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모든 위험성 무시했다

[함께 사는 길] 핵발전소와 지진 ③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지역 고리, 후쿠시마보다 40배 위험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원은 현재 고리 1, 2, 3, 4호기와 신고리 1, 2호기가 가동되고 있으며 3, 4호기가 건설 중에 있다. 여기에 신고리 5, 6호기까지 들어서면 10기의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 지역이 된다. 내년 6월에 고리 1호기가 폐쇄된다고 해도 한 부지에 핵발전소가 9기가 몰려 있는 곳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캐나다 부르스 핵발전소에 8기의 원자로가 있지만, 용량 면으로 따지면 현재 운영 중이거나 건설 중인 8기만으로도 고리 핵발전소이 월등히 높다. 여기에 5, 6호기까지 들어서게 되면 원자로 수나 용량 면에서 세계 최대 원자로 밀집 지역이 될 것이다.


고리 핵발전소 반경 30킬로미터(㎞) 내에는 380만 명이 살고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 당시 방사능 오염으로 주민들을 소개한 지역이 원자로 반경 30㎞다. 동국대학교 박종운 교수가 부지 내 원자로의 총 발전 용량과 30㎞ 내 인구수를 곱한 총량적 잠재 리스크로 비교한 결과 고리 핵발전소가 후쿠시마 핵발전소보다 40배 더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사는길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높은 암 발병률 조사와 대책 없다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할 때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가동할 때도 대기나 해양으로 방사능 물질을 지속적으로 배출한다. 가동하는 원자로 수가 많아질수록 배출되는 방사능 물질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주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백도명 교수팀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의뢰로 기존의 '원전(핵발전소)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를 재검증한 결과,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갑상선암(갑상샘암)도 연관성이 높고, 갑상선암 외에 간암·위암·대장암·유방암 등 방사선 관련 암 발생에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고리핵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의 갑상선암 발생은 다른 지역보다 약 3.1배, 남성은 3.3배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고리를 비롯한 월성, 울진, 영광 등 핵발전소 인근에 살다가 갑상선암에 걸린 주민들은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공동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진행 중이다. 앞서 법원은 고리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 피해에 대해 핵발전소에서 방사성 물질을 배출한 한수원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균도 가족 소송)한 바 있다.

▲ 아버지 이진섭 씨(오른쪽)는 아들 균도(왼쪽)와 함께 2011년 전국을 걸어 다니며 발달 장애아의 문제점을 알렸다. 그러던 중 핵발전소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한 무료 검진에서 자신(직장암)과 아내(갑상선암) 모두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모의 위암 판정(2007년)도 의심스러웠다. 그는 다음해 고리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한수원을 부산지방법원에 고소했다. 2014년 10월 법원은 1심에서 아내 박 씨의 갑산성암에 대해 한수원이 15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피고와 원고 모두 불복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이 씨는 자신의 병과 아들의 장애도 한수원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핵발전소와 암 발병에 대한 조사와 대책 없이 원자로를 더 추가하겠다는 결정은 주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행위나 다름없다.

