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무지개떡 주차장' 지어주세요!"

[독서통] <무지개떡 건축> 쓴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

요즘처럼 찬바람이 많이 부는 계절, 여의도나 강남의 빌딩 숲을 지나가다 보면 유난히 센 바람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이게 너른 자연의 강풍과는 다른 맛(?)이 있습니다. 윙윙거리고, 때로는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바람 때문에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닙니다. 빌딩 숲에 둘러싸인 도심에서나 맛볼 수 있는 자연의 심술이죠.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만원 지하철,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눈 비비며 출근하신 여러분, 같은 고역을 반복하는 퇴근길에 어떤 생각 드시나요? 마치 광고 문구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회색빛 콘크리트 숲에서 숨 못 쉬고 일하는' 도시의 삶에 때론 피곤함을 느끼실 겁니다. 이런 감성은 새해가 되어도 달라질 법 없죠.

자연의 냄새를 맡고 싶어도 좀 멉니까. 주말에 자가용 타면 외곽으로 나가는 데만 한나절입니다. 주변에서는 마을 텃밭이니, 옥상 텃밭이니 하는데, 도대체 그런 여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신기하죠? 이럴 땐 '아이고, 내가 여건만 된다면 도시 생활 접고 농촌으로 내려간다'는 불평이 절로 나올 만합니다.

시대가 지나며 도시도 변화합니다. 당장 인터넷에 '90년대 서울의 모습' '50년대 부산의 모습'과 같은 제목의 사진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은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지금 지옥철에 시달리는 도시에서의 우리 삶도, 언젠가는 극적으로 변화할지 모르죠.

기왕이면 도시에 사는 사람이 살맛 나게 변해야 좋을 겁니다. 좋은 해법을 제시하는 책 <무지개떡 건축>(황두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이 나왔습니다. <한옥이 돌아왔다>(공간사 펴냄)로 우리 사회에 한옥에 관한 관심을 촉발한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의 신간입니다.

이 책에서 황 소장은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우리의 도시 건축의 미래상을 이야기합니다. 층층이 개성이 다른 건물을 도심에 지속해서 지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반문이 들립니다.

"예? 층층이라고요? 고층 빌딩 짓자는 뻔한 소리 아닙니까, 이거? 기껏 내놓은 대안이 주상 복합 아니에요?"

가능한 한 고밀도의 건축물을 짓자는 소리는 맞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대안을 모두가 외치는 이때 이상한 소리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무릎을 탁 치실 겁니다.

새해 첫 '독서통'은 황두진 소장과 흥미로운 도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진행한 인터뷰 전문을 소개합니다.



▲ 안토니오 가우디의 대표작으로 1910년 완공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명물이 된 연립 주택 카사 밀라(Casa Milà).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이 건물은 <무지개떡 건축>에서 황두진 소장이 무지개떡 건축의 대표격으로 설명한 사례다. 지하에는 주차장이 설치됐고, 1층과 중간층에는 기념품 상점이 있으며 이들 층은 용도에 맞게 층고도 다른 층과 다르다. 3층은 당시 건축주의 주거지, 그 위층은 임대용 아파트로 설계되었다. 옥상을 비롯해 모든 층은 용도에 맞게입체적으로 설계되었다. ⓒwikipedia.org

우리는 주상 복합에 산 적 없다

독서통 : 애청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의 첫 독서통입니다.

새해 처음으로 전해드릴 책을 소개합니다. 저희가 책을 세 가지 기준으로 고릅니다. 재미있거나,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거나, 새로운 시각을 전하거나. 이 세 가지 기준에 다 부합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재미있고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메디치미디어에서 나온 황두진 건축가의 <무지개떡 건축>입니다. 층층이 색이 다른 떡이 무지개떡이잖아요? 책 표지도 무지개떡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데 '무지개떡 건축'이라니 무슨 말인지 잘 와 닿지 않네요.

이 책의 저자는 황두진 건축가입니다. 아마 저자의 이름을 듣고서 <한옥이 돌아왔다>는 책을 기억하는 독자가 많을 것 같습니다. 저자를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황두진 : 네, 안녕하세요.

독서통 : 무지개떡 건축, 개념부터 설명해주십시오.

황두진 : (무지개떡 건축 개념의) 역으로 시루떡 건축이 뭔지부터 설명할게요. 시루떡 아시죠? 여러 층을 쌓긴 하는데, 층마다 똑같죠. 한 건물이 주거면 주거, 업무면 업무, 상업은 상업. 이렇게 한 가지 용도로 정해진 걸 시루떡 건축이라고 합니다. 그럼, 무지개떡 건축은 자명해지죠. 반대 개념입니다.

독서통 : 층별로 용도가 다르다?

황두진 : 그렇죠.

독서통 : 1층에는 카페가 있고, 2층, 3층에는 사무실이 있고, 그 위에는 살림집이 올라가고, 옥상에 정원이 있는 그런 건물 말씀이죠? 건물을 그런 식(무지개떡)으로 올려야 한다. 이것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장이죠?

