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에서 경쟁상대인 독일 TKMS가 우선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수주 실패가 아니다. 'K-방산 잭팟'이라는 화려한 수사 뒤에 숨은 냉혹한 진영 정치의 현실이자, 전략적 정밀함 없이 세일즈에만 올두한 현 정부 외교 기조에 던지는 엄중한 경고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재무장 수요가 급증하며 한국 방위산업에 기회가 열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일반 소비재처럼 '많이 팔면 국익'이라는 단순 상업주의적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중대한 패착이다.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평화중견국(Peace-building Middle Power)'의 외교 노선에서 볼 때, 지금의 방산 세일즈는 본질과 현상을 위험하게 전도시키고 있다.
중견국 외교의 핵심은 강대국 간의 갈등 속에서 특정 진영에 맹목적으로 편입되지 않고, 자신만의 '전략적 공간'과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분단국이자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한국에 방산은 단순한 성장 산업이 아니라, 평화공존을 구축하고 다원적 자율 외교를 뒷받침하는 고도의 안보 수단이어야 한다. 무기를 판매한다는 것은 구매국과 수십 년간 정비·부품·표준을 공유하는 '전략적 결속'을 맺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평화중견국의 방산 수출 평가 기준은 방산 수출이 한국의 전략적 외교 선택지를 넓히는가, 아니면 거대 동맹의 구조적 하청 기지로 전락시키는가에 있다. 이 질문이 성과 평가의 유일한 기준이어야 한다.
현재 정부가 내세우는 'NATO의 무기 공급 병목이 곧 한국의 기회'라는 논리는 대단히 근시안적이다. NATO는 단순한 시장이 아닌 배타적 안보 공동체다. 그들이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한국산 무기를 임시 조달할 수는 있으나, 핵심 플랫폼과 장기 정비, 표준체계 같은 방산 생태계의 알맹이는 결국 나토 내부 산업기반으로 흡수하려 들 것이다.
이번 캐나다 잠수함 사업 결과 역시 북미-유럽 중심의 견고한 안보 연대와 대서양 표준 장벽을 단독 기술이나 가격 경쟁력만으로 뚫기 어렵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략성이 큰 품목일수록 방산 시장은 철저히 진영 논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세일즈가 심화될수록 한국 방산이 글로벌 공급망의 독자적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나토 군수산업망의 '보조 생산기지'로 구조화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나토 규격과 탄약 호환성을 맞추고 현지 공동생산 요구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기술과 자본을 대고 위험을 분담하면서도 핵심 부가가치는 유럽의 메이저 방산 기업에 빼앗기는 비대칭적 하청 구조에 갇히기 쉽다.
무엇보다 심각한 리스크는 외교적 시그널의 왜곡이다. 현재의 외교안보 참모진은 NATO 무대에서의 행보를 '경제적 프레임'으로 포장하겠지만, 국제사회와 주변국들은 이를 한국이 'NATO-인도태평양 안보망'의 최전선에 깊숙이 동참하겠다는 강력한 군사적·정치적 신호로 읽을 수 다.
단기적인 수출 계약 몇 건의 대가로,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지정학적 갈등과 대중·대러 억제망의 돌격대를 자처하며 막대한 '전략적 연루(Strategic Entanglement)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면 이는 평화중견국으로서의 생존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꼴이다.
방산 세일즈가 대통령 외교의 최고 목표가 되는 순간, 정부가 강조해온 국익중심의 실용외교는 실종되고 외교는 한낱 '국가적 판촉 행위'로 전락한다. 평화중견국 외교의 생명줄인 전략적 자율성은 사라지고, 안보적 리스크와 갈등의 비용은 분단국인 우리가 온전히 떠안는 최악의 불균형이 초래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안보실은 'K-방산'이라는 화려한 불꽃놀이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 끝에 기다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외교적 자율성 확대인지, 아니면 거대 동맹의 하위 군수기지로의 자발적 편입인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평화중견국의 품격과 안보는 판촉 실적표가 아닌,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관리해 내는 전략적 지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