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통곡의 기억은 유적이 됐다"

[온 가족 세계여행기] 서유럽 지나 유럽의 동쪽으로 향하다

우리는 독일의 북쪽 함부르크를 지나 분단과 통일이라는 역사를 상징하는 도시인 베를린에서 머물고 독일의 동쪽 도시이자 또 다른 역사적 의미를 가진 드레스덴을 지나간다. 폭격으로 도시전체가 파괴되고도 과거의 아름다운 도시를 멋지게 재건해 낸 드레스덴을 지나 프라하의 봄으로 기억되는 체코, 그리고 도나우 강변의 멋진 야경을 가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지나 천혜의 자연을 가진 크로아티아로 향한다. 크로아티아의 신비로운 대자연에 취하다가 문화예술의 총아인 이탈리아에 도착해서는 정작 그 유명세만큼이나 피곤함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비바람 불었던 함부르크

독일의 북쪽에 위치하고 암스테르담과 연결된 운하망과 호수를 가지고 있는 함부르크는 햄버거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햄버거 가게도 있고 지나던 길에 우연히 들렀던 햄버거 가게에선 연어와 생선을 넣은 햄버거를 팔고 있었는데 굽거나 튀기지 않은 생선인데도 비린내나 잡냄새 하나 없는 담백하고 신선함이 입 안 가득 감돌았다.

우리가 함부르크를 지나갈 땐 며칠 동안 비바람이 내리쳤다. 이미 계절은 완연한 봄을 알리고 있는데도 함부르크는 바람이 도시를 가득 메웠고 가느다란 작은 비가 우수를 더했다. 가는 빗줄기가 오다 가다를 반복하고, 부는 바람이 수분을 가득 품고 있는 공기를 여기저기 흩어놓는다. 물기를 가득 품은 호수의 전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베를린, 장벽 앞에서 흘린 눈물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로 인구규모면에서 최대의 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단되었다. 냉전은 분단을 극으로 몰아갔고 급기야 1961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에 베를린 장벽을 세우게 된다. 이후 25년 넘게 유지되던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통일이 되면서 베를린은 통일 독일의 수도가 된다.

냉전과 분단이라는 벽을 스스로 넘어 결국 장벽을 부수고 통일을 이루어낸 독일! 꽤나 오래된 일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장벽을 허물고 허물어진 장벽사이를 뛰어다니며 환호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마저 격양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은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역사적 현장인 베를린 장벽에 서 있다. 이제는 모두 철거되고 야외박물관용으로 작은 장벽 조각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장벽에 다가가서 벽의 틈새로 반대쪽을 바라본다. 그 시절 장벽으로 가로막혀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많은 친구,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결별을 겪었던 독일인들의 애환과 우수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들의 아픈 역사마저도 그대로 보여주던 박물관은 가로막힌 장벽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 고통 받았던 현장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우리는 장벽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뭔지 모를 아픔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국가의 국민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서글픔이었을까? 한국전쟁과 분단 속에서 한집 건너 한두 명씩은 전쟁에서 가족을 잃거나 이산가족이 되어있는 우리의 현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이런 과거의 아픔도 남의 일인 양 생각하는 사회적 장벽은 실제의 장벽보다 더 한 장벽처럼 느껴져 답답함을 더했다.

과연 우리는 남북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비무장지대를 해제하며 통일로 갈 수 있을까? 어쩌면 통일이 너무나 요원한 일임을 직감해서 더 서러웠는지도 모른다. 예전 독일의 통일과정을 살펴보면서 서독과 동독이 통일이전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알게 된 적이 있다.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등. 그러나 우리는 서로 갈등만을 부추기며 종북이라는 단어가 사회악이 되어 사회의 모든 현상을 집어삼키는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다.

▲ 베를린 장벽. ⓒ가온가람이 가족

유서 깊은 도시 드레스덴

드레스덴은 '강변 숲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어원으로 독일 동부의 작센 왕조의 수도로 유구하고 긴 역사를 가진 문화 도시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드레스덴은 군대가 밀집한 곳도 아니고 군수공장도 별로 없는 유서 깊은 문화도시라서 독일인들이 많이 피신해 있었다고 한다. 1945년 2월,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승기를 확실시 하는 시점에서 군수시설이 거의 없는 드레스덴에 이른바 전략폭격이라는 이름으로 공군의 대규모 폭격이 가해졌고 도심부가 파괴되고, 2만5천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비록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불가피한 공격이 필요 없는 곳에 승기를 다 잡은 시점에서 한 도시를 초토화시킬 정도의 폭격이 가해진 이 사건은 세계 최대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로 기록되었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한 반대여론이 상당했고 전쟁과정에서 발생하는 폭격의 경우 군수시설이나 군인이 밀집된 곳에만 폭격을 가하는 암묵적 합의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갔던 드레스덴은 전쟁의 냄새라고는 전혀 없는 아름다운 도시로 재건되어 있었다.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고 시체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던 통곡의 도시라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1945년 당시 대규모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드레스덴의 시민들은 폭격으로 깨지고 부서진 유적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주워서 시에 기부하고 시는 그 파편들을 모아 모아서 이전 유적들을 복원해놓은 것이다. 폭격으로 불에 탄 부분은 검게 그을린 채로 새롭게 복원한 부분과 색의 대조를 이루며 그렇게 아픔의 역사를 투영하고 있었다.

