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이 낳은 '동교동 좀비들'부터 물갈이하자!

[기자의 눈] '동교동계'가 '친노 독재'의 항거자?

기쁜 소식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2004년부터 이어져 온 열린우리당 체제를 드디어 넘어섰다. 그리고 동교동 체제로 갔다. 당 대표를 숱하게 갈아치우며 갈팡질팡하던 '친노'는 이제 '동교동계'라는 강력한 개혁 세력을 만났다. 그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

솔직해지자. 지금 동교동계를 무덤 속에서 불러온 역할의 8할은 종편(종합 편성 채널)이다.

[단독] 동교동계 저녁 회동 "문재인 책임져야" <채널A>
[뉴스특급 12] 동교동계, 문재인과 정면 충돌 <TV조선>

기사 제목만 보면 130석 야당 내부의 어떤 강력한 현역 의원 계파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보수 '종편'들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하다. '동교동계'를 현실 정치의 행위자로 소환, 야권 내 강력한 야당으로 설정한다. 노색이 현현한 인사들이 '동교동계' 타이틀을 달고 종편에 출연, '친노계'를 박살내는가 하면, 김대중(DJ) 전 대통령 묘소 앞에서 종편 TV 카메라를 향해 독설을 퍼부어댄다. 스포트라이트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비슷하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잊혀져 있었을 뿐.

종편은 여야 구도의 정치 지형만 비틀어 놓은 게 아니다. 야당 내 정치도 비틀어 놓고 있다. 극우 발언을 일삼는 패널들이 주로 출연, 논리도 없는 독설들이 배설되는 종편 채널에 '동교동계'라는 사람들이 단골로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우주적 스케일'이다. 박지원 의원은 <TV조선> '단독 인터뷰' 제하의 기사에서 "문재인 대표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는 없다"고 했다. 모든 매체의 시선이 쏠린다. <TV조선>의 앵커는 "드디어 동교동계가 행동에 나서는 모습입니다"라고 한다. 과장된 표정에 비장한 모습으로. 목소리 톤을 두어 단계 쯤 올린다.

동교동계에 대한 비판을 위해 작고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불러와 본다. 김삼웅이 쓴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현암사 펴냄)의 몇 대목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 최고위원들의 청와대 회동에서 김근태 최고위원은 가장 먼저 발언했다. 그 핵심은 첫째, 당정의 핵심 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교체해야 한다. 둘째, 비공식 보고 라인을 제거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일을 늦출 경우 당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맨 마지막에 발언한 정동영 최고위원의 '권노갑 퇴진 발언'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을 뿐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근태) 위원은 당내 특정 계보인 '동교동계'의 해체를 거듭 공개 요구하고 있다. '당의 공적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선 비공식 라인이 더 이상 작동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동교동계를 거론하며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하나회가 있었듯이 민주주의 정권에서의 하나회가 돼선 안 된다'는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권노갑에 비하면 김기춘은 청년종편이 만든 동교동 '좀비'들

'비선'으로 권력을 쥐락펴락하던 ('동교동계'가 비판하고 있는 누군가와 닮은 것 같다) 동교동계 사람들은 누구인가.

권노갑(1930년생), 김옥두(1938년생), 이훈평(1943년생), 김상현(1935년생), 박양수(1938년생), 김방림(1940년생), 정균환(1943년생), 이협(1941년생). 그리고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한화갑(1939년생), 한광옥(1942년생), 김경재(1942년생)같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동교동계라 불린다. 이런 계파가 있다면, 쉽게 말해 '집안 단속'도 못한 계파로서 비판의 도마에 올라야 할 것이지만, 언론은 그런 방식으로 동교동계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호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선'이요, '친노 독재'의 정의로운 항거자다.

'동교동계'와 나이로 비교해볼 만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세웠다고들 하는 '7인회'다. 요즘엔 언급되는 게 뜸하지만, 우선 이들의 면면을 보자. 최병렬(1938년생), 김용갑(1936년생), 김용환(1932년생), 안병훈(1938년생), 현경대(1939년생), 강창희(1946년생), 김기춘(1939년생). 특히 김기춘 씨는 권노갑 씨보다, 무려 9살 연하다. 누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 기용을 '올드보이'의 귀환이라 했나. 누가 이들을 두고 '2선으로 물러나라', '낡은 정치 그만 두라'고 비난했나.

종편이 만든 '동교동계'라는 환상의 계파는,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다. 종편의 '특별 대우'다. 어떤 종편도 동교동계의 과거 모습을 보도하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잇는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서만 유효한 게 동교동계다. 그 동교동계가 최근에 한 일을 몇 가지 짚어보자. 4.29 재·보선, 동교동계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참패했다. 그리고 동교동계 핵심 한광옥, 한화갑, 김경재, 새누리당 지지로 돌아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합의 아이콘'이고, 여권의 훌륭한 체제 선전판이다.

