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비밀, 달팽이는 안다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기억을 찾아서>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알파고의 충격이 사람들 마음속에 내면화 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만난 고등학교 선생님, 택시기사 아저씨, 헤어 디자이너 등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앞으로 기계가 인간의 모든 일을 대신 할 거라면서요?"

기계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일을 대신 해왔다. 19세기 초 증기기관 방적기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영국의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하며 저항한다. 일명 '러다이트 운동'이다. 알파고가 주는 위기감은 증기기관 방적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자리를 뺏는 정도가 아니라 결국 우리를 지배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특별한 것은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뇌를 모방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것을 상상할까? 사람의 손을 모방한 기계라고 하면 대충 머리에 그림이 그려진다. 실제 로봇팔의 모습은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뇌를 모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뇌를 모방한다고 했지만, 알파고는 분명 인간과 다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이세돌과의 시합에서 이겼지만 알파고가 기뻐했는지 알 수 없다. 알파고는 구체적으로 뇌의 무엇을 모방하는 걸까? 언론에 수없이 나온 단어 '딥 러닝'에 단서가 있다. 러닝(learning), 그러니까 알파고는 뇌의 학습 능력을 모방한 기계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는 어떻게 학습을 할 수 있는 걸까?

뇌와 의식에 대한 책들은 많다. 이런 책들은 대개 뉴런의 해부학적인 지식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뉴런은 뇌를 이루는 세포다. 학습이나 지능이 인간의 뇌가 갖는 특별한 능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신경 세포 하나의 수준에서 학습이나 기억과 같은 의식의 핵심 원리를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아내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이 바로 <기억을 찾아서>(전대호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의 저자 에릭 캔델이다. 캔델은 세포 내 기억 과정을 알아낸 공로로 1990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다.

▲ <기억을 찾아서>(에릭 켄델 지음, 전대호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알에이치코리아
이 책에는 두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첫째, 인간이자 과학자인 캔델의 이야기. 여기에는 유대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 과학자로서 캔델이 경험한 것들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과학자 사회의 이야기다. 여기서도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둘째, 뇌 과학 이야기. 과학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은 많지만, 그런 지식이 나오게 된 시행착오의 역사를 꼼꼼히 보여주는 책은 드물다. 캔델이기에 쓸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하다. 캔델의 자서전이자 뇌 과학의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자서전이 바로 역사책이 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은 캔델이 9살이 되던 1938년 11월 9일 크리스탈나흐트(Kristallnacht)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날 독일어권의 수많은 유대인들이 나치 세력의 폭력에 희생당했다. 유대인이었던 캔델 가족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오스트리아를 간신히 탈출하여 미국으로 이주한다. 홀로코스트의 지옥 문턱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것이다.

캔델이 살았던 오스트리아의 빈은 당시 예술과 지식의 중심지였다. 캔델은 당시 빈이 가졌던 지적 예술적 매력과 뇌 과학을 버무려 <통찰의 시대>(이한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런 멋진 도시의 사람들이 왜 갑자기 악랄하고 잔인한 모습으로 돌변한 것일까? 이 사건은 캔델이 일생을 바쳐 인간의 의식을 탐구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캔델이 기억의 원리를 발견한 장소는 놀랍게도 인간의 뇌가 아니었다. 거대한 바다달팽이 '군소'의 뉴런이었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던 캔델이 군소로 연구 대상을 바꾸려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하던 이야기가 나온다. 연구 대상을 인간에서 동물로 바꾼다는 것은 의사를 그만두고 생물학자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나 같은 물리학자에게 캔델의 선택은 당연해 보인다.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는 문제를 최대한 단순히 만드는 것이다. 더 단순해지면 안 되는 정도로 단순화 시킨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이것은 환원론적 관점이다. 인간의 기억과 같은 고등한 의식이 군소 따위(?)의 뉴런 하나에서 이해된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 기분 나쁠 일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군소가 아니었으면 캔델이 노벨상을 받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점이다.

캔델이 알아낸 기억과 학습의 비밀은 너무나 단순하다. 원래 뭐든 알고 나면 당연한 법이다. 뉴런이라는 세포는 전기 신호를 입력받아 다시 전기 신호로 출력하는 역할을 한다. 입력은 수천에서 수만 개의 다른 뉴런으로부터 들어온다. 들어온 전기 신호가 누적되어 어느 임계값을 넘으면 외부로 전기 신호를 내보낸다. 이게 하나의 뉴런이 하는 일의 전부다. 뉴런과 뉴런 사이는 시냅스라는 부분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냅스는 전기 신호를 화학 신호로 바꾸었다가 다시 전기 신호로 바꾼다. 얼핏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냥 전기 신호로 계속 보내면 될 것을 왜 화학 신호로 변환하는 걸까? 여기에 모든 비밀이 숨어있다.

당신이 이웃한 두 사람과 나란히 손을 잡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왼쪽 사람이 손을 꼭 쥐면 당신에게 신호가 온 것이다. 당신이 신호를 전달하고 싶다면 오른쪽 손을 꼭 쥐면 된다. 사람이 뉴런이고 맞잡은 손이 시냅스다. 실제 뉴런은 손이 수천 개 달린 괴물이라는 점이 다르다. 시냅스의 특징은 그 세기가 변할 수 있다는 거다. 당신 손아귀의 힘이 세다면 약하게 손을 쥐어도 옆 사람에게 신호가 쉽게 전달 될 것이다. 손에 힘이 하나도 없다면 쥐어도 옆 사람이 모를 거다. 학습을 한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은 바로 시냅스들의 세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자전거를 처음 탈 때는 다리 근육의 움직임을 일일이 신경써야한다. 하지만 자전거를 자꾸 타다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다리가 자동으로 적절히 움직인다. 자전거를 타는데 필요한 움직임을 일으키는 뉴런들의 연결이 강화된 것이다. 이것이 학습이다. 자전거를 내리는 순간 자전거 타는 기술을 몽땅 잊어버리는 사람은 없다. 며칠 뒤에 자전거를 타도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 강화된 시냅스의 세기가 장시간 유지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기억이다.

캔델은 군소의 뉴런에 인위적으로 전기 자극을 가하여 시냅스 결합의 세기가 변하는 것을 관찰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군소의 행동에 변화가 생기는 것, 즉 학습이나 기억의 행위가 생기는 것을 보였다. 알파고의 학습 원리는 군소와 같다. 신경망 회로의 노드라 불리는 것들 사이의 결합 강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학습이다. 노드가 뉴런이고 결합 강도가 시냅스인 셈이다.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미덕은 연구 과정을 아주 자세히 기술한다는 점이다. 앞선 사람들이 어떤 연구를 했고, 무슨 문제가 있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무엇이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실험을 했는지, 그 결과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이 분야를 직접 개척한 사람으로서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싫었을지 모르겠다. 위에서 설명한 단순한(?) 원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험과 검증이 필요했는지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과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의식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현재 과학이 당면한 모든 과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 단언한다. 우주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오만한(?) 물리학자로서 완전히 동의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우주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주체가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이 글을 읽는 것도 모두 인간의 의식이다. 기계지능이 의식을 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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