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키스'만 해도 달걀을 낳는다

[프레시안 books] <치킨로드>

2012년 멕시코시티에서 달걀값이 큰 폭으로 올랐다. 닭 수백만 마리가 살 처분되었기 때문이다. 시위대가 거리로 몰려나왔다. 서방 언론은 "엄청난 달걀 위기(The Great Egg Crisis)"라고 전했다.

같은 해 이란에서는 닭고깃값이 세 배 폭등했다. 이란 경찰청은 TV 제작자에게 닭고기를 먹는 장면을 내보내지 말도록 압박했다(여기나 한국이나 언론 자유란 언감생심이다). 구운 케밥을 사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분노해 폭동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닭은 지구에서 가장 흔한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남극과 바티칸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곳에 닭 200억 마리가 산다. 닭이 사라지면 70억 명의 인류는 어떻게 될까. 닭은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중요하다.

<치킨로드>(앤드루 롤러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는 너무나 흔하고(닭은 정말 많다) 하찮아 보여서(쇠고기나 돼지고기와 비교하면 닭고기란 얼마나 값싸고 하잘것없이 느껴지는가) 평소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일이 없는 닭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과학 전문 기자인 저자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 하찮은 외모의 새에게서 지구적 경제 네트워크의 한 모습, 인류학적 소양의 원천을 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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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위대하다. 찰스 다윈은 닭 덕분에 우리 과학사를 바꾸고 생각의 틀을 바꿔준 진화론을 정립했다. 파스퇴르가 만든 최초의 근대적 백신도 닭 덕분이었다. 닭은 체르노빌의 방사능도 이겨낼 강인함을 지닌 덕분에 인류의 우주 개척 프로젝트에서도 핵심 연구 대상이다(사람은 우주에서도 먹어야 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닭은 "인류의 맥가이버 칼"이다.

우리에게 멍청함의 대명사로 알려진 닭(집 닭)의 조상은 적색야계(산닭의 일종, 학명은 Gallus gallus)로 추정된다. 닭과 짝짓기도 가능하지만, 이미지와 정반대로 교활하고 경계심이 강하다. 그냥 손으로 잡고만 있어도 심장마비로 죽어버리기 일쑤다. 동남아시아 밀림에서 파키스탄 북부에 이르는 지역에 서식하는 이 새는 세계 대전을 거치며 멸종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처럼 예민한 새가 어떻게 사람의 손에 길들여졌을까. 저자는 인문학적 통찰과 과학적 추적, 사회학적 탐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과거로 나아간다. 그리고 숲에 살던 산닭이 인도 고대 문명 시기 사람의 영역에 들어오고, 이어 중동과 고대 이집트로 나아간 뒤 페르시아 정복자들과 함께 서아시아, 유럽 등지로 퍼져나간 과정을 흥미로운 옛이야기와 함께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후 저자는 닭이 인류와 함께하며 낳은 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명 초기 닭은 신성한 동물이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의 오랜 문명에서 수탉은 때로 왕권을 상징했다. 문명의 충돌과 교류를 통해 닭은 점차 사람의 생활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이제 농부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들이 생산한 곡식은 문명 공동체를 살찌운다. 닭고기가 드디어 서민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식량으로만 닭을 먹은 게 아니다. 닭은 오랜 기간 인류에게 걸어 다니는 약 상자였다. 책은 과거와 오늘의 독감 백신 공장(달걀에서 독감 백신을 얻는다) 사이를 오가며 닭의 희생으로 우리가 얼마나 큰 진보를 이뤘는지를 뚜렷이 각인시킨다.

▲<치킨로드>(앤드루 롤러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책과함께
저자는 단순히 닭을 먹을거리나 인류의 희생양으로 보지 않는다. 필리핀의 투계 산업을 관찰하고, 인도네시아의 닭 희생 제의를 묘사하는 한편 '더 팬시 현상'으로 불린 19세기 영국의 닭 투기 사례를 통해 닭이 인류 문명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린다. 수탉(cock)이 음경(cock)을 상실(정말이다)한 진화론적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한편, 예로부터 사람들이 수탉을 음란한 농담의 상징물로 여겼던 사례를 모아 인문학적 고찰도 함께한다. (그럼, 음경이 없는 닭은 어떻게 섹스를 할까? 닭은 '키스'를 해서 알을 낳는다. 자세한 내용은 책일 읽어보길.)

달걀로 공룡의 복원 가능성을 훑으며 신화에 바실리스크 등의 가상 동물로 묘사되는 닭의 호전성을 알린다. 지금 우리는 바실리스크를 악어와 비슷한 파충류의 모습으로 상상하지만, 본래 바실리스크는 수탉의 머리에 뱀과 같은 몸을 지닌 존재로 여겨졌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닭의 호전성에서 공룡의 모습을 보았으리라 상상이 가능한 부분이다. 책에 빽빽이 들어찬 정보의 틈에서 독자는 상상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다.

식민지 초기만 해도 닭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겼던 미국이 노예제와 닭 투기 열풍, 유대계 이민자 유입과 세계 대공황을 거쳐 어떻게 닭고기 대량 생산 체제로 접어드는가를 묘사한 후반부는 흥미진진한 인류의 현대사다.

여전히 닭의 원형, 즉 야생 닭의 멸종을 막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전하며 저자는 전 지구를 한 바퀴 돈 '치킨 로드'로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우리가 쉽게 지나치기 쉬운 존재에서 뽑아낸 인류 문명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압도적이다. 저자는 전 세계 곳곳의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였다. 책을 읽고 나면 밥상에 오른 닭의 하얀 살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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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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