황두진 : 네. 건축가 용어로 설명하면 복합 용도의 건물이라고 하는 거죠.

독서통 : 바로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나라에 주상복합건물도 있고, 상가 주택도 많이 있잖아요? 그런 것과 무지개떡 건축은 다릅니까?

황두진 : 이 책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신 겁니다. 제가 이 세상에 없던 개념을 만든 건 아니에요. 우리한테 복합 건축 개념은 있어요. 다만 그것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건축물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냐.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일 용도 건물에서 일하거나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복합 용도 건물을 우리가 도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지는 않죠. 말씀하신 것처럼 이전에 상가 주택도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가게 한 모퉁이에 살림을 차려놓고 사는 모습이 근대화 이전에 많이 있었죠?

독서통 : 지금도 도시 변두리나 시골에 가면 볼 수 있는 모습이죠.

황두진 :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택이 아빠가 금은방을 운영하는데, 가게와 연결된 집에서 아들과 살잖아요? 그런 식의 삶의 형태는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본격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삶을 규정하는 건축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느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 봐요.

독서통 : 요즘에는 궁색해 보이죠. (웃음)

황두진 : 그렇죠. 최근에는 주상복합건물이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어요. 하지만 말은 주상 '복합' 건물이지만 대부분 주거 용도고, 나머지에 근린생활시설 일부가 들어가 있는 정도죠. 그러니까 주상복합건물은 상업 주택 지역에 고급 아파트를 짓기 위한 일종의 부동산 상품이었죠.

따라서 저는 우리나라에서 복합 건축 개념이 뿌리내렸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일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복합 건축이라는) 단어가 오염됐다"고도 했어요. 이 책에서 그 용어를 쓰면 제가 얘기하려는 개념 전달에 방해될 거 같아,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어려운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어처구니없이 평범한 단어를 던져주는 게 효과적이리라 생각해서 '무지개떡' 개념을 썼어요.

독서통 :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정감 있습니다. 땅콩 건축(일정 택지에 독립적인 소형 주택 두 채를 나란히 붙여 짓는 건축 방식)이라는 단어도 있잖아요.

땅콩 건축 얘기가 나왔으니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도시에 사는 많은 분이 이상적이거나 대안적인 건축으로 생각하는 건 도시 외곽 한적한 곳에 땅콩 주택이든 아니면 다른 주택이든 간에 전원주택을 짓는 모델이잖아요? 그런데 이 책이 주장하는 건 밖으로 나가지 말고 도심에 살아야 한다, 일하는 곳과 사는 곳이 가까워야 한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뭔가요?

▲ 건축가 황두진 소장. 고밀도 도시가 오히려 자연에 덜 해롭다는 주장, 옥상을 적극 활용해 도심에 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착착 감기는 글맛으로 <무지개떡 건축>에 녹였다. ⓒ프레시안(최형락)

아파트의 대안은 전원주택이 아니다

황두진 : '도시가 뭐냐'에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도시는 수많은 사람이 고밀도로 사는 곳이죠. 도시를 규정하는 첫 번째 조건은 밀도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어야 한다고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사람 위에 사람 살고, 사람 아래 사람 사는 걸 피할 수 없죠.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의 주거를 상징하는 아파트가 대표적인 예죠.

독서통 : 시루떡 건축의 상징이 아파트죠.

황두진 : 전원주택은 아파트와 가장 대척점에 있을 거예요. 도심을 떠나서 교외 한적한 곳을 집터로 삼죠. 아파트와 달리 1, 2층 정도의 저밀도로 집을 짓고요.

제가 이 책에서 말하는 건 그 중간 어딘가에 더 좋은 해결책이 있다는 겁니다. 이에 접근하기 위해 약간 시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어요. 아파트와 전원주택이 다른 것 같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시루떡이죠. 둘 다 단일 용도의 건물이고, 토지 점유 방식이 같아요. 주변에 녹지 혹은 마당이 있고, 내 집은 가운데 섬처럼 들어갑니다.

아파트 단지가 그렇잖아요. 녹지든 도심이든 주위 환경과 동떨어진 아파트라는 섬이 둥둥 떠 있죠. 담장을 두른다든가 하는 식으로 주변과 어떤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아요. 심지어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는 도로에 외부 사람이 못 들어오게 해서 문제가 됩니다. (전원의) 단독 주택도 마찬가집니다.

심지어 우리는 담장이 일종의 방어 수단입니다. 담장 위에 쇠창살이나 깨진 병 조각을 두는 모습 익숙하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사람 사는 곳인데….

독서통 : 감옥 같죠.

황두진 : 예. 우리는 도시에서 싫건 좋건 모여 살아야 하는데, 모여 살기의 방식으로써 지금까지 아파트가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앞으로도 아파트만이 유일한 답이냐. 혹은 완전히 반대인, 그러면서도 유형적으로는 다를 것도 없는 단독 주택이 답이냐면 그건 아닐 거로 생각해요.

