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면보고 기피증, 메르스 사태 키웠다

[전진한의 알권리] 대통령 대면보고와 e-지원 시스템

박근혜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번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해서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메르스 첫 환자가 확인된 뒤 6일이 지나서야 박근혜 대통령에게 첫 대면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도 별도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국무회의 자리에 참석해서야 보고를 했다.

국가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각 참모진이 대통령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보고서 형태(서면)로 보고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고서는 ‘보고’의 보조수단이지 완결적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면보고는 보고의 주체와 내용이 명확히 기록되지만, 복잡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또한 긴급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관련 대응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심각성을 대통령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과 대응이 기민하지 못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과거 대통령들의 보고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과거의 사례를 보면 향후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지점들이 보일 것이다. 이명박,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고 스타일’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 달리 대면보고를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문제는 독대보고를 좋아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포털에 ‘이명박 독대보고’를 검색해보면 원세훈 국정원장,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등 수많은 가신에게 독대보고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독대보고의 문제는 보고자에게 힘이 실리고, 보고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공식적으로 알 수 없어 국정의 왜곡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원세훈, 이영호 두 사람 모두 이후 큰 문제들을 일으켰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유독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관련 기록을 공개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직 시절, 청와대에서 생산했던 수많은 비밀기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묶어 최장 30년 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만 볼 수 있도록 만들어버렸다. 아마 2010년 당시 신종플루 사건 당시 대응 관련, 현 정부에서 참고할 만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국가재난 대응과 관련해 역대 정부에서 가장 참고할 만한 모범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참여정부에서 찾을 수 있다. 참여정부도 수많은 긴급사태와 관련해 실수와 문제점을 드러내긴 했지만 대통령의 신속한 대응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모들과 수시로 만나 보고와 토론을 즐겼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부분 대면보고였으나 기록관리비서관(사관)이나 부속실 비서진들을 배석시켜 관련 사항을 꼭 기록하게 하였다.

ⓒ연합뉴스

독대의 문제점은 앞서 언급했듯이 대통령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본인의 정치적 입지에 이용하고자 과장·왜곡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보고하는 자리에 반드시 기록자를 배석시켰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해 위 제도를 잘 벤치마킹 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염태영 수원시장이다. 이 두 시장들은 지금까지도 사관제도를 두고, 수많은 참모 및 외부 전문가와 논의 했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대면보고를 활발히 하면서도 철저히 기록해, 부작용을 예방하는 것이다.

또한 청와대 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e-지원 시스템(업무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e-지원 시스템은 말단 행정관부터 수석비서관까지 그들이 보고한 보고서를 다 등록하고, 버전관리를 통해 그 과정에서 어떤 변경사항이 있었는지 모두 기록하는 것이다. 즉 행정관이 애초에 기획한 문건과 수석비서관이 그걸 어떻게 수정했는지 등의 경과를 대통령이 다 파악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도 이 시스템에서 생산되었던 수많은 보고서는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PAMS)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이명박 정부에서 기능이 대폭 축소된 위민시스템으로 변하고 말았고 지금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조차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위 사안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향후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안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1년 전 세월호 참사 때도 실패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5%로 떨어진 게 이를 증명한다. 이런 사태가 지속할 경우, 국정 장악력은 흔들릴 수밖에 없고, 이는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스스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초기대응에 실패한 원인을 규명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정스타일에 큰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시로 참모진과 전문가들을 만나 토론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관련 사안들은 배석하는 비서진들에게 기록하게 하고 그 기록을 통해서 새로운 국정운영의 동력을 찾아야 한다.

또한 실시간으로 보고되는 각종 보고서를 투명하게 등록관리 해, 복수의 관계자들에게 스크린 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혼자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야를 이해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민들과도 소통해야 한다.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정부 3.0 캠페인을 더욱 크게 확대해, 국민소통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 임기는 반 이상 남았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넘어가고자 한다면 또 다른 위기는 빠른 시일 내에 올 것이다. 이번 사태가 스스로 국정운영에 관해 돌아보고, 과거 대통령들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는 계기가 되어 국정스타일의 대변혁이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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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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