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보다 투표가 건강에 더 좋다!"

[독서통] <한국의 건강 불평등> 펴낸 김창엽 교수

"건강이 불평등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이런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건강이야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게 타고나지 않나. "건강이 나빠진 데 대해 사회의 책임이 있다"는 의견은 어떤가. 우리 대부분은 '내 건강은 내가 지킨다' 이렇게 생각한다. 바꿔 말해, 내 건강이 나빠졌다면 내 책임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 영역에서는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의 건강 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담은 책이 나왔다. <한국의 건강 불평등>(김창엽·김명희·이태진·손정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이 주인공이다. 이 책은 사람마다 건강 수준이 달라지는 이유로 '사회적 결정 요인'을 꼽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더 늦기 전에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의 건강 불평등>은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와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 센터장, 이태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손정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사가 공동으로 쓴 책이다. 서울대학교 한국학 장기기초연구사업비의 지원을 받아 4년에 걸쳐 이뤄진 연구 결과를 담았다. 수많은 참고 문헌에 본문만 300쪽이 넘는 묵직한 책이다.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기획한 저자 인터뷰 기획 '독서통'은 <한국의 건강 불평등>을 첫 책으로 선정하고, 대표 저자인 김창엽 교수를 만났다.

'독서통'은 <시사통>의 김종배 편집인과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공동 진행한다. 매주 화요일 책 한 권을 선정해 저자를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다. 방송은 오후 2시 팟캐스트에 공개된다. 16일 서울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김창엽 교수와의 인터뷰를 <프레시안>이 요약 정리했다.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방송 바로 듣기)



건강 불평등 vs. 의료 불평등, 차이가 뭐야?

독서통 : '독서통'이 시작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국의 건강 불평등>의 대표 저자인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를 모셨습니다.

김창엽 교수를 소개하는 데는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말만으로는 조금 모자란 것 같습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라는 진보적 보건의료·건강 정책 싱크탱크의 이사장 겸 소장도 맡고 있습니다. 단순히 학교에서 연구만 하는 교수가 아니라 직접 시민 사회에서 정책을 만들며 대안을 제시하고 필요하면 운동에 나서는 실천가입니다.

아, 또 한 가지 독특한 경력도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을 맡아서 행정가로서도 활약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김창엽 : 반갑습니다. 책과 상관없는 소개가 너무 거창한 것 같습니다. (웃음)

독서통 : <한국의 건강 불평등>이라는 책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한 내용은 '불평등하다'입니까?

김창엽 : 결론은 그렇습니다. 이 결론에 이르는 스토리는 조금 복잡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런데 진행자 두 분께서 이 책을 연구서 내지 학술서로 보셨죠?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대중서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서통 : 그러고 보니 내용이 특별히 어렵진 않습니다. 글도 생각보다 평이하고요. 사실 굉장히 많은 분이 어려운 과학책에 도전합니다. 푸코나 들뢰즈와 같은 이들의 난해한 철학책도 읽으려고 노력하죠. 그런 책에 비하면 이 책은 읽기가 훨씬 쉽습니다.

김창엽 : 그런데 <한국의 건강 불평등> 같은 책은 무조건 멀리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이런 분야, 그러니까 건강 정책 같은 분야는 '전문가들이 하면 우리는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이 책을 대중서로 읽히고 싶은 것도 바로 그런 분위기를 깨보고 싶어서죠. 실제로 읽어보면, 읽을 만합니다. (웃음)

독서통 : 일단 질문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건강이 불평등하다는 건 살다 보면 누구나 느끼는 당연한 사실 아닙니까?

김창엽 : 대답에 앞서, 우선 정리해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보통 건강과 보건의료를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둘은 다릅니다. 건강은 결과입니다. 의료는 건강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고 과정이죠. 이 둘을 일상용어에서는 섞어 씁니다만,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시작해야겠습니다.

