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못 이룬다면, 인생을 돌아볼 때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내 삶에 보내는 심장의 경고

"자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요. 그럼 심장이 심하게 뛰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증상이 싹 사라져요. 하지만 그 순간은 정말 지옥 같습니다. 병원에 가서 온갖 검사를 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고, 증상이 있을 때 오라는데 병원 가는 사이 증상이 사라져 버리니 그럴 수도 없고, 이러다 큰일 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가끔 잠이 잘 오지 않거나 피곤하다면서 오시던 분이 오늘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본인의 몸 상태를 설명합니다. 검사에도 이상은 없다는데 혹시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냐고 묻습니다. 몸 상태를 살펴보니 많이 지쳐있고 심장의 상태를 반영하는 맥에 긴장 반응이 심합니다. 목과 어깨도 많이 굳어 있고요. 그래서 일단 몸에 나타난 불균형을 조절해 보자고 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걷고 술을 삼가고 커피 대신 황차나 보이차를 마셔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이 쉬고 머릿속으로 병을 키우지 말라고 당부했지요.

조금씩은 다르지만 비슷한 증상으로 내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경험상 40~60대의 남성이 대부분인데, 사회적으로 한참 일을 많이 할 시기에 발생하니 더 힘들어들 하지요. 가볍게는 잠을 길게 자지 못하고 꼭 2~3시간마다 깨는 증상부터 자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서 깨면 심장이 죽을 듯이 뛰다가 식은땀이 쫙 나면서 풀린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낮에 일하다가도 피곤하거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으면 가슴이 뛰고 불안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증상을 가진 분들의 대다수는 병원 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간혹 불안 증상이나 불면 때문에 약을 먹는 경우가 있고요.

저는 이런 증상을 가진 분들에게 심장이 말을 걸고 있다고 말합니다. 생활 속에서 잘 풀어내지 못하고 쌓아둔 긴장과 불안 그리고 몸과 마음의 피로가 이제 더는 감당하기 힘든 수위에 이르러 우리 몸의 본능회로가 심신의 상태를 위기 상황이라고 인식해, 심장을 통해 경고를 보내는 것이라고요. 우리 유전자 속에는 인간이 현재와 같은 포식자가 아닌 언제고 다른 동물들에게 공격받을 수 있던 시절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는데(이때는 맘 놓고 오랫동안 길게 자다가는 공격을 받아 죽기 쉬웠겠지요), 평소에는 이 스위치가 꺼져 있다가 특정한 상황이 되면 켜지게 되고, 그럼 지금 힘들어 하는 것과 같은 증상들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아마존의 피다한 사람들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부족 사람들의 밤 인사는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입니다. 언제고 야생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아마존 밀림에서 사는 피다한 사람들은 지금도 한 번에 길게 자지 않는다고요. 만일 우리가 지금처럼 안전한(물론 형태를 달리한 수많은 포식자에게 노출되어 있지만) 상황이 아니라면 그 부족 사람들과 같을 것이라고 말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위와 같은 증상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지금 드러난 증상을 잠재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내 삶을 위협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작업이 더 중요합니다. 일단 근본 원인을 인식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나쁜 증상을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호흡 훈련이나 걷기와 같이 나를 둘러싼 환경의 위협을 잘 견디도록 도와줄 기법들을 익히는 게 좋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을 잘 이행해야 지금 심장에 들어온 경고등의 스위치를 내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다음에 이런 증상이 또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고, 혹시 재발해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주어진 삶을 등에 지고 살아갑니다. 때론 그 삶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일 때도 있지요. 그럴 때는 잠시 쉬면서 나와 내 앞에 놓인 인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혹시나 싶어 담아둔 것은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무리 없이 남은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근육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길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심장이 고통스럽게 고동친다면 나와 내 인생을 한 번쯤 점검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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