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박연대' 띄우는 박근혜…그런데 서울은요?

[기자의 눈] 2008년 친박연대의 추억, 2016년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총선 개입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물론 유승민 전 원내대표 숙청 때 그 전주곡을 감상한 적이 있다. 이제 분명해진 것 같다. 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여당의 총선 승리가 아니다. '진박연대'의 국회 진출이다.

박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더 뼈저리게 느꼈다. 2007년 대선 경선 이후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 한마디에 분연히 들고 일어선 2008년 4월 총선의 '친박(親朴)무소속연대'의 파워를 한번 실감한 적이 있었다. 차기 대선에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당내 친이(親李) 세력에 대항하는 충성스런 현역 가신 그룹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본능이었다.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직후 아버지의 가신 그룹이 떠나가는, 이른바 '배신의 정치'를 그는 목격했다. 거기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을 잃은 자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박 대통령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침 이방호 사무총장을 내세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천 학살'이 박 대통령을 자극했다. 박 대통령에게 그것은 공포였다.

2008년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 좌장' 김무성 대표가 총대를 맸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국민도 속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다. 몇 마디 말이면 됐다. 전국에서 '공천 불복'이 들불처럼 번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유기준 의원, 박 대통령을 '누나'라 부른다는 한선교 의원 등이 당시 친박무소속연대의 핵심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름을 딴 정당이 등장했다. 친박연대, 현재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서청원 최고위원이 전면에 섰다. 현재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 있고 유승민 의원 상가에서 'TK물갈이론'을 띄운 조원진 의원이 친박연대 출신이다. 친박무소속연대와 친박연대 핵심 멤버들이 현 정부와 당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이다. 북한식 표현을 빌리면 이들은 '항이(抗李) 혁명 1세대'다.

▲ 2008년, 친박연대의 선거 홍보물 ⓒ친박연대

이제 박 대통령은 '진박(眞朴)연대'를 띄우려 한다. 친박이었으나 친박 행세만 했던 인사들을 배제하고 진짜 친박 그룹, 즉 원내 가신 그룹을 내년 총선에서 확보하려고 한다. 11일 국무회의 발언으로 분명해졌다. 그것이 박 대통령의 최대 목적이다. 박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에 올라 당명을 바꾸고 친이계를 배제하는 19대 총선 공천을 주도할 때, 이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2012년 총선에서 강남 3구와 대구를 어떻게 공천했는가? 이걸 돌이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주도했던 공천 아닙니까? 그건 공천 마지막 순간에 가서 이른바 전략공천으로 사실상 이루어진 거죠. 왜냐면 전략공천은 당헌 당규에 의해서 최대 몇 석까지 할 수 있는데, 이미 그 당시 권영세 사무총장이 거의 다 써버렸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선도 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 공천 명단을 발표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걸로 끝나버렸죠. 그렇게 해놓고 유권자들이 다 찍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문제는 대구나 강남 3구에서는 무조건 새누리당을 찍으니까 이런 현상이 나오는 거고, 저는 제가 짐작하기에는 대구와 강남 3구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전략공천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됩니다."(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

2008년 총선은 원내에 강력한 친박 가신 그룹을 구축하는 과정이었고, 2012년 총선은 박 대통령이 발탁한 친박 신인들이 당을 장악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은 '가박(假朴) 솎아내기'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그것이 박 대통령 스스로 살 길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TK물갈이론'을 타고 청와대 출신, 현 정부 고위 관료 출신 인사들이 대구로 모여들고 있다. 강남3구 역시 청와대 출신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구에서 공천을 노리는 '진박'들은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대구 동구갑 정동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대구 수성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대구 서구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북구갑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 대구 중남구 곽성문 전 의원, 대구 달성 곽상도 전 민정수석 등이다. 일부는 현직 공직자이고, 일부는 현재 표밭을 갈고 있다. 서울 서초에는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거론된다. 보통 '물갈이론'은 당내 혁신파의 전유물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아마 '창조 정치'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너무 노골적이다. TK 물갈이론을 띄우는 것도 그렇고, 서초에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 인사를 내보내려는 것도 그렇다.

'깃발만 내걸면 당선'인 곳에 박 대통령의 관심이 쏠려 있을 때, 수도권과 중원의 민심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 때문이다.

친박무소속연대나 친박연대가 떴을 때 선거판을 휩쓴 것은 주로 동정표 때문이었다. 여당 지지자 뿐 아니라 중도층에게도 이런 동정표는 먹혀들었다. 그러나 지금 중도층은 싸늘하다. 박 대통령의 '텃밭 올인'이 정치적 이기로 비치기 때문이다. 물론 현직 대통령을 동정하는 지지층은 여전히 많다. 여기에 국정교과서 추진이라는 이념 갈라치기 전략이 겹쳐 있다. TK와 강남 지지층은 강고해 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여차하면 자신의 얼굴 대신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면 된다. 2014년 지방선거 때 그 전략은 잘 먹혔다. 그러나 그 외 지역, 특히 수도권 의원들은 비상에 걸렸다.

비박계인 김용태 서울시당 위원장은 전날 청와대 수석 및 고위 관료 출신들의 총선 출마와 관련해 "반드시 현역 야당 의원이 있는 수도권 지역구에 출마해 맞붙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수도권 지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거의 여왕'이라면 어려운 지역에 나와 박심을 얻고 판세를 뒤집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식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행보로 보면 그는 당의 성공보다는 '진박' 확보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상황이 이런데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물갈이론 속에서 "나는 아니겠지"라는 심정으로 국정교과서 추진과 같은 현 정부의 비상식적 정책 추진에 총알받이로 나서고 있다. 당이 죽고 '진박연대'만 뜨면 무슨 소용일까?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쯤 됐으면 대통령에게 한번은 물어야 한다.

"TK 물갈이요? 그러면 수도권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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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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