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화평굴기 선전을 믿고 싶은 까닭

[김기협의 '자본주의 이후'] <베이징 컨센서스>

<베이징 컨센서스>(황핑, 레이모, 윌리엄슨 등 지음, 김진공, 류준필 옮김, 소명출판 펴냄)

2005년에 나온 <중국과 글로벌화-워싱턴 컨센서스인가 베이징 컨센서스인가(中國與全球化-華盛頓共識還是北京共識)>와 2006년에 나온 <중국모델과 베이징 컨센서스-워싱턴 컨센서스를 넘어서(中國模式與北京共識-超越華盛頓共識)> 두 권의 책에서 뽑은 글을 엮어 옮긴 책이다. 시사적인 주제인데 원서 출간 후 10년이 지나서야 나왔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원서보다 짜임새가 낫다. 그리고 '베이징 컨센서스', 또는 '중국모델'이라는 주제의 의미가 지난 10년 동안 더 커지고 강해졌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에 소개되는 것이 반갑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퇴조

이 주제가 갑자기 세계적으로 부각되는 계기는 2004년 5월 영국의 외교정책센터에 발표된 조슈아 쿠퍼 레이모의 보고서 <베이징 컨센서스>에 있었다. 15년간 강력한 힘을 행사해 온 '워싱턴 컨센서스'의 대항마로 이 개념이 주목받은 것이다. 베이징 컨센서스의 의미에 접근하려면 워싱턴 컨센서스가 어떤 것이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는데, 1989년에 워싱턴 컨센서스란 말을 퍼뜨린 당사자 존 윌리엄슨이 2004년 9월의 어느 학회에서 발표한 글 <워싱턴 컨센서스의 역사>가 이 책에 실려 있다.

국제경제연구소가 개최한 한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나는 이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타당하다고 여겨온 일련의 관점이, 1950년대부터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정책을 주도해온 개발경제학의 낡은 관점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지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논문이 다루는 내용을 공통의 관심사에 집중시키기 위해, 당시 나는 워싱턴에서 모두가 동의할 것 같고 라틴아메리카 어느 곳에서나 필요할 것 같은 10가지 정책의 목록을 만들어서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139쪽)

이 글에서 윌리엄슨은 자신이 신자유주의자임을 감추지 않는다. 자신이 라틴아메리카를 겨냥해서 제기한 개념이 1990년대 미국의 세계정책에 채택되며 화려한 각광을 받을 때 어떤 득의를 느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2000년대 들어 워싱턴 컨센서스가 전 세계적 비판과 비난의 표적이 된 데 대한 억울함이 이 글을 채우고 있다. 그는 이 비판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워싱턴 컨센서스의 내용을 둘러싼 논쟁은, 종종 그 명칭 때문에 발생하는 분노로 말미암아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 이 명칭 때문에, 개혁이 자기 국가에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주적으로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강제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였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 특히 부시가 만들어놓은 세계 질서 속에서 그것은 끔찍했다. 워싱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지지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식 좌파들에게 안성맞춤의 선전용 선물이었다. (150쪽)

윌리엄슨은 비판의 대상이 된 '워싱턴 컨센서스'의 통념이 자신의 원래 제안을 왜곡한 것이라고 불평하는데, 별로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금융시장 공개, 무역 자유화, 민영화 추진 등 '통념'의 핵심 내용은 그의 최초 제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차이는 정책의 본질이 아니라 주변적인 방법상의 문제들뿐이다. 2004년 시점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는 퇴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척의 대상이 되어 있었고, 윌리엄슨의 주장은 기술적 보완을 통해 그 유효성을 늘리려는 것이지만 이미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조셉 스티글리츠는 같은 자리에서 발표한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의 컨센서스> 앞머리에서 "워싱턴 컨센서스가 아무런 해답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컨센서스"가 그 시점에서 빈곤 국가들의 발전 촉진 전략에 관한 유일한 컨센서스라고 비꼬았다. 그는 여러 층위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를 비판했는데, 외환위기(IMF) 사태를 겪은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들리는 것은 수단과 목표 사이의 혼동이다.

