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의 후과, 中 경제 보복-北 핵실험 우려"

[정세현의 정세토크] "미, 트럼프 당선되면 사드 배치 번복 가능"

박근혜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공공연히 경제 분야를 비롯한 사회‧문화적인 부문에서 한국에 보복성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실제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지난 2일 "사드 배치의 후과(後果, 나쁜 결과)가 매우 엄중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중국의 이런 반응은 사드 배치를 공식적으로 결정하기 전부터 예고됐던 일"이라며 "이렇게까지 나온 것을 보면, 중국이 국제 상사 중재 위원회 같은 곳에 제소도 못 하도록 자국의 국내법을 절묘하게 이용해서 한국을 골탕 먹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우려했다.

중국이 사실상 대놓고 경제 분야에 대한 경고성 발언들을 하고 있지만, 정작 사드 배치를 주도한 박근혜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당장 국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뚜렷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정 전 장관은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반대론자들이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는 식으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다"면서 "종북 또는 괴담 프레임을 씌워 사드 반대론자들에게 책임을 넘기고 현 국면을 뚫고 나가려는 고도의 계산된 행위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권력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지, 문제를 어떻게 풀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현재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이 안 나오고 자꾸 꼬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의 경제 보복뿐만 아니라 북한의 5차 핵실험 가능성도 우려해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핵 또는 미사일 실험은 남한 내 사드 배치의 정당성을 키워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북한도 사드 배치가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즉,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손잡고 북한을 통제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은 이러한 국제 정세를 이용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제에 협조하지 않는 틈새 시간을 이용해서 핵 강국의 위상을 굳혀보자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만약 북한이 5차, 6차 핵실험까지 진행하면 움직일 수 없는 핵 보유국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렇게 되면 남한은 북한의 핵 멱살에 잡혀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최소한 사드 배치를 지연시키는 카드를 써서 북한에 핵 실험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올해 초 개성공단 전면 중단, 그리고 최근의 사드 배치 결정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안보 환경이 질적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안보가 사드 배치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당장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중국은 2일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게재된 쑤야오후이(蘇曉暉) 중국국제문제연구원 국제전략연구소 부소장의 칼럼을 통해 사드 배치의 후과가 엄중할 것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정세현 : 중국의 이같은 반응은 사실 사드 배치를 공식적으로 결정하기 전부터 예고됐던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나온 것을 보면, 중국이 국제 상사 중재 위원회 같은 곳에 제소도 못하도록 자국의 국내법을 절묘하게 이용해서 한국을 골탕 먹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 중국의 경제 제재나 경제 보복이 시작되면 그 파급효과는 결국 서민 경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기 침체에 중국의 보복성 조치까지 겹친다면 우리 경제가 정말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만약 경제적인 문제가 더 불거지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안보를 위해 경제를 포기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보라는 것도 '부국(富國)'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무기를 사더라도 돈이 있어야 구매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사드만 해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가져다 놓을 수 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방어하기 위한 무기이니,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중국이 우리한테 아무리 보복성 조치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군사적인 행동은 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군사적 조치를 취하면 국제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비난이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입장에서 가능한 것은 경제적인 부문에서 '엄중한 후과'를 한국에 안겨주는 것이고, 실제 중국은 이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안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을 예측한 뒤 여기에서 일정 비율을 예산 규모로 책정합니다. 여기서 국방비를 비롯한 정부 예산이 결정되는 겁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위축돼서 GDP가 줄어들면 국방비 예산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안보가 위태롭다는 이유로 사드를 배치했지만 오히려 그 결정이 국방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국가 운영에서는 안보와 경제적 번영이 같이 가야 합니다.

