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사회 보장 사업도 국정화?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샅바싸움

작년 한 해 동안 누리과정 예산과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 때문에 우리나라가 떠들썩했다. 특히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서울특별시의 청년수당은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다. 예산을 누가 부담하는 것이 옳은지, 지방정부의 자체사업을 중앙정부가 간섭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를 둘러싸고 정면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역할분담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재정대등성, 규모의 경제, 이동성에 대한 고려 등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이야기되고 있으며, 사회정치적으로 욕구 대응의 원칙, 참여와 역량강화의 원칙에 따른 역할 분담 또한 이야기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고려해본다면 누리과정 예산은 너무나도 당연한 중앙정부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청년배당과 청년수당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다만 사업의 대상이 확대된다면 당연히 중앙정부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중앙정부가 이 사업을 넘겨받아 전국적 사업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인다. (필자)

관전 포인트 1. 첩첩산중 누리과정 예산 지원

이미 어린이집에 아이 맡기기를 포기하는 부모들이 생겨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이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힘없는 부모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는 셈이다. 누리과정이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 어린이들의 공평한 교육과 보육 기회 보장을 위해 2012년부터 공통으로 시행하도록 만든 표준 교육내용을 말한다. 2012년 3월 5세 누리과정을 시작으로 2013년 3월부터는 3~4세까지 확대돼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중앙정부에서는 누리과정 도입 당시 이미 재원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지방교육청이 교부금에서 부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고, 지방교육청에서는 박근혜대통령의 공약 사항일 뿐만 아니라 유치원은 몰라도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 업무인데 교육청에서 부족한 예산 상황에서 자체 예산을 부담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갈등의 뿌리는 지지부진한 유보통합(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에 있지만 이 예산을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 어디에서 부담하는 것이 옳으냐 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다.

사실 교부금에서 예산을 마련하기로 했다는 사실 자체로서 이미 이 사업은 중앙정부의 사업임에 틀림없다. 예상과 다르게 교부금이 부족해지자 교육청이 예산증액을 요구한 것이지만 중앙정부에서는 더 이상의 예산 부담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실 명백히 보건복지부 소관인 어린이집 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기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중앙정부 사업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겨놓고 나몰라라 하는 태도는 점입가경이다.

ⓒ바꿈
관전 포인트 2: 사회보장사업 국정화?

작년 한 해 가만있는 국민들을 뒤흔들어 놓은 단어 중에 국정화라는 단어를 빼 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친일독재의 역사를 희석화하고 단일사관을 주입하려는 의도가 농후한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그 중심에 있었다면 지방정부의 다양한 복지사업을 중앙정부가 강제적으로 정리하려는 사회복지사업 국정화도 한 몫 거들었다.

사회복지계를 큰 혼란에 빠뜨린 사회복지사업 국정화는 이름하여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 지침'으로 유발되었다. 중앙정부는 작년 8월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지자체가 추진하는 사회보장사업 가운데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된 사업 1496개를 정비하기로 하고 각 지자체에 정비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 이 지침에 대해 많은 지자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방자치제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조치라면서 크게 반발한 반면 이 지침에 충실히 복무하여 아예 자체조사를 벌여 추가로 정비 방안을 제출한 지자체도 있었다. 이미 중앙정부가 새로운 사회보장사업을 시작하는 지자체로 하여금 중앙정부와 강제적으로 협의하도록 해 놓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정비방안은 지방정부의 묶인 발을 아예 꺾어버리는 조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유사중복이라는 잣대도 어처구니없다. 어떤 경우가 유사중복인지 자체적인 지침도 부족하다. 그래서 더 큰 논란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장애인 활동보조시간이 부족하여 지방정부가 추가로 활동보조시간을 부여하는 경우도 유사중복사업에 해당된다. 활동보조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유사중복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쯤 되면 사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의 생활을 뒷받침하기는커녕 기준도 명확치 않은 지침 몇 가지로 국민의 팔을 뒤틀고 다리를 꺾어버리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한 술 더 떠서 중앙정부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제2항 및 제3항에 따른 협의 및 조정결과를 따르지 아니하고 지나치게 많은 경비를 지출한 경우' 지방교부세액을 감액 또는 반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방정부가 사회보장사업을 시행하면서 중앙정부와 협의하지 않거나 조정을 따르지 않으면 아예 교부세를 삭감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올해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성남시와 광역지방자치단체인 서울특별시가 주목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올해부터 성남시는 3년 이상 주민등록을 둔 만19∼24세 청년에게 분기당 25만 원씩 연간 100만 원의 청년 배당을 지급하고, 서울시에는 올 하반기부터 취업 활동 의지를 갖춘 미취업 19~29세의 구직 청년 3000 명에게 최대 6개월간 매달 50만 원의 청년수당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중앙정부의 만류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진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올해 뜨거운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분담

그렇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적절한 역할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에 관한 원칙은 경제적인 원칙과 사회정치적 원칙으로 나눠볼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분담에 대한 교과서적인 기본원칙은 공공재나 공공서비스의 혜택이 발생하는 지역을 대표하는 정부가 그 공급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재정 대등성'(fiscal equivalence) 원칙이라 하며 이것이 완전하게 달성된 상태를 '완전일치'(perfect correspondence) 상태라 부른다.