저는 건축을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역사학적 관점에서 아파트나 단독 주택의 토지 점유 방식이 어디서 왔는가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병영 건축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방어적 기제가 있죠. 주변 환경으로부터 나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건축 형태죠). (아파트와 단독 주택) 어느 쪽도 좋은 도시를 만드는 유형으로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독서통 :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무지개떡처럼, 층층이 용도를 달리해서 건물 올리자는 주장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볼 만한 내 땅이 없다!' 또 설사 무지개떡 건물을 짓고 싶어도 각종 제도가 발목을 잡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개인에게 행동 지침을 주는 책이라기보다는 도시 환경이나 건축 문화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황두진 : 이 책에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서점에 나가보면 단돈 얼마에 내 집을 마련하자는 책이 많습니다. 다채로운 제안이지만 공통점은 자력 구제하자는 거예요. 저는 그런 접근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주거는 어떤 사회에서든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문제거든요.

제가 여태까지 설계한 것 중 정말 바람직한 개념의 무지개떡 건축이라고 할 만한 건 아직 없어요. 자본의 문제 혹은 우리 사회 제도의 문제가 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분명히 '무지개떡 건축'의 장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렇다면 저 같은 개별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죠.

당장 어렵다 하더라도 일단 이런 것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이 현실화되면 이런 장점이 있고, 그건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한다는 것 정도는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대한 당장의 처방이라기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몇 가지 점을 보완하고 우리 지혜를 모으면 가능한 어떤 것을 제안해보자, 그런 취지로 이 책을 썼습니다.

'걷고 싶은 거리'가 주차장 된 까닭? 법 때문!

독서통 : 도시 환경 방향이나 공공 주택의 방향을 설정할 때 이 책이 지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이해됩니다.

<시사통>의 '지리통' 시간에 임동근 서울대학교 교수도 언급했습니다만, 많은 사람이 면적당 수용률이 가장 높은 건축 양식으로 아파트를 생각하죠. 그런데 오히려 다세대 다가구 주택에서 아파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해 왔다더군요.

또 속물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무지개떡 건축이 이익이 됩니다. 건축물을 사무실로 내느냐 원룸으로 내느냐에 따라 평당 건축비가 달라진다고 해요. 원룸이 더 많이 들죠. 그런데 임대료는 사무실이 더 비싸거든요. 그러니까 1층은 카페 용도, 2층은 사무실 용도, 그 위층은 원룸을 놓으면 똑같은 5층 건물이라도 임대 수입을 최대한으로 올릴 수 있다는 거죠.

이렇게 따지면 사람들이 무지개떡 건축을 받아들일 준비는 어느 정도 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차라리 더 큰 문제는 제도가 아닐까요?

황두진 :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구현되지 않을 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소한 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주차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자고 하면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걷고 싶은 거리를 잘 만들고 있느냐? 현재의 법과 제도를 따라가다 보면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느냐? 아니거든요. 왜 안 되는지를 주차 문제를 보면 알 수 있어요.

현재 법은 기본적으로 자기 땅에서 자기 주차를 해결하라고 합니다. 땅이 크면 되죠. 제가 최소 기준으로 삼은 건 100평입니다. 그 정도 면적 이상이 되면 주차장을 지하에 파서 경사로를 통해 차를 넣으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도시 건물 필지의 평균 규모가 100평이 안 돼요. 그럼, 기계식 주차를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고가의 장비죠. 또 실제로 써보면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러다 보니 1층에 주차장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걷고 싶은 거리는 안드로메다로 가는 거죠.

독서통 : 1층을 트고 기둥 사이로 구획선을 그어 주차하게 하죠. 최근 지어지는 다세대 주택이 그런 식이잖아요?

황두진 : 특히 주거용 건물은 주차 비율이 높아요.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1층 전체가 주차장이 됩니다. 그렇게 지은 건물을 보고 잘 모르시는 분들은 참 건축가가 생각 없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짜증을 내실 거예요.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건축 이전에 제도의 문제가 있는 겁니다.

독서통 : 이런 반론이 나올 수도 있어요. 만약 규정을 완화하거나 없애면 불법 주차가 더 기승을 부릴 텐데 그러면 도로 환경이 더 나빠지지 않겠느냐 등.

황두진 : 맞아요. 그런데 현실 세계 속에서 대안이 없느냐. 전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현행 관련 법에도 약간의 여지는 있어요. 자기 땅에 주차를 안 해도 되는 예외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조금 더 개선해 공영 주차장을 만들어서 인근 지역의 주차 수요를 소화할 수 있으면 건물 1층이 자동차로부터 해방되죠.

다만 그 공영 주차장조차도 시루떡 건물로 짓지는 말자는 거죠. 길과 면하는 부분에는 상업 시설이 들어가게 하고, 또 주차장 위에도 사람이 살지 말라는 법이 없죠. 그렇게 인근의 주차장을 확보함으로써 자기가 짓는 건물에 주차 공간을 확보한 것으로 봐주는 식으로 제도가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보기에는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 할 만할 것 같아요.