'동교동계'는 호남 정치 개혁 대상 1순위천정배의 말에 답이 있다

동교동계라는 '좀비'가 있는 다른 편에는 '호남 정치'라는 유령도 있다. 누구도 '호남 정치'를 정의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호남 정치'가 산 문재인을 잡고 있다. 전남 순천·곡성에 한나라당 의원이 탄생하고, 광주 서(을)에 무소속 의원이 탄생해 호남 정치가 위기에 빠졌다고들 한다. 만약 대구에서 김부겸 의원이 당선되면 여당 지도부가 사퇴해야 하는 건가? 과다 대표된 세력과 모호한 구호가 야권을 뒤흔들고 있다.

호남을 대표한다는 30명 중 몇 명의 의원이 매체를 타고 있는가. 뚜렷하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사실 새누리당의 이정현 의원이 호남 정치인 중 가장 유명하다. 호남 의원들이 어떤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정작 잘 알지 못한다. 지역 토호의 구태 정치와 중앙당의 안이한 전략이 호남을 망치고 있다. 호남에서 제1의 개혁 대상이 될 인사들이 되레 당에 '개혁하라'고 호령하고 있는 꼴이다. 젊고 유망한 몇몇 정치인들은 '호남 어르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정치를 제대로 펴지 못한다. 이게 호남 정치의 현 주소다.

호남 유권자들은 노무현의 '부산 정권' 발언에 십 몇 년째 삐쳐 있는 사람이나, 호남 정치인들이 스스로 만든 '문재인의 호남 홀대론'의 환상을 뒤쫒는 사람들이 아니다. 두 석을 새정치연합에 주지 않았을 뿐, 새정치연합을 통째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런 사람들은 호남의 새누리당 지지자들이다. 호남에 균열이 생겼다면 새정치연합은 오히려 영남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호남 두 석 빼앗겼다고 지도부 사퇴를 거론한다. 그것도 퇴물 취급 받던 인사들이. '지분'을 버젓이 요구하며. 누가 청산 대상인가. 누가 개혁 대상인가. 개혁의 대상이 뒤바뀐 기가막힌 현실이다. 야당의 정권 교체는 호남 싹쓸이를 전제해야 하나?

동교동계가, 박지원 의원이 호남의 대표성을 독점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은, 언론도 마찬가지로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동교동계가 문재인의 광주 5.18 묘역 방문까지 막으려 한다는 말까지 종편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 이쯤 되면 '막장 정치'다. 광주의 상징성마저 동교동계의 사적 소유물로 규정한다. 종편의 힘이고, 프레임의 힘이다.

역사가 한 번은 비극으로(2002년 동교동계의 몰락), 한 번은 희극으로(2015년 동교동계의 부활) 반복된다고 하지만, 이번 '동교동의 난'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자명하다.

호남 정치의 개혁은 '세대 교체'에서 시작해야 한다. 젊은 호남 지역구 정치인들이 낡은 (상당수 '호남 출신'인) 수도권 정치인들의 구태를 타파하는 것, 그것이 '호남 정치' 개혁의 요체가 돼야 한다.

청산돼야 할 대상은 마지막 시간을 앞두고 극렬하게 반발하는 법이다. 천정배의 말 중, 새겨들을 말이 몇 개 있다.

"광
주의 모든 좋은 싹을 전부 당(새정치민주연합)이 자기들 기득권으로 눌러놓고 있다", "(호남) 각계각층에 좋은 사람이 득실득실해서 얼마든지 있다"

천정배가 정말 호남 정치 개혁에 성공할지 못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새정치연합에는 천정배만큼 참신한 말을 내놓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천정배의 말이 현실화되면, 가장 반발할 사람들이 지금 '호남 민심'을 외치고 있다. 김대중의 '동지'에서 이익 집단으로 전락, 쇄신 대상이 된 동교동계는 "(지분율) 주류 60%, 비주류 40%로 나누는 관행을 지켜왔다. 문 대표도 그 정신을 이어가길 바란다(권노갑 씨가 지난 7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후 한 말)"고 요구했다. 협박처럼 들린다.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화갑, 한광옥처럼 적진에 투신할지도 모르겠다. "돕지 않겠다"는 자해성 협박이라도 할지 모르겠다.

새누리당은 참 운도 좋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과 격돌하기 앞서, 15년 전의 '정풍 운동'을 다시 벌여야 할 판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올해 말 벌어질 '공천 전쟁'을 앞두고 노골적으로 '지분'을 요구하는 '동교동계'라는 유령과 싸워야 할 판이다. 종편의 '프레임 짜기'는 역시 강력하다. 이 상태로라면 2016년 총선은 보나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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