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명예회복' 누설 후 잘린 대변인, 억울할까?

[기자의 눈] 국정화는 박근혜 뜻…"다 보면 기운이 온다"

2012년 9월 23일, 대선을 약 3개월 남짓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불렸던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몇몇 기자들과 여의도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이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천기누설을 했기 때문일까? 그는 당 대변인 직에서 물러나야 했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이 발언이 보도된 후 기자들에게 욕설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김 의원은 자신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이같은 해프닝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정황들은 많이 있다.

1998년 4월 2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박 대통령이 당시 대구 달성에 내걸었던 현수막 글귀는 "박정희가 세운 경제, 박근혜가 꽃 피운다"였다. 박 대통령은 당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아버지의 명예를 지킬 수 있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그의 중요한 정치적 목적이었다. 최소한 박 대통령의 발언이나 행동들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야당 주장의 근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국민은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가 친일·독재 가족사 때문에 국정교과서 집착한다고 믿고 있다"(문재인 대표)는 주장은, 물론 상당한 비약이 있지만 묘한 설득력을 내포하고 있다. 국정화 반대 여론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봐도 그렇고, 박 대통령 본인이 스스로 밝힌 정치의 목적 등에 비춰봐도 그렇다. 야당의 의심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만나고 있다. ⓒ청와대

이런 야당의 주장 때문일까?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올바른 국정 교과서 추진이 당당한 것이라면, 국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청와대가 이 문제의 추진 주체를 일개 행정부처로 돌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23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나온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청와대가 교육부에 직접 지침을 내리거나 이런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도 부인했다. 이 실장은 "제가 파악하고 있기로는 지난해 2월 대통령이 교육문화분야 연두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모두말씀 중 학생들에 대한 역사 교육의 중요성, 문제점 등에 대한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실장은 "최종적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교육부가 주체가 돼 각계 각층 의견 수렴해 자체적으로 최종 결론 낸 걸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라는 비판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여당은 '집필진도 구성되지 않았고,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교과서'라는 이유를 들어 그런 내용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실장도 이날 "어떤 세상에 친일을, 특정 인물을 미화하는 교과서가 가능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 실장의 이런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화를 직접 챙기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2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좌편향 한국사 교과서 바로 세우기 국민대회'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이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애국 시민 여러분이 앞장서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주도하고 있는 주체, 주어가 박근혜 대통령이다.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 5인 회동에서 적극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노력이 정치적 문제로 변질됐다"며 "국민 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런 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방점을 찍었다.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방미 직전에는 참모들에게 "올바른 일을 추진하는데 왜 걱정하느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고도 한다.

이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인데, 청와대가 직접 지침을 내리지 않는다? 이 실장의 발언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가 국정 운영의 지침을 내리지 않는다면 일개 행정부처가 어떻게 이런 일을 추진하겠는가.

이 실장의 발언은 마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주체와,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사를 분리시키기 위한 것으로 들린다. 인정하는 순간 불어닥칠 정치적 파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가리고 아웅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긴 어려운 법이다. 오히려 이런 식의 부인은 거꾸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가족사를 위한 교과서' 비판에 지나치게 민감해져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왜 그들은 이렇게 민감해 할까.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정당한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날 5인 회동에서 "(현재 교과서에)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떤 부분인가"라고 묻는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했다 한다. 현행 교과서가 왜 잘못됐는지, '기운'만 봐도 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목적은 아버지의 명예 회복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김재원 의원의 2012년 여의도 술자리 발언이 계속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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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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