독서통 : 주차 건물을 보면 무섭고 삭막한데, 그런 식으로 지을 게 아니라 무지개떡 건물로 짓자는 거군요.

황두진 : 건축도 넓은 범위에서 창작이고 디자인인데, 이를 현실에 적용하려 할 때 생각보다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결국, 두 가지를 다 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는 개별 좋은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런 제안을 통해 바꿔야 할 걸 바꾸는 거죠. 그러자면 이걸 바꿨을 때 뭐가 좋아질 것이냐를 얘기해야 하잖아요. 여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 서울 서부의 대표적 상권 홍대 주차장길. 우리의 번화가, 언론에 소개된 걷고 싶은 거리 중 자동차에 점령되지 않은 곳이 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서울은 고밀도 도시 아니다

독서통 :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옥상 면적이에요. 통념을 깼습니다. 서울의 옥상 면적 합을 낸 다음 가구 수로 나누면 한 가구당 14평(약 46.3제곱미터)이나 된다고요?

황두진 : 네. 서울시 옥상 면적의 합은 제가 어떤 신문 기사에서 취한 거고, 서울시 총가구 수는 다른 믿을 만한 소스를 통해 230만 가구임을 확인했습니다. 저도 나눠놓고서 숫자를 믿을 수 없어서 제 사무실 직원 몇 사람에게 과제로 던져줬어요. 서울시 옥상 면적 합계와 서울시 총가구 수를 찾아서 한 가구당 옥상 면적이 얼마인지 찾아보라고 했죠. 답은 비슷하더라고요.

독서통 : 이 숫자가 의미 있는 게 서울이 고밀도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토지 이용 방식은 저밀도였다는 거잖아요?

황두진 : 한마디로 서울의 토지 이용 방식이 전원적인 거예요. 밀도 높은 시골처럼 만든 도시인 거죠.

독서통 : 우리는 사대문 안이나 강남의 고층 빌딩을 염두에 두고서 고밀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서울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거군요.

황두진 : 이 책의 내용을 보고 많은 분이 서울에 있는 모든 건물의 평균 층수가 2.5층이라는 부분에 놀라시는 것 같습니다. 63빌딩에 롯데타워까지, 고층 빌딩이 우리 눈에 많이 보이잖아요? 그런데도 2.5층이라는 건데, 사실 이 통계는 제가 직접 구한 게 아니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성홍 교수님이 쓰신 책에서 제가 인용한 겁니다. 그 통계가 제 책의 중요한 내용으로 주목받는 것 같아서 김성홍 교수님께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웃음)

무지개떡 건축의 결정판, 옥상마당

독서통 : 옥상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죠. 그 14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옥상 텃밭이에요. 그런데 이 책은 텃밭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상추 심어서 따먹고, 고추 심어서 따먹으려면 1평이면 충분하다는 거죠.

이와 관련해서 도시 농업 얘기도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농업이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일상생활과 병행하기 힘든 일입니다. 도시 농부를 꿈꾸는 분들이 10평 정도를 정말로 쉽게 얘기하는데요. 그 정도가 되면 농사를 제대로 짓기가 정말로 힘들어요.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옥상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이런 문제가 생기죠.

황두진 : 말씀하신 것처럼 농사를 아무나 짓는 게 아닙니다. 농사는 전문 분야고,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헌신을 해야 하는 분야예요. 도시민들이 농업을 너무 쉬운 삶의 대안으로 삼는 건 문제입니다. 도시가 농촌에 환상을 갖고, 농촌도 도시에 환상을 갖는 건 별로 좋지 않은 현상이죠.

제가 이 책에서 옥상의 미래에 관한, 옥상의 잠재력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화두처럼 던진 말은 '옥상은 전원 혹은 교외의 대안'이라는 겁니다. 이 정도의 가구당 옥상 면적을 가진 도시에서 사람들이 바비큐와 텃밭을 찾아 교외로 나가는 건 정말로 이상하다는 겁니다.

옥상이 그 가치를 가장 잘 발휘하려면 생활공간의 연장이어야 해요. 책도 보고 일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요즘 날씨 패턴이 이상하긴 합니다만, 한국이 온대 기후에 속했잖아요. 경험적으로 보면 비와 눈을 적당히 막아주면, 제가 보기에 1년에 3분의 2 정도는 야외 생활이 가능해요. 옥상 옆에 실내 공간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일상적인 야외 생활이 가능해집니다.

독서통 : 대형 빌딩이어서 옥상을 개방하는 경우 말고, 보통 3층이나 5층짜리 다가구 주택에 건물주가 사는 경우 옥상 활용 시 크게 두 가지 패턴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옥탑방을 만들어 임대료를 챙기는 거고, 다른 하나는 집주인이 옥상을 독점하는 겁니다.