'34㎞를 4㎞로' 위치 제한 규정도 어겼다

만약에 발생할지 모르는 핵발전소 사고로 방사성물질 피폭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핵발전소와 인구밀집지역(인구중심지)과의 거리 제한을 둔다. 우리나라는 원안위 고시로 미국 핵규제위원회 원자로 위치 제한에 대한 기준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 기준이 제시한 사고 시나리오와 피폭량 계산 방법 등으로 이격 거리를 계산하면 신고리 5, 6호기는 한 기당 인구중심지로부터 32~34㎞가량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때 인구 중심지는 2만 5000명이 사는 지역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수원은 미국 핵규제위원회 기준을 따르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부지의 특성과 고유 설비의 특성을 고려해 위치제한 규정의 인구중심지 거리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수원의 설명이다. 한수원이 정한 신고리 5호기, 6호기 원자로에서 인구중심지까지 최소 이격거리는 4㎞다. 한수원은 자의적으로 기준을 달리 적용해 방사성 물질 방출량을 축소하고 피폭선량은 과소평가하는 방법으로, 제한 거리를 축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미국 핵규제위원회 기준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는 고리핵발전소에 들어설 수 없다. 당장 신고리 5, 6호기 부지로부터 11㎞ 떨어진 기장군 정관읍은 인구 7만 명이 훌쩍 넘는다. 12㎞ 떨어진 기장읍에는 5만 5000명 정도 산다. 24㎞ 떨어진 양산시는 19만 명, 21㎞ 떨어진 부산 해운대구는 42만 명이나 산다. 심지어 110만 명이 넘는 울산광역시 울산시청과 360만 명의 중심지인 부산시청도 신고리 5, 6호기 부지와 30㎞도 채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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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호기, 중대사고 등 위험성 무시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지진과 해일로 일본 후쿠시마핵발전소 부지에 있던 1, 2, 3, 4호기가 차례대로 폭발했다.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에 대비해 안전 기술을 갖췄다'고 자신하던 일본이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고 수습 또한 하지 못하고 있다. 다수 호기 중대 사고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례다.

위험 시설이 한 곳에 많이 몰려있으면, 그에 따른 위험성도 높아지는 것은 상식이다. 한 부지 안에서 한 원자로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다른 원자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해 동시다발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나 신고리 5, 6호기 부지에는 완공한 지 30년이 넘은 노후 핵발전소들이 고리 1호기를 제외해도 3기나 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원자로의 사용 후 핵연료 등 고준위핵폐기물을 해당 부지에 임시 저장하고 있는데, 한 부지 안에 원자로가 많으면 저장되는 고준위핵폐기물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고리 5, 6호기 허가 과정에서 다수 호기 위험성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한수원과 신고리 5, 6호기 허가 심사단은 다수 호기 동시 사고 등을 가정한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는 국제적으로도 아직 개발 초기 단계로 규제에 적용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 평가하지 못 했다고 밝혔다. 평가 방법이 없어 평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부지에 9기의 원자로를 몰아넣겠다는 발상을 그 누구도 하겠는가.

그럼에도 원안위는 5, 6호기 건설 허가를 내줬다. 그러면서 다수 호기 리스크 평가 방법론의 개발 및 다수 호기 리스크 평가와 안전 목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설 허가 후 안전성 평가를 한다고 핵발전소의 안전이 보장되는가.


지진 위험 높은데 활성 단층 조사도 안 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99~2015년까지 남한에서 규모 2.0 이상 발생한 지진은 연평균 47.6회다. 올해 상반기(6월 30일 기준)에만 34회 지진이 발생했다. 비록 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지진 횟수가 늘고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역사 문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진도 7 이상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되는 지진들이 발생했었다는 기록이 있어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울산, 부산 등 경상도 지역은 한반도에서 큰 규모의 지진 발생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다. 앞으로 이동이 발생하여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지진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단층을 활성단층이라고 하는데, 월성핵발전소가 있는 경주 인근과 고리, 신고리 핵발전소이 있는 울산, 부산 육지에는 60여 개가 넘는 활성 단층이 분포되어 있다. 양산 단층, 울산 단층, 동래 단층, 신고리 핵발전소 바로 옆의 일광 단층 등 대규모 활성 단층대도 8개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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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수원과 원안위는 이들 활성단층을 지진 평가에서 배제한 것은 물론이고, 바닷속의 활성단층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한수원은 국내 원자력 규정에 따라 활동성 단층은 최근 3만 5000년 이내에 1회 이상 활동하거나, 50만 년 이내에 2회 이상 활동한 단층으로 정의하며 이들 활성 단층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도 제4기 이후, 즉 180만 년 전부터 현재 사이에 지각 활동이 있었던 단층을 앞으로 재활동할 가능성이 큰 단층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실제로 일본 규슈 지역의 연속된 지진은 기존의 활성 단층(4기 단층)이 재활성되면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4기 이후 한반도 주변의 지구조적 환경이 크게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4기 이후 활동한 단층이 앞으로도 재활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오창환 교수는 "현재 한반도의 지진에 대한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매우 부족한 형편"이라면서도 "앞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활성 단층이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지진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위한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며 현재 발견된 활성 단층 주변에는 핵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최대지진규모보다 낮은 내진설계

