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다 해결해줄 수 있다고 아직도 믿으시나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며칠 전 아이와 게임을 하고 있는데 동기 형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몇 해 전 학회에서 한 번 보고 종종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나이가 들었구나 했는데, 느닷없는 연락이 온 것이지요. 이럴 때는 대부분 안 좋은 소식인 경우가 많은데 다행이 형의 목소리가 밝았습니다.

이런 저런 안부를 묻고 식구들 이야기도 하다가 진료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환자를 보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저는 당장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 보다 환자의 신체적, 심리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진료도 거기에 맞춰 하고 싶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형은 그러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준비도 많이 해야 겠구나 하면서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찬아, 그런데 환자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능동적이지 않아. 자기는 그대로 있으면서 의사가 다 해주길 바라지. 편하게 그리고 당장 효과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자기가 뭘 해야하고 사는 법을 바꾸라고 하면 싫어해. 네가 말하는 것도 좋지만 그걸 이런 현실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거야."

"누구 전화인데 그렇게 반갑게 받냐"는 아내의 말을 뒤로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내도 종종 제 이야기를 들으면 좋긴 한데 좀 뜬구름 잡는 것 같다고 하곤 했지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료의 모습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정도의 환자와 이미 발생한 병은 치료하면서도 그것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방법을 환자에게 맞게 제시하고 이를 함께 해나가는 의사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이 주도권을 쥐거나 한쪽의 편의성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 병이란 것을 매개로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관계인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도 변해야 하고 환자도 변화해야 합니다.

▲좋은 의사란 어떤 사람일까요? 사진은 KBS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굿닥터>의 포스터. ⓒKBS
먼저 환자에게는 일정 수준의 몸과 마음에 대한 지식이 필요 합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상식 수준에서 판단할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학교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 부분에 대한 교육은 너무나 미흡합니다. 그러다 보니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지식의 층이 얇아지고 뭐에는 뭐가 좋다는 식의 풍문에 휘둘리고 의사에게 끌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함께 자신의 생명에 대한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어떤 상황이 왔을 때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에 대해 준비해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연명할 것인가 마무리 할 것인가, 병과 싸울 것인가 화해할 것인가에 대해 결정을 해 놓으면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닥치면 판단을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브레이크가 없는 차와 있는 차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의사들 또한 변해야 합니다. 카리스마나 권위 그리고 지식의 우월감을 이용해 환자를 위에서 아래로 대하기보다는, 아래로 내려와 환자를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학문의 틀에 갇히지 말고 다른 분야와의 통섭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고, 질병뿐만 아니라 삶까지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지요.

흔히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통해 사회의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을 합니다. 의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환자나 의사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개인이나 사회의 온전한 건강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환자는 좀 더 현명해지고, 의사는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각기 역할 놀이에 충실 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과 건강한 세상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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