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장자 20대 반항아, 꿈과 돈을 바꾸다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해커스>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올해는 유독 엄청난 과학적 사건이 많다. 2월에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예측한 중력파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3월에는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최정상의 프로 기사에게 승리했다.

전자는 경탄과 함께 중력파 천문학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를 가져온 반면, 후자는 놀라움과 함께 일종의 공포까지 가져왔다. 지금까지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 막연하게만 생각해 왔는데, 이제 그것이 멀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서구보다 바둑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알파고의 승리를 더 충격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사실 컴퓨터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연산을 하는 거야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알파고가 그토록 놀라운 것은 바둑이라는 "정확한 답을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사람보다 나은 대답을 내놓는다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보다 '낫다'라는 것을 바둑에서는 최종적인 승리라는 형태로 정량적으로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컴퓨터는 계산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면 훨씬 복잡하고 일견 추상적으로 보이는 일까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이벤트가 잘 보여준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승리자는 바둑의 수를 정량화 시키는 데 성공한 알고리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알고리듬을 실시간으로 수행해서 바둑을 "둘 수 있게" 만든 하드웨어의 능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해커스>(스티븐 레비 지음, 이해영·박재호 옮김, 한빛미디어 펴냄). ⓒ한빛미디어
컴퓨터의 역사에는 사실 이번 알파고의 승리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발전과 극적인 사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을 일어나게 한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는, 개인적인 이익이나 필요와는 상관없이 컴퓨터 그 자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느라 삶을 불살랐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열정, 그런 문화, 그런 삶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의 저널리스트 스티븐 레비는 <해커스>(스티븐 레비 지음, 이해영·박재호 옮김, 한빛미디어 펴냄)를 썼다.

해커라는 말이 요즈음은 주로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보안 시스템에 침입해서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키는 테크놀로지 무법자를 가리키게 되었지만, 이 책에서는 다소 결이 다르게 쓰이고 있다. '해크(hack)'란 나무를 거칠게 베거나, 초목을 베어 길을 트는 것을 말하는데, 오래 전부터 MIT에서 흘러 다니던 은어였다고 한다.

1950년대 후반 복잡한 시스템을 가지고 장난질 하는 것을 즐기던 기술 마니아들이 이 말을 사용하면서 '해킹'이라는 말은 차츰 고유한 의미를 띄어 갔다. 그리고 이들이 컴퓨터에 매달리면서, 해킹은 점점 컴퓨터를 가지고 실험과 창조적인 장난을 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레비는 초기 해커들이 만들어낸 해커의 윤리에 주목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누구나 여하한 일이 있어도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정보는 개방되어야 하며, 중앙의 권력은 믿을 수 없으니 분권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커는 오로지 그들의 해킹에 의해서만 심판받아야 하며, 나이나 지위와 같은 기준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레비는 이것을 "컴퓨터 자체의 우아하고 유려한 논리와 결합되어 있는 듯한 공통의 철학"으로 파악했다. 그것은 개방성과 나눔, 그리고 분권화의 철학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레비가 이 책에서 말하는 해커란 "컴퓨터 속에서 마술을 발견하고 그 자체를 자신의 삶으로 살아갔고, 모든 사람을 위해 그 마술을 호리병 속에서 해방시켜준 사람들"이다.

이 책은 컴퓨터가 인간의 삶에 들어오는 세 장면을 그리고 있다. 각 장면의 주역들은 모두 해커들이다. 특히 올해 초 타계한 마빈 민스키(Marvin Lee Minsky, 1927~2016년)나,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만든 존 매카시(John McCarthy, 1927~2011년)와 같은 인공지능의 선구자들의 연구소에서 1960년대 초반에 컴퓨터를 가지고 온갖 일들을 하던 사람들이 바로 그런 해커들의 선구적인 사람들이다.

민스키는 1960년대 초반 MIT에서 인공지능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공공연하게 인간의 뇌를 "고기로 된 두뇌"라고 표현해서 소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말에 함의되어 있는 것처럼 그는 일찌감치 '고기'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들어진 두뇌를 상상했고, 언젠가는 컴퓨터가 사고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었던 것이다.

매카시 역시 컴퓨터가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그 가능성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들의 연구는 컴퓨터를 정해진 사용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컴퓨터를 통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MIT의 해커들은 이러한 그의 목적에 꼭 맞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매카시와 민스키는 그들을 후원하고 키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MIT 해커들은 원래 당시 학교에서 운용하는 거대한 메인 프레임 컴퓨터 주위를 맴돌며 프로그래밍에 미쳐서 컴퓨터의 온갖 가능성을 탐구하던 사람들이다. 1960년대에 이들이 다루었던 컴퓨터는 최초로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미니 컴퓨터 가운데 하나인 디지털 이퀴프먼트 코퍼레이션(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의 PDP 시리즈였다.

