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끝낸 <송곳> 이수인, 하지만…

[드라마 <송곳>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 ⑦]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측 대표를 만났다. 책임을 진다고 했지만 이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김경욱의 행위는 어용들이 하는 짓이다. 조합원들도 김경욱의 행위가 왜 잘못인지 알아야 한다'

'김경욱 동지의 개별 접촉을 규탄한다'는 제목으로 그간 김경욱 씨와 지부장이 개별 접촉한 내용이 세세하게 올라와 있었다.

조합원들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사실이 모두 공개된 셈이었다. 미래연대 사무장이 쓴 글이었다. 김경욱 씨는 분노했다. 그 글을 보고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파업 중인 노조 집행부를 공개적으로 흔드는 것은 사실상 집행부를 끌어내리겠다는 의도라고 판단했다. 사실상 선전포고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해놓고 이렇게 공개하는 것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민주노조 원칙인가'

대놓고 미래연대를 비판했다. 수면 아래 있던 미래연대와의 갈등이 수면으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JTBC

이후 인터넷 게시판에서 매일 치고받고 싸웠다. 그쪽에서 글을 올리면 김경욱 씨가 비판하고, 김경욱 씨가 올린 글에는 그들이 비판했다. 김경욱 씨는 그 과정에서도 자기 생각이 조합원들에게 지지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주머니 조합원들은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꼼수를 부렸다. 자기가 글을 쓰고 난 뒤, 자신이 쓴 글을 옹호하는 댓글을 달았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어느날 교선부장이 김경욱 씨를 불러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래연대 정식 회원은 아니었지만 미래연대의 지도를 받고 있는 준회원쯤 되는 활동가였다.

"사무장님, 노조 홈피에 글 올리고 직접 댓글도 달지 않았나요?"

김경욱 씨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인하면서 어떻게 알아냈는지 물었다. 교선부장은 김경욱 씨의 글 IP와 댓글의 IP가 같았다고 대답했다. 교선부장은 노조 간부가 그런 행위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문제를 삼을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한창 인터넷 싸움 중이 아니었던가. 마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순간 노조 집행부가 노조 홈페이지는 IP를 남기지 않는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이 댓글을 누가 썼는지 조사한 것인가. 분명히 노조 홈페이지 IP는 남기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조합원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인가? 노조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사찰한 것인가. 노조가 이런 짓을 해도 되는가."

곧바로 따졌다. 교선부장은 당황해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로 한 대씩 치고받은 셈이었다. 그래서 그 건은 서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서로 약점을 물어뜯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불편한 관계가 지속됐다. 인터넷상에서 싸운 뒤, 다음날에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회의를 해야 했다. 자연히 회의 안건은 뒷전이 됐다. '그런 내용을 왜 올렸느냐'며 고성으로 싸우기도 했다. 소모적인 싸움이었다. 파업 중인데 외부보다 내부와 싸우는 데 공력을 낭비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경욱 씨는 미래연대를 노조에서 몰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까지는 회사와의 싸움도 잠시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까르푸 노조, 즉 중앙노조 위원장의 파업 복귀 건을 문제 삼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까 말했듯이 까르푸 노조는 파업 복귀 찬반 투표에서 조합원은 현장으로 복귀하고 간부들은 파업을 유지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간부인 까르푸 중앙노조 위원장은 이를 어기고 현장에 복귀했다. 김경욱 씨는 당시엔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나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래연대를 몰아내겠다고 마음먹은 뒤부터는 달라졌다. 중앙노조 위원장의 현장복귀 건을 문제 삼았다.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위원장이 지키지 않았다. 위원장이 파업 현장에 없으면 어떻게 앞으로 싸움을 이끌어 나갈 수 있겠나."

미래연대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한 명의 조합원이라도 남았다면 그 조합원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며 파업을 계속 해야 한다던 그들이었다. 중앙노조 위원장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할 말이 없어졌다.

김경욱 씨는 그 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간부파업은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임에도 위원장은 이를 따르지 않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위원장을 지적하는 글을 노조 게시판에 올렸다. 위원장이 현장으로 복귀한 건은 노조 방침을 어긴 행위기에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논리로 인터넷에서는 물론 회의에서도 몰아붙였다. 사퇴하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위원장은 끝까지 버텼다. 사퇴하는 게 쉽지 않았다. 300일 넘게 싸워서 겨우 단체협약을 맺어 놓은 노조였다. 이제 노조활동 좀 해 볼만 하겠다 싶었는데 사퇴가 웬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김경욱 씨는 사정 봐주지 않고 지독하게 물고 늘어졌다. 사실 위원장을 그렇게 몰아붙인 것은 교섭권이 위원장에게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경욱 씨는 현장에 복귀한 위원장에게 교섭권이 주어진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교섭권을 중동지부로 가져오려 했다.