사유화(민영화)와 자유화는 종종 그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표 그 자체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가 퇴색되곤 한다. 급속한 사유화를 추구한 구소련의 경우, 그 결과는 엄청난 불공정의 확산이었고, 사유재산권의 합법성에는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 자본시장의 자유화는 더 빠른 성장을 보장하는 대신에 더 큰 불안정만을 조장할 뿐이다. (185쪽)

추이즈위안(崔之元)의 1994년 글 <제도혁신과 제2차 사상해방>이 들어 있는 것은 그가 이 책의 저본 중 하나인 <중국과 글로벌화>의 엮은이이기 때문인데, '베이징 컨센서스'가 나오기 10년 전의 이 글에서 그 의미의 실마리를 살필 수 있다. 1994년이라면 소련 해체, 동유럽 공산권 붕괴, 톈안먼 사태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고, 워싱턴 컨센서스의 위세가 당당할 때였다. 중국에서 발생한 담론이 외부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중국 내 담론 유통도 원활하지 않을 때였다. 중국이 발전은커녕 생존에 급급한 것으로 보이던 이 무렵에 쓰인 이 글에서 중국 발전 전략 논의의 향후 진행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추이즈위안은 '신(新)진화론', '분석적 마르크스주의', '비판법학' 등 새로운 학문이론으로부터 '사상해방'의 영감을 얻을 것을 제안했다. 이 이론들의 적용이 타당한지 여부는 차치하고, 그 시점에서 '사상해방'을 제기한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종래의 통념으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다. 글의 결론부에서는 '제도 물신주의'를 배척할 것을 주장했다. 제도 물신주의라 함은 제도의 기획과 운영에 현실적 목적보다 추상적 이념을 앞세우는 경향을 지적하는 것으로, 추이즈위안의 주장은 수단과 목표의 혼동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지적과도 통한다. 예컨대 '1인1표'의 조합 원리와 '1주1표'의 주식회사 원리를 결합한 '주식합작제'의 제도적 가치를 인정하는 데 추상적 이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87년에 시작된 제1차 사상해방 운동은 '두 가지 절대 긍정[兩個凡是]' 노선의 과오를 바로잡는 데 중요한 역사적 공헌을 했다. 그런데 현재 개혁개방은 또 다시 새로운 전환점에 이르렀다. (...) 우리에게는 제2차 사상해방 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더 이상 '보수파'를 단순히 부정하는 데 중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제도 혁신의 상상력이 발휘될 공간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것은 '이거냐 저거냐'라는 식의 이분법을 벗어나서, 경제적 민주와 정치적 민주를 지도적 사상으로 삼아 제도 혁신의 여러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209쪽)

1994년 시점에서 추이즈위안의 주장은 외부에서 들어온 관념에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말자는 것인데, 당시 위세를 떨치고 있던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굴복을 거부하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몇 해 후의 세계적 금융위기에 중국이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은 그의 주장이 정책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래서 2004년경에는 중국 정책의 독자성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특히 저개발 국가들의 선망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말이 큰 힘을 갖고 나타나게 된 것이다.

베이징 컨센서스의 내용

이제 '베이징 컨센서스'의 등장을 살펴볼 차례다. 이 말을 처음 무대에 올린 조슈아 쿠퍼 레이모의 2004년 글 <베이징 컨센서스>의 요점부터 정리해 본다.

'중국의 힘을 설명하는 새로운 역학에 관해 논함'이란 부제가 붙은 이 글의 도입부에서 레이모는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의 특이한 업적을 소개하고 "만약 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다면, 천체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이동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말을 인용한다. 그 시점까지 중국의 변화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기존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 현실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레이모는 중국의 발전에 적용되는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하나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 중국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통상적 의미의 정확한 관찰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밀도의 원리'라 하여 혁신의 총체성이 확보되어야 성공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비겨 녹색이면서 또한 투명한 고양이의 필요를 지적한 것이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 90년대 이후로는 교체되어 왔다는 것이다.

베이징 컨센서스의 개념에 비판적인 아리프 딜릭의 글 <베이징 컨센서스, 누구와 누구의 컨센서스이며, 목적은 무엇인가?>에 "문제는 레이모의 역학에도 그의 정치경제학 못지않은 결함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는 대목이 있는데(223쪽), 옮긴이들은 이것이 레이모가 제시한 두 번째 원리를 가리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비유는 분명히 잘못됐다. 이런 비유였다.

