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가면' 쓰고 광화문에 나가면?

[기자의 눈] 복면은 금지해도 마음은 가둘 수 없습니다

다음 사진은 1960년대 영국의 모드족이 타던 스쿠터 사진이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구호가 유행했던 당시의 '마음 혁명'은,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는 여러 권리들을 쟁취하는 데 자양분이 됐다. 페미니즘, 흑인 인권 운동, 탈식민주의 등이 세상에 자리잡았다. 인류의 마지막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탄생한 모드는 반항적인 영국의 노동자 계급 청년들의 특정 스타일과 정신(Spirit), 태도(Attitude)를 일컫는 말이었다. 모드(Mods)라는 말은 50년대 모던 재즈 팬들을 지칭하는 '모더니스트 (Moderninst)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가죽 재킷과 청바지, 혹은 댄디한 캐주얼 정장과 넥타이로 무장하고 담배를 피우며 스쿠터를 탔고, 1960~1970년대 슈퍼스타였던 밴드 더 후(The Who)의 마이 제너레이션(My generation)을 가스펠로 여겼다. 스쿠터는 모드족의 상징이었다. 요즘도 홍익대 인근 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파란 원 안에 빨간 원이 있는 과녁 문양의 옷은 원래 모드족의 상징이다.

▲ 모드족은 '스쿠터에 백미러와 헤드라이트를 부착하라'는 영국 경찰의 방침에 저항하기 위해 수많은 백미러와 헤드라이트를 단 스쿠터를 몰았다.
▲ 모드족은 '스쿠터에 백미러와 헤드라이트를 부착하라'는 영국 경찰의 방침에 저항하기 위해 수많은 백미러와 헤드라이트를 단 스쿠터를 몰았다.
▲ 모드족을 상징하는 영국 출신 밴드 더 후(The Who)의 쿼드로페니아(Quadrophenia) 앨범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 포스터

이런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은 기성 세대를 자극했고, 영국 경찰은 모드족이 집단으로 스쿠터를 타며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스쿠터에 각종 규제를 도입하는데, 헤드라이트와 백미러(리어뷰미러)를 부착하지 않을 경우 스쿠터를 탈 수 없도록 했다. 인종 차별, 여성 차별, 식민 차별은 물론,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비이성적 차별이 남아 있던 당시 사회에서 영국 경찰의 규율과 금기는 깨야 할 상징과 같은 대상이었다. 가난한 노동자 청년들은 저항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헤드라이트와 백미러를 의무 착용하라고? 그렇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며 그들은 백미러와 헤드라이트를 스쿠터에 덕지덕지 붙이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백미러를 붙인 스쿠터는 모드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백미러를 달지 말라는 명령에 백미러 서른 개를 부착하고 경찰 앞을 유유히 지나는 청년들을 생각해보라.

68혁명의 아득한 추억과 같은 모습들이다. 지나친 규율과 통제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 알았던 청년들은 온갖 사회적 금기를 깼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할 때까지 밀어붙였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자유를 그들은 쟁취해 냈다. 평생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고 아무 말 없이 소처럼 일하는 노동자가 필요했던 기성 권력이 취한 방법은 끊임없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가두는 것이었다. 그들은 철없는 젊은이들이 세상을 망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가? 세상은 더 나아졌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상식처럼 여기게 됐고, 권력에 의한 마음 통제, 강제 규율의 비인간성과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그런 젊은이들이 스티브 잡스였고, 존 레논이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21세기의 '복면 금지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지난 14일 10만여 명이 광화문에 모인 이유는 단순하다. 권력이 입맛에 맞는 인간형 생산을 목적으로 보통 사람의 마음을 가두려는 시도가 벌어진 데 대한 강력한 유감 때문이었다. 국정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한 가지로 가르치려 시도한 것은 시민들의 어떤 임계치를 건드렸다. 수십년 간 이뤄온 인류의 성취를 되돌리려 하는 듯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다루면 안 되는 것이다. 시민들은 우리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 우려가 있는 박근혜 정부의 수많은 시도들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특정 역사에 금기를 두겠다는 것, 그것은 자기 검열을 일상화시켜 인간을 권력의 노예로 만들고,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대통령의 말을 빗대자면) 영혼을 파괴하고자 하는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시도가 결국 우리의 신체를 제약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금보다 더 많이) 빼앗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21세기 젊은이들은 잘 알고 있다.

