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피로회복제 하루 몇 알까지 먹어도 될까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약에 대한 단상

"요 며칠, 저녁만 되면 다리가 자꾸 저리고 쥐가 나는데 침 좀 놔주세요."

관절이 아파서 종종 오시는 할아버지인데 성격이 어찌나 급한지 한의원에 들어서기 무섭게 항상 큰 목소리로 본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몸 상태를 살펴보니 차가운 날씨에 순환이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진 증상들이 보여서 영양섭취를 좀 더 잘하고 잠도 한두 시간 더 주무시라고 했더니, 한약을 복용하면 더 빨리 낫지 않겠냐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차트를 보니 복용 중인 약이 너무 많습니다. 고혈압, 고지혈증, 관절통증, 전립선비대, 불면증 등으로 하루 15~16알 정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한약도 약인데 약을 추가하면 그것을 처리하는데 몸이 힘드니, 그보다는 현재 복용 중인 약을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해 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한약에 대한 미련이 남으신 듯 해서 약을 줄이고 나서도 필요하면 그 때 몸에 맞게 드시자 했지요.

상담을 하다 보면 앞선 경우처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약을 복용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특히 만성 질환이나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집니다. 이런 분들이 아니더라도 환자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양약, 한약, 영양보충제, 건강식품 중에서 한 가지도 복용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준비되지 않은 인구의 노령화, 과로와 긴장을 유발하는 사회 환경 그리고 갈수록 심화되는 생태계 파괴라는 바탕위에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이를 자극하는 정보가 넘치는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작정 많은 약을 먹는다고 해서 건강이 좋아질리 없습니다. 도리어 그로 인해 우리 몸이 스스로 회복하려는 힘이 떨어질 수 있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용한 약으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한 당장의 불편함을 없애는 데만 맛을 들이다 보면 나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약을 정말 약이 되게 먹기 위해서는 그것에 의존하기 보다는 나에게 맞게 이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몸과 마음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살피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병이 그냥 두어도 나을 것인지, 일정기간 치료가 필요한지 아니면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한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약은 현재의 불편함과 불균형을 개선하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를 막아주는 것과 좀 더 빨리 좋은 상태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이 스스로를 조절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이 회복될수록 약물이나 치료행위는 줄여가서 결국에는 중단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특정 기능을 상실해서 우리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떤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는 말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평생 먹어야 한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 약은 특정 증상을 줄여 줄 뿐 그 증상이 생기게 된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거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몸과 마음을 조정하는 것보다 그냥 약을 계속 복용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일 겁니다.

▲약, 하루에 몇 알씩 드시나요? ⓒ연합뉴스


자신의 건강을 어떤 식으로 관리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 일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어떤 약이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다룰 수 있는 기법을 익혀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의 면역학자인 아보 도오루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합니다.
1. 생활 패턴을 되짚어 본다.
2.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약을 먹지 않는다.
3.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을 한다.
4. 면역력을 높이는 식사를 한다.
5. 심호흡을 한다.
6. 몸을 따뜻하게 해서 혈액 순환을 좋게 한다.

- <약을 끊어야 병이 낫는다> 아보 도오루 지음. 부광 펴냄 중에서
한자로 '약藥'은 '풀草'과 '즐거움樂'이 결합된 글자입니다. 먹어서 내 고통이 사라지고 삶이 즐거워지는 풀이 바로 약인 것이지요. 하지만 약에 의존하는 삶은 건강하지도 즐겁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약이 한약이든 양약이든 영양제이든 건강식품이든 말이지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약은 오랜 기간을 걸쳐 검증되어 음식이란 형태로 밥상에 오르고 있고, 내 몸과 마음을 쓰는 습관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증상이 있어서 약을 복용했는데 해가 갈수록 약봉지는 늘어가고 건강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조금은 고통스러울지라도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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