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구고신의 실제 인물은 누구일까

[드라마 <송곳>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 ②]

"나는 소재일 뿐이고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김경욱 씨가 지난 5월 열린 웹툰 <송곳> 출판 토크콘서트에서 한 말입니다. 실제 그의 말처럼 <송곳>이라는 작품은 오롯이 최규석 작가의 작품입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수인, 구고신이라는 인물에 투영된 게 <송곳>이죠. <송곳>은 이들이 푸르미 마트, 즉 까르푸에서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벌여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부분이 사실이지는 않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우선 막노동꾼으로 나오는 <송곳> 이수인 아버지는 김경욱 씨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최규석 작가의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김경욱 씨 아버지는 평생 농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정읍에서 농사를 짓고 있죠.

나머지 가족 이야기 중 김경욱 씨의 사례는 어머니가 아파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출세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장면입니다. 당시 TV에서 나오는 출세한 사람들이 대부분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것을 알고 육사에 가기로 결심했다는 부분이죠.

ⓒJTBC

학창시절 반장을 했고 해코지 당하던 학생을 도와주던 정의로운 학생이었다는 부분도 사실과 다릅니다. 김경욱 씨는 학창시절에 반장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본인 말로는 "찌질한 학생"이었답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었습니다.

육사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발언할 때는 단상에 올라가서 한 게 아니라 그 밑에서 한 거고, 어른 운운하면서 이야기한 훈육관은 김경욱 씨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온 게 아니라 김경욱 씨가 육사를 졸업할 때 훈육관 집에서 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육사 병원에 입원한 것도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이 아니라 팔이 부러졌기 때문이었죠.
이렇게 써놓고 보니 드라마 <송곳>의 진위여부 관련해서 '사실이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김경욱 씨는 자신의 스토리를 통해 최규석 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송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수인은 최규석의 세계관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보는 게 맞겠죠. 나머지는 지엽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드라마 <송곳>의 또다른 주인공 구고신은 어떨까요? 구고신은 이수인이 노조를 만들고 회사와 싸울 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인물입니다. 이수인의 실제 인물은 김경욱 씨라는 사실은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구고신이라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혹자들은 구고신을 두고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원장을 언급합니다.

최규석 작가는 하종강 원장에게서 구고신 캐릭터의 영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구고신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하종강 원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김경욱 씨가 까르푸 노조활동을 할 당시 하종강 원장은 노동운동 계에서 '스타'였습니다. 김경욱 씨는 하종강 원장이 운영하는 '노동과 꿈' 사이트에서 노동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면서 하종강 원장을 알게 됐죠.

하종강 원장을 처음 만난 건, 까르푸 파업이 끝난 한참 뒤였습니다. 까르푸노조 순천지부 노동강연자로 만났습니다. 그 뒤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그렇다면 구고신은 누구일가요? 김경욱 씨는 "여러 명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규석 작가도 자기가 만난 70년대 학번 사람들의 성격을 조합한 것이라고 구고신을 설명했습니다. 하나하나 짚어볼까요?

ⓒ프레시안
고신이 자신을 찾아온 이수인을 데리고 노조가 싸우는 현장을 돌아다닙니다. 교육 차원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그 역할을 한 인물은 당시 민주노총 부천지역협의회 박양희 부의장과 이은영 조직국장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김경욱 씨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김경욱 씨는 <송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부하직원을 구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노조의 노자도 모르는 그였습니다. 무턱대고 부천지역협의회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다짜고짜 자기네가 파업을 준비하고 있으니 활동가 한 명을 붙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때는 노조 간부도 아니었습니다. 일개 조합원이었죠. 지역협의회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그것도 갓 서른이 됐을까 싶은 젊은이의 요구에 어안이 벙벙해졌죠.

내부에서 논의한 뒤,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며칠 뒤에 온 인물이 이은영 씨였습니다. 나중에 알았다고 합니다. 지역협의회라고 해서 활동가들이 수십 명은 있는 줄 알았답니다. 하지만 부천지역협의회의 활동가는 이은영 씨를 포함해 2명에 불과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그런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겠죠.

이유야 어떻게 됐든 이는 김경욱 씨에게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아무런 실무도 알지 못하는 김경욱 씨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게 이은영 씨였습니다. 하지만 첫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말도 많이 안 했어요. 생각해보면 다짜고짜 전임자를 지정해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어색했죠. 저 역시도 마뜩잖았어요. 그냥 어디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다 온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일 경험도 없는 거 같고… 이 사람이 얼마나 하겠나 싶었죠. 차라리 장교로 지휘 체계도 다 배운 내가 낫지 않겠나 싶었어요. 한마디로 '간지'가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후 하나하나 일을 겪어나가면서 자신이 얼마나 사람을 건성으로 보았나 자책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추후 까르푸 파업 때 다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돌려 볼까요? 구고신이 옥상에서 마트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를 교육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라는, 인간의 권리라는 이야기를 피력합니다. 이 강연을 하는 인물은 박양희 부의장입니다. 김경욱 씨가 지역협의회에 도움을 요청한 뒤, 까르푸노조 부천지부 조합원들의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김경욱 씨도 박양희 씨의 교육을 듣고는 노조란 무엇인지를 알게 됐죠.

