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정체성이 주는 힘

[민들레] '시민'으로 사는 기쁨을 누리다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The 28th July : Liberty Leading the People, 캔버스에 유채 260×325, 1798)이란 그림이 있다. 1830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났던 7월 혁명을 담은 이 작품에서 '자유의 여신'이라 칭해진 여성은 가장 앞서서 프랑스 국기를 들고 뒤따르는 사람들을 고무시킨다. 총칼을 들고 함께하는 사람들은 혁명을 이뤄냈다는 자신감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의 발아래 쓰러져 있는 이들의 희생이라는 큰 대가를 치렀을지라도.

혁명과 시민

그렇게 피로 이뤄낸 혁명은 '시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탄생시켰다. 혁명의 주체였던 시민은 당당히 자신의 사회적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처럼 총칼로 무장하고, 다수의 민중을 이끄는 한 명의 리더가 앞서서 깃발을 들고 가는 모습은 무척 상징적이다. 지금도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저런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이 이 나라를 새로운 사회로 바꿔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google.com

하지만 훌륭한 지도자가 혜성같이 등장하는 건 현실적으로도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뿐더러, 설령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이 사회가 하루아침에 마술처럼 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시민'이라는 이름을 이어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 시대 시민의 역할은 더이상 깃발 들고 앞선 한 사람을 따르는 투쟁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시민의 의무는 공동체 일원에 대한 책임과 연대라고 나는 본다. 자율성, 그리고 책임과 연대. 생각할수록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나 하나 살기도 벅찬 세상에서 타인을 위한 책임과 연대라니. 하지만 좀 쉽게 생각해보면 책임과 연대의 시민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위해 필요한 건 바로 '공감'이 아닐까 싶다.

공감, 너와 내가 연결되는 순간

'홀리-웬즈데이(holy-wednesday)'는 다섯 명의 엄마들이 수요일마다 만나는 모임이다. 우리는 자연출산을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키우고자 했던 모임에서, 책 읽는 모임에서, 우쿨렐레를 배우고 연주하는 모임에서 가끔 보는 사이였다. 그러다가 작년 1월부터 가톨릭 성경을 함께 읽고 서로의 삶을 나누면서 내적으로도 깊이 교감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성경을 비롯한 여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그저 우리의 영적, 지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의 첫 번째 열매로 '홀리-웬즈데이 나눔 콘서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 기획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됐다. 모임에 함께하는 한 엄마의 시아버지께서 뜻하지 않게 200만 원의 불로소득이 생겨 수녀가 된 딸에게 쾌척한 것이 계기였다. 수녀님은 이 돈을 좋은 일에 쓰고자 하셨고, 음악을 좋아하는 남동생의 재능을 살리는 방식이면 더 좋겠다고 하셨다. 이리하여 수녀님의 남동생과 우리 모임 멤버이던 그의 아내는 자선 콘서트를 구상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머지 엄마들은 '옳다구나!' 맞장구를 치며 함께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이렇게 콘서트가 열릴 거라고 자신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고 이름 붙인 이번 콘서트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경험했던 상처를 꺼내보고, 그 상처 혹은 삶의 어려움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극복되고 치유되었는지 나누기로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공감이 될까 고민스럽기도 했다. 우리는 콘서트 수익금을 '416유가족협의회'에 기부하기로 했고, 몇 분의 유가족들도 초대하기로 했다. 황망하게 자식을 잃고 아직도 거리를 헤매는 분들 앞에서 '우리가 내놓는 상처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우리가 바라고 바랐던 것은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만큼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 공명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콘서트를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도 훨씬 어려웠다. 네 살 아이가 다섯 명이었고, 두 살배기 두 명, 그리고 배 속에도 무려 셋이나 있었으니…. 어떤 날은 어쩔 수 없이 '키즈카페'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짧고 굵은 회의를 했다. 한 엄마네 집에 모여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손을 피해 가며 기부금 마련을 위한 '소이캔들'을 만들기도 했다. 공동육아 터전을 빌려 다섯 가족이 함께 부를 합창 연습을 할 때는 듣는 둥 마는 둥 노는 일에 열중하던 아이들의 귀여운 입에서 합창곡이 흥얼흥얼 흘러나오는 것도 신기했다.