황두진 : 재미있는 지적이에요. 옥탑방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제가 전수 조사를 한 건 아닙니다만, 상당수 옥탑방이 법의 영역 밖에 있을 거예요.

옥탑방이라는 건 건물을 다 지은 후, 건축가들 말로 '용적률을 다 찾아 먹은 후' 만들죠. 보통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고, 계단에 비가 안 들어오게 하려고 옥탑을 짓거든요. 그런데 올라가서 보면 상당히 그럴듯하단 말이에요. 여기 뭔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테고, 앞서 말씀하신 '깨알 같은 임대료'를 챙길 생각으로 설치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굉장히 열악한 모습으로 짓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옥탑방은 단열 문제만 해결하면 거주 환경 면에서는 굉장히 좋거든요. 오히려 밑층의 주인집보다도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웃음) 또 옥탑방이 사회적으로 문화예술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예술가의 청년 시절 보금자리죠.

독서통 : 도시 청년의 대표적 주거 형태가 옥탑방 아니면 반지하죠.

황두진 :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정도의 딜레마죠. 그렇다면, 건물을 지을 때 처음부터 옥상에 멋진 실내 공간을 짓고 또 나머지 부분을 옥상 정원으로 만든다면 어떨까요?

건물주가 옥상을 사유화해서 독점하는 문제는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습니다만, 책 쓰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옥상에 공공 기능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 부분적으로 그런 내용을 썼죠. 아파트 옥상을 주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되죠. 주말 농장한다고 교외까지 나갈 필요가 있겠느냐, 옥상에서 하면 되지 이렇게요.

이 역시 법과 제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만, 기존 아파트 시설과 다르게 옥상에 주민을 위한 휴게 공간이나 동네 아이들을 위한 독서실을 아파트 옥상에 지을 수도 있죠. 아파트 주민들이 옥상에서 바비큐도 하고 또 아이들이 별도 보고요. 그런 교외 같은 장소가 바로 우리 집 옆에 생기는 거죠.

고밀도 도시가 자연에 더 좋다?!

독서통 : 도시 팽창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도시가 옆으로 계속 확장하는 개념. 그런데 이걸 수직적으로 올려버리면 확장도 막을 수 있고 자연 훼손도 막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했어요.

관련해서 책에 소개한 세종시 현상설계(특정 목적의 설계안을 얻기 위해 상을 걸고 많은 설계자의 응모를 받는 일종의 설계 공모전) 응모 안을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멋있는데 너무 파격적이지 않나 싶기도 했어요.

황두진 : 책에도 썼지만, 당선 여부와 무관하게 제 생각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봤죠. 저희 건축가에게 현상설계라는 건 그렇습니다. 당선되기 위해 전략을 짜서 설계할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걸 극단까지 갖고 가서 내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로 삼을 수도 있어요. 세종시 현상설계 응모 안은 명백하게 후자였고요.

독서통 : 보통 상식적 통념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게 자연 친화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이 책에서 황두진 소장께서 언급하신 참고 도서 가운데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이진원 옮김, 해냄 펴냄)가 있어요. 이 책도 도시 팽창 대신 고밀도화를 강조합니다.

이 책은 도시가 팽창하지 않고 고밀도로 집적하면 더 환경 친화적일 수 있다는 역설을 얘기합니다. 황두진 소장님의 세종시 현상 설계 응모 안에도 그런 아이디어가 적용된 것 같아요. 자꾸 옆으로 팽창해서 멀쩡한 논밭을 밀어버릴 게 아니라, 가능한 한정된 공간에 고밀도로 도시를 건설하는 게 더 바람직한 방향 아니냐는 거죠.

황두진 : 예. 세종시 계획안은 에드워드 글레이저 책을 보기 훨씬 전에 냈는데요, 그와 유사한 생각은 저뿐 아니라 많은 건축가나 도시학자들이 공유하고 있었다고 봐요.

우리가 지방 소도시, 읍면 소재지에 가보면 가운데에 국도가 지나가요. 그리고 양옆에 1층 또는 2층 건물이 1~2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집니다. 그런데 제가 인근에 사는 농부이고, 농기구를 수리하거나 서류를 떼기 위해 읍면 사무소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죠. 한 군데에서 볼일을 보고 나서 다른 데로 가려면 너무 멀어요.

그런데 만약 이런 시설이 평균 5층 정도 되는 시설에 다 집적되어 있다면 움직여야 할 거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되죠. 그러면 집적된 밀도가 곧 도시의 엔진이 되어서 '칙칙폭폭' 자가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밀도를 가진 하드웨어가 형성되어야만 그것이 파생하는 경제적 활력이 생깁니다.

독서통 :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정관념을 강타했다고 느낀 부분이 이 지점이었습니다. 여태까지의 통념은 '도심에는 마천루처럼 올라가는 콘크리트 빌딩의 삭막함이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거였는데, 그와 정반대 접근법을 가지신 거잖아요. 도심을 고밀도화하는 대신에 자연을 멀리 떨어뜨려 놓을 게 아니라 옥상을 활용하는 식으로 인근에 여유 공간을 만들자.