독서통 : 이 책에도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해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앞서 저희가 드린 질문인 '살다 보면 불평등하다는 것 누구나 안다'는 말은 건강이라기보다 보건의료에 관련된 내용이겠군요.

김창엽 : 그렇습니다. 보통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건 의료 서비스의 불평등입니다. 돈이 없어 좋은 병원에 못 간다든지, 시골에 살아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좋은 진료를 못 받는다는 식의 불평등을 경험하죠.

건강 불평등은 그 결과로써 오래 못 산다거나 병에 더 잘 걸린다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물론 이 책은 건강의 불평등과 의료의 불평등을 다 다루고 있습니다.

독서통 : 먼저 건강 불평등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건강 불평등이 결과라고 하셨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선천적 요인도 있지 않습니까? 개개인의 몸 상태 혹은 정신 상태는 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김창엽 : 저희가 말하는 불평등은 '누구나 90살까지 산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잠재력은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데, 이를 충분히 누리느냐, 아니면 다른 요인으로 인해 건강하게 살지 못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지역의 교통 기반 시설이 좋지 않아 (다른 지역 사람은 안 당할)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이는 제도적 문제, 운전자의 문제, 혹은 설비의 문제로 인한 불평등이 됩니다. 금방 고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일로 인해 생기는 부당한 차이, 부당한 모자람이죠.

독서통 : 그렇다면 빈곤 가정의 자녀와 부유한 가정의 자녀, 한 부모 가정의 자녀와 양 부모 가정의 자녀, 맞벌이 부모의 자녀와 전업주부가 있는 가정의 자녀의 차이도 건강 불평등에 포함될 수 있는 겁니까? 예를 들어 앞의 가정의 아이라면 조금 더 인스턴트 식품에 노출되는 등의 차이가 생길 것 같습니다만.

김창엽 : 당연히 포함됩니다.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요인이 바로 경제적 차이입니다. 소득이 조금 더 평등해지면 없어질 수 있는 차이가 건강 불평등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또 하나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거론되는 게 학력입니다.

독서통 : 학력요?

김창엽 : 교육을 얼마나 받았느냐죠. 교육에 따라 소득이 달라지니 건강에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소득이 같은 경우에도 학력이 더 높고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았던 사람이 더 건강합니다.

독서통 : 책을 보니 지역도 중요한 변수가 되더군요.

김창엽 : 그렇죠. 우리나라는 덜합니다만, 미국 드라마를 보시면 우범 지역 나오잖아요? 그런 지역은 경계가 명확합니다. 중산층 주거 지역과 아주 대조적이죠. 그런 곳은 사람들이 총을 더 맞는 등의 사고도 잦고, 기본적으로 주거 환경이 몹시 나쁩니다. 냉난방도 부실하고 대기오염 등도 심하죠.

독서통 : 우리나라에서도 지역별로 특정 질병 발생률이나 기대 수명의 차이가 정기적으로 조사되어 나오지 않습니까?

김창엽 : 이미 그런 차이가 있죠. 한국에서는 주로 경제 수준이 낮은 농어촌 지역과 경제적으로 괜찮은 강남 3구나 과천, 용인 등의 건강 수준에서 차이가 나죠.

독서통 : 말씀을 들으니 꽤 오래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비디오 대여점과 약국이 가장 잘 되는 동네가 판자촌'이라는 속설이 생각납니다. 이런 지역에 기거하는 분들이 대체로 막노동과 같은 불안정한 직업을 가지고 계시는데, 날씨가 안 좋으면 그날 일을 공치니 비디오를 많이 빌려보고, 아프면 병원에 가는 대신 약국에 간다는 거죠.

김창엽 : 충분히 설득력 있는 분석이리라 생각합니다.

독서통 : 남녀 간의 차이는 어떻습니까?

김창엽 : 남녀 간의 차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타고나길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삽니다.

