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없는 오피스텔, 그 은밀한 욕망은?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②] 도시 경관과 '행정 구역'

한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시의 풍경은 어떨까요? 대한민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의 모습 속에는 지난 시기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그런데 우리는 정작 현재의 모습만 확인할 뿐, 그 안에 어떤 역사가, 아픔이, 욕망이 숨어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임동근 박사(서울대학교 지리학과 BK교수)가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반비 펴냄)을 펴낸 것은 이 때문입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멀리는 일제 강점기 농촌 풍경부터 지금 이 순간의 '메트로폴리스 서울'까지, 이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를 정치지리학의 시선으로 추적합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은 경제 개발을 위해서 전국에서 동원된 사람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야 하는 '지배하는 자'의 욕망과,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하고 말겠다는 '지배받는 자'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빚어낸 공간입니다. 당연히 이 두 가지 욕망은 대립하고, 타협하고, 융합하면서 무수한 사건을 만들어냈죠.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동사무소의 출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한 서울의 확장, 그린벨트의 등장, 아파트의 등장, 아파트 분양과 중산층의 탄생,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탄생, 지방자치제, 청계천 복원, 버스 전용차로, 뉴타운, 디자인 서울 등의 사건을 통해서 바로 이 욕망들의 맨얼굴을 추적합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서울 사람의 삶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정치가 보통 사람의 삶을 어떻게 빚어내는지 그 생생한 사례를 보면서, 삶에 각인된 정치의 힘에 전율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 이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을 진전시킬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여러분이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을 읽기를 권합니다. <프레시안>과 반비 출판사는 이 책을 먼저 읽은 여러분의 독후감을 매주 목요일 공개합니다. 두 번째 독후감은 건축가 강예린 S.O.A(Society of Architecture) 대표입니다. <도서관 산책자>(반비 펴냄)이기도 한 책벌레 건축가 강예린 대표는 책을 읽으며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동사무소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났지? 인터넷 시대에 동사무소 아니 주민자치센터가 나아갈 길은 뭐지?"

"그 많은 오피스텔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동사무소의 탄생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임동근·김종배 지음, 반비 펴냄). ⓒ반비
얼마 전, 80여 명의 건축가가 서울 시내 73개의 동사무소(주민자치센터)를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대민 행정의 가장 말단의 촉수인 동사무소를 지역 단위의 새로운 복지 거점으로 만들고자 서울시-자치구-전문가가 함께 추진한 프로젝트였다. 여기에는 기존 동사무소가 실제로 필요한 기능 이외의 시설 면적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각 건축가들은 이 잉여 혹은 여유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했고, 각 동(洞)의 사정에 맞춤하여 동사무소들을 새로 정의했다. 잘 안 쓰이던 공간이 어린이 놀이방으로 채워지고, 평균 민원 인수를 넘는 대기 공간은 카페와 같은 쉼터로 바뀌고, 저녁에는 아예 동사무소 전면을 열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운영하는 등, 73개 동사무소는 예산의 한계와 빠른 집행으로 인한 정도의 차이를 감안하여 서로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인터넷 민원 사이트를 통해서 대부분의 민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동사무소는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는 현재의 말단 행정 조직 '동'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같은 질문이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 집요하게 나타나고 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 따르면, '동'의 근원은 고려 시대의 문헌에도 언급되었다고 한다. 같은 우물을 쓰는 느슨한 자치 단위로 짐작되는 '동(洞)'은, 1920년대 창궐한 콜레라에 대응하여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위생 보건 업무를 수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다.

감염이 의심되는 장소를 마구잡이고 불태우고 감염자를 가두는 식의 일본 행정의 조치가 재산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던 조선인들은, 스스로 감염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동사무소를 두고 보건 업무를 시작했다. 콜레라가 우물을 중심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이 자치 조직은 기존의 같은 물을 쓰는 공동체 '동(洞=水+同)'과 그 영역이 일치할 수 있었다.

이 때 조직된 '동 단위의 자치 조직'은 일본의 전시 동원의 행정 창구나, 해방 후 식량 등의 배급 창구로도 이용되었다. 잘 짜인 자치 조직은 별다른 비용이나 노력 없이도, 통치의 말단 조직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1949년 지방자치법이 만들어지고, 1955년에는 아예 선거를 통해서 동장을 선출하면서 '동' 단위 행정이 공식화된다. 주민 자치 조직을 아예 국가의 말단 행정 조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근대 국가가 성립해가는 어수선한 시기, 국가 이외의 어떤 행정도 무위에 가까울 때, '동'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행정 단위였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물리적인 창구가 점차 가상의 인터넷 창구로 대치되고, 교통의 발달로 극복될 수 있는 거리와 영역이 넓어지면서 '동'이라는 단위는 애매한 영역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1990년대 2000년대에는 '읍-면-동' 조직의 통합 혹은 전환에 관한 논문들이 행정학, 경제학, 지리학 여러 분야에서 논의된 것이 그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 '읍-면-동사무소 개혁' 논의는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된다고 한다. 동사무소를 아예 없애자는 행정 개혁론, 원래대로 주민 자치 단체로 전환하자는 본질론, 주민 교육 시설로 전환하자는 대체론.