세 개의 물체-원구, 속이 찬 원통, 속이 빈 원통-를 경사면의 꼭대기에 세워둔다. 그것들을 동시에 굴러 내려가게 한다면 어떤 순서로 바닥에 도달할 것인가? 원구가 첫 번째이고, 다음으로는 속이 찬 원통, 그리고 마지막으로 속이 빈 원통이다. 이는 물체의 질량의 밀도가 그 운동 속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혁신은 중국 사회의 밀도를 증가하는 길이다. 그것은 관계망을 통해서 사람 사이의 연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고, 개혁의 기간을 단축하며, 소통을 더욱 쉽고 빨라지게 한다. 혁신이 잘 될수록 밀도도 더 증가하며, 발전도 더욱 빨라진다. (77쪽)

'피사의 사탑'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니, 참 신기하다. 주장하려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적절한 다른 비유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단순실수 하나를 굳이 들춰내는 이유는 글의 이런 허점에도 불구하고 레이모의 제안이 큰 반향을 일으킨 사실을 음미하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싶어 하는 방향을 잘 잡았다.

마침 같은 책에 실린 윌리엄슨의 글과 비교하면, 정밀성만을 앞세우며 읽는 사람의 생각을 좁히려고만 드는 윌리엄슨과 달리 레이모의 글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이것이 바로 워싱턴 컨센서스와 베이징 컨센서스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강대국과 거대자본의 입장에 어긋나는 관점과 정책을 억제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인 반면, 베이징 컨센서스는 약자 입장에서 주체적인 자세를 세우는 길을 제시하는 것 아닌가.

ⓒnews.cn

베이징 컨센서스 이후

<베이징 컨센서스>를 발표한 18개월 후 <중국과 글로벌화>에 수록될 때 덧붙인 글 <중국의 독자들에게>에서 레이모는 그 동안 자기 글이 받아들여진 방식을 이렇게 관찰했다.

'베이징 컨센서스'에 관한 논쟁은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듯하다. 한쪽 진영은 사실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들은 실제적으로 존재하며 발전하는 '베이징 모델'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 그리고 이 모델이 중국과 기타 세계 각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려고 시도한다.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준 이런 논의들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 다른 진영은 감정적인 측면에 치중해 있다. 그들은 중국에 설령 어떤 발전 모델이 있을지라도 이미 발생한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하며, '베이징 컨센서스'로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59쪽)

베이징 컨센서스에 대한 반대를 "감정적인 측면"이라고 표현했는데, 논쟁에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과 영향력 증대를 "논리고 나발이고" 무작정 반대하고 부정하는 경향이 일각에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컨센서스가 큰 성공을 거둔 첫 번째 이유는 강자의 논리로서 워싱턴 컨센서스가 널리 불러일으킨 반감에 있다. 딜릭은 '베이징 컨센서스'란 말이 혼란스럽게 쓰여 온 상황을 비판하면서, 이 말이 큰 호응을 얻은 이유로 "국제 정치경제의 배경 속에서 그것이 담당한 역할, 즉 워싱턴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을 끌어 모으는 깃발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223쪽) 그리고 그 매력이 "부시 행정부가 힘을 남용함으로써 미국의 국제적 위신이 추락한 데 따른 반사 효과의 측면이 강하며, 또한 미국으로 대표되는 세계화의 대안적 모델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본다. (235쪽)

딜릭은 레이모가 담론을 펼친 방법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지만 그 담론을 통해 제시한 '중국 모델'이라는 주제는 환영해 마지않는다. 베이징 컨센서스의 개념이 "현재의 세계정세에 대해 열어놓은 접근 방식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한다. 그가 설명을 찾는 현상은 이렇다.

지난 20년 동안 이런 목표를 추구하면서, 중국은 미국의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자로 부상했다. (...) 앙드레 군더 프랑크, 조반니 아리기,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 세계체제론을 제기한 학자들은 현재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위에서 언급한 현상들을 전제로 한다면,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재배치를 그런 이동의 분명한 증거라고 할 수도 있다. (...) 베이징은 현재 제3세계 또는 남반구의 새로운 무게중심으로 떠오르고 있고, 그 사실은 베이징 자신도 흔쾌히 받아들인다. 베이징은 이제 자본주의 세계화 시대의 '반둥'으로 다시금 등장했다. 단순히 식민주의 극복을 추구하거나 '발전의 제3의 길'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그동안 식민주의적 현대화의 흐름에 휩쓸려올 수밖에 없었던 주변부 국가와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반둥'이 된 것이다. (232-233쪽)

책의 앞머리에 실린 황핑(黃平)의 글은 담론으로서 베이징 컨센서스의 가치를 지지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컨센서스'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점까지 중국의 행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담론 틀의 필요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2004년 5월 런던의 포럼에서 레이모의 발표를 처음 들을 때 아래의 말을 인상적으로 들었다는 그의 이야기는 새로운 설명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꼈다는 뜻일 것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를 무시한 두 나라-인도와 중국-가 괄목상대할 경제적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는 반면 '워싱턴 컨센서스'를 충실하게 추종한 인도네시아와 아르헨티나는 막대한 사회적 및 경제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 (21쪽)

황핑의 글에는 새로운 설명을 필요로 하는 중국 현대사의 맥락이 잘 그려져 있다. 중국에 관심 가진 사람들에게 대개 알려져 있는 사실들을 연결해서 '중국 모델' 설정의 필요성을 설명한 것은 이 책에서 제일 깊은 공부가 되는 내용이다.