프레시안 : 중국이 경제 보복 의지를 사실상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나 다름 없는데, 지금 여기에 대해 책임있는 정치인들은 사태의 엄중함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세현 : 이런 사태를 몰라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겁니다. 비겁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다. 사드 배치가 어떤 문제들을 야기할 것인지를 전망하고 그런 입장에서 문제가 더 불거지기 전에 여기서 멈추든지 되돌아가든지 하는 정도의 판단과 의견 개진은 능히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위기를 위기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사드 반대론자들이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는 식으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사드 배치 외에도 국내에서 정부에 대한 불만이 많은데, 종북 또는 괴담 프레임을 씌워 사드 반대론자들에게 책임을 넘기고 현 국면을 뚫고 나가려는 고도의 계산된 행위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프레시안 : 정부가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대외적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 우리가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역량과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오로지 '북한 붕괴'만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데요.

정세현 : 권력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지, 문제를 어떻게 풀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이 안 나오고 자꾸 꼬이는 겁니다. 부모를 끌고 들어와서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도대체 사드 배치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일부에서는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해 겉으로는 엄청나게 반발하지만, 속으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만주와 동북 3성, 연해주 지역, 북한을 묶어서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건데요. 북중 경제 관계를 가로막았던 일종의 걸림돌이 사라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정세현 :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중국은 정치적‧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북핵을 막아야 한다는 '역할론'을 부여받았습니다. 물론 이는 미국이 북핵 문제에 대한 책임을 중국에 전가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제3자에게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었는데 사드를 배치하면서 중국 역할론이 면제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중국과 북한이 더 가까워지는 상황을 초래한 겁니다.

▲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왕이(왼쪽) 중국 외교부장과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지난 25일(현지 시각)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려는 동북아 질서에 이대로 끌려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전략적인 측면에서 북한과 경제적인 부문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보조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의 긴장은 더 높아지겠죠.

북한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중국은 이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북한과 눈에 띄는 공동 행보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호텔에 묵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이 북중 간 친밀함을 드러내려는 '유치한' 과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본래 외교라는 것이 좀 유치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친한 친구들끼리 어울리고 다른 사람은 따돌리고 그러다가도 다음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있는데, 외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처럼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정중한 말투를 쓴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중국의 경제가 어려워져서 북한을 안고 갈만한 여유가 있을 것이냐는 전망도 나옵니다.

정세현 : 그건 그야말로 '희망적 관측'에 불과하다고 보입니다. '세계 경제가 어렵고 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도 예전과 다른데 무슨 북한까지 도와주냐'는 이야기인데, 중국은 기본적으로 덩치가 큰 국가입니다. 참깨가 100번 굴려봐야 늙은 호박 한 번 뒹구는 것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한국의 수준에서 중국의 경제 잠재력과 북중 간 발생할 수 있는 경제 협력 범위를 전망하는 것은 너무 자국 중심적인 사고입니다.

미국이 자국에 돈이 남아돌아서 해외에 개입하고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남의 돈으로 하는 겁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 국력이 되면 주변 국가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북한과 중국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는데요.

정세현 :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신중히 봐야 합니다. 일단 필요성이 있을까 싶습니다. 한미일의 공조가 강화되면서 중국이 지금은 북한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북한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은 자신들이 북한을 도와준다고 해서 이들이 고분고분하게 구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으로 관리하는 수준의 입장을 취할 겁니다.

프레시안 : 미국은 올해, 한국은 내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선거 결과에 따라 사드 배치가 번복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정세현 :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드 배치가 불가역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에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할 때는 국회 비준도 필요 없는 행정 사항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냥 SCM(한미 연례안보협의회) 같은 곳에서 합의하면 되는 문제라는 겁니다. 즉, 실무단이 준비해서 한미 양국 장관이 합의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끝나는 문제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정부는 사드 배치가 국회에 비준 동의를 받을 정도로 큰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이건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뒤집는 결정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창한 조약도 협정도 아닌데, 그만두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겠습니까?

결국 의지의 문제인데, 남북한 문제와 한반도 문제를 자기중심적인 관점에 서서 풀려는 뜻이 있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사드 배치는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습니다.