해커들은 이 컴퓨터의 시스템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은 컴퓨터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하기 원했고, 그래서 컴퓨터로 음악을 연주한다든지, 우주 전쟁 게임을 만든다든지 하는,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동시에 대체 그 비싼 기계로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를 일들을 하곤 했다.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컴퓨터가 여러 분야에서 점차 본격적으로 중요해지자, 이들이 맡은 일들도 차츰 유용성을 따지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해킹에 몰두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MIT를 떠났고 차츰 MIT에서 해커의 시대는 저물어갔다. MIT 해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사람들의 태도가 '야! 여기 신기한 기계가 있다. 우리 이 기계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는 식이었지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로봇 팔을 만들었고 언어를 해부하고 우주 전쟁을 즐겼지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국가적 목표에 따라 우리가 하는 일의 성과를 입증해야 합니다. (…) 우리는 과거가 우리의 유토피아였고 우리의 문화였다는 것을 깊이 느낍니다. (…) 저는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물론 그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과 같지도 않았다. 다음 세대의 해커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해커들은 1970년대 초반에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전자공학의 가능성을 탐구하던 사람들이었다. 이 시기는 전자공학이 급속히 발전하고 집적 회로(IC)가 개발되어 적절한 칩만 있으면 개인도 높은 수준의 복잡한 기계를 만들 수 있게 된 때였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고 싶어 했던 기계는 물론 컴퓨터였다.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한다는 것이 꿈처럼 들리던 1974년의 일이다.

직접 전수받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들 역시 해커의 윤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컴퓨터에 대한 접근선, 개방성, 분권화. 이 시대에 그것을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드웨어 해커들은 1970년대 캘리포니아의 분위기 속에서 한편으로는 공동체를 꿈꾸고 추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개인용 컴퓨터라는 주제를 추구해서 단말기, 마이크로 칩, 메모리를 가지고 컴퓨터를 설계했다.

하버드 대학교를 때려치우고 새로 개발된 컴퓨터를 위한 베이식 언어 해석기를 개발해서 팔기 시작한 빌 게이츠라든가, 하드웨어 해커들의 모임인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뛰어난 기술로 추종자들을 몰고 다니던 스티븐 워즈니악, 그리고 워즈니악이 개발한 애플Ⅱ 컴퓨터에서 사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마침내 그것을 실현시킨 스티브 잡스 등, 이 시대는 오늘날에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훗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성공이 워낙 거대한 것이라서 잘 조명이 되진 않지만, 이들의 시작은 분명 해킹이었다. 예를 들면 워즈니악은 천재적인 설계와 구성으로 애플 컴퓨터의 완성도를 끝없이 높이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당시 이런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휴렛패커드 사에 근무하던 워즈니악이 회사에다가 자기가 애플 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했는데, 회사의 반응은 그런 건 시장성이 없으니 직접 만들어 판매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시 시대는 변했다. 1980년대에는 이제 컴퓨터는 안정된 상품이 되었다. 새로운 세상은 소프트웨어 쪽에 있었다. MIT 해커들이 우주 전쟁이라는 게임을 처음 개발한 이래,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남아있던 비디오 게임이라는 분야가, 애플 컴퓨터의 성공과 함께 새로운 산업으로 탄생한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현재 컴퓨터 관련 사업의 가장 거대한 줄기 중 하나인 게임 산업이 탄생하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해커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컴퓨터는 이미 자본주의 체제에 확고하게 편입되었고, 그 중에서도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 해당되는 산업 분야가 되어갔다. 욕심만 가득하던 일개 프로그래머가 2년 만에 매출액이 1000만 달러를 넘는 게임 제작 회사의 사장이 되고, 회사에는 소프트웨어 스타의 미래를 꿈꾸는 젊은 프로그래머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해커의 윤리가 시장 한가운데에서 어떤 일을 겪고 어떻게 변화하며 어떤 모습이 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게임도 물론 해커의 윤리를 실현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어떤 프로그래머도 순전히 자기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에 나와서 심판을 받을 수 있다. 프로그래머가 게임을 만드는데 몰두할 때, 그의 머릿속에는 게임을 더 재미있게, 완벽하게 만드는 것 뿐, 효율이나 시장성 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분명 그들은 컴퓨터 시스템을 탐구하고 그 가능성을 넓히는 일을 하는 해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돈을 받고 판다는 면에서, 3세대 해커들은 이전과는 같아질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재미를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디스크에는 복사 방지 시스템을 설치한다.

이 이야기는 프로그래머 출신의 해커 켄 윌리엄스(Ken Williams, 1954~)가 성공적으로 기업을 키워서 20대에 백만장자가 되어 히말라야 삼나무로 된 저택의 온수 욕조에 앉아 잇는 장면으로 끝난다. MIT의 해커들이 컴퓨터를 발견한 지 25년 만에, 해커가 이렇게 성공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장면일까?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그렇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해커의 윤리는 현실과 타협을 했고, 담장을 둘러쳐서 더 이상 다르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말하고 있듯이 "진정한 해커는 종말을 맞았다."

이 책은 컴퓨터의 기술적인 발전을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 해커의 문화, 즉 인간에게 있어서 컴퓨터의 의미에 대한 책이다. 레비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활약했던 여러 해커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거기서 해커의 윤리를 발견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제 오늘날의 세상은 컴퓨터가 없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컴퓨터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 책은 1984년에 발매되었다. 아직 IBM의 PC인 XT조차 널리 쓰이지 않고 MS-DOS도 막 도입되었을 시절이다. 그렇다보니 이 책에는 윈도우와 같은 GUI 환경, 인터넷, 구글, 스마트폰과 같은 이후의 컴퓨터의 발전을 겪은 우리에게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부분도 얼마든지 있고, 많은 수의 독자들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 내용이 상당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한계 외에도, 이 책에서 그리는 해커의 모습이 다소 낭만적으로 치우쳐 있고, 해커의 윤리에 너무 낙관적인 관점을 취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초기 해커들이 활약하던 시절의 역사로서 매우 소중한 기록이다.

우리나라에는 이 책이 1991년에 출판기획모임 과학세대에서 번역해서 사민서각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으로 1996년에 다시 발간되었다가, 지금은 새로 번역되어 한빛미디어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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