우싱츠(周星馳)가 주연을 맡아 2001년에 개봉한 홍콩 영화 <소림 축구>에는 2가지 축구 스타일이 등장한다. 하나는 오로지 상대 선수에게 부상을 입혀 그라운드에서 쓰러뜨리는 것을 목표로 거친 플레이를 일관하는 소림 축구다. 또 다른 하나는 소림사 무예승 출신들이 구사하는 무술과 축구가 결합한, 만화 같은 실력으로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소림 축구다. 지금 중국의 소림 축구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 지난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중국 대표 팀 장샤오빈이 두 번째 골을 넣자 중국 응원단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중국 정부는 "2000명의 메시를 만들어내라"는 시진핑 주석의 지시에 따라 2017년까지 2만 개, 2025년까지는 5만 개의 축구 전문 학교를 설립하는 계획을 발표하는 동시에 초·중학교에 축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 2020년까지 6살 이하 어린이 1억6000만 명이 매일 축구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중국의 대기업들 역시 정부 정책에 발맞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인 완다그룹이다. 완다그룹은 최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신흥 강호 AT 마드리드의 지분 20%를 4500만 유로에 인수했다. 계약서에는 AT 마드리드의 축구아카데미 세 곳을 중국에 설립하고, AT 마드리드가 매년 중국으로 투어를 와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AT 마드리드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고스란히 중국으로 가져오겠다는 취지다. 뿐만 아니라,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비롯한 중국 슈퍼리그 소속팀들은 앞 다퉈 해외 명문 구단의 유소년 코치 출신 지도자들을 영입해 유소년 팀을 맡기는 등, 유럽과 한국, 일본의 유소년 교육 시스템을 배우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1억60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에게 매일 축구공을 차게 하고, 그 중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어린이를 따로 선발해 축구 전문 학교로 가게 한다. 그렇게 선발한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세계적인 유소년 코치의 지도를 받게 하는 동시에, 먹고 자고 수업 받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전히 모든 시간을 축구 연습과 훈련에 쓰게 한다. 그 중에서 11명의 베스트 일레븐을 뽑는다. 이게 바로 지금 중국 축구가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과거 중국 정부는 올림픽 무대에서 절대 열세 종목이었던 다이빙, 체조 등을 국가 차원의 지원과 투자를 바탕으로 체육 영재 조기 발굴과 집중훈련을 통해 올림픽 메달 효자종목으로 키운 바 있다. 때문에 중국 정부가 축구에서도 이런 국가 주도의 체육 영재 육성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간 중국 축구가 성장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팀으로서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 유소년과 부모에게 축구는 그다지 매력적인 종목이 아니었다. 축구는 단순히 나 혼자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것만으로는 성취를 이룰 수 없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포츠에 재능이 있는 체육 영재들은 축구가 아닌 개인종목을 선호했다. 그간 중국 최고의 스포츠 영재는 축구계로 모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간혹 한두 명의 좋은 선수가 배출되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중국 축구 대표 팀의 전력과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이것이 13억 인구를 보유한 중국이 유독 축구에서만큼은 힘을 못 쓰는 수모와 굴욕을 당해온 이유다.

하지만, 만약 중국 축구가 지금 추진하는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확립하고 속을 꽉꽉 채워나갈 수만 있다면, 중국은 가까운 미래에 소위 '황금 세대'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황금 세대가 꾸준히 출현한다면, 중국이 더는 축구 변방국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다. 축구에서 황금 세대의 출현 여부와 빈도는 강팀과 약팀을 구별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한 나라의 축구 실력은 황금 세대가 얼마나 자주 출현하는가에 따라서 최고 수준의 강국들과 다크호스, 그리고 약팀으로 구별된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브라질, 독일, 아르헨티나, 스페인과 같은 팀들을 보라. 이 나라에서는 늘 기존 전성기의 선수들에 새로운 미래가 기대되는 황금 세대가 합류해 A대표 팀이 꾸려진다. 하지만, 다른 많은 나라들은 이른바 황금 세대와 골짜기 세대를 오가며 때로는 다크호스, 때로는 약팀으로 불린다.

지금 중국이 추진하는 유소년 축구 정책이 결실을 맺게 된다면, 중국 축구는 황금 세대를 꾸준히 배출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을 기대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중국 축구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소림 축구로 명성을 떨칠 것이다. 그리고 더는 공한증에 떨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이 다른 의미로 탈바꿈한 중국의 소림 축구를 두려워해야 하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중국의 모든 기대가 제대로 실현될 때의 일이다. 여태 중국의 축구 투자는 기대만큼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중국이 과거의 소림 축구가 아니라 영화 <소림 축구>에서처럼 연전연승을 이어가며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새로운 소림 축구를 원하고, 이를 위해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일본, 호주, 이란에 더해 중국까지 가세한 아시아 5개 나라들이 4.5장의 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고 다투는 일은 조만간 우리 앞에 다가올 수 있는 현실이다.

▲ 저우싱츠 주연의 코믹 축구 영화 <소림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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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제가 만난 스포츠 스타들은 셀 수 없이 많은 패배가 자신을 승리자로 만들어 줬다고 말합니다. [이종훈의 더 플레이어]를 통해 수많은 이들을 승리자로 만들어 준 '패배와 실패'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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