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에게 잇따르는 암 발병, 뭔가 이상하다"

균도 아빠 이진섭씨가 한수원을 고소한 이유

이진섭(48) 씨는 부인 박금선(48) 씨와 1991년 결혼해 고리 원자력발전소 인근 부산 기장군 좌천리에 둥지를 틀었다. 발전소에서 불과 3km도 안 되는 거리다. 이 씨는 결혼 전에도 발전소 인근에서 살았다. 이곳 토박이다. 부인은 1988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이전엔 서울에서 살았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자 이곳으로 이사 왔다. 이 씨는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열심히 살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쉽지 않았다. 결혼한 이듬해 태어난 아들 균도가 발달장애(선천성 자폐증) 증상을 보였다. 태어난 지 두 돌이 됐을 때애야 알게 됐다.

서울대학교 소아정신과에 데려가 정확한 병명이라도 받고 싶다는 부인의 소망 때문에 서울로 이주했다. 1993년 10월이었다. 이후 약 2년간 서울에서 살았다. 하지만 계속 서울에서 살 순 없었다.

병원에서 "장애가 있을 수 있지만 아직 어려서 모르겠다. 만 5세가 지나면 결정이 된다"는 말을 듣고 2년간 타향생활을 끝내고 다시 부산 기장군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이 정성으로 돌봤지만 균도는 자폐성장애 1급을 진단받았다.

이후 아들 뒷바라지를 하며 살았다. 2011년에는 균도와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가는 '도보걷기'도 진행했다. 이후 광주에서 서울까지, 부산에서 광주까지 걷는 등 전국을 걸어 다녔다. 발달장애아의 문제를 사회에 알리고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 아들 균도(왼쪽) 군과 도보 순례 중인 이진섭(오른쪽) 씨. ⓒ연합뉴스

"가족 모두가 병을 앓는다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그러던 중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주거하는 주민들에게 발전소는 암 진단 검진을 무료로 해줬는데 2011년 3월 동남권 원자력의학원에서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 의견에 따라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병은 이 씨에게만 생긴 게 아니었다. 2012년 2월, 이번엔 아내가 의학원에서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역시 원자력발전소에서 무료로 해주는 암 진단 검진으로 알게 됐다. 갑상선 절제수술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원자력발전소에서 해준 암 진단 검진으로 목숨을 건졌다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5월, 서울의대 안윤옥 교수가 발표한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연구'라는 논문을 우연히 본 뒤, 그 생각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논문에서는 역학조사 결과, 일반인에 비해 원전 종사자에게 염색체 이상이 2배 이상 나타났다고 했다. 또한, 원전 주변에 거주하는 여성이 일반 지역 여성보다 갑상선암 발생률이 2.5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했다. 아내의 병이 아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2007년 장모가 위암 판정을 받고 위 70%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것도, 아들이 발달장애를 앓는 것도 원자력발전소와 관련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직장암도 마찬가지였다.

이진섭 씨는 "우리 가족이 모두 병을 앓는 걸 보면서 원자력발전소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원자력발전소는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뿐더러 알고 싶은 정보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진섭 씨는 1일 부산지방법원에 고리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를 고소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신체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 지난 3일 시민단체는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핵 방사능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프레시안(허환주)

"특수한 가족의 소송이 아니다"

핵발전소 지역 주변 주민의 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환경단체는 암 말고도 방사능에 의한 피부염, 불임증, 탈모 등과 같은 급성 장애뿐 아니라 10년이 지난 다음에 발생하는 백혈병, 백내장 같은 장애도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더구나 방사능 피폭으로 유전적 장애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전적 장애는 장기간에 걸쳐 대를 이어 나타난다.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 지역은 1978년 첫 핵발전소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35년 동안 유례없는 대규모 핵발전 단지로 변모해 왔다. 하지만 지역 주민 건강에 관해서는 아무런 조사도 시행되지 않았다. 다만 이진성 씨 가족처럼 이 지역에서 오래 산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암 진단만을 시행할 뿐이다.

진보신당, 녹색당, 사회복지연대 등 단체들은 3일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생을 고리핵발전소 인근 지역에서 살아온 한 가족이 집단으로 암과 같은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접했다"며 "이들의 질병이 핵 방사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규명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진섭 씨 소송은 특수한 일가의 소송이 아니다"라며 "그간 정부와 한수원이 지역 주민의 건강과 안전은 팽개치고 오로지 핵 이익집단의 논리로만 일관해 온 배경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허영관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은 "핵발전소가 만들어진 이후, 35년 동안 방사능 후유증을 겪는 수많은 마을 주민들을 만났다"며 "하지만 아무런 조사 없이 모두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는 게 올바른 행정이라 생각한다"며 "이번 소송이 핵발전소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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