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과잉과 정치 결핍의 중국, 어디로 갈까?

[양갑용의 중국 정치 속살 읽기] 이념의 강조와 간부들의 자율성 상실

시진핑 집권 이후 3년여 동안 중국 정치의 흐름을 보면, 어느 때보다 국내 정치에 매진한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11월 당 총서기에 취임하고 2013년 3월 국가주석에 오른 이후 시진핑은 간부 임용과 승진에 대한 규정 등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고 통일 전선 강화 등 기존 규범을 수정, 보완하는 방식으로 중국 국내 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열어 왔다.

시진핑 시기 중국이 국내 문제에 접근하는 이념적 기조는 자본주의 시장 질서에 한 발 다가서는 진보적인 경제 정책과 마오쩌둥(毛澤東)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보수적인 정치라는 두 트랙으로 추진되었다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경제 측면에서는 글로벌 표준으로서 자본주의 요소를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중국 정책에서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 예컨대 금융 자유 무역 지대 건설 등 진보적인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정치 사회적으로는 이념과 기율, 규칙 등을 강조하는 매우 보수적인 접근을 통해서 국내 이슈를 선점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진핑은 매우 독단적인 혹은 카리스마적인 정책 마인드를 보여주었다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다. 2013년 3월 23일 시진핑 주석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모스크바 국제관계학원에서 강연했다. 당시 강연에서 시진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모든 나라 모든 국민이 공동으로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크기나 국력, 빈부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하며 각국 인민이 스스로 발전의 길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또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하며 국제사회의 공평주의를 지켜야 한다. (…) 신발이 내 발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신어 봐야 아는 것이다. 한 나라의 발전의 길이 맞는지 틀리는 지는 그 나라의 국민만이 발언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의 이 말은 중국이 글로벌 표준으로서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를 받아들이면서도 단서 조항을 달아 이른바 '중국식 길'을 모색하는 방향에서 중국의 지위와 위상을 격상시키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G2 시대 중국이 미국과 함께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글로벌 표준을 '중국식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어가는 데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기도 하다.

경제 과잉과 정치 결핍이 만든 중국의 국제 지위 불균형

이렇듯 중국은 글로벌 경제 환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중국의 수동적이며 피동적 지위를 능동적이며 주동적 지위로 격상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나서는 형국이다. 적어도 최근의 중국의 주장과 시진핑의 언술을 돌이켜 보면 중국이 글로벌 차원에서 '중국식 표준'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일단을 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대일로'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구상과 실천이 바로 이를 반증한다. '워싱턴 컨센서스'와 경쟁하는 '베이징 컨센서스'가 제3국이나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설득력을 높여가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중국의 적극적 움직임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듯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이제 글로벌 규범의 편승자에서 창설자와 창안자로서의 초보적인 역할을 시작해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진핑 주석의 개인적인 카리스마와 국제 협력의 접점을 찾아가는 글로벌한 공세는 지속될 것이다. 2016년 첫 해외 순방지로 중동을 선택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경제 영역에서의 중국의 공세가 위협적임에 비해 정치 사회적 소프트웨어가 보완되지 않은 정치 영역에서는 다양한 국제, 지역, 국내 규범 등과 마찰을 빚게 된다.

이러한 정치 규범의 마찰은 비단 국제 관계뿐만 아니라 국내 문제에서도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있다. 중국의 글로벌한 경제 규범과 질서 창안 노력에 걸맞게 중국이 글로벌한 정치 규범을 만들어내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중국이 참여하는 경제 영역은 규범의 충돌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점차 자본주의 세계 질서 규범에 접근하고 있으나 당과 인민, 이념을 강조하는 정치는 여전히 보수적인 접근만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당국가 체제'가 보편적 국제 규범으로서 정치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정치의 핵심은 '당'이라고 누누이 강조된다. 당의 통치 정당성이 훼손되면 당의 존립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이는 곧 인민의 당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연결되어 당 지배의 내구성을 부식시킨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중국이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글로벌한 경제 규범의 준수 노력으로 G2의 지위로 격상되었을지 몰라도 존경받는 글로벌 국가로 우뚝 서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글로벌한 경제 규범과 제한적인 정치 규범에 대한 전략적 개입 전략과 배제 전략이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의 과잉과 정치의 결핍을 글로벌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양립시키려는 중국의 지나친 기대와 조작적 노력이 결국에는 중국의 경제 지위와 정치 지위의 불균형을 더욱 가속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념의 강조에서 비롯된 간부들의 자율성 약화