그 와중에도 각자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려가고, 틈틈이 우쿨렐레 연주와 노래 연습을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잠깐 틈을 내어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에도 참여하고, 성당 몇 군데를 찾아가 콘서트 홍보를 부탁하기도 했다. 홍보 책자와 포스터를 만들어준 친구들, 음향장비를 선뜻 빌려주신 '동작FM', 노래와 반주 봉사를 자처해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힘을 냈다.

▲ 시민으로 공감하기 위한 엄마들의 이야기와 노래 콘서트. ⓒ김경희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보내고 며칠이 지나, 드디어 콘서트 날이 됐다.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 친구들, 시민활동가들, 성당 홍보를 보고 온 이들까지 60여 명이 작은 카페를 가득 채웠다. 세월호 참사 관련 서명을 받고 배지를 나눠 드리는 일, 기부금 마련을 위한 소이캔들과 드립커피, 친정엄마표 각종 음료를 판매하는 일, 사진을 찍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모두 아빠들의 몫이었다.

엄마들의 우쿨렐레 연주로 콘서트는 시작되었다. 조용한 가운데, 우리의 이야기를 담담히 해나가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몇 년째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딸의 이야기,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오랜 시간 방황하던 자신을 토닥이고 어머니와 화해한 이야기, 난생처음 아이를 낳고 키우며 성에 갇힌 라푼젤처럼 외로웠던 엄마의 이야기, 아토피가 있는 아이를 돌보며 가슴 아팠던 이야기, 미약한 힘이라도 내 주변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보태고 싶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준비한 노래를 불렀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절절한 이야기와 그중 한 부모가 자청해 부른 노래도 더해졌다.

꼬박 두 시간을 채운 콘서트였다. 콘서트 중간 중간 무대로 다가온 아이들이 엄마 무릎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들었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따뜻한 몸은 그 자체로 위로였다. 함께 눈물 흘려주시는 분들을 보며 안도하고 감사했다. 특히 세월호 유가족 중 한 아버지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울었는데, 하늘로 간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나서였단다.

늘 곁에 있지만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가족들뿐만 아니라,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의 상처가 내게도 슬픔으로 느껴지는 것, 상처를 극복해가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내게도 위로가 되는 것, 그래서 나도 더 잘 살고 싶어지는 것, 세월호 참사가 내게도 아픔이 되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서로의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는 걸 확인했던 자리였다. ‘마음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작이었다.

엄마 시민으로서의 한 발자국

임신, 출산, 육아를 겪으며 그저 아이들의 엄마로만 살아왔던 지난 몇 년이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연대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턱대고 기획했던 콘서트였는데, 친구들, 동네 사람들, 가족들의 도움이 모여 이렇게 현실이 됐다. 혼자였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다섯 엄마만의 힘으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민으로서 개인의 자율성을 맘껏 발휘해 타인과 소통하고 연대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저 엄마였던 우리들은 큰 자부심을 느꼈다. 어디 그뿐이랴.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었고, 이제 또 무슨 일을 벌여볼까 즐거운 고민 하며 우리는 엄마에서 시민으로의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되기 전 나는 사회의 여러 문제에 관심은 많았지만 내게 닥친 시급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외면해왔다.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배워볼 기회가 부족했던 탓이기도 하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보니,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내 아이와 관련 있는 일들이었다. 방사능이나 탈핵 문제를 포함한 식재료와 환경 문제부터 온갖 부패로 가려진 세월호 참사가 일상에 던지는 불안까지, 엄마인 내게 이 모든 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절박한 해결 과제가 되었다. '엄마'라는 정체성이 주는 힘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동기였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공동체의 삶은 '함께 있을 때 생기는 용기'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홀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우리에게 강요되는 당연한 길을 벗어나고 싶을 때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라면 기꺼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 앞에 흔들리더라도 꺾이지 않는 것은 풀뿌리 시민의 삶으로 서로가 엮일 때 가능하다.

큰아이를 공동육아에 보낸 것도, 힘들어도 아이를 데리고 꾸역꾸역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 나가는 것도 그 속에서 내가 좀 더 단단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주 흔들리는 내 나약함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나를 붙잡아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내가 똑바로 설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공동체의 힘, 시민으로 사는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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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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