그럼, 자연으로 가기 위해 차를 몰 필요도 없고, 휘발유도 쓸 필요도 없다, 그러면 더 좋은 것 아니냐. 그러니 무지개떡 건축이 필요하다는 거죠.

▲ 황두진 소장의 세종시 현상 설계 응모작. 고밀도의 복합 건물로 이뤄진 제한된 도시의 바깥에서 농부가 평상시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숨 쉴 공간 필요한 우리의 도시

황두진 :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건, 무조건 도시가 더 바람직하냐. 이건 아니에요. 두 가지 정도의 매복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농촌은 어떻게 되느냐는 거예요. 토지 밀착형 삶을 살면 (농촌에서) 저밀도로 살아도 괜찮아요. 대규모 인구 이동이 전제되지 않는 삶이라면 괜찮아요. 우리가 논 한복판에 아파트를 짓고 살 필요는 없잖아요? 여기서는 1, 2층짜리 집을 지어서 인근 토지를 경작하며 사는 게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가장 안 좋은 게 대규모 인구가 전원생활 방식을 고집하면서 도시와 교외를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여기서 두 번째 문제로 연결됩니다.

고밀도의 대도시를 지으면 문제가 다 해결되느냐, 이것도 아닙니다. 고밀도의 도시가 종래의 시루떡 건축 내지 어마어마한 교외 주거 단지를 거느린 미국 도시 방식으로 가는 건 역시 문제 됩니다. 지금에야 유가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져서 어려움이 덜합니다만 이건 특수 현상일 뿐이고, 에너지를 적게 써야 하는 게 미래의 방향이 되어야 하잖아요?

하여튼 이렇게 용도 구분해서 일하는 데서 일하기만 하고, 주거지에서는 자기만 하면 도시가 승리하느냐. 그건 아니에요. 에드워드 글레이저도 <도시의 승리>에서 복합을 많이 강조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두 번째 조심해야 할 지점이 고밀도이면서도 충분히 복합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독서통 : 이 부분과 연결되는 지점인데, 책에서 '다공성' 개념을 얘기하셨어요. 이건 어떤 뜻입니까?

황두진 :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고요. 그냥 구멍 난 치즈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독서통 : 도시의 밀도는 높이되, 숨 쉴 구멍이 곳곳에 있어야 한다는 아이디어죠?

황두진 : 그거죠. 건축적으로 얘기하면 숨 쉴 공간이 뭘까요? 예를 들자면, 발코니가 있죠. 또 건축가는 필로티라고 하는데, 건물 하부가 뚫려서 지붕이 덮인 채 외부와 통하는 공간도 있죠.

독서통 : 눈이나 비를 맞지 않으면서 도보가 가능한 공간 말이죠? 책에서는 현실에 없는 도시 계획의 하나로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1층을 뚫고서 서울광장과 북창동, 남대문까지 도보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언급했죠?

황두진 : 학생 때 생각했던 겁니다. 단순히 다공성 확보 측면을 넘어 서울광장이 서울시의 중요한 공공 공간이고 북창동은 완전 상업화된 공간인데, 이 둘을 연결하는 보행자 통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죠. 그런 보행자 통로는 지금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특정 건물을 언급해서 그렇긴 합니다만 그게 건물을 위해서도 나쁜 일 같지는 않아요.

다공성 개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겁니다. 우리가 거리를 걸을 때 시선이 몇 층 정도까지 닿는다고 생각하세요?

독서통 : 높아야 2층 아닙니까?

황두진 : 기껏해야 2, 3층이거든요. 그렇다면 5, 6층 되는 건물의 여기저기가 뻥뻥 뚫린 경우와 3, 4층 건물이 철옹성처럼 세워졌을 경우 중 뭐가 더 우리에게 개방감과 여유를 줄까요? 높이가 조금 높아도 여기저기가 비어 있는 건물이 더 여유로울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다공성 개념이 바로 이런 겁니다.

건축가로서 단순히 공간을 비우자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 어떤 사회적 의미를 담을 것이냐는 식으로 논의를 확장하기를 바라는 거죠. 우리는 20세기에 시루떡 건축을 했고요, 공공성 제로의 건물을 너무 많이 지었습니다. 아마 당시 우리의 욕망이 그랬던 것 같아요. 한 평이라도 더, 깨알같이.

독서통 : 사람들이 도시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건물주라면 한 평이라도 더 빽빽하게 지어서 임대료를 더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어요?

황두진 : 만약 비워진 공간이 건물 주변을 다니는 보행자, 시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비어 있다는 건 그만큼 내 건물이 길에 면한, 공공 영역에 면한 면이 늘어나는 겁니다. 그건 건물의 가치를 오히려 높이는 거예요.

