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위, 전문성 가장한 정치꾼이라고?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제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위원회 활동 평가

제20대 총선을 위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이하 획정위)는 2016년 2월 28일 총 253개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안(이하 획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국회로 이송했고, 국회는 3월 2일 이를 통과시켰다. 2015년 7월 15일 획정위가 처음으로 소집되었음을 고려한다면 무려 7개월 반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번 지역구 획정은 획정위가 독립기구로 최초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정치권의 나눠 먹기식 획정이나 게리맨더링을 피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국회의원의 지역구를 획정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일정하게 제도적으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제도개혁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명의 위원 구성과 가중다수결(2/3) 의결 규칙의 적용, 주무부처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임명 위원과 파견 직원으로 구성된 사무국의 위상과 역할에 부문에 있어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고 향후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

구체적인 평가에 앞서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은 획정위의 활동을 이해하고 미래 개혁 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획정위 구성 규칙에서 문제점은 없는가?
둘째, 획정위 정책 결정에서 문제점은 없는가?
셋째, 획정위 운영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는가?
넷째, 향후 개혁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글은 선거구획정위원으로서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위의 네 가지 질문에 대한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획정위의 바람직한 개혁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문제제기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기에 앞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획정위의 구성과 운영을 규제하는 법적 근거이다. 공직선거법에 제시된 획정위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법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요약문으로 제시한다.
<국회의원획정위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법률 내용>

● 지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기관이지만 직무에 관하여 독립의 지위를 지님 (제24조 2항).
● 목적과 활동시한: 국회의원지역구의 공정한 획정을 위해 선거일 전 18개월에 구성되어 활동을 개시하고 선거일 전 1년까지 획정안을 확정함 (제24조 1항과 제24조2의 1항). 단, 지역구간 인구편차를 2:1로 줄이라는 헌재 판결의 시기를 고려하여 이번 총선에 한해 선거일 전 6개월까지 획정안을 확정하도록 했음.
● 구성: 획정위는 중앙선거관위위원회위원장(이하 선관위위원장)이 위촉하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위원 중에 호선함 (제24조 3항). 위원은 선관위위원장이 지명하는 1명과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 정당으로부터 추천받은 8명으로 구성됨 (제24조 4항). 국회 소관 위원회는 8인의 위원에 대해서 실질적인 거부권을 지님.
● 결정: 재적위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획정안을 의결 (제24조 11항).
● 국회과정: 국회 소관 위원회는 획정안이 공직선거법(구체적으로 제25조 1항)을 위반한다고 판단할 때만 그 이유를 붙여 재적위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를 요구할 수 있음 (제24조2의 3항). 그 외 획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와 자구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고(제24조2의 5항), 바로 본회의에 부의되어 수정 없이 바로 표결 처리됨 (제24조2의 6항).
요약하면, 획정위는 총 9명(선관위 1명, 여야 각각 4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획정안은 위원 2/3의 찬성으로 의결되며, 국회는 수정권한 없이 본회의에서 찬반 표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적 특징은 획정위를 빈번하게 교착상태에 빠지게 했다. 이러한 획정위의 정치과정에 대한 평가를 다음 절에서부터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

획정위의 운영과정 요약

획정위의 활동은 2015년 7월 15일 제1차 회의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지역구 의석수와 선거구 획정기준이 국회로부터 송부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1차 회의에서 획정위는 "획정기준, 총 의원정수,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늦어도 8월 13일까지 통보해 달라"고 요청하기로 의결했다. 단순히 지역구 의석수만이 아니라 총 의원정수와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함께 요구한 것은 당시 총의석수 확대 와 비례대표의석 확대를 주장하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일정하게 반영된 결과였다.