이 원칙에 따르면 혜택이 여러 지역에 걸쳐 발생하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세금을 거둬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이러한 사업을 지방정부가 수행한다면 다른 지역이 얻게 되는 편익을 고려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보다 사업의 규모가 작아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혜택이 일부 지역에 국한되는 경우에는 해당 지자체가 스스로 재원을 조달해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업이나 공공서비스마다 혜택이 미치는 지역적 범위가 다르므로, 현재의 행정조직 및 구조를 벗어나 모든 사업에 대해 재정대등성의 원칙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경제적 원칙은 규모의 경제이다. 규모가 클수록 한계비용이 줄어드는 재화나 용역이라면 큰 규모의 재화와 용역을 담당할 수 있는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경제적 원칙은 이동성의 원칙이다. 이는 납세자의 이동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비효율에 관한 것이다. 이기적인 납세자라면 세금은 적게 내면서 공공서비스의 혜택은 많이 받을 수 있는 지자체를 주거지로 정할 것이다. 이 경우 각 지자체는 주민들을 유치하기 위해 세율을 낮추게 되며, 결과적으로 낮은 조세수입으로 인해 전반적인 공공서비스 수준도 낮아진다. 이를 '바닥으로의 경주'(race to the bottom)라 한다. 이론적으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세율을 같게 만들고 보조금 등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지역 간에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런 사업의 경우 중앙정부의 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 복지국가에서 보편적이며 공통적 적정선이 분명한 국민생활(national minimum)은 전국적인 차원에서 국가가 보장해 주고, 그 이상의 사회복지 필요나 새롭고 독특한 사회복지에 대하여서는 지역사회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제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분담에 관한 사회정치적 원칙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욕구 대응의 원칙이다. 공공서비스에 대해 지역 간 선호에 큰 차이가 있고 지방정부가 선호를 파악하기가 더 쉽다면 이러한 사업은 지방정부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복지에서 지방자치제도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지역별로 지역사회의 특수한 사회복지 욕구(needs)에 따라 다양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제공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사회복지의 지방화 및 분권화가 지역주민의 욕구에 대하여 가까이서 좀 더 민감하게 반응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 복지 증진에 유리할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사회복지 서비스는 욕구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가 중요하기 때문에 중앙에서 관리하는 경우보다 훨씬 지역주민의 욕구, 특히 특수한 욕구들에 대응하기가 훨씬 용이해진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별 선호도에 차이가 있고 지방정부가 욕구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면 지방정부에서 담당하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중앙정부에서 담당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헌법 제117조 제1항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지방자치법 제9조는 '주민의 복지증진에 관한 사무'를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로 규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는 사회서비스는 지역주민의 복지욕구를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5호, 제22조 제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욕구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맞춤형 사회보장을 구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 번째는 참여와 역량강화의 원칙이다. 사회정치적으로 지방정부는 시민의 직접민주주의를 보다 충실하게 실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과 공동체 역량을 더 강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규모가 커질 경우 시민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워지며 공동체간의 의사소통 또한 더욱 더뎌지고 어려워진다. 규모가 작은 지방정부에서는 지역주민의 참여가 활성화되면서 주체적인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참여예산제도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예산제도의 가장 보편적인 개념은 '납세주권자로서의 시민이 예산과정(편성, 집행, 평가)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참여하는 것을 제도로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광의의 개념으로는 예산낭비의 발굴 등 예산감시운동과 예산과 관련한 정보공개운동을 포함한다. 이러한 정의는 주민들의 직접적 예산참여는 물론 정보공개운동, 예산집행 모니터링 등 예산과정과 관련된 주민들의 모든 참여활동을 의미하게 된다.

ⓒ안세정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상의 몇 가지 원칙에 비추어보았을 때 보육사업은 그 혜택이 다른 지역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 규모의 경제 효과는 미미하지만 이동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지역 간 선호도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중앙정부에서 담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예산 또한 중앙정부에서 책임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편 유사중복 사업의 경우 일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중앙정부 사업을 보완하는 소규모 예산 사업이라는 면에서 지방정부에서 시행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다만 성남시의 청년배당이나 서울특별시의 청년수당의 경우 그 편익이 해당 지역에 국한될 수도 있지만 혜택을 수혜한 청년들이 다른 지역에서 생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중앙정부에서 수행해야 할 사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기본적인 복지사업은 가치재(merit goods)이기 때문에 개인들의 자발적 선택에 맡기는 경우 일정 이상의 바람직한 수준까지 소비되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사회복지사업은 보통 중앙 정부의 역할로 인식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복지사업의 경우 재정은 중앙정부에서 부담하고 집행은 지방정부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청년배당과 청년수당도 성남시와 서울시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중앙정부의 몫으로 돌린다면 갈등도 줄이고 사업의 성격도 명확히 하는 더 좋은 방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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