독서통 : 여성 평균 수명이 더 길다는 건 상식입니다만 이게 단순히 흡연율 같은 생활 요인 때문이 아니라 태생적이라는 말인가요?

김창엽 : 일부는 사회적 요인도 있죠. 예를 들어 전쟁이 나면 주로 남성이 죽죠. 총싸움도 남성이 할 확률이 더 크고요. 하지만 이런 사회적 요인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생물학적 요인이 있습니다. 이처럼 태생적 차이가 있어서 남녀 간의 건강 불평등을 알아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본래 차이가 있어야 하는 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 곳이 곧 여성이 불평등한 곳이라고 해석하곤 하죠.

독서통 :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10년 더 살아야 하는데 실제로 어떤 지역에서 기대 수명이 5년 차이밖에 안 난다면, 그 5년만큼 남녀 간의 건강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거군요.

김창엽 : 그렇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나라가 방글라데시나 인도의 일부 주처럼 종교 등의 요인으로 성차별이 심한 곳이죠. 이런 곳은 남녀 평균 수명이 거의 비슷합니다. 심지어 남성 기대 수명이 더 긴 곳도 있습니다. 이는 남녀 간에 굉장히 심각한 차별이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거죠.

▲ "건강 불평등은 모든 사회적 불평등이 결국 몸과 마음에 각인된 증거." 사진은 한 대학 병원의 응급실 모습. ⓒ연합뉴스

건강 불평등은 사회 불평등의 증거

독서통 : 이제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이야기를 해 볼까요. 보건의료 불평등에서 건강 불평등으로 확장된다면, 결국 이 책은 대한민국 경제 사회를 전부 아우르는 이야기를 담은 셈이 되는데요. 실제 내용도 한국 사회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노동 즉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화이트칼라냐 블루칼라냐에 따라 건강 격차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책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김창엽 :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민거리입니다. 연구하다 보면 그 사회 전체를 조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보건 정책이 얼마나 불평등을 완화하느냐를 챙기는 지표의 하나로 선거 참여도를 꼽기도 합니다.

독서통 : 선거 참여가 건강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김창엽 : 국민의 정치 참여도가 높고 민주주의 발전 정도가 높을수록 건강 불평등이 적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역 사회에서 투표율이 높은 곳이 그렇죠.

독서통 : 유권자가 무서워서 정치인들이 보건 의료 서비스를 강화해서 그런 건가요?

김창엽 : 그것도 한 축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참여 자체가 갖는 긍정적 효과가 있습니다. 정치 참여가 자존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독서통 : 그러면 지지하는 정치인이 낙선해서 '멘붕'이 오면 어떡하나요?

김창엽 : 건강에 나쁜 쪽으로 영향을 미치겠죠. (웃음) 결국 이처럼 소득, 교육, 노동, 정치 등 온갖 사회 현상이 다 건강 불평등 문제에 연관됩니다.

건강이 불평등한 사회가 더 좋은 사회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건강의 불평등 정도를 따져본 후 이를 고치는 건 사회 전체적 문제로 가게 됩니다. 연구자로서 이렇게 가면 결국 환원주의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대통령 잘 뽑아야 하고 좋은 정치 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연구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고민이 드니까요. 이런 결론으로 환원되고 나면 당장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줄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자고 권하고 싶어요. 사실 불평등 문제는 추상적입니다. 비교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건강 불평등은 어떤가요? (이것도 물론 추상적인 면이 있긴 합니다만.) 건강 불평등은 모든 불평등한 사회 요소가 몸과 마음에 각인된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건강 불평등이야말로 다른 모든 불평등의 구체적인 증거죠.

독서통 : 그 전에 이런 반문은 어떤가요? 이 책의 전제부터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과연 건강 불평등을 얘기할 만한 나라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은 의료 선진국인데,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같은 지역의 열악한 환경에 처한 분들과 비교하면 과장이라는 지적이죠.

