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미래, 걷기에 달렸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걷기, 텅 빈 충만

한동안 걷지 못했다. 메모장을 들춰보니 지난해 가을부터 걷지 않았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올랐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시간이 나기를,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를 기다리다가 지는 나뭇잎과 솟아나는 새순을 차창을 통해 보고 말았다. 세 계절을 걷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나로 살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나에게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습관, 아니 태도에 가깝다.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문명에 대응하는 나의 방식이랄까.

걷기는 유산소 운동이다. 그런데 산소가 근육이나 골격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신에도 뼈와 살이 있을 것이다. 걷기는 정신에도 산소를 공급한다. 걷는 동안 우리의 정신은 녹색으로 변한다. '녹색의 마음'에 가까워진다. 녹색의 마음이라니? 한마디로 '다른 생각, 다른 삶'을 지향하는 상상력이다. 산업 문명의 폐해를 뛰어넘으려는 적극적 사유. 다시 말해 이성과 과학을 우선하는 근대성에 대한 저항이자, 도시적 삶에 대한 자발적 탈출이 녹색의 행동이다. 자본과 권력의 작동 방식인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지구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생명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이 녹색에 포함된다.

내가 걷기와 재회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게다가 뒤늦었다. 십수 년 전, 40대로 접어들어서야 걷기를 다시 경험했다. 2001년 5월 '지리산 8백50리 도보 순례'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나는 걷기로부터 영영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그해 5월 3일부터 18일까지 14박 15일, 나는 도보 순례단 단원이자 취재 기자 자격으로 지리산 외곽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남원 실상사에서 출발해 산청, 하동, 구례, 남원을 거쳐 다시 실상사에 도착했다. 5대 종단인 불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가 지리산에 모여 '생명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했는데 도보 순례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보름 동안 걸어 지리산을 한 바퀴

오전에는 함께 걷는 단원이었지만, 오후에는 기자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몸담은 매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도보순례 모든 과정을 '지상 중계'해야 했다. 날마다 저녁 기사를 올려야 한다는 중압감이 없지 않았지만, 오전에는 걷기에 집중했다. 마라톤이라면 모를까, 걷기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첫날부터 몸이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산문집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호미 펴냄)에도 썼지만) 길이 나를 받아주질 않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걷기가 여간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돌아보니 중학교 졸업 뒤로 제대로 걷지를 않았다. 쉬지 않고 한 시간 넘게 걸어본 적이 없었다. 걸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자전거 타기처럼, 걷기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고 여긴 것이 불찰이었다. 덜컥거리고 뒤뚱거리던 내 몸과 마음은 사흘째가 되어서야 자연스러워졌다. 걷기에 리듬이 생겼다. 걷기에 음악성이 부여되자 풍경과 나 사이에, 대자연과 나 사이에 장애물이 없어졌다. 외부 세계와 내가 실시간으로, 전면으로 직통(直通)했다. 그해 5월 초순, 산청에서 하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나는 '자연인'이었다.

내 몸은 지리산 일대로 쏟아져 내리는 5월의 햇살 속으로, 섬진강 쪽에서 불어오는 오전의 푸진 바람 속으로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골짜기, 골짜기가 밀어 올린 산록, 강과 산기슭 사이 넓게 드리워진 논과 밭, 양지 녘에 옹기종기 들어선 오래된 마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 다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말 그대로 '텅 빈 충만'이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길 위를 떠가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행복했던 것일까. 섬진강을 거슬러 구례로 접어들 무렵, 운조루 앞에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 여생에 이런 도보 순례를 또 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14년.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리산 도보 순례와 같은 걷기는 없었다. 하루 종일 걸어본 적도 없다. 5년 전인가, 제주 올레 길을 걸을 기회가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전날 왼쪽 무릎에 탈이 나는 바람에 한나절도 걸을 수 없었다. 학생들과 함께 몇 번 문학 기행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일정이 빠듯해 서너 시간 넘게 내쳐 걸을 기회가 없었다. 2년 전, 안 되겠다 싶어 걷기에 좋은 비싼 신발(트레킹화) 한 켤레를 장만하고 시간을 쪼개기로 결심했다.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시간이 나지 않는다면, 의도해서 시간을 쪼개는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걷기로 작정한 것이다.

내가 즐겨 걷는 코스는 두 군데다. 경희대에서 카이스트, 산림과학원(홍릉), 고대 앞을 지나 안암동 로터리까지. 마음이 내킬 때는 성북천을 거슬러 혜화동 로터리까지 걷는다. 안암동까지는 40분, 혜화동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경희대에서 홍릉으로 넘어가는 길은 서울에서도 제법 알려진 은행나무길이고, 홍릉에서 고대 앞까지는 가는 길 또한 제법 운치가 있다. 정릉천을 건널 때는 고가도로가 볼썽사납지만, 노을이 지거나 초승달이 떠 있으면 걸음걸이가 더없이 가볍다. 내가 도시에 지지 않고 있다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든다.

