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충남 아산시 음봉면의 고속철로 증설 터널 공사 현장에서 37세 미얀마 노동자 아웅민우(AUNG MIN OO)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그는 이날 오후 4시경 터널 깊숙한 곳에서 발견됐다. 공사 현장 입구에서 2400m(미터) 더 들어간 지점이다. 스리랑카 노동자가 작업 때문에 터널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그를 처음 발견했다. 피해자는 약 2m 높이의 컨베이어벨트 설비에 얼굴 부분이 끼인 채 몸이 허공에 떠 있었다.
바닥엔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뭉치와 핏자국이 있었다. 안전모와 망치, 상의가 주변에서 뒹굴었다. 목격자에 따르면, 발견 당시 그는 미동이 없었다. 목격자는 그가 이미 사망한 것 같았다고 동료에게 전했다. 얼굴에서 질식사의 징후가 보였고, 코에 손을 대봤던 다른 직원도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날 아웅민우 씨는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고 있었다. 터널 굴착 과정에서 나온 토사를 밖으로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였다.
"안 죽을 수 있었다. 둘이면 안 죽는데, 한 명이 하다가 죽었다."
그와 함께 일한 미얀마 노동자 민탄(가명) 씨가 울면서 말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2인 1조 작업이 훨씬 줄었으며, 비상정지장치는 처음부터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컨베이어벨트 작업은 늘 위험했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모처에서 피해자의 동료 민탄 씨와 네린(가명) 씨, 친척인 에스토무(48) 씨를 만나 사고에 관해 물었다.
KTX 철로 증설 공사… 사고 질문엔 "묻지마"
공사는 평택과 오송 사이 46km(킬로미터) 구간에 KTX 고속철도 2개선을 증설하는 국가사업이다. 사고 현장은 5개 공구 중 제2공구 현장으로, 용와터널이 시작되는 진입부였다. 발주사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시공사는 SK에코플랜트다. 아웅민우 씨는 지난해 4월부터 SK에코플랜트의 하청업체 LT삼보에서 일했다.
그는 건설·채굴 단순종사원으로, 컨베이어팀에 속했다. 벨트 효율이 떨어지거나 마모되지 않게 위치를 조정하는 등 설비를 점검하고, 벨트에 묻은 토사 등을 긁어내는 스크레이퍼 설비를 관리했다. 그 외 폐기물을 치우는 등 현장에 필요한 노무를 같이 맡았다.
터널 안에서 작업하던 네린 씨는 그날 오후 3시 20분경 피해자가 터널 안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 그러다 "갑자기 4시쯤 현장의 기계가 멈췄다"고 그는 기억했다. 터널을 뚫는 설비(TBM)에서 일하던 그는 숙소에 있던 미얀마인 동료로부터 '빨리 나와 현장에 내려가 보라'는 연락도 받았다. 누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였는데 미얀마인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는 곧 터널 안쪽에서 나오던 반장들을 봤다. 표정이 모두 심각했다. "누가 사고 났어요?" 물었는데 "묻지마", "나중에 알게 돼" 등의 답만 들었다. 곧 피해자 신원을 알게 된 미얀마 노동자들은 피해자를 실은 관리자 차량으로 다가가 "차 세워주세요" "얼굴을 보여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네린 씨는 "그들은 바로 차를 몰아서 나갔다"고 밝혔다.
당시 터널 밖에서 일하던 민탄 씨는 4시경 '벨트를 좀 풀어라'는 지시를 듣고 영문을 모른 채 벨트를 풀고 있었다. 이후 벨트에 끼인 피해자를 꺼내려는 조치였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가슴이 아파 울었다. 민탄 씨는 피해자 아버지와 사촌지간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실, 피해자가 아웅민우 씨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를 처음 발견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미얀마 동료에게 소식을 전했고, 서로 연락하는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부실한 정지장치, 무시된 2인 1조 원칙
민탄 씨는 컨베이어벨트 점검에 대해 "보통 망치를 들고 벨트 아래의 롤러를 쾅쾅 쳐서 위치를 조정하는 일"이라며 "한 롤러당 대여섯 번씩은 쳐야 조정된다"고 설명했다. 컨베이어벨트 길이가 2.6km 가량이고, 이를 주간조, 야간조가 최소 한 번씩 순회 점검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비상정지장치는 초반 1km에만 설치돼있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정지장치는 벨트 방향을 따라 줄 모양으로 설치됐는데, 이를 당기면 벨트가 멈춘다. 민탄 씨는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으로 망치를 두드리다가 벨트에 끼이면, 왼손으로 줄을 잡아당기면 벨트가 멈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2.4km 위치에서 발견된 피해자 주변엔 정지장치가 없었다.