김창엽 :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평균 수명만 놓고 보면 10등 안에 드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건 평균치입니다. 이 중에는 OECD 국가에서도 1등에 해당하는 건강을 누리는 집단도 있고, 개발도상국이나 저소득 국가 수준의 건강 수준밖에 못 누리는 사람도 있죠. 이 문제가 건강 불평등의 핵심입니다. 평균치에서 한참 미달하는 사람이 많다면 평균치만 높다고 한국 사회가 이 문제에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죠.

한국 사회의 건강 불평등의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한참 지나야 더 좋은 분석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점차 심해지고 있고 이 결과가 나중에 분명히 건강 불평등으로 반영될 테니까요. 아마 앞으로 건강 불평등이 더 악화하는 추세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독서통 : 국민건강보험이 있는데도 그렇습니까?

김창엽 : 의료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의 구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사람이 살고 죽고 다치는 문제는 의료 불평등의 영역입니다. 병이 생기고 아프고 다쳐야, 즉 건강이 상하고 나서야 돈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 치료비가 비싸냐 싸냐의 문제가 나옵니다. 그 이전의 문제는 병원이나 국민건강보험이 전혀 못 건드리죠. 앞에서도 잠시 얘기했지만, 의료 불평등이 피부에 직접 와 닿기는 하지만 건강 불평등에 비하면 그 비중은 적죠.

비정규직 문제를 예로 들어볼게요. 노동 문제 중에서 건강 불평등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을 가진 게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놀랍게도 같은 임금을 받아도 비정규직의 건강이 일반적으로 정규직보다 더 나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이나 심혈관 질환도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생길 확률이 더 높습니다. 이런 병에 더 잘 걸리느냐 마느냐가 몇 년 몇십 년 해 온 노동의 영향을 받는 거죠.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갖췄느냐 아니냐는 이미 건강이 상하고 나서의 문제죠. 의료 영역에서 불평등이 없다 하더라도, 그 이전에 생긴 건강 불평등은 여전히 남습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을 바꿔야죠.

물론 의료 불평등도 중요합니다. 치료받으면 살 수 있는데도 소득이 낮아서 생명을 못 구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전체적 건강 불평등보다 의료로 인해 생기는 불평등은 생각보다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보통 '좋은 치료 못 받아서 불평등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 이전에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훨씬 더 중요하죠.

정치가 건강해야 내 몸도 건강해진다

▲<한국의 건강 불평등>, 김창엽·김명희·이태진·손정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프레시안
독서통
: 그러니까 보건의료 영역에 오기까지 건강 불평등에 미치는 사회적 요인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거군요. 우리는 대체로 '네가 담배 피우고 네가 술 마셔서 건강을 잃은 것 아니냐'는 말에 익숙합니다. 한국 사회의 담론은 건강은 개인이 챙겨야 한다는 거거든요.

김창엽: 네. 그래서 앞서 이렇게 건강 불평등을 목소리 높여서 이야기하는 거죠. 사실 건강 불평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선 건강 불평등을 잘 이해하면 다른 사회적 불평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득 불평등이 사람에게 왜 나쁜가 하는 이유를 건강 불평등을 통해서 포착할 수 있죠.

비정규직 문제가 그렇습니다. 아까 소득이 같더라도 고용 형태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건강 차이가 생긴다고 했죠? 지금 비정규직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야기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죠. 그러나 건강 불평등을 염두에 두면 제대로 된 해법이 아닙니다.

임금이 정규직과 같더라도 비정규직일 경우에는 건강을 해칠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불안이 있고, 직장 내에서 눈치를 보거나 또 자기 존중이 부족한 점 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결국, 건강 불평등의 렌즈로 보면 한국 사회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놓고서 더 생각할 거리가 생깁니다.

독서통 : 한국 사회의 여성 건강 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 약자니까요.