10만 명이 모였다. 당국은 두려웠다. 그리고 급기야 시위 방식을 지정해 준다. 복면을 쓰지 말라. 단순한 메시지처럼 들리지만, 결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다. 복면이 상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 중 하나인 익명성의 파괴이고, 익명성의 파괴는 자기 검열의 시작이 된다. SNS를 중심으로 '복면을 금지한다? 그러면 모두가 복면을 쓰고 집회에 참가하자'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은, 인류가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 온 자유의 가치가 전복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들이 규율하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복면? 그렇다면 복면은 어디까지 해당하는가? 눈을 내놓는 것은 어떤가. 눈 밑 몇 센티미터까지 복면은 허용되는가. 눈을 감추고 입을 내놓는 것은 어떤가. 입 위 몇 센티미터까지 복면은 허용되는가. 왼쪽 얼굴만 가린다면 그것은 금지된 복면인가, 아닌가. 국정원 직원처럼 목도리를 휘감아 얼굴을 가리는 것은 목도리에 해당하는가, 복면에 해당하는가. 보다 근본적으로 헌법재판소의 2003년 결정문에 집회 참가자의 복장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복면은 복장이 아닌가?

상황이 이러다보니 각종 패러디가 나온다. 패러디 금지법이라도 만들겠다고 할 지는 모르겠다.

▲ 트위터 화면 캡쳐
▲ 트위터 화면 캡쳐
▲ 트위터 화면 캡쳐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복면시위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IS(이슬람국가)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광화문 10만 집회 참가자와 파리 테러 행위로 지탄받는 IS를 비교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박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지마자 다음날인 25일 친박계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같은 지침에 반대하는 여론은 더 높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가 25일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6%가 집회·시위 참여자가 얼굴을 가릴 수 없도록 하는 '복면 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2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 응답률은 4.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이런 당국의 코미디 같은 아이디어에 맞서, 이미 SNS에서는 발랄한 '집회 기획'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한 SNS 유저의 주장을 소개한 <프레시안>의 기사 (관련기사 : 12월 5일, 우리 모두 복면을 씁시다!)에 호응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26일 오후 1시 25분 현재 <프레시안>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해당 기사의 '좋아요' 수가 7643개를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관련해 각종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얼굴에 팩을 하는 것은 어떻느냐', '위장크림은 복면이 아니니가 괜찮다', '박근혜 대통령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가하자' 등의 주장들도 나온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먹고 산다.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법안,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고 대기업을 살찌우는자유무역 비준안, 서민에 세금을 부과하고 부자의 세금을 면해주는 조세 정책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집단적인 의사 표현을 못 하도록 막는 것이고, 나아가 유권자의 그릇된(정부와 여당이 그릇됐다고 주장하는) 생각을 교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극우 세력을 등에 업은 집권 여당의 모습이다.

오히려 집권 여당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집회 참가 시민을 IS에 비유하고, 노조 지도자를 검거하려 종교 시설에 경찰을 투입하려고 할까. 그래서 집회 참가자들은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다른 방식의 '마음 혁명'이 필요하다. 50년 전 영국 노동 계급 젊은이들의 저항 방식이 떠오르는 것은 그래서다. IS 테러 후 프랑스 시민들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잘못된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생전에 YS는 전두환의 가택 연금 조치에 "마음은 가둘 수 없다"고 일갈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복면이라도 써야 한다. 복면을 쓰고 마음껏 가래침이라도 뱉자. 그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발랄하게.

▲ 트위터 화면 캡쳐
▲ 트위터 화면 캡쳐
▲ 트위터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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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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