이는 특히 국내 정치에서 당과 이념, 기율과 규칙 등 이데올로기적 요소의 강조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요소의 강조는 중국의 국내 정치 영역에서 당원과 당외 조직의 상대적 자율성을 약화시킨다. 대신에 전면적으로 엄격한 당 통치가 강조된다. 이것이 바로 '4개 전면(全面)' 가운데 엄격한 당의 통치를 강조하는 맥락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5년 1월 18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제5차 회의에서 "기율을 지키고 규칙을 말하는 것을 한층 더 중요한 위치에 놓자"고 말했다. 그리고 2015년 12월 말 개최된 중앙정치국 민주생활회(民主生活會)에서는 "당의 기율과 규칙을 흔들림 없이 집행하자"고 강조했다. 이는 시진핑이 주창하는 '4개 전면' 가운데 '전면적으로 엄격하게 당을 다스린다(全面從嚴治黨)' 것을 4개 전면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엄격한 당 관리의 필요성에 따라 '기율'과 '규칙'을 강조하는 당풍과 청렴정부 건설의 청사진이 제시되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 '중국공산당 청렴 자율 준칙(中國共產黨廉潔自律准則)'과 '중국공산당 기율 처분 조례(中國共產黨紀律處分條例)' 등 두 가지 당 규칙을 시행한다. 이러한 당풍, 청렴 정부와 관련된 일련의 움직임은 사실상 당의 기율과 규칙을 엄격하고 명확하게 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 구상 가운데 하나이다. 이의 전제는 앞서 얘기한대로 당 통치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당 통치의 근본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규칙을 말하고 기율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진핑 주석은 전체 당원들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총 규칙으로서 첫째, 당장(黨章)을 지키고, 둘째, 당 기율의 강한 구속력, 특히 당 전체가 당의 정치 방향, 정치 입장, 정치 여론, 정치 행동 방면에서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강한 구속력을 갖는 정치 기율을 가져야 하고, 셋째, 당원과 간부들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규칙으로서 국가 법률을 강조하고, 넷째, 당이 오랜 기간 실천 과정에서 형성한 우량한 전통과 업무 관행 등 네 가지를 당의 규칙으로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당의 규칙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고할 필요성이 바로 영도(領導) 간부, 특히 고급 영도 간부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최근 영도 간부들에 대한 다양한 요구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하달되고 시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진핑은 "당내 규칙은 어떤 것은 명문화된 규정이 있고 어떤 것은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 따라서 고급 간부일수록 이러한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하며 만약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고급 간부로서의 각오와 수준이 구비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시진핑은 영도간부들의 기율 위반은 종종 규칙의 파괴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이러한 기율 위반으로 규칙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엄격해지지도 않으며 많은 문제를 서서히 만들어낸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당의 규칙을 강조하는 것은 당원이나 간부의 당성에 대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당원이나 간부들의 당에 대한 충성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로 자리를 잡게 된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이 혁명적 이상과 철의 기율로 조직된 마르크스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고 조직이 엄밀하고 기율이 엄격하고 분명한 우량한 전통과 정치 우세를 체현한 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당의 기율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당 기율 강화를 모든 당원이 마음속에 각인(刻印)해야 하지만 특히 영도 간부의 마음속에 뚜렷하게 각인되도록 해야 한다고 시진핑은 강조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율의 각인이 당원 영도 간부들의 자율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생각을 저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기율과 규칙만을 준수하는 수동형 간부만을 표준형 간부로 간주하고 싶은 욕망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에서 보면, 기율과 규칙의 강조가 능사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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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의 정치 엘리트 및 간부 제도와 중국공산당 집권 내구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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