김창엽 : 당연히 그렇죠.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의료 이용을 더 많이 합니다. 남성보다 더 아프다는 거죠. 그 안에는 남녀 차별이라는 사회적 요인이 반영되어 있다고 봐야죠.

독서통 : 그렇군요. 앞서 얘기했듯이 보건의료 불평등은 경험을 통해서 쉽게 그림이 그려지는데, 건강 불평등은 여러 사회 문제와 얽혀 있어서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결국 '한국의 불평등'이 어떻게 건강을 통해서 나타나는가를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물론 불평등을 완화해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죠. 거기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건강에 기계적 평등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렇다면, 기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합니까? 어느 정도나 평등해야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창엽 : 아르마티아 센이라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이야기를 인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죠.

"정의가 완전히 구현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 퍼져 있는 부정의는 금방 알 수 있다."

어디까지 가야 건강이 평등한 사회라고 이야기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옆에 만연한 수많은 건강 불평등은 금방 알 수 있죠.

독서통 : 국가나 사회가 나서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음에도 손을 안 대는 문제부터 개선하자는 거군요.

김창엽 : 정확합니다. 여태 얘기한 소득 불평등, 도농 격차 등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이상향을 그리지 못해서 개선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독서통 : 개선할 수 있는 것도 안하니까 문제라는 거군요.

김창엽 : 그렇죠.

독서통 : 그렇다면 곁가지로 담뱃세 인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웃음)

김창엽 :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훨씬 화끈하게 올려야 하고, 다른 제도와 함께 가야 합니다.

독서통 : 다른 것 어떤 건가요?

김창엽 : 소득이 낮고 노동이 불안정한 사람이 담배를 더 많이 피웁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하는 금연 관련 사업은 보건소를 기준으로 합니다. 보건소에서 일과 시간 중에 어떤 금연 프로그램을 시행하더라도 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선 보건소의 존재, 어디 있는지, 보건소 금연 프로그램을 아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주로 담배를 사서 피는 사람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죠. 역으로 불평등이 발생하는 거죠. 금연 정책이 꼭 필요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쪽이 혜택을 보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독서통 : 지금까지의 말씀을 들으면 개인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력해집니다. 그래서 답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건강 불평등 완화를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창엽 : 기본적으로 공부가 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건강을 개인의 문제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워낙 강해서 그렇습니다. 건강을 해치는 사회적 요인을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독서통 : 예방적 차원에서의 건강 관리를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게 무책임한 부분이 있습니다. 개인에게 돌려봐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결국 오메가3 사 먹고 비타민제 사 먹는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 책에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이라는 용어를 썼는데요, 이 정의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겠죠.

김창엽 : 이런 어려움은 건강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걸쳐 있죠. 결국, 고통을 겪는 당사자는 개인이고, 개인이 당장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죠. 딜레마입니다. 건강 문제도 결국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데, 우선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의 두 번째로, 저는 건강 불평등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이라는 건 뭐냐면, 결국 사회적 요인 중에서 일차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곳이 국가와 정부입니다. 건강 불평등 문제에 관심 있고 이를 해결하려는 좋은 정부를 어떻게 만들 거냐, 이런 고민과 실천을 하는 게 바로 정치적인 접근이죠.

독서통 : 그 문제가 단적으로 나타난 게 메르스 사태 아닙니까? 어떤 정부냐에 따라 건강 문제가 어떻게 관리되고 예방되고 차단되느냐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메르스 사태가 보여줬죠.

김창엽 : 그렇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 얘기하고 싶은 게, 건강 불평등 문제에서는 특히 지역이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좋은 정부'에는 지방 정부도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핵발전소가 놓인 지역의 환경이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핵발전소 유치 문제에 지방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지요.