실제 획정위는 비례대표의석의 비율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위에 열거된 공직선거법 조항을 보면, 획정위는 단지 지역구를 확정할 권리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획정위가 위와 같이 요구한 것은 국회가 선거구획정에 대한 그 어떤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기도 했거니와 농어촌 지역구 감소와 비례대표의석 축소를 막는 유일한 방안인 의원정수 확대를 국회가 결정해주길 나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획정위는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면서 선거구획정의 원리를 이해하고 기준을 마련해나가는 한편, 지역구 간 인구편차를 3:1에서 2:1로 맞추라는 헌재 판결이 수반하는 갈등구조 – 의원정수를 300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한편으로 농어촌 지역구가 감소되는 갈등상황을 막기 위해 지역구 의석수를 확대하자는 논리와 다른 한편으로 지역구 의석수 확대가 수반하는 득표 대 의석 사이의 비례성 감소를 우려하는 논리 간의 갈등 - 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학계, 시민단체, 정당 등 각계로부터 추천받은 위원들 중 여당이 선택하고 야당이 동의한 위원(이하 여당측 위원)들은 비례의석을 줄여서라도 농어촌 지역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을 펼친 반면, 야당이 선택하고 여당이 동의한 위원(이하 야당측 위원)들은 오히려 지역구 의석수를 줄여 비례의석을 늘이거나 혹은 최소한 비례의석의 감소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25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지역구 의석수나 구체적인 지역구 획정기준에 대한 언급 없이 총 300석을 기준으로 지역구 획정을 획정위에 일임했다. 이제 획정위는 자신의 법적 권한을 넘어서 지역구 의석수를 결정해야 했다. 이후의 정치과정은 지역구 의석수를 늘이자는 주장(여당측 위원들)과 지역구 의석수를 감소시켜 비례성을 향상시키자는 주장(야당측 위원들) 간의 4대 4의 팽팽한 맞섬이 지속되었다. 위원장은 4:4 구조가 지속되는 한 자신은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유지했었다.

그러던 중 여야 측 위원 간의 편차를 줄여나가기 위해 둘 사이의 균형점인 246석에서 어느 정도 여유 범위를 정해 논의하자며 246±2를 지역구 의석수 범위로 하자는 안이 야당 측 위원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후 여유 범위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여당 측 한 위원이 이 제안에 동의함으로써 9월 11일 8월 인구현황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한다는 첫 번째 결정에 이어 두 번째 획정위의 의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48석이 지역구가 획정될 수 없다는 사무국의 보고가 있었고 여당 측 위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결국, 야당 측 위원들의 수용으로 9월 19일 244~249석(248석 제외) 내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결정한다는 안이 공식적으로 의결되었다.

이후 9월 24일 속개된 제14차 회의는 지역구의석수 결정을 연기해달라는 새누리당의 요청을 확인한 다음 구체적으로 244석에서 249석의 특징에 대한 설명과 논의가 이어졌다. 논의는 거의 필리버스터에 가깝게 장시간 지루하게 이루어졌는데, 아마도 244~249석이 새누리당의 희망사항과 달랐기 때문인 듯했다. 새누리당은 영남과 강원 지역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 유지에 대한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구 의석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의원정수를 300석으로 제한한 상태에서 지역구 의석수의 확대는 야당 측 위원들의 격렬한 반대로 실현 불가능했다. 그리고 244~249석으로 지역구 의석수의 범위가 의결된 상황에서 구체적인 의석수 결정을 미루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전략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10월 2일 속개된 제15차 회의에서 여당 측 위원들은 크게 두 가지 수정 방향을 제시했다. 하나는 헌재가 제시한 2:1의 인구편차를 2.3:1로 완화해서 농어촌 지역구를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헌이라는 야댱 측 위원들의 반발에 직면해 제안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둘째, 수도권 분구대상 지역구의 분구를 억제해 농어촌으로 할당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공식적인 의결 절차만 생략되었을 뿐 지역구 의석수 246개가 거의 합의된 상황에서 나머지 논의가 진행되었다. 여당 측 위원의 주장은 수도권에서 군포와 남양주를 각각 안양과 가평과 합구해 분구를 억제한 다음 잔여분을 농어촌의 지역구 축소를 완화하는데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야당 측 위원들은 그것이 선거법 위반이며 유권자의 주권적 평등성을 위반하는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제안이라며 반대했다.

이 외에 논쟁이 되었던 쟁점은 246개의 지역구 획정 문제였다. 획정의 원칙이 인구 상하한 (평균인구×2/3 ~ 평균인구×4/3)을 만족하는 한 시도별로 줄일 수 있는 지역구수를 최대한 줄여나가면서 지역구를 획정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원칙에 따르면 우선적으로 244개의 지역구가 자동적으로 획정되었다.