민탄 씨와 네린 씨는 "2인 1조 작업이 지켜지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도 말했다. 지난 4월 기존 반장이 일을 그만둔 후, 그나마 부분적으로 지켜지던 2인 1조 작업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민탄 씨는 "이전 반장은 인력 충원과 안전을 고민하던 사람이었고, 계속 인력충원 요청을 하다가 힘들어서 퇴사했다"며 "이 반장은 야간 컨베이어벨트 점검은 꼭 2인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가령 4월 전엔 반장을 포함해 팀원이 6명이었다. 이 중 1명이 미얀마로 돌아갔고, 이전 반장도 일을 그만뒀다. 이후 다른 업무를 맡던 반장이 컨베이어팀 관리자로 왔고, 인력은 충원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민탄 씨는 "겉만 5명이지, 실상 4명이었다"며 "팀의 한 명을 다른 팀 작업에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가끔 다른 공사 현장의 사고 사진을 보여주며 안전에 유의하라는 짧은 교육을 들었다. 그러나 한국어로만 교육이 진행돼 많은 이주노동자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두 사람은 전했다.
민탄 씨는 "벨트가 돌고 있을 때 점검 업무를 하니까, 컨베이어벨트 일은 그 자체로 다 위험하다"며 "그런데 컨베이어팀원은 모두 이주노동자고, 현장 야간 업무도 모두 이주노동자가 맡는다"고 밝혔다. 하청업체 LT삼보엔 110명 가량의 직원이 있는데, 미얀마 노동자가 30여 명, 스리랑카 노동자가 30명 가량이 있다고 알려졌다.
위험한 컨베이어벨트 작업, 이주노동자 전담
직원들에 따르면, 최초 목격자인 스리랑카 노동자와 관리자 한 명이 고인을 벨트에서 직접 꺼냈다. 이후 반장 등 관리자들이 더 모여 피해자를 들어 옮긴 후 승용차 '모닝'에 태웠다. 피해자는 먼저 이 차량에 실린 채 이송되다 4시 30분경 119 구급차량으로 인계됐고, 48분 천안 단국대병원에 도착했다. 오후 5시 20분경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담당 의사는 질식사를 소견으로 남겼다.
이주노동자들 사이엔 사고 당시 관리자들이 보였던 행동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민탄 씨와 네린 씨는 사고 현장의 머리카락 뭉치를 관리자가 치웠고, 최초 목격자인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현장 사진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그를 숙소로 바로 들어가게 했고, 관리자는 '그는 아파서 병원에 간 것'이라고 현장 이주노동자들에게 설명했다고도 전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고인은 한 달에 2~5일 정도 쉬었다. 또 일주일 단위로 주야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했다. 주간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야간엔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일했다. 급여는 일당제처럼 받았다. 낮 근무엔 평일 13만 원, 토요일 15만 원, 일요일 25만 원 등이다. 연장·휴일수당을 고려하면, 모두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하거나 그에 준하는 값이다.
'숙소 내 이발사'… 선교사 꿈 품었던 건실한 청년
아웅민우 씨는 2022년 4월 한국에 처음 입국했다. 그동안 서울, 인천, 파주 등에서 일하다 지난해 아산으로 일터를 옮겼다. 철도공사 현장 등 모두 비슷한 건설 현장에서 일해 이사가 잦았다고 민탄 씨는 말했다.
2027년 초 고용허가제 비자가 만료되는 그는 미얀마로 돌아간 후, 다시 한국에 입국할 계획도 세웠다. 한국에 오기 전 그는 말레이시아에서도 5년 정도 일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로 일했다. 현재 아내는 15살 큰아들과 9살 딸, 7살 막내아들과 미얀마 양곤에서 살고 있다. 고인에겐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자녀도 한 명 더 있다.
동료들이 기억하는 그는 조용하고 따뜻하며, 신앙심이 깊은 청년이었다. 기독교인이었던 고인은 평소 여가 시간이 나면 성경을 자주 읽었다. 기타를 치며 찬송가도 부르곤 했다.
그는 숙소의 '이발사'도 맡았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미용실에 가면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이에 누군가 "민우 씨, 우리 머리 길었어. 머리 잘라줘"라고 하면, 숙소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차례차례 머리를 잘라 줬다.
그는 미래에 미얀마에 다시 정착하면 선교활동을 하려는 꿈도 갖고 있었다. 고인 아내의 친척인 에스토무 씨는 "술·담배도 하지 않는, 정말 성실하고 건실한 청년이었다"며 "항상 성경의 좋은 말씀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했고, 올바르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9년 3월 미얀마 중부의 작은 농촌 마을인 파웅라웅(Phaunglaung) 마을에서 3남 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마을 주민들은 참깨, 땅콩, 옥수수 등의 농사를 주로 지었다. 고인도 고향에 살 땐 집안 농사를 도왔다. 그러다 청년기에 옛 수도이자 도심지인 양곤으로 옮겼고, 결혼한 후 국경을 넘어 노동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고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한국 입국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비자 발급이 미뤄져 애태우고 있다. 에스토무 씨는 "슬픔에 제대로 말조차 못 했던 아내가, 한국에 오기 위해 안간힘을 내고 있다"며 "현재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빠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탄 씨와 네린 씨는 "(노동부, 경찰, 회사) 모두 거짓말하거나 비밀을 만들지 말고 사실대로 밝혀주면 좋겠다"며 "'너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건 거짓말이다. 현장이 위험했던 건 우리 모두 다 안다. 노동자 탓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며 "내국인, 외국인 가리지 말고, 원칙대로 일을 시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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