1층을 텅 비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 15% 내외를 비우면 충분히 쾌적하지만, 전체 효율을 깨지 않는 선에서 건축할 수 있습니다.

독서통 : 제도적으로 그만큼을 용적률에서 빼주면 그런 건축을 더 유도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황두진 : 맞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책의 내용이 조금 더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건축 관련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뭔가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사회의 지혜를 모으면 가능합니다. 제가 건축가로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건, 우리나라가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잖아요. 돈이 없어서 뭘 못 하는 나라도 이제는 아니죠. 기왕에 가진 게 꽤 있는 나라가 됐는데, 너무 아쉬운 건 우리가 이런 도시에서밖에 못 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통일 대비한다면 시루떡 대신 무지개떡을!

▲ "시루떡 건물이 무지개떡 건물로 변화할 여지는 얼마든 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독서통 : 갈수록 도심 공동화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해질 테고, 그때 여러 가지 형태의 도심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 무지개떡 건축 아이디어가 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책에서도 약간의 비전을 언급하셨죠? 통일 이후를 생각하면 북한의 많은 도시를 어떻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이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있을 텐데, 남쪽에서 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예를 들어 무지개떡 건축과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제언을 하셨죠.

황두진 : 도심 공동화는 근대 도시의 큰 문제였죠.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앞으로는 교외 공동화도 걱정해야 할 겁니다. 교외에 지어놓은 집들을 어떻게 하느냐는 거죠. 전 세계 많은 도시에서 구도심으로 인구가 다시 유입되는 과정이 진행 중입니다.

이 책을 출판하고 나서 알게 된 건데, 프랑스가 1970년대~80년대에 기념비적인 신도시를 파리 교외에 많이 세웠습니다. 제가 학생 때였는데, 정말 대단한 건물을 많이 지었습니다. 거기에 부자들만 사는 줄 알 정도였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이주민, 노동자 계층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들이 지금 비어가고 있습니다. 지하철, 고속철을 다 놔줬는데도 그렇습니다. 파리의 지가는 천정부지로 뛰는 데 말이죠. 프랑스가 대단한 실험을 한 건데, 그 실험이 다른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창 경제가 성장할 때 지어놓은 신도시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는 걸 프랑스가 먼저 보여주고 있죠.

덧붙여서 통일 이후의 비전도 그렇습니다. 전통 시대, 전근대 시대 한반도에는 분명 인간과 자연 사이에 적절한 밸런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세기 말부터 한반도 사진 자료가 등장하는데, 그걸 바라봤을 때 현대인이 봤을 때도 설렐 정도의 정주 환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 우리가 그에 비견할 만한 주거 패러다임을 만들었나요? 저는 부정적이에요.

그 과정을 향해 아직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광풍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중간 단계라고 생각하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 거냐고 생각했을 때 제가 이 책에 얘기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이 필요하리라고 믿습니다. 이를 가장 대규모로 적용할 수 있는 시기는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지개떡 건축이 기존 건물을 다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법과 제도가 바뀌면 적절한 개보수를 통해 기존 시루떡이 무지개떡으로 변화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께 무지개떡 주차장 건립 요청합니다"

독서통 : 책에서는 언급이 거의 안 됐습니다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으실 것 같아 여쭙습니다. 무지개떡 건축이 보편화한다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황두진 : 그 부분은 저보다 훨씬 전문가들이 계시리라 생각해서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제 입장은 있죠. 개인이 집을 짓는 시대는 이제 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무지개떡 건축의 개발 주체로서 제가 생각하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그중 개인의 연합이 있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주택 사업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정부가 모두 공공예산으로 해야 한다는 건 한계가 있는 것 같고, 이처럼 우리 사회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이 만나는 접점에서 만들어지는 건축 유형이 무지개떡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 그런 예가 있어요. 요즘 주택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이 제시되면서 주택의 건축 유형에 집중하는 분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주택의 생산 방식에 집중하는 분들이 계세요. 후자에 해당하는 분들이 협동조합 주택을 짓는 분들이죠. 좋은 예가 꽤 있죠. 저같이 건축 유형에 집중하는 사람은 무지개떡 건축 등의 개념으로 제안하죠. 이 둘이 어느 순간에 통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이 동원해봐야 자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개개인이 조그마한 자기 필지에 집을 지은 결과, 도시는 아기자기하고 재밌지만 도시 하드웨어의 영속성이라든지 도시 주차 문제 같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조각으로 도시를 채워나가는 시나리오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지점에 이 책에서 제시한 논의들이 있다고 생각하죠.

독서통 : 만약의 경우를 가정해 보죠. 황두진 소장께서 만약에 행정가나 정치가가 되셨어요. 서울시장이나 국회의원이 되었단 말이죠. 무지개떡 건축을 조금 더 보편화하기 위해 제도를 손봐야 할 텐데, 가장 먼저 어떤 것부터 손보시겠습니까?

황두진 : 건축법이죠.

