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묵언 끝에 신경숙 편들기…"베껴쓰기 아니다"

<창작과비평> 옹호 글 "작가로서 뛰어난 재능 보여줘"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으로 관심의 한가운데 섰던 창비가 사실상 "베껴 쓰기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계간 <창작과 비평>은 편집주간 백영서 연세대학교 교수(사학과)의 '표절과 문학 권력 논란을 겪으며'라는 제목의 머리글을 통해 이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백 주간은 "저희는 그간 내부 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면서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 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편집위원의 논의 결과를 알린 것으로, 사실상 창비의 공식 입장으로 봐도 무방하다.

백 주간은 "작가가 '의식적인 도둑질'을 했고 출판사는 돈 때문에 그런 도둑질을 비호한다고 단죄하는 분위기가 압도하는 판에서 창비가 어떤 언명을 하든 결국은 한 작가를 매도하는 분위기에 합류하거나 '상업주의로 타락한 문학 권력'이란 비난을 키우는 딜레마를 피할 길이 없었기에 저희는 그동안 묵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단죄하는 분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해 그간 신 씨의 표절 문제를 비판하는 여론에 대한 불편한 입장을 에둘러 밝힌 셈이다.

'문학 권력' 논란에 대해서도 방어적 입장으로 일관했다. 그는 "문학 권력이란 것이 문학장 안에서 일정한 자원과 권위를 가진 출판 기업을 가리키고 그 출판사가 유수한 잡지를 생산하는 하부 구조로 기능함을 의미한다면, 창비를 문학 권력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그간 (창비가) 거둔 사업적 성과는 저희의 공공적 기여와 무관하지 않다"고 항변했다.

머리글에 더해서 창비는 그간 문화연대가 실시한 두 차례의 토론회에 인용된 3편의 토론문을 '긴급 기획'란에 게재했다. 그러나 창비는 신 씨의 표절 논란을 정면 비판한 글은 싣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정은경 씨의 글은 신 씨의 표절 의혹 제기는 지나치다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문학평론가 김대성 씨의 글도 신 씨 표절 사태를 통해 현 한국 문학의 주니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에 창비가 마지막에 실은 윤지관 덕성여자대학교 교수의 글은 노골적인 신 씨 옹호 입장을 담고 있다. 윤 교수는 표절 논란 직후 여러 차례에 걸쳐 작가회의 등의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신 씨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밝혔었다.

윤 교수는 <창작과비평>에 실린 글에서도 표절 혐의가 제기된 '전설'의 경우 "문학론에서 정당한 차용이라고 보는 기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며 "'우국'의 일부 문장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독자적인 문학 세계의 형성에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자신의 작품의 맥락 속에 녹여냄으로써 작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손문상)

창비가 표절 혐의를 다시 부인하고 나섬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는 다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18일 강일우 창비 대표이사는 보도 자료를 통해 "작가와 논의를 거쳐 독자들의 걱정과 의문을 풀어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내부의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필요한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창작과비평>에 실린 창비의 공식 입장은 이런 약속과는 크게 어긋난 것이어서,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 곳곳에서는 창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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