독서통 : 단도직입적으로, 그럼 교수님께서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안 좋게 보시겠군요? (웃음)

김창엽 : 저도 사회 생활을 해야 하므로, 특정 정치인에 대해서는…. (웃음)

독서통 : 진주의료원 폐쇄 사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창엽 : 진주의료원 폐쇄 사태는 건강 불평등이 아니라 의료 불평등에 관한 사건이죠. 병에 이미 걸린 사람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있느냐 없느냐는 거죠. 이런 공공 의료 기관의 문제는 나중에 <시사통>에서 다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앞서 이야기를 이어가면, 보건의료 불평등이나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는 지방 정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 건강을 위해 지역 정치 참여부터

독서통 : 메르스 사태 때도 지방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김창엽 : 지역별로 대응 능력에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지역 차원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브라질의 경우 보건 정책을 결정하는 데 두 갈래가 있습니다. 한 갈래는 의회입니다. 다른 한쪽에는 '민중건강평의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지금은 브라질 전체에 제도화가 되어 중앙에도 있고 지방에도 있습니다, 룰라 정부를 낳은 브라질 노동자(PT)당이 일부 지방에서 먼저 집권하면서 만들기 시작한 조직이 전국으로 확산되었죠.

이곳에서 의회가 하는 일을 대신하진 못합니다. 예산을 편성한다거나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하는 일 말이죠. 대신 여러 지역 주민이 참여해서 '우리 지역에 이런 건강 혹은 보건의료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리합니다. 예를 들어 '지역 위생 상태가 나쁘니 이를 개선하기 위해 주거 환경을 전반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주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정책에 반영하는 거예요.

독서통 : 말 그대로 헬스 케어의 자치군요.

김창엽 : 그렇죠. 헬스 케어가 아니고 헬스 자체죠. 아이들 식사에 문제가 있는 지역이 있다면, 그 지역에 대해선 예산 일부를 따로 편성해서 급식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평의회에서 결정합니다. 의회를 대신할 권한은 없고, 중앙정부 예산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평의회에서 동의해주지 않으면 중앙 정부가 지원하는, 우리로 치면 교부금을 못 받죠.

이런 식으로 지역에서 주민의 시각에서 다르게 보고, 다르게 결정하고, 지방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정책이 좋은 정치가 되는 데 필요한 거죠.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보건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감시하는 운동, 지방 정부 예산 감시 운동 같은 것이 가능하죠. 이렇게 조금만 들어가면 지역에서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거죠.

독서통 : 결국 정치로 수렴되네요?

김창엽 : 넓은 의미에서 그렇죠. 현실 정치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지역 정치를 포함한 정치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서통 : 알겠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건강 불평등>이라는 책을 두고 건강부터 정치까지 꿰뚫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책 내용을 100으로 놓고 보면 오늘 여기서 얼마나 풀어놓으신 것 같습니까?

김창엽 : 이렇게 말씀드리면 책이 팔리지 않을 것 같은데, (웃음) 핵심 주제는 다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기왕에 나왔으니 한 가지만 더 강조하죠. 앞에서 몇 차례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이라는 전문가 용어가 나왔죠? 사실 '사회' '결정' '요인' 이렇게 단어를 따로 떼서 보면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이걸 붙여 놓으면 굉장히 어려운 용어 같습니다. (웃음) 방송을 들으신 분께서는 바로 이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이라는 용어를 외우면 좋겠어요. (웃음)

이 용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거기에 담긴 내용이 굉장히 많아요. 소득, 비정규 노동, 잘못된 주거 환경, 대기오염 등을 온갖 것을 다 합쳐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사회적 결정 요인이 결국 건강 불평등을 일으키는 핵심 요인이죠. 의료 불평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하거나 지리적으로 멀거나 하는 이야기가 다 사회적이거든요.

독서통 :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식의 전환 계기도 되었고요. 여러 독자도 건강 불평등과 보건 의료 불평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한국의 건강 불평등>을 놓고서 네 분의 공저자 중 김창엽 교수를 모시고 '독서통'을 진행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창엽: 고맙습니다.

▲활발히 정치에 참여하는 사회가 더 건강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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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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