독서통 : 어떤 내용이 문제가 됩니까?

황두진 : 건축법에 건물의 규모와 용도를 규제하는 규정이 많은데, 상당 부분 다시 손 볼 시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기존에는 건폐율(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 1층 면적의 비율),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 총면적 비율), 사선 제한(건축물 높이 제한 규정의 하나), 일조권 등을 고려해 건물의 크기를 결정하죠.

오랜 논의 끝에 사선 제한은 2014년에 없어졌습니다. 그 방식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도시 환경을 적절히 규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적절한 최고 높이' 규정과 용적률 규정만 잘 만들면 충분한 다공성을 갖춘, 옥상 마당을 가진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건축물이라는 게 생명체 같아서 세상이 변하면 같이 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용도 변경에 대한 좀 더 합리적인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건축법 역사가 오래됐는데, 자세히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내용의 순서도 이상합니다. 이 법을 따라 건물을 지었을 때 명품이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어도, 대충 이 나라 기후와 문화와 사람의 도시에 대한 생각의 평균을 높이는 역할은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건축법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하는데, 제일 좋은 건 건축가에게 실제로 건물을 설계해보라고 하는 거예요. 시뮬레이션이죠. 건축법에 따라 지었더니 이런 결과가 나오더라. 혹은 좋은 아이디어를 담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 법과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이처럼 쌍방향 교류가 필요하죠. 결국 이 얘기는 어디로 가느냐면, 사회의 민주적 수준이 더 발전해야 한다는 거죠.

독서통 : 근본적으로 무지개떡 건축과 같은 발상이 한 건물 안에 상업 용도나 주거 용도가 공존하는 거잖아요. 현재는 상업 지역이 있고, 주거 지역이 있고, 또 용도에 따라 건폐율 등이 다 달라지잖습니까. 이것까지도 다 손봐야 한다는 얘기로 연결될 수도 있겠네요.

황두진 : 물론 기왕에 목적에 따라서 도시가 완성된 곳이 있죠. 그런 곳까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까진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지 않은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도시의 미래는 적절한 밀도를 유지하면서 복합 기능을 수용하는 데 있다'는 대전제 하에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우리 사회에 연착륙할 수 있는지 따져야죠. 이것이 만약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시점이 온다면 정말 집단지성으로 풀어야죠. 그러려면 민주적인 토론이 필요하고요.

독서통 : 질문 하나만 더 하죠. 저희가 다음 주 '정치통'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모시고 공개방송을 하거든요. 서울시 행정, 이건 빨리 손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가요? 그걸 그대로 받아서 다음 주에 질문하도록 하죠.

황두진 : 제가 앞서 말씀드린 주차장 건물을 무지개떡 건축으로 풀어나가는 형태의 시범 사례를 몇 개 만들어서,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 수 있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줄 수 있다면 아주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를 풀어내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법적 장애물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푸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이 제시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민간 기업이 주도할 수도 없고요. 결국, 모여서 고민해야 합니다. 골목길 문화를 비롯해 여러 가지 도시 문화를 잘 유지하고 개선하는 데 가장 시급한 대책이 주차 문제에 대한 21세기적인 해법인데, 그건 공공 기관이 나서지 않는다면 해결이 어려울 것 같아요.

독서통 : 2009년에 용산 참사가 신년벽두(2009년 1월 20일)에 있었잖아요. 여러분이 희생당한 건물이 철거된 후, 그곳이 주차장으로 바뀌었더라고요. 그곳에 무지개떡 건축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주차장 건물이 들어섰다면 다른 식으로 사회 갈등도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드네요.

▲ <무지개떡 건축>(황두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황두진 : 근대 건축 초기에 많은 건축가가 '건축이 사회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그런 믿음은 좋게 말해 현실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그렇게 낙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여는 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지개떡 주차장이 그런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무지개떡 주차장 시범 건물 부지는 보편성이 있는 위치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것이 단순히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의 수많은 도시, 나아가 전 세계 다른 도시에서 '우리도 해볼 만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독서통 : 주차 문제는 정말 체감할 수 있는 게, 스튜디오가 있는 이곳 서교동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이 참 많거든요. 저분들이 여기 골목에서 뭘 볼까, 생각해보면 차밖에 없어요. 그런데 지나다 보면 종종 눈에 띄는 건물이 있어요. 만약 거기에 차가 없다면? 하나의 관광 코스로서도 가치가 더 높아지겠다는 생각을 해 봤는데, 이 모든 아이디어의 선결 과제가 사실 주차 문제 아니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개인이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닐 테고, 행정 권력이 나서서 모두의 중지를 모아 풀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건축,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도시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이냐에 대한 멋진 발제 형태로서 이 책이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재미있어요. 나름 유머 코드를 갖고 계시더라고요. (웃음)

오늘 독서통은 <무지개떡 건축>의 저자인 황두진 소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 순서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황두진 소장님, 고맙습니다.

황두진 : 네, 감사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대희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