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의 시작, 무작정 운동보다 이것부터!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열심히 하는 것과 잘 하는 것

"생활의 속도를 조금 늦추세요. 즐거운 일이라도 피곤할 정도로는 하지 마세요. 이제 뭘 많이 하기보다는 적게 하더라도 깊이 있게 하시는 게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올해 30여 년간 몸담았던 직장을 퇴직했다는 이 환자분을 만난 것은 한 달 정도 전입니다. 퇴직 이후 여유롭고 멋진 삶을 기대한 이분께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질환이 찾아왔습니다. 현재 복용 중인 약의 종류가 8가지 정도. 거기에 몸에 좋다는 기능성 식품까지 복용 중이었습니다. 처음 내원 후, 이 분의 병력을 들으면서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병증이 다양할뿐더러 그 뿌리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급할수록 천천히, 병이 복잡하고 중할수록 기본부터'라고 강조하신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고는, 병이 아니라 이 분이 왜 여기까지 왔는가를 묻고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이 분이 너무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뒷바라지하는데도 최선을 다했고, 그 와중에 취미생활을 즐기고 여러 모임에도 열심히 나갔습니다. 현재도 요일마다 할 일을 정해 강좌를 듣고, 악기를 배우고, 가을에는 장기간의 해외여행도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참 열심히 산다! 대단하다!'고들 하지요.

문제가 이겁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이 분의 몸이 견디지 못했습니다. 일단 많이 지친 데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로 인해 기혈의 순환이 막혀서 여러 병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이 오실 때마다 반복해서 '충분히 쉬면서 그간의 삶을 반추해 보고 조금 느리게 생활할 것'을 권해드립니다. 그런데 이 분 만만치가 않습니다. 한 달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야기를 한 결과, 5가지 취미활동 중 겨우 하나를 줄였다고 합니다. 앞으로 갈 길이 험난합니다.

▲무작정 많은 운동을 하거나, 몸에 좋다는 걸 다 챙겨먹는다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연합뉴스

진료를 하다 보면 너무 열심히 하는 분과 아무것도 안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분의 경우, 고쳐야 할 부분들을 말씀드리면 웃으면서 인정도 하고 앞으로는 고치겠다고도(절반 정도는 말로만 그렇긴 합니다만) 합니다. 문제는 열심히 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자신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본인이 열심히 해 온 운동이나 식습관과 같은 생활방식, 혹은 몸에 좋다고 해서 먹어 온 것들이 도리어 건강을 해쳤다고 하면 가끔은 표정이 굳어지거나 반대 의견을 피력합니다. 때론 '방송에서 그랬다'던가 '유명한 *** 선생님이 소개한 방법'이라고 하면서 권위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열심히 하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현재 내 몸과 마음의 상태이지요.

따라서 내 건강을 위해서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는 나 자신을 먼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주변에서 좋다고 하거나 텔레비전에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되는 것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즐겁게 잘할 수 있는지, 지금 혹은 앞으로의 인생에 어떠한 점들이 필요한지를 꼼꼼하게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일이 년 하고 중단하기보다는 10년, 20년을 지속하면서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는 것, 여럿이 모여서도 할 수 있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남이 알아주는 일만 찾거나, 승부를 통해 얻는 기쁨을 즐기려 하기보다는 내 내면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오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어에서는 나이 40을 불혹이라 하고 50을 지천명이라고 표현합니다. 중년이 지나면 이제 세상의 이야기들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을 잘 알고 난 후, 내가 해야 할 바를 꾸준히 실천해서 삶을 완성해나가야 합니다. 단순히 열심히 하기만 해서는 인생도 건강도 잘 돌볼 수 없습니다. 필요 없는 것들에 몸과 마음의 기운을 소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깊은 즐거움을 주는가를 잘 알고, 이를 꾸준히 실천해야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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