하지만 교육은 쉽지 않았습니다. 교육 받으러 오는 노동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죠.

"교육을 오후 8시 쯤 잡아요. 그러면 오전반 근무조는 집에 가고, 오후반은 일하고 있으니 안 나와요. 그렇다 보니 휴무인 사람만 나와요. 몇 명이나 될까요? 한 2명 되나? 그런 상황에서도 박양희 씨는 열강을 했어요. 그러면 나도 사람이 없으니 미안해서 자리에 앉았죠."

일반 직원들이 노조에 관심이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죠. 그러나 박양희 씨는 한 번도 정해진 강연을 미루거나 펑크 낸 적이 없었습니다. 두 명이든 세 명이든 직원이 오면 교육을 했습니다. 더구나 김경욱 씨는 한 번도 박양희 씨에게 강연료를 준 적이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김경욱 씨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답은 어땠을까요?

"이렇게라도 교육해야 진짜 조합원이 되지 않겠어? 한 명이 오더라도 해야지. 교육 받으러 왔는데 그냥 돌려보내? 내 걱정 말고 몇 명이든 데려오기나 해."

너무도 당연하고, 그리고 원론적인 답변이었습니다. 김경욱 씨는 이은영 씨와 박양희 씨를 보며 강철 같은 사람들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수인에게 노동상담을 해주는 구고신은 누구일까요? 그는 박양희 씨와 이은영 씨가 속해 있는 부천지역협의회 자문노무사 김재광 씨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부천지역협의회 사무실에서 무료상담을 했었죠. 김경욱 씨가 부천지역협의회와 연을 맺은 뒤, 어느 날 가보니 낯선 남자가 회의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은영 씨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무료로 노동상담을 해 주는 노무사라며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당시 김경욱 씨는 파업을 한창 준비할 때였습니다. 당시 김경욱 씨는 노동법을 잘 알지 못할 때였습니다.

다짜고짜 ‘나 좀 도와줘요’라고 요청했답니다. 그 뒤부터는 까르푸 지부 중동지부 고문노무사식으로 모든 법률자문을 맡아주었습니다. 임금문제부터, 근무시간외 시간에 유니폼을 갈아입는 문제, 초과근무수당 계산하는 법 등 궁금한 것은 이 사람에게 모두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까르푸 노조 중동지부에는 노조원이 거의 없었습니다. 자연히 노조는 돈이 없었겠죠. 법률자문은 모두 무료로 해줬습니다.

ⓒ이랜드일반노조

김경욱 씨는 이들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았답니다. 이은영 씨 한 달 월급이 80만 원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민주노총에 돈이 없어 여러 노조 활동가들이 돈을 걷어 월급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김경욱 씨는 점장과 싸우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이들이 김경욱 씨를 의심하고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면 김경욱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군대에서도 이런 사람들, 즉 '구고신'을 만날 수 있었다면 군대를 나오지 않고 싸웠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군대에서는 아무도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군대를 나온 이유입니다.

김경욱 씨는 또다른 이름 모를 '구고신'이 전국에 수도 없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조금씩 좋은 세상으로 바꾸려 노력한다고 합니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해봅다고 합니다. 자기가 '구고신'(이은영, 박양희, 김재광)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까르푸 투쟁과 이랜드 투쟁은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까르푸 싸움, 그리고 이랜드 싸움이 다 끝난 뒤, 김경욱 씨가 해고자 신분으로 홀로 지낼 때였습니다. 파업의 영향으로 실업자에다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했던 시절이었죠.

그때 갑자기 이은영 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부천 지역 단체에서 매년 노동자에게 후원하는 게 있는데, 이번에 김경욱 씨에게 돈을 주기로 했다고 알려왔습니다. 당시 김경욱 씨는 부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단체는 6개월 동안 40만 원씩 김경욱 씨에게 줬습니다. 그 돈이 당시 김경욱 씨에게 큰 힘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죠.

물론, 이 돈은 김경욱 씨 나름대로 갚았습니다. 이후 취업한 뒤,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노조 활동 하는 곳에 5년 동안 일정 금액을 후원했습니다. 그것이 많은 '구고신'들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 <송곳>에 등장하는 이수인, 그리고 구고신의 실제 모델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한 듯합니다. 그럼 다음 편부터는 <송곳> 이수인의 실제 모델 김경욱 씨가 노조를 만들고 회사와 싸우는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 이 기획은 현재 미디어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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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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