결국, 246을 기준으로 볼 때 여유분 2석이 발생하는데, 이 2석을 농어촌 지역으로 할당한다는 원칙에는 모두가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지역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여당 측 위원들은 시도별 인구평균을 고려하여 가장 과소대표된 강원과 경북에 할당해야한다는 의견이었던 반면, 야당 측 위원들은 통폐합 대상 지역들의 인구평균만을 고려했을 때 가장 과소대표된 경북과 전남에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쟁점 – 1) 수도권 지역구 분구 억제와 농어촌 지역구 보충안과 2) 246 획정 여유분 2석의 할당 지역 – 에서의 여야 위원들 간의 의견 대립은 획정위 활동 마지막 날인 10월 13일까지 지속되었다. 10월 13일 제23차 회의는 해소되지 않는 두 가지 쟁점에 대한 논의에다가 복수안을 올릴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여당 측 위원들은 지금까지 논의해왔던 것을 접어두고 각자 원하는 안을 만들어 복수안을 올리자고 주장한 반면, 야당 측 위원들은 지금까지 합의했던 것 – 8월 인구 기준과 244~249석(실질적으로 246석) -을 토대로 합의되지 못한 두 가지 쟁점에 대한 양측의 주장을 더한 복수안을 만들어 제출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측은 합의하지 못했고 결국 획정위는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되었다.

이와 같은 획정위의 결렬은 획정위 구성의 제도적 특징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지만 – 이는 자세히 후술할 것이다 – 무엇보다 국회가 자신의 몫인 총 의원정수, 지역구 대 비례 의석 비율, 그리고 구체적인 지역구 획정기준을 제때에 획정위에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국회가 해를 넘겨 2016년 2월 23일 그 기준을 송부하자마자 획정위가 6일 만에 획정작업을 마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아무튼 2월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역구 253개와 시·군·구분할금지원칙을 골자로 한 선거구획정기준을 획정위에 송부하면서 획정위는 재가동되었다. 이후 획정위는 6일 동안 6차례의 모임을 통해 253개의 획정안을 확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가장 큰 난관은 2/3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었다. 가중다수결의 합의를 도출하기 불가능하자 획정위는 개별 지역구 획정안에 대해 과반 규칙을 적용하는 한편 견해차가 두드러지는 안에 대해서는 위원장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보류하기로 했다.

이에 여야 간의 갈등이 심각하지 않은 지역구에 대한 획정은 위원장의 캐스팅 보트로 확정지어 나갔다. 그러나 바람직한 획정 방법에 대한 견해차가 두드러지거나(예, 경북 지역의 획정) 여야의 득실에 대한 계산이 민감한 지역구의 획정은 4:4의 양극화를 극복할 수가 없었다. 이에 위원장의 표결을 요구하는 여당 측 위원들의 주장에 맞서 야당 측 위원들은 위원장의 중립을 요구하거나 혹은 2/3의 표결 규칙 적용을 요구하면서 맞서는 과정이 지속되었다. 한동안의 교착 끝에 위원회는 현재까지 보류된 10개 시군구 27개의 선거구 안에 대해 결정해나갔다. 특히 최후까지 갈등적 상황을 연출했던 11개의 보류안(구역조정안 1개와 경계조정안 10개)(구역조정안이란 여러 개의 구나 군을 합쳐 하나의 지역구를 만드는 안을 지칭하며 경계조정안이란 하나의 구를 몇 개의 지역구로 나누는 과정에서 그 경계를 조정하는 안을 일컫는다.)을 위원장의 캐스팅 보트의 방향에 의존한 채 과반 규칙을 적용하여 표결했고, 결국 최종 253개의 지역구 획정을 담은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해 국회에 송부하게 되었다.

획정위 구성 규칙과 운영과정에 대한 평가

당초 여야는 독립기구로서의 획정위의 위상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 추천을 배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여야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각계각층에서 추천 받은 위원 후보에 대한 동의 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획정위의 구성에 여야 4:4의 정치성을 부여하게 만들었다. 물론 국회의원의 목줄이라고 볼 수 있는 지역구를 획정한다는 점에서 획정위의 과정은 가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이를 도외시 하는 그 어떤 과정도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독립기구로서의 위상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점이 없지 않다.