ⓒDanny Perez

고가도로 교각에 '서민 주택'을 짓자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걷기 좋은 길을 찾아냈다.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 서정마을 아파트단지를 가로지르는 성사천 길이다. 마침 얼마 전 경의선과 중앙선이 연결되어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아파트 사이를 지나 천변 길로 내려서면 바로 '자연'이다. 아직 키 큰 나무는 없지만, 풀들이 무성하다. 강매역 아래 물가에는 오리 떼가 살고 있어 번번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성사천은 강매역을 지나 자유로 아래 물길을 따라 곧장 한강 하류와 합류하는데 물이 불어나면 한강의 물고기들이 올라온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성사천 길에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녹색 사상의 핵심을 번번이 환기한다.

걸으면서 엉뚱한 생각을 자주 한다. 버스나 기차를 탈 때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멍하니' 있을 수가 없다. 책이나 스마트폰에 눈이 간다. 하지만 걸을 때는 걸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나와 외부 세계가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걸으면서 끊임없이 외부와 교감을 하게 된다. 걷기는 명상과 운동 중간쯤에 해당한다. 생각을 놓치지 않으면서 외부를 관찰할 수 있다. 때로는 생각과 외부가 만나 놀라운 의미를 빚어내기도 한다. 시(詩)의 메타포처럼 서로 무관한 것들이 연결돼 스파크를 일으킨다.

며칠 전 저녁, 정릉천 종암교 위에서 저 번쩍거림이 있었다. 지난해 여름에만 해도 노숙자들이 종암교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올봄에는 노숙자들이 보이지 않아 궁금하던 차였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려 와 청계천과 만나는 정릉천은 내부순환도로가 건설되면서 하천 중앙에 고가도로를 지지하는 교각들이 세워졌다. 이와 함께 개천 양쪽으로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가 마련됐다. 둔치를 시민을 위한 공공재로 만든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술' 더 뜰 수는 없을까.

저 교각들 사이에 상판을 설치해 거기에다 서민을 위한 주거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교각 사이를 활용한다면 신혼부부를 포함한 젊은이를 위한 원룸, 독거노인을 위한 공동 시설, 서민층을 위한 임대 주택이 가능할 것이다. 상판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할 것이다. 고가도로가 있는 곳은 의외로 많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의 수많은 교각들도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고가도로가 없는 개천도 재발견할 수 있다. 가령 성북천이나 청계천 위에 상판을 올려 예술인을 위한 창작 공간을 마련한다면, 지역사회가 몰라보게 활성화될 수 있다. 내가 걷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 즉 도시 곳곳에 공유재를 확보하기 위한 '엉뚱한 상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도시의 인간화, 마음의 녹색화

지난 몇 년 사이, 내 관심은 도시 쪽으로 크게 기울고 있다. 여기저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써왔지만, 내가 도시를 떠날 수 없다는 판단이 갈수록 확고해지기 때문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됐다. 50∼60대의 노후 설계도 문제지만, 인구 폭발과 고령화 사회 또한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난제 가운데 난제다. 이 모든 문제가 도시 곳곳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도시를 떠날 수 있다면 당장 떠나야 한다. 하지만 노후를 전원에서 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 즉 재산이 넉넉하거나 연금이 충분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귀농이나 귀촌은 적극 시도해볼 만한 대안이지만, 결코 녹록지 않은 도전이다.

은퇴자와 고령자는 물론, 젊은 세대 대부분이 도시에서 살다가 도시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시를 바꿔야 한다. 도시를 우리가 살 만한 환경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도시에 인간의 체온을 불어넣는 첫걸음은, 우리가 도시에서 살다가 도시에서 죽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도시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누가 도시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도시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와 같은 질문을 공론화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도시(국가) 정책 입안자, 도시 계획 전문가, 부동산 소유자와 건설 업자의 이해관계가 뒤얽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만들었다. 도로, 공원, 녹지, 광장 같은 공공 공간(시설)은 거의 대부분 '관제'였다. 경제 논리, 힘의 논리가 도시를 건설했다. 시민이 가만히 있는 한, 도시는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체제, 현재 수준의 가치관이 지속된다면 도시는 머지않아 슬럼가로 전락할 것이다. 가진 자들은 다 빠져나가고 짐승으로 전락한 자들이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아귀다툼을 벌이게 될 것이다.

'도시의 인간화'는 우리 '마음의 녹색화'에 달려 있다. 마음의 녹색화는 '지금과 다른 삶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라는 상상력에서 싹튼다. 그런데 그런 상상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선 걸어보자. 타지 말고, 뛰지 말고 시간을 쪼개 걸어보자. 걸으면 보인다. 내가 보이고, 내 삶의 안팎이 보인다. 함께 걸으면 더 잘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더 잘 보인다.

누가 '어떤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인가'라고 묻는다면, 내 답변은 하나다.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찰스 몽고메리 지음, 윤태경 옮김, 미디어윌 펴냄)의 한 대목을 빌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걷기 좋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다.'

걷기 좋은 도시는 공공재(공유재)가 많은 도시다. 걷기 좋은 도시는 안전하고 이웃이 있으며 좋은 장소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이런 도시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 도시에서 걸어야 한다.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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