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반기문 위해 이정현 선택했다?

[분석] '패장' 친박 부활은 결국 '미래'에 대한 위험한 기대?

당심과 민심의 괴리인가,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새로운 기회가 부여된 것인가.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새누리당 신임 대표에 선출됐다. '호남 대표'라는 수식이 익숙하지만, 오히려 대통령 수석비서관을 두 번이나 지낸 인사가, 대통령 재임 기간 안에 집권당 대표가 됐다는 사실이 더욱 진기한 기록이 될 것이다. 심지어 당대표와 분리선출된 최고위원도 5명 중 4자리를 친박계가 차지했다. 박 대통령의 급격한 레임덕을 우려한 당원들이 사실상 '친위 혁명'을 일으킨 셈이나 다름없다.

친박계는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차기 대선에서도 친박계가 미는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새누리당의 차기 주요 일정인 내년 중순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된 셈이다. 최소한 당 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걸림돌이 상당 부분 제거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친박계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신임대표의 당선을 '이변'으로, '혁신'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지난 4.13 총선 당시 유권자는 새누리당을 철저하게 심판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친박계에 대한 민심 이반이 선거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왔다. 전당대회 결과를 놓고 보면 당심과 민심이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정현 신임 대표는 새누리당 내에서 비주류인 호남 출신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비서로, 어느 누구보다 더 확실한 주류의 길을 걸었던 인사다. 물론 공천 실패 책임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는 인물이긴 하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호남 지역구를 사수하느라 중앙당 일에 등을 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도 당원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정현 의원 선출이 당심이 민심의 일정한 타협점이 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이는 결국 미래 권력을 염두에 둔 투표 행위라는 분석이 나온다. 친박이 밀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와 관련 있는 표심이라는 것이다. 비박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김무성 전 대표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지난 총선에서 '상처' 난 대선 후보들이 지나치게 관여한 것도 오히려 당심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박 대통령이 최근 피살된 부모를 언급하고, "저항과 비난"에 직면해 있다고 두 차례나 호소한 것이 당심을 파고들었다는 분석도 일리가 있다. 급격한 레임덕으로 인해 대통령이 무너지는 것을 당원들이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박계와 야당의 지나친 공격으로, 오히려 새누리당 당원들이 친박으로 결집한 셈이다.

그러나 불안감은 여전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번 당내 선거 결과로 자신감을 얻고, '불통' 논란을 안더라도 기존의 국정 운영 방식을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박 대통령이 실정을 거듭한다면, 차기 대선 후보는 누가 되더라도 현직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때 이정현 신임 대표나 친박 주류 최고위원들, 당원들이 그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지 주목된다.

▲이정현 신임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경선 직전 연설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친위 혁명'으로 야당·비박과 관계는 악화될 듯당심과 민심 괴리도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임 대표 선출은 여러모로 위험 부담이 크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총선을 통해 심판받는 데 많은 부분 책임이 있는 인사다. 대통령의 비서 출신 대표가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적극적으로 바른 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때문에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오히려 '불통' 논란을 감수하면서 무리하게 국정을 이끌어갈 우려도 나온다.

이 신임 대표가 세월호 정국에서 KBS 보도개입 논란을 낳은 당사자라는 점도 부담거리다. 이 신임 대표는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해 보도에 고압적으로 관여한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과거로 치면 당대표 자리가 흔들릴 만한 일이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경우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000하고, XXX한테 '야 우선 저 패널부터 막아 임마, 빨리 시간 없어,' 그랬더니, 지금 메모 즉시 넣었다고 그래 가지고 빼고 이러더라고. 내가 보니까 빼더라고"라는 말을 기자들에게 했다가 청문회에서 낙마할 뻔한 상황까지 갔다. 보도 개입 논란은 이 전 총리를 '식물 총리'로 만들었고,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결정타가 되면서 그는 결국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 했다.

야당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본류와 거리가 멀더라도 이 신임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이고 '복심'이다. 이 신임 대표가 겪었던 '설화'들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것이, 그가 박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국정교과서) 반대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사건이다. 향후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워 '거수기 논란'이 일 수 있음은 물론이고, 당이 최근 사드 배치를 두고 야당과 '전투'를 치르고 있는 박 대통령의 대변자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보수 여당 최초로 호남 출신 인사가 당대표가 됐다고 하지만, 새누리당은 현재 힘이 빠져 있는 상황이다. 129석의 소수 여당이다. 야당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전망은 좋지 않다. 당내 상황도 그렇다. 이 신임 대표는 과반을 얻지 못한 당대표다. 40.9%를 얻었다. 비박계 주호영 후보의 지지율이 29.4%였다. 최소 30%는 여전히 비주류다. 그리고 그 비주류는 김무성, 오세훈 등을 대표 주자로 여긴다. 이들을 안고 가는 것 역시 숙제다.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심'과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가 이정현 대표를 낳았지만, 당원들의 소망이 이뤄질 지는 알 수 없다. 민심은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실책으로 지난 4.13총선에서 대패했다는 점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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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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