둘째, 여야 4:4의 구성과 더불어 획정위의 정책결정과정 전체를 교착으로 몰아넣은 제도 요인은 바로 재적위원 2/3의 찬성이라는 가중다수결 의결 요건이었다. 획정안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9명의 재적위원 중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선거구는 여야 현역의원들이나 예비후보들 간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의제이기에 여야 추천 위원들 간의 4:4의 대립 구조를 벗어나기는 불가능했다. 선관위 추천 위원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5명의 찬성에 불과해 그 어떠한 정책도 결정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타개하기 위해 위원회는 종종 과반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유혹에 직면해야 했다. 초기 획정위는 획정안을 구성하는 요인들을 제외한 제반 운영에 관한 규칙들을 과반 규칙에 의해 결정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2월 23일 이후 실질적인 지역구획정과정에서도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매개 획정안을 과반 규칙을 적용해 결정했다. 그러나 이 경우 선관위가 추천한 위원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어 실질적인 정책 결정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이 끊임없는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결국 획정위의 의결 규칙에 있어 한편으로 선관위의 실질적인 캐스팅 보트를 견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가중다수결 규칙이 생산해내는 교착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셋째, 검토할 의제의 준비과정이 전적으로 선관위 파견 직원들로 구성된 사무국에 일임되어 있는 구조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규칙에 정확하게 명시된 바는 없지만, 사무국은 매번 회의의 의제뿐만 아니라 이후 지역구를 획정함에 있어 고려해야할 대안들을 모두 준비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초기 운영과정에 대한 검토와 지역구 획정 기준에 대한 검토 등 의제설정 권한이 전적으로 사무국에 부여된 것도 문제이지만 이후 개별 지역구 획정에서 사무국이 본안과 대안을 지정할 권한은 더욱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았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구에 대해서는 소위 '정치권 합의안'과 '시민사회협의체안'이라는 명목으로 복수의 안이 상정되었고, 또 어떤 지역구에서는 A안(사무국 조정안), B안(여당 측 안), C안(야당 측 안)으로 의안이 상정되었다. 이 외 대부분의 지역구 획정안은 사무국이 제안한 독자적인 안이 회의 안건으로 올라왔다.

문제는 이러한 안건을 준비함에 있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규칙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선관위가 정부 여당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감안할 때, 선관위에서 파견된 직원들로 구성된 사무국을 정부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절연시키는 문제는 실로 중요하다.

실제 사무국이 제시한 안은 그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예를 들면, 인천광역시의 지역구획정에 있어 과거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고려할 때, 위헌 소지가 충분한 강화와 계양을 합쳐 지역구를 획정하는 안이 대안으로 제시되었고 실제 여당 측 한 위원은 이를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또 다른 예는 경북 사례로 과거 여러 차례 다양한 대안을 다룰 때, 가장 후순위에 있었고 실제로 검토되지도 않았던 대안이 본안으로 상정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여야의 이해관계의 대립이 치열한 지역구에 대한 획정안 대부분이 여당 측 위원이 찬성하며 강력하게 주장하는 안들과 일치했다. 이에 야당 측 위원들은 대안제시에 급급했다. 이 과정에서 사무국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존중해달라고 공공연하게 요청했다.