그간 한미 간에는 북한 문제를 두고 엇박자를 내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잘해보려는 것을 우리가 막기도 했고, 우리가 잘해보려고 하면 미국이 막아서기도 했죠. 그런데 남한에 정권이 교체돼서 '인게이지먼트(Emgagement)', 즉 개입과 관여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미국도 대외 개입을 줄이려고 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사드 배치 번복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선거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남한이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음 정권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집단들이 이 문제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북한, 5차 핵실험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프레시안 : 9월까지 북한과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겠다면서 북한의 굴복을 기다리겠다던 정부의 시한이 이제 한 달 남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손 들고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정말 9월에 북한이 손 들고나오게 하고 싶었으면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2270호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유지해줬어야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로 그 명분을 스스로 훼손시켰습니다. 9월 항복설은 물 건너 간 셈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북한의 핵 또는 미사일 실험은 남한 내 사드 배치의 정당성을 키워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도 사드 배치가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즉,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손잡고 북한을 통제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다음 단계 협상을 위해서라도 핵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계속 핵 군축 협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드 국면이 북한에게는 핵 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게 된 셈입니다.

프레시안 :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3년의 기간을 두고 핵실험을 이어왔습니다. 올해 초에 4차 핵실험이 있었구요. 그런데 또다시 핵실험을 감행할까요?

정세현 : 4번의 실험으로 기술이 축적돼있기 때문에 간격을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기간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북한이 핵 탄두를 소형화‧경량화‧다종화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게 완전 거짓말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는 기술 진척의 속도가 느릴 수 있지만, 한 번 궤도에 올라서면 그다음부터 기술을 추가하는 것은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걸리지 않습니까?

▲ 지난 7월 19일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참관하며 기뻐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노동신문

물론 북한의 5차 핵실험이 한미일의 대북 압박이나 견제 강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미국과 일본은 어차피 북한에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받아서 북한을 압박하고 이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려고 했는데, 사드 배치로 중국과 러시아가 사실상 손을 놓아버리지 않았습니까?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사드 배치로 미국의 속셈이 드러난 셈이 돼버렸기 때문에 미국에 '너희들이 알아서 북한을 관리해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국제 정세를 이용할 겁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제에 협조하지 않는 틈새 시간을 이용해서 핵 강국의 위상을 굳혀보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정말 5차 핵실험까지 감행한다면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북한이 6차 핵실험까지 가면 움직일 수 없는 핵 보유국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남한은 북한의 핵 멱살에 잡혀 끌려다니게 될 겁니다. 최소한 사드 배치를 지연시키는 카드를 써서 북한에 핵 실험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이나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북한의 행태가 미국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일단 북한은 굳이 ICBM까지 가지 않고 지난 6월에 발사한 중거리 탄도 미사일인 '화성 10'의 사거리를 늘리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 본토가 아니라 미군기지가 있는 괌이나 하와이 같은 곳까지 날아갈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미국이 SLBM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미사일 개발의 중심을 이쪽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사드 배치에 대한 대응으로, '적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SLBM이더라. 굳이 ICBM 만들지 말고 SLBM만 잘 만들면 얼마든지 적들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봤다면 군사 과학 기술자들이 그쪽으로 집중할 수 있죠.

사실 북한 핵 문제는 핵뿐만 아니라 미사일도 중요합니다. 핵 탄두가 아니라 그냥 일반 폭탄을 달아도 본토에 도달한다면 그 자체가 위력적이지 않습니까? 북한은 지금 이런 식으로 자신들이 상대방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만 고착시키면 됩니다. 그래도 남는 장사입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IS)를 비롯해서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미국 시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도 미국의 입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관여하는 사안마다 상대의 과격한 행동을 불러왔다고 판단되면, 이런 식으로 대외 개입을 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실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의 대외 개입으로 재정이 어려워지니까 반전운동도 힘을 받았습니다. 닉슨이 베트남 철수와 대외 개입 축소를 약속하고 대통령이 되기도 했죠. 미국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지면 미국의 헤게모니를 협상과 외교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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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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