이 중 두 번째 주민 자치 단체로 전환하자는 논의는 '동사무소'의 이름을 '주민자치센터'로 바꾼 것으로 갈음했다. 그리고 이 이름에 맞춤하여 새 술은 새 부대에, 즉 지방자치시대의 새로운 동사무소 즉 주민자치센터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가 건축 공모전으로 쏟아져 나왔다.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노출 콘크리트로 된 건물에 1층은 민원실, 2~3층은 '주민 자치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새로운 동사무소들이 마을 단위 경관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때 '주민 자치 프로그램'은 실제 '주민 자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에서 대신 수행할 수 있는 '주민 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주로 위의 세 번째 동사무소 개편 논의에서 이야기되던 '평생 교육론'에 기반을 두고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멀티 홀 내지 강습실들이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 위층에 들어서게 된다.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는 백화점 혹은 도서관처럼 문화 및 스포츠 강좌를 시작하였고,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요가와 영어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장소로 동사무소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탈피하는 시기,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동사무소를 바꿔낸 사례도 있다. 고 정기용 건축가는 무주군 안성면의 주민자치센터(면사무소)의 개축 설계를 하면서, 이 면사무소의 일부에 목욕탕을 넣었다. 안성면 주민들이 봉고차를 빌려서 일주일에 두 번씩 읍내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면사무소의 기능 중 일부를 대중목욕탕으로 대체한 것이다.

필요가 있건 없건 '동'이라는 단위를 존치하기로 한 이상, 이미 갖추어진 가장 말단의 행정 조직 '동사무소'는 새로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 것인가? 서울시 80개의 동사무소와 안성면은 그 정의에 대해 시사점을 주고 있다.

행정 구역 개편과 도시의 경관 변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서울시 행정 단위의 변화가 도시의 성격을 어떻게 생성했는지는 물론이고, 그 결과 어떤 '메트로폴리스' 경관이 형성되었는지를 살핀다.

1963년도 대대적으로 수행한 행정 구역 대개편은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가시화하는 데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 이 개편 결과는 행정 지도상에서는 뚜렷했지만 경관 상으로는 당장의 차이를 낳지는 못했다. 서울의 면적은 122% 증가하지만, 당시 실제 인구는 5%만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도시화가 요원한 농사짓는 땅을 미리 확보해두고 통치의 질서를 편성했던 셈이다.

인구 유입을 예측하거나 대응해서 이루어진 행정 구역 개편이라기보다는, 인구 유입을 유도했던 행정 구역 개편이었다. 실제로 5년마다 100만 명 씩 늘어나면서 10년쯤 지나면서 이 영역에 걸맞은 인구를 서울은 보유하게 된다. 행정 구역 개편이 10년 후 담을 인구의 그릇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이 영토와 인구 증가의 엇박자는 베트남 전쟁과 오일 특수로 채워나갔다. 이 두 사건으로 벌어들인 돈이 정부의 토지 구획 정리 사업으로 흡수되면서, 도로와 산업 단지 등 메트로폴리스의 인프라를 갖추는 데 쓰이게 된다. 정부는 테크노크라트들을 고용하면서, '경제 개발 계획'과 '국토 개발 계획'은 큰 흐름 속에서 정책을 시현했다.

하지만 지방 자치 제도가 본격화되면서, 이 테크노크라트 중심의 큰 계획은 서서히 정권의 흐름에 귀속이 된다. 20년 단위의 계획이 아닌 4~5년 단위의 단발적인 도시 정책들에 메트로폴리스 경관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한다. 선거의 흐름이 도시 경관의 비연속적인 흐름으로 귀결된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지방 자치 제도가 직접 선거로 이루어지고 지주들이 지역 정치에 등장하면서부터 이런 단발성 도시 정책들은 더 말단의 단위까지 내려오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표를 얻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 장들은 저마다의 영역 안에서 중심지들을 육성하는 것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이제 서울의 3대 도심-부심이 아닌, '구' 단위에서 중심지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선거에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은 용도 지역 지구에 입김을 불어 넣었다. 구별 상업 업무 중심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 상업 중심지들의 용적률은 400%에서 1200%까지 증가되었다. 각 구별로 높은 스카이라인이 집중된 경관이 도시 전체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송파구 잠실이다. 10년 동안 상업 지구가 15만평 정도 증가되었다. 나머지 구에서도 같은 시기 3~4만평 정도의 상업 지구가 증가했다.

그리고 이 높은 스카이라인을 실질적으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 오피스텔과 주상복합이다. 1980년대 늘어난 사무직들을 위해 과잉 공급되었던 업무 시설은 주거 기능까지 소화할 수 있는 오피스텔로 전환된다. 탕비실이었던 공간이 붙박이 키친이 되고, 업무 공간에 책상 대신 침대가 놓이기 시작한다. 이 오피스텔은 고시원과 더불어서 대학가의 하숙집들까지 대체한다.

중심 업무 지구를 넘어서, 각종 신시가지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자유로워진 자본의 흐름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이원화된 구조 속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필요 이상의 중심 상업 지구, 아파트 위주의 밀집 지역을 만들어내었다. 주거 위주의 필지로 채워진 '구'들은 상대적으로 저발전 되었다는 자기인식을 가지고, 예컨대 '코엑스 유치'나 '신도시 (재)유치'를 내세우고 있다. 지정학은 나라 간에만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지역 행정 단위상에서 자본을 대상으로 행해지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일상 정치'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는다. 행정 구역이라는 영역이, 어떻게 영토를 구축해왔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우리의 경관을 바꾸어왔는지 되새겨보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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