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물 '천천히' 드세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물은 생명과 건강의 바탕

"적당한 크기의 물병을 하나 준비해서 손 가기 쉬운 곳에 놓아두세요. 그리고 입이 좀 마르거나 피곤함을 느낄 때 천천히 조금씩 드세요."

만성 피로나 신경계의 부조화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분들의 몸을 살피다 보면, 마치 메마른 나뭇가지나 가뭄이 든 논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전반적인 생활습관의 점검과 함께 물을 조금 더 많이 마실 것을 권합니다. 때론 어떤 귀한 약초보다 좋은 물 한 잔의 습관이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과 건강에 관해서는 참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몸무게의 60% 정도를 차지할 뿐 아니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 활동의 바탕이 바로 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을 고정된 형체가 아닌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물속에서 세포들과 미생물들이 각자의 생명 활동을 유지하고 있는 하나의 장(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고 할 수 있지요. 많은 우주 탐사선들이 외계 행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으려고 할 때 물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따라서 내 몸을 이루는 물의 수량이 적절치 않거나 수질이 나쁘면, 여러 기능(정신 작용을 포함한)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쌓이다 보면 단순한 신체적 피로나 신경계의 까칠함을 지나 중한 병의 발생에도 영향을 주게 되지요.

물이 생명의 근원이고 건강에 중요하다는 인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있었습니다. <동의보감>에서도 약재를 설명하는 장의 맨 앞에 나오는 것이 바로 물입니다. 책은 "물이 태초에 하늘에서 생겼기 때문에 모든 약물 중 첫 자리에 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물은 일상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흔히 홀시 하는데, 그것은 물이 하늘에서 생겼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물과 음식에 의해서 영양된다. 그러니 물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살찐 사람도 있고 여윈 사람도 있으며 오래 사는 사람도 있고 오래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흔히 수토(水土)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쪽 지방과 북쪽 지방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흔히 좋은 물은 체액을 맑게 해주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몸 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어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세계적인 장수 마을을 살펴보면 건강한 자연환경과 함께 물 좋고 인심 좋은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그러고 보면 물과 지리적 환경의 차이가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동의보감>의 인식은 허언이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91.66%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아닌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많은 사람의 내면에는 건강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지요. 언제부터인가 세계 각지와 하늘과 땅속, 그리고 심해에서 날아와 마트의 한편을 점령한 다양한 물 또한 이러한 갈증에 대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물을 마시려고 할 때 좋은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물을 마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은 될 수 있습니다. 물에 녹아 있는 유용한 미네랄과 같은 성분의 차이나 그 물이 채취된 곳의 환경이 주는 영향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약초라도 자란 환경에 따라 성분의 조성도 다르고 무형의 에너지(氣)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몸에 해로운 물질이 없는 깨끗한 물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것이 꺼려진다면 한 번 끓여서 마시거나 인체에 해가 없다고 검증된 생수를 사서 마시는 정도면 될 것입니다. 만일 정수된 물을 마신다면 우리 몸에 유익한 성분들까지 완전하게 걸러내는 정수기 말고(증류수는 식수가 아니지요) 해로운 성분만을 걸러내는 제품을 쓰면 좋겠지요.

물에 관한 또 한 가지 문제는 과연 얼마나 마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몸무게 10킬로그램당 330밀리리터 정도를 하루에 마셔야 한다고 합니다. 60킬로그램 성인이라면 하루 2리터 정도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단순하게 체중만을 기준으로 물을 마시면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여름에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틀어 놓고 일하는 사람과 용광로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 같은 양의 물을 마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자의 경우에는 몸 안에 물이 과해서 생기는 수독(水毒)에 의한 질병이 발생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수분이 부족해서 생기는 탈수증이 발생할 것입니다. 평소 먹는 음식에도 수분이 함유되어 있고, 각자 먹는 것이 다르므로 체중을 기준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갈증이 날 때 마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 갈증이라는 신호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한, 평소 물을 잘 안 마시는 습관이 있으면 몸이 그에 맞춰 적응해 버리기 때문에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평소 물을 적게 마시는 사람이라면 일정 기간은 하루 500밀리리터~1리터 정도는 마셔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몸이 붓고 무거워지거나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증상이 생긴다면 물이 과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도리어 이전보다 갈증을 더 느낀다면 우리 몸이 균형을 회복하는 신호라고 봐야 합니다. 물이 잘 공급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해서 그에 맞춰 몸이 기능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라면 이전보다 피로도 덜하고 피부도 좋아지며 머리도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물은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 우리 몸이 갈증이라는 신호를 보내서 물을 마셨을 때, 이것이 흡수되어 충분하다는 신호를 다시 보낼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따라서 너무 빨리 마시면 과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 또한 과음하게 됩니다. 이런 습관이 반복되면 한의학에서 말하는 담음(痰飮)이 발생해서 우리 몸의 기혈 순환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천천히, 조금 더 욕심내자면 한 모금을 마시고 입 안에서 침과 잘 섞은 후에 2~3번에 걸쳐 나눠서 삼키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물을 우리 몸에 필요한 체액으로 전환할 수 있고 과음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좋은 물을 잘 마신다고 해서 갑자기 건강해진다거나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한 양의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이 자정작용으로 자신을 건강하게 하고 주변 생태계의 건강 또한 유지해 주는 것처럼, 몸 안의 물을 잘 관리하면 나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과 그와 공생하는 미생물들이 제 기능을 유지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은 생명과 건강의 바탕입니다. 좋은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면 물을 잘 마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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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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