프라하의 봄으로 기억되는 체코의 프라하

뜨거운 햇살과 자유를 갈구하는 프라하(Praha)는 체코의 수도이다. 프라하는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동쪽으로 우크라이나, 북동쪽으로 폴란드, 북서쪽과 서쪽으로 독일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이런 탓인지 프라하는 각국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밤새도록 거리를 쏘다니다. 특히 프라하 강변의 카를교에는 프라하의 석양과 야경을 보려는 인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이런 인파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멋진 키스를 나누던 연인은 온 우주에 그들 둘만이 전부인 듯 그렇게 사랑하던 모습은 아직도 마음을 뜨겁게 한다.

프라하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자유화 운동! 1968년 두프체크에 의해 시발된 자유화 운동으로 스탈린식 통제정치와 검열 그리고 자치권의 제한 등이 원인이 되었다. 개혁의 내용은 재판의 독립, 의회제도의 확립, 사전검열제의 폐지, 민주적인 선거법 제도의 창설,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보장 등이다. 두프체크는 이런 개혁조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고 했는데, 언론·집회·출판 등이 자유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잠시 동안의 '프라하의 봄'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 사태가 동유럽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한 소련군에 의해 개혁은 저지되고 다시 예전의 상황으로 회귀한다. 이처럼 잠깐의 자유만을 허락받았던 아픈 과거를 가진 프라하는 어쩌면 이런 고난의 과거 때문에 더 자유로운지도 모르겠다.

▲ 체코 프라하. 프라하궁과 카를교. ⓒ가온가람이 가족

도나우 강변의 아름다운 야경을 가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두고 오른쪽에 역사와 전통을 지닌 부다와 왼쪽의 페스트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도시이다. 부다페스트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록되어 있으며 도시 중심에 도나우강이 흐르고 있어 도나우의 진주 또는 도나우의 장미라고 불린다. 이렇게 도나우 강변에서 바라본 야경은 너무 아름답다.

철학과 과학 그리고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빈은 철학과 과학의 도시답게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를 배출한 곳이다. 그 유명한 철학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오스트리아 출신이며, 핵 연구와 양자역학의 체계화에 기여한 리제 마이트너, 에르빈 슈뢰딩거, 볼프강 파울리 등이 유명한 과학자들이다. 그래서인지 빈에는 과학박물관 중에서 유일하게 세계 10대 박물관에 속하는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박제된 수많은 동식물들(세계 최대) 전시하고 있었고, 특히 인간의 진화와 우주의 탄생을 보여주는 주는 곳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호기심과 신비함으로 함께 들뜬 기억이 있다.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중심지로 왈츠 요들의 낭만주의 음악, 바로크 음악, 궁정 음악뿐만아니라 현대 음악까지 전 분야에 걸쳐 수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천혜의 자연을 가진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는 발칸 반도에 있는 나라로, 서쪽에는 지중해의 일부인 아드리아 해가, 북서쪽에는 이스트리아 반도가 있다.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나비족이 살던 행성처럼 마치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폴리트비체 공원! 수도인 듯 아닌 듯 소박하면서도 순수했던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바다 속에 파이프오르간을 묻어놓아서 출렁이는 파도에 진동을 일으켜 화답하던 자다르! 모두가 자연과 동화되어 있던 곳, 어느 도시 하나도 다른 도시들과 차별되어 신선함을 주었던 그런 곳이 크로아티아다.

▲ 크로아티아. 폴리트비체 호수. ⓒ가온가람이 가족


유명세만큼 피곤했던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일명 장화 모양의 영토를 가진 나라로 지중해로 뻗어있는 커다란 반도와 시칠리아, 사르데냐 이 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문화 예술과 역사적 유적 그리고 음식이 유명한데 피사의 사탑, 로마의 콜로세움, 이탈리아 피자 등이 가장 유명하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도시들! 로마, 피렌체, 베니스…. 그러나 이곳은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그에 수반된 상업화와 소매치기 등 좀도둑들로 붐빈다. 우리도 로마에서 자동차에 넣어둔 1년 여행 베낭을 몽땅 털리는 '멘붕' 상황을 겪으며 문화와 관광도시의 화려함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피곤함을 동시에 느낀 바 있다.

(이제 본격적인 유럽여행 시작합니다. 다음 편은 독일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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