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사유의 시작, <전쟁 일기> 완역 출간

[프레시안 books] <전쟁 일기>

현대 철학의 슈퍼 스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전쟁 일기>(박술 옮김, 읻다 펴냄)가 완역 합본으로 나왔다.

비트겐슈타인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 동안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는데, 이 기간 그의 생전 유일한 저작이자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저작물로 꼽히는 <논리철학논고>를 집필했다. 그는 전쟁의 한가운데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참사를 경험했다. 이 경험은 그간 나온 철학적 명제는 헛소리에 불과했으며, 삶의 진짜 모습은 (논리의 기반인) 언어 바깥에 있다는 도발적 철학 사상을 낳았다.

따라서 "모든 철학의 문제를 해결했다"던 그의 성찰 기반은 바로 전쟁터였다. <전쟁 일기>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전쟁 일기>는 비트겐슈타인이 참전 중 일기장에 적은 일상의 모습과 그의 사유에 관한 기록이다. 아주 개인적인 불만의 편린부터 깊은 사유가 모두 담긴 이 기록은 우리가 글로 접할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장 오래된 철학적 결과물인 셈이다. 아울러, <논리철학논고>로 이어지는 사유의 길이기도 하다.

이번에 번역된 <전쟁 일기>는 그의 일기장 세 권을 묶어 만들어졌다. 출판사에 따르면 세 권을 모두 묶은 <전쟁 일기> 합본은 세계 최초다. 독일에서도 편집 후 발간되었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덕분에 독자는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의 여정을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

▲읻다의 '괄호 시리즈' 첫 세 권. ⓒ프레시안

이 책은 대안적 독립 출판 프로젝트 그룹인 '읻다'에서 낸 '괄호 시리즈'의 첫 세 권 중 하나다. '읻다'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고어로 '좋다'는 뜻의 우리말이다. 읻다는 번역가 최성웅 씨(대표)를 비롯한 20~30대 젊은 출판인들이 대안적 출판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출판 노동 과정에서 서로 돈을 주고받지 않는 '노동 공유' 형태로 책을 제작한다. 각자 자기 일을 하는 동시에, 함께 만들고 싶은 책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프로젝트 집단인 셈이다.

괄호 시리즈는 국내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책, 혹은 재조명할 가치가 있는 책 10권으로 구성됐다. 닫힌 괄호'( )'가 아닌, 열린 괄호 ') ('를 뜻하는 괄호 시리즈는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 동시에 새로운 고전의 세계를 열 수 있는 책"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출판사는 강조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전쟁 일기>를 비롯해 이번에 함께 나온 책은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정수윤 옮김),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Y 교수와의 대담>(이주환 옮김)이다.

일본 시인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으로, 그가 유년기에 겪은 제2차 세계 대전의 공포를 그린 시 <헨젤과 그레텔의 섬>을 포함해 다섯 편의 작품을 묶은 시집이다. 이 책은 1983년 일본에서 출간된 후 시 문학상인 'H씨 상'을 수상했다.

반유대주의를 공공연히 표명함으로써 20세기 프랑스 문단에 큰 충격을 안긴 대형 작가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Y 교수와의 대담>은, 출판사에 따르면 '셀린이 스스로를 인터뷰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점 세 개(...)로 대표되는 그의 파격적인 문체를 고스란히 살렸다고 출판사는 강조했다.

읻다는 이들 책 이후에도 7권의 괄호 시리즈를 더 펴낼 예정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 비가>, 로베르 데스노스의 <애도를 위한 애도/자유 또는 사랑!>, 에드몽 자베스의 <예상 밖의 전복의 서>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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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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