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을 미끼로 노벨상을 받아 볼까?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이중나선>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고전'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의 정의대로라면,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힌" 책이야 논란의 여지가 적다. 하지만 "모범이 될 만한"의 부분에 오면 저마다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고전 선정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과학 고전'이란 무엇일까? 역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라면 제목 정도야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책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범이 될 만한"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최돈찬 옮김, 궁리 펴냄)이 이번 과학 고전 목록에 낀 것이 마뜩잖다. 이 책이 널리 읽힐 만한 책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여동생을 미끼로 노벨상을 받아 볼까?

▲ <이중나선>(제임스 왓슨 지음, 최돈찬 옮김, 궁리 펴냄). ⓒ궁리
1953년 4월 25일, 영국의 과학 잡지 <네이처>에 고작 900단어로 쓰인 한 쪽짜리 논문이 실렸다. 당시 각각 스물다섯, 서른일곱이었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대를 이어 생명의 비밀을 전달하는 유전 정보가 이중나선 구조로 꼬여 있는 DNA 안에 새겨져 있음을 세상에 공표한 것이다.

왓슨과 크릭은 이 논문에 실린 업적을 인정받아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노벨상을 안겼던 이 논문을 다시 읽는 이들은 거의 없다. 대신 많은 이들은 1968년 왓슨이 '혼자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기까지의 뒷얘기를 담은 <이중나선>에 눈길을 보낸다. (당시 왓슨은 '성공한' 마흔의 과학자였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세 번이나 통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의 남는 시간 동안 한 번 읽었고, 몇 년 전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잡지에 기고할 독후감 때문에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책을 읽었다. 필요에 따라서, 그때그때 뒤적거린 것까지 염두에 두면 이 책을 읽은 횟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이 책은 과학 '지식'이 아니라, 바로 그 과학 지식을 만드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왓슨은 생명의 유전 정보가 어떻게 세대를 이어가며 전달되는지 밝히는 과정에서 자신을 포함한 과학자들이 어떻게 경쟁했는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스물다섯의 '열정'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초짜 과학자 왓슨은 '게임의 규칙'을 이렇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 게임에서 자신이 이기면 단숨에 최고의 과학자가 되겠지만, 진다면 그저 그런 과학자로 살다가 잊힐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자신보다 열두 살이 많지만 역시 별 볼 일 없었던 크릭과 함께 승리를 위해서 온몸을 던진다.

이런 식이다. 왓슨은 자신의 경쟁자였던 모리스 윌킨스가 누이동생 엘리자베스 왓슨과 점심을 같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윌킨스가 진정으로 내 누이를 좋아하게 되면, DNA에 대한 X선 연구를 자연스럽게 함께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 자기 여동생까지도 게임의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동원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이 '미인계'는 실패로 끝난다.

심지어 왓슨은 승리를 위해서 부정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또 다른 경쟁자였던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찍은 X선 회절 사진을 훔쳐보고서야 DNA 이중나선 구조를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네이처> 논문은 물론이고 이 책에서도 프랭클린의 공을 인정하는데 인색했다.

사실은 정반대다. 이 책에서 프랭클린은 사소한 일에도 버럭 화를 내는 "깐깐하고 욕심 많은" 성격이 괴팍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의 평가대로라면 프랭클린은 인간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창의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과학자처럼 보인다. 심지어 "여성스러움과 거리가 먼 여자"라면서 "안경을 벗고 머리를 조금만 우아하게 손질하면 나을 텐데" 하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왓슨은 1968년 <이중나선>이 나오고 나서 DNA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프랭클린의 기여를 둘러싼 논란이 퍼지자, 1980년 개정판에 그녀의 연구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후기를 마지못해 덧붙였다. (국내의 번역본에 붙어 있는 후기는 그러니까 12년 만에 쓴 것이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여전히 이런 건지도 모른다.

'못된 로지(플랭클린)는 DNA 사진을 찍고서도 그 구조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고! 다 내가 한 거야!'

"동성애 성향의 태아는 낙태" "흑인은 지적 능력이 떨어져"

어쨌든 최종 승자는 프랭클린이 아니라 왓슨이었다. 그리고 프랭클린은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여러 업적을 남겨두고) 1958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이후에 왓슨은 노벨상을 받았고, 과학사의 한 장면을 자기 처지에서 정리한 <이중나선>을 펴냄으로써 역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이중나선>은 경쟁이 난무하고 심지어 사기도 서슴지 않는 20세기 후반의 과학 활동을 예고하는 역사적인 기록으로 앞으로도 여러 차례 언급될 만한 책임은 틀림없다. 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20세기 중반 과학계에서 여성 과학자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증명하는 기록으로도 앞으로 수차례 언급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본받을 만한 과학자의 참모습 따위는 발견할 수 없었다. 성공을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치기 어린 20대 청년의 모습과 그것을 나중에 자기 입맛대로 포장하는 '성공했으니 옳다'라는 천박한 가치관을 가진 덜떨어진 기성세대의 흔하디흔한 모습을 한 번 더 확인했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DNA 이중나선을 발견하고 나서 과학 연구자라기보다는 과학 행정가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왓슨의 말년은 그다지 좋지 않다. 2014년 12월 4일, 그가 자신이 1962년 받았던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은 것은 명백한 증거다. 그가 사실상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나서, 이렇게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은 사정도 자업자득이다.

왓슨은 "동성애 성향의 태아를 낙태할 수 있다"(1997년 2월), "멍청한 하위 10%의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2003년 2월) 등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것도 모자라, 2007년 10월에는 '흑인은 백인보다 지적 능력이 낮다'는 취지의 발언을 길게 쏟아내고서 "인종 간 지능의 우열 유전자가 앞으로 10년 안에 발견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결정타를 날렸다.

여러 인종이 함께 사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이런 발언이 용납될 리가 없다. 결국, 그는 모든 공직에서 강제 은퇴를 당하고서, 몇 년 만에 생활고를 호소하며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 (한 가지 궁금증.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이중나선> 인세만 하더라도 상당할 텐데? 회당 수천만 원 받는 강연 수익이 없어지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이겠지.)

<이중나선>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읽힐 책이다. 20세기 과학의 역사, 특히 생명과학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책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왓슨을 위대한 과학자의 역할 모델이라도 되는 양 이 책을 청소년 필독서로 지정하는 바보 같은 짓은 이제 제발 그만하자.

(나라면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이나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할 대학(원)생에게 제임스 왓슨이 아니라 존 벡위드의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김동광 김명진 이영희 옮김, 그린비 펴냄) 같은 책을 읽히겠다.) (☞관련 기사 : "나는 '과학'과 싸우는 '과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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