예컨대 "중국은 마땅히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해야 한다"는 1950년대 마오쩌둥의 말과 "중국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인류에 대한 최대의 공헌"이라는 1980년경 덩샤오핑의 말의 대비. 지금의 우리는 덩샤오핑의 말에 동의해 마지않는다. 자연조건의 제약 속에 그 많은 인구를 품고 가시밭길 근현대사를 걸어온 중국이 자기 문제를 잘 해결한다면 인류의 부담을 얼마나 줄여주는 일인가! 또, 그와 비슷하게 열악한 조건에 처해있는 세계 각지의 인민이 중국의 해결책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과연 마오쩌둥도 같은 뜻으로 '공헌'이란 말을 썼는지는 의문이지만, 부분적으로라도 이어지는 맥락은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을 찾는다는 것은 중국의 행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각이다.

▲<베이징 컨센서스>(황핑, 레이모, 윌리엄슨 등 지음, 김진공, 류준필 옮김, 소명출판 펴냄) ⓒ프레시안
이 글을 쓰던 2005년에 중국은 빈곤상태를 탈피해서 온포(溫飽)의 상태에 도달했고, 초보적인 소강(小康)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황핑은 말한다. 세계정세나 외부세력의 특별한 도움 없이 이른 그 자리에서 중국인은 장래의 진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중국이 지난 20여 년 동안 걸어온 길을 편견을 갖지 않고 본다면, 그것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적 특색'이라고 해도 좋고, '초급단계'라고 이름 붙여도 무방하다. 어쨌든 기존의 그 어떤 모델도 따라가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사실을, 또는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 실천을 우리의 '사회과학'은 아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의 '소강사회'나 '조화로운 사회'라는 개념은 학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1930년대에 제기된 '구체적인 실천', '연안(延安)의 길' 등의 개념이나 개혁 이후에 제기된 '중국적 특색', '초급단계' 등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 개념들도 일단 제기된 이상 단순히 정치적인 구호나 수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런 개념들은 학술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논의할 가치가 있다. 서구의 개념이나 모델을 단순하게 답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개념들은 그저 현실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현실 속에서 설득력과 생명력을 갖는 분석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 (39-40쪽)

이 글들이 2005년 이전에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 후 10년 동안에도 중국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갈수록 세계 전체의 변화를 몰고 오는 의미가 커지고 있다.

중국이 미국 다음의 G-2로 올라섰다고 하는데, 미-소 양대 강국의 대립 체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미국과 소련이 상호 교류를 적게 하고 각각의 진영 사이에 장벽을 두었던 것과 달리, 미국과 중국은 전면적 관계로 얽혀 있고 두 나라를 둘러싸고 전 세계가 온갖 방법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두 나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머지 세계를 대하고 있다.

근년 중국은 종래의 패권국가들과 다른 형태의 대외관계를 활발하게 개발해 내고 있다.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DB)이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은 중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으면서도 패권국가들이 주도하던 국제기구보다는 상호적 측면이 강화됐다.

이런 측면은 지난 30여 년 중국 발전 전략의 연장선 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력이 약한 어려움을 근년까지 겪어온 중국은 자신이 실험해 온 발전 전략을 약한 상대들에게 권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래서 국력을 강화한 지금에 와서도 약한 나라들의 자발적 호응을 이끌어내는 세계 전략을 쉽게 그려낼 수 있다.

책임대국, 화평굴기, 화해사회 등 종래 패권국가들과 다른 유화적 표현을 중국이 쏟아내기 시작한 것도 베이징 컨센서스가 거론되던 무렵의 일이다. 그것이 단순한 립 서비스인지, 세계평화를 위한 진심을 담은 것인지 아무도 확실히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의 강토 내에서 10여 억 인민의 살 길을 찾아온 중국이 이 지구 위에서 70억 인류의 살 길을 찾기 위한 노력에 남들보다 앞서 있을 개연성은 분명하다. '중국모델'이 학문적 타당성과 관계없이 인류의 새로운 길을 향한 지표로 관심을 모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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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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