ⓒJTBC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버티던 위원장도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사퇴했다. 현장 조합원 대다수가 중동지부 편이었다. 버티지 못했던 큰 이유였다. 위원장 사퇴와 동시에 미래연대도 까르푸 노조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지난한 싸움 끝에 미래연대를 몰아내게 된 것이다.

물론, '뒤끝'은 있었다. 철수하면서도 이들은 노조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미래연대 활동가가 1편, 미래연대가 지도하는 연대학생들이 1편 썼다. 김경욱 씨는 지금도 그 내용을 기억했다.

'어용 관료가 투쟁을 망쳤다. 계속 후퇴하는 투쟁을 하고 있다. 김경욱이 연대를 배신했다'

자기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경욱 씨도 답변했다. 그때 쓴 글은 이후 그의 노조활동에 기준이 됐다.

'연대해줘서 고맙다. 그런데 연대를 배신했다는 말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내가 당신들이 말하는 연대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연대를 보여 주겠다'

그렇게 그들과 깨끗이 결별했다. 하지만 중앙노조, 그리고 함께 했던 연대학생들이 하루아침에 싹 나가버리자 덜렁 지부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이후부터는 오롯이 지부 혼자 힘으로 싸워야 했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그들이 빠진 뒤부터는 회의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실행했다. 위험한지 아닌지 모르지만 일단 진행하고 보자는 식이었다. 마음 가는 대로 전략을 짜고 회사와 싸웠다. '하면 안 된다', '투쟁의 의미가 퇴색된다' 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니 운신의 폭이 커졌다. 김경욱 씨는 그 시간동안 노조의 역량이 무척 커졌다고 자평했다.

그렇게 싸워서 파업 70일 만에 파업을 마무리했다. 임금인상안도 이뤄냈고 본래 파업 목적이었던 중동지점장과 부장을 아웃(다른 매장으로 전출하는 것)시키기로 이면 합의했다. 본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잠정합의안이 나오고 조합원 총회를 통해 최종 합의안을 확정하려 했다. 회사 옥상에서 70일 파업을 끝내는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투표를 시작하려는 찰나, 그 자리에 두 달 가까이 안 보이던 연대학생 3~4명이 나타났다. 미래연대에서 지도받는 이들이었다. 학생들은 손에 들고 온 전단지를 조합원 총회장소에 들어와 조합원들에게 배포하기 시작했다.

'잠정합안을 찬성하면 안 됩니다. 이 투쟁은 계속해야 합니다.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잠정합의안은 우리의 요구안에서 한참 후퇴한 안입니다. 노조가 승리한 게 아닙니다'

김경욱 씨 생각으로는 후퇴한 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연대의 생각은 달랐나보다. 싸우려는 단 한 명의 조합원이라도 남아 있다면 끝까지 싸워야 했을까. 김경욱 씨는 여전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대다수 조합원들도 동의했다. 압도적 차이로 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를 통과됐다. 그렇게 중동지점 70일 파업은 막이 내렸다.

▲ 김경욱 씨. ⓒ프레시안(허환주)

하지만 70일 파업 타결 뒤, 김경욱 씨는 중동점을 떠나야 했다. 까르푸 사측은 중동지점장을 다른 지점으로 보내는 조건으로 사무장인 김경욱 씨도 중동지점에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애초 파업 목적을 달성했기에 순순히 응했다. 인천 계양구에 있는 까르푸 연수원으로 발령났다.

주목할 점은 발령 날 때, 김경욱 씨 신분은 중동점지부 사무장에서 까르푸 본조 노조 위원장으로 껑충 뛰었다. 70일 파업 중 까르푸 위원장이 위원장 자리를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김경욱 씨가 맡았다.

노조 위원장 신분으로 그곳에 갔지만 연수원이다보니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가보니 부장, 과장 각각 1명이 연수실 사무실에 있었다. 거기에 김경욱 씨 책상이라고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책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컴퓨터도. 나가라는 의미였다. 회사에서 일명 '찍힌' 직원에게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조직할 직원도 없으니 노조 위원장 입장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김경욱 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출근한 뒤 컴퓨터가 없는 것을 본 뒤 곧바로 한 마디 했다.

"컴퓨터 안 줘요?."

그렇게 직원연수원에서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 이 기획은 현재 미디어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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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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