선관위가 추천한 위원 또한 비록 전문성과 소신을 의심받을 아유는 없었지만 선관위 소속이라는 점 자체만으로 회의장을 5:4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드는 분위기였다. 특히 사무국의 위상은 향후 시민사회가 더욱 발전해 이익집단으로부터의 로비가 활발해질 경우 과연 이들의 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살만했다. 따라서 향후 사무국을 정부 여당과 이익집단으로부터 독립되게 만드는 대안 모색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의 의견청취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실질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획정위는 초기 지역의 의견 청취를 위해 강원, 경북, 경남, 전북을 순회하며 정당 및 시민사회의 의견을 청취했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우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수렴 방법이 부재했다. 정당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시민사회의 대표를 추천하는 기준 없이 지역의 선관위가 준비하는 패널을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의견을 청취한 이후 실질적인 획정작업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지역의 의견은 청취할 때만이 울려 퍼졌을 뿐, 이후 서류 보관함에서 잠을 잘 뿐이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대안의 모색과 결론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향후 획정위의 개혁방향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획정위를 상설화해야 한다. 공직선거법 상의 활동기간인 6개월은 전문성에 입각해 선거구 획정을 해나가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실제 7월 15일 제1차 회의부터 선거구획정 첫 번째 결렬일인 10월 13일까지 약 3개월 남짓한 활동 기간 동안 지역의 사정은커녕 선거구획정의 원리나 기준 등을 이해하고 만들기에 바빴다. 약 250개 남짓한 지역의 인구, 사회적 혹은 지리적 환경, 그리고 민심의 변화 등을 반영하려면 획정위는 지속적으로 지역과 접촉해야 하고 그 변화 양상에 익숙해야 한다. 그러할 때만이 획정위는 전문성을 지닐 수 있으며 지역의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민주적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획정위 사무국을 조직하는 행정부 기관을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 선관위는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일 뿐 지역의 지리적 환경, 사회적 환경, 경제적 환경, 인구변동의 사회학 등에 대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선거구가 해당 지역의 지리, 사회, 경제, 인구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함을 고려할 때, 인구통계, 국토지리, 사회경제 등을 담당하는 행정부처에서의 전문가들이 파견되어 획정위 사무국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편으로 획정위 사무국의 전문성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정부, 정당과 이익집단의 영향력으로부터 획정위 사무국을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현재의 9인의 위원구성에서 여야가 4:4인 상황은 자동적으로 선관위로 하여금 캐스팅 보트를 갖게 만든다. 이는 선관위 임명 위원의 공정성이나 전문성 등의 개인적 요소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단지 제도적으로 선관위 임영 위원에도 권한이 과도하게 부여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시민사회의 의심과 견제가 존재하는 이상 그러한 권한을 지닐 수 있는 환경 아래서는 공정한 획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힘들다. 따라서 선관위위원장의 위원 추천권한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재적위원 9인과 슈퍼 과반 규칙의 결합이 생산해내는 교착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획정위원의 수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수의 위원들로 구성되고 여야가 동수의 위원을 추천하는 환경은 양극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선관위의 권한이 극대화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위원들 사이에 교차투표가 발생해야 한다. 따라서 위원을 현재의 9인 구성이 아니라 최소 19인 구성으로 그리고 표결을 비밀투표로 행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위원들 사이에 자유로운 교차투표가 발생해 가중다수결의 규칙 아래서도 교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위원수의 확대는 정당의 영향력도 줄일 수 있다. 19인의 위원들의 비밀투표는 누가 어느 안에 투표했는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 정당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소신투표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획정위의 운영과정에 대한 개혁 대안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선거구 획정 대안의 작성에 대한 적절한 규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의 관행처럼 사무국에게 전적으로 의제설정의 권한을 부여해선 안 된다. 지역구 의석수나 지역구 획정 기준이야 국회 정개특위가 만들어 송부한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지역구 획정의 대안 마련에 대해 사무국에 전적인 의제설정 권한을 부여해선 안 되며 그 기준을 규칙에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각 정당의 안은 기본적으로 의안으로 제시하고 나머지 시민단체 등의 청원을 첨부해서 개별 선거구획정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지역의 의견수렴을 획정안에 반영하는 방안 그리고 획정위의 운영과정을 어떻게 개방할 수 있는가의 고민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획정위의 상설화, 사무국 구성 행정부처의 다양화, 선관위 권한의 축소, 위원수의 확대, 지역구 획정 대안의 규칙화된 제시 등은 현재의 획정위의 정치과정을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이게 만들 것으로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언론을 통해 무수히 제시되었던 획정위 무용론에 대해 한마디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그동안 획정위에 대해 '국회의 축소판', '여야의 대리인', '전문성으로 가장한 정치꾼' 등의 비난이 많았다. 그러나 명확하게 밝혀야 할 점은 획정위의 획정안 제시는 그렇게 지연된 것이 아니다. 본문에서 밝혔듯이 3개월의 시간 그자체가 전문적인 획정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었다. 더군다나 국회는 마땅히 송부해야할 의원정수, 지역구 의석수 및 지역구 획정기준을 확정하지 못하고 권한이 없는 선거구획정위에 떠넘겼었다. 획정위가 월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획정작업의 지연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는 이후 국회가 지역구수와 획정기준을 송부했을 때, 획정안 작업을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게 마친 것에서도 능히 알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획정위는 소위 '대리전'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전개된 내부의 치열한 논쟁을 거쳐 결국 253개의 지역구 획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후 언론은 나름 여야 간의 팽팽한 경쟁이 될 수 있는 지역구 획정이 되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는 국회 내에서 볼 수 없었던 '정치관계법의 합의정신'을 획정위가 제대로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판단된다. 결국 국회가 못해낸 일을 학계와 시민사회의 추천을 받은 전문가들이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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