한반도 예상 최대지진 규모는 7.5다. 하지만 신고리 5, 6호기의 내진설계는 0.2(지: 중력가속도)~0.3g으로 계획되어 있다. 이는 지진규모로 대략 6.5~6.9 정도에 해당한다. 예상 가능한 최대지진규모 7.5보다 20~30배 낮은 내진설계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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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소비 증가 정체! 신고리 5호기 6호기 건설 급하지 않다


정부는 전력부족을 빌미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력소비증가율은 최근 몇 년 전력소비증가가 정체에 있다. 전력소비증가율은 2015년 1.3% 기록했지만 2011년 4.8%, 2012년 2.5%, 2013년 1.8%, 2014년 0.6%로 줄어드는 추세다. 핵발전소 추가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근거로 든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전력수요 증가율 전망치 4.1%에 훨씬 못 미친다.

현재 전력이 부족하지도 않다. 오히려 남는다. 2015년 2월 9일 최대전력을 기록한 날에도 공급예비율은 12%나 됐다. 공급예비력은 914만 킬로와트(㎾)로 700메가와트(㎿)급 핵발전소 13기에 해당하는 발전소가 가동하지 않고 대기한 셈이다. 2015년 전력공급예비율이 14% 이하인 날은 단 14일 뿐이었다. 나머지 351일은 공급예비율이 15%를 넘었다. 전력부족이 이유라면 신고리 5, 6호기 건설은 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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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만 명 무시한 5, 6호기 건설승인은 무효다

사고가 발생하면 반경 30㎞ 38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직접 피해를 입는다. 지난 1월 진행한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 신규건설에 대한 울산시민 인식조사'는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주민들의 민심을 보여준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울산사회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울산광역시 5개 구·군 시민 1007명을 대상으로 한 ARS 여론조사 결과 70% 이상이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다. 부산, 울산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문제점과 반대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이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한수원은 2011년 9월 설명회, 2012년 6월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다고 했지만 단 8㎞ 내 주민들에게 의사를 물었을 뿐이고 그조차도 형식적으로 진행됐다. 공개 원칙이 기본인 공청회조차 일부 찬성 주민들 외에는 입장이 봉쇄됐고, 급기야 공술인도 들어가지 못한 상황에서 공청회가 진행됐다.

380만 명 시민들의 중대한 문제를 원안위는 한 달 만에 그것도 단 세 차례 회의를 열고 표결로 결정해 버렸다. 김혜정 위원과 김익중 위원은 안전성 평가에 대해 더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위원장은 표결을 강행했다. 찬성한 위원은 김용환 위원장, 최종배 사무처장, 김광암 위원, 나성호 위원, 최재붕 위원, 조성경 위원, 정재준 위원 등이다(김익중 위원과 김혜정 위원은 반대했다). 여당과 정부 추천 위원들로 지난해 2월 월성 1호기 수명연장에도 찬성을 던졌던 이들이다. 한수원은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원안위의 결정이 나기 전부터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불법으로 진행했다. 과연 원안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원안위의 신고리 5, 6호기 건설 승인을 반대하고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380만 울산, 부산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종교계, 정치권에서도 신고리 5, 6호기 건설 승인 무효와 재검토를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6월 23일 원안위의 결정은 무효다. 민주적으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안전성을 제대로 평가하기 전까지 신고리 5, 6호기 건설 허가 승인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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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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