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탈퇴파 말 바꾸기…'공약 엑시트' 빈축

국민건강보험에 자금 투입된다는 약속도 "불가능하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묻는 '브렉시트'(Brexit) 투표에서 EU 탈퇴 찬성을 외쳤던 정치인들이 투표가 끝나자 하나둘 씩 말을 바꾸고 있다.

우선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민건강보험)와 관련된 말 바꾸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 EU 탈퇴를 주장하던 세력들은 영국이 EU에 내고 있던 분담금을 NHS에 투입할 수 있다고 선전해왔다.

이들은 공식 홈페이지의 "만일 우리가 EU에서 탈퇴하는 투표를 한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문제를 가장 위에 올려 놓았다. 매주 영국이 EU에 내던 분담금 3억 5000만 파운드(한화 약 5489억 원)를 NHS를 비롯해 학교와 집 짓는 사업 등에 쓸 수 있다는 내용이다.

▲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진영 공식 홈페이지 'Vote Leave'에서는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하면서 NHS에 자금이 투입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www.voteleavetakecontrol.org

그런데 EU 탈퇴를 찬성했던 정치인들은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는 24일(현지 시각) 영국 방송 ITV에 출연한 자리에서 EU 분담금을 NHS에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러한 공약을 만든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캠프에서 한 일" 이라면서 "(공약을 만든) 그들의 실수"라고 덧붙였다.

영국의 EU 탈퇴 운동을 이끌었던 또 다른 정치인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현재까지 이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보수당 소속의 던컨 스미스 전 고용연금장관은 EU 탈퇴 선거 운동은 공약이 아니라 "일련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번 투표에서 EU 탈퇴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도 말 바꾸기가 이어지고 있다.

탈퇴 진영은 홈페이지에서 "세계에서 위협이 점점 많아지는 가운데, 우리의 국경을 좀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EU의 판단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판단으로 누가 이 나라에 들어올지 결정할 수 있다"면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자신들이 이민자 통제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민자 수를 줄일 수 있다고 선전해왔다.

그런데 지난 25일 탈퇴 운동을 이끌었던 나이절 에번스 보수당 의원은 영국 공영방송 BBC 라디오에 출연한 자리에서 영국으로 오는 이민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소 오해가 있었다. (엄격한 이민 정책을 가지고 있는) 호주와 같은 포인트제 이민 시스템을 도입하면 영국이 이민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해명했다. 투표 전에 이민자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탈퇴 진영이 투표 전과 다른 입장을 내놓으며 논란이 커지자, 한 때 공식 홈페이지의 자료가 모두 삭제됐다가 복원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탈퇴 진영의 공식 홈페이지인 'Vote Leave'는 27일 모든 홍보 자료를 삭제하고 "Thank You"라는 메시지만 화면에 띄워 놓았다. 이에 탈퇴 진영이 투표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자신들이 했던 주장들을 지우고 사전에 증거를 인멸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말 바꾸기에 증거 인멸이라는 논란까지 나오면서 홈페이지에는 다시 관련 내용이 채워졌다. 이에 일부에서는 탈퇴 진영이 막상 브렉시트가 현실화된 현재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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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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