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볼모 잡은 동교동 vs. 친노 덫에 빠진 문재인

[분석] 문재인-권노갑 회동 취소에 던져지는 질문들

5일 오전으로 예정됐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상임고문 간 회동이 돌연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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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재·보궐 선거 지원을 못 박으려던 일정이 취소된 터라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다. "참석 예정자가 일정 조율을 원했기 때문"이란 게 당과 권 상임고문 측의 설명인데, 기실 그 배경은 훨씬 더 복잡하다. 양측(친노-동교동)의 오래된 갈등과 앙금이 '패색 짙은 선거전'을 맞아 재점화됐단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거 초입부터 '선거 그 후'를 내다 보는 당내 신경전이 가열되는 모습이다.

이날 회동 취소는 표면적으론 문재인·권노갑 측의 급작스런 '판 키우기'가 발단이 됐다. 애초 새정치연합은 이날 일정을 문 대표와 친노로 분류되는 관악을의 정태호 후보, 그리고 동교동계의 권 고문과 김원기·임채정 상임고문 등이 참석하는 '원로와의 대화' 형태로 기획했었다. 이조차도 '상임고문단 회의'에서 '급' 키워진 판이란 설명이 많았던 상황. 그러다 4일 저녁, '원로와의 대화'는 상임고문단과 최고위원이 모두 참여하는 '연석 간담회' 형식으로 바뀌어 공지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회동 전격 취소다.

이는 일부 상임고문들이 간담회 직전 개인적인 일정을 들어 참석 불가 입장을 표명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권 고문 측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권 고문이 이날 오전 일찍 임, 김 상임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모았다"면서 "참석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추후에 상임고문들 안에서 다른 의견이 나오면 안 되는 만큼, 더욱 많이 참여해 의견을 모으는 간담회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문 대표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후폭풍이 부느니 논란을 아예 차단하겠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취소 공지 직후 김영록 당 수석대변인은 신속히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 내용은 "단순한 일정 재조정이니 억측을 말아달라"로 요약된다. 권 고문 측도 "동교동계의 선거 지원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언론에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진화 노력에도 회동 취소는 분분한 논란을 낳는 중이다. 이번 일로 친노에 대한 동교동계의 불만에 더해, 계파 '좌장'인 권 고문에 대한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의 반발까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란 얘기다.

▲ 지난 2·8 전당 대회에서 경쟁했던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의원. ⓒ프레시안

'전패' 위기감 속 동교동계의 반발…왜?

권노갑 고문의 '솔로' 선거 지원 행보에 대한 계파 내 반발 기류가 읽힌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일 권 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 인사 6~7명이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도, 권 고문의 선거 지원에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달 31일 동교동계 인사 50명가량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후 즉석에서 진행한 거수 투표에서도 거의 모든 인사가 '권 고문의 선거 지원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패' 위기감까지 드리운 선거전에서, 계파전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새정치연합의 모습에 유권자는 갸우뚱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비(非) 호남 출신 유권자이자, 계파전의 역사적 배경을 돌아볼 틈 없었던 젊은 층엔 더더욱 그럴 테다.

친노를 향한 동교동계, 더 넓게는 비노계가 가진 반감의 뿌리는 10년도 더 전인 2003년 '대북 송금 특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 회담의 대가로 북한에 5억 달러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특검을 수용했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 김대중 정부 핵심 인사들이 구속됐으며 동교동계에선 '노무현의 배신'이란 말들이 터져 나왔다.

2003년 11일 분당 사태도 큰 변곡점이다.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당내 신주류가 주도한 열린우리당 창당에 '노무현이 주범'이란 동교동계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김 전 대통령은 2007년 자택을 방문한 정세균 전 의장 등 과거 열린우리당 지도부에게도 "사과할 것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분당과 대북 송금 특검 등 주요 사건을 콕 집어 거론하면서 한 요구다.

이런 갈등은 '해소'되기는커녕 때마다 살을 붙여 왔다. 가장 최근엔 지난 2·8 전당 대회가 그랬다. 전당 대회 며칠을 앞두고 불거진 '룰 변경' 논란은 문재인 당시 후보와 박지원 후보 사이에 새로운 '감정 골'을 추가했다. 박 후보는 "친노의 반칙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거취'까지 거론했고, 친노는 '여론 조사 중 '지지 후보 없음'을 유효 투표로 보지 않는다'는 결정은 "룰 변경이 아니라 룰 해석"이라고 맞받았다.

전당 대회 당일 박지원 후보는 "특검 때문에 DJ가 투석을 시작했고 나도 감옥에서 13번 수술을 받아 눈이 이렇게 됐다"며 마지막 연설을 했다. 호남의 비노 정서를 자극한 연설이다. 결과는 박 후보의 선전이었다. 문 후보가 박 후보를 고작 3.5포인트 차로 따돌린 것은, 아무리 가장 강력한 대권 주자라 할지라도 문재인은 여전히 비노계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상태임을 뜻했다.

이정현 당선 만든 호남 민심 이반, 이번엔 어떨까

전대 이후 그렇다면 상황은 나아졌을까. 문 대표는 최근 주요 당직에 비노계 인사를 상당 수 등용했다. '친노는 더 이상 없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배신'이란 동교동계의 트라우마를 '노무현의 후계자'가 극복해야 한단 지극히 어려운 조건에서 펼치기에는, 난이도 낮은 정치력이었다는 평가도 불가피하다. 긴 시간 누적된 동교동계의 반감을 해소하기에는 너무도 이차원적인 제스쳐란 얘기다.

양측의 이런 갈등은 결국 '마이너스 선거 전'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 관악을 지역이 대표적이다. 현재 정태호 후보와의 예비 후보 경선에서 0.06포인트 차로 패한 김희철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 후보를 돕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권 고문의 새정치연합 후보 지원 행보 또한 비판하면서 "정동영 후보가 전화를 걸어 와 도와달라고 했지만 내 입장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더 생각해 보겠다"고 여지마저 남겼다.

이번 선거가 '호남' 민심이 어디로 기우느냐에 따라 승패를 가를 수도 있단 점에서, 김 전 후보의 이런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광주 서구을은 물론이거니와, 유권자 중 40%가 호남 출신으로 알려지는 관악에서도 호남 민심의 향배는 상당히 중요하다. 게다가 투표율이 낮은 보궐 선거다. 문 대표가 권 고문 등에게 'SOS'를 치고, 이들의 선거 지원 여부에 각 지역 후보들이 촉각을 곤두 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쯤 되면 동교동계가 호남 민심을 대표하는 게 맞냐는 질문이 던져질 법 하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호남의 반감은 물론 입증된 바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의 7·30 재·보궐 선거 당선은 물론, 지난해 지방 선거에서 22개 시·군 가운데 8곳, 전북 14개 시·군 가운데 7곳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것 또한 호남 민심의 이반을 여실히 보여준다. '뿔난' 표가 향한 곳은 결국 새정치연합 '바깥'이었다.

탈당 출마를 감행한 국민모임의 정동영 후보나 무소속의 천정배 후보 또한 이 지점에서 '승리'를 노려보는 중이다. '호남 정치 복원'을 내건 천 후보나 '새정치연합 채찍론'을 내세우는 정 후보는 친노-비노 대립 구도에서 갈등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한다.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로선, 새누리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보다 더 명분도 있다. 구 민주당에 대한 의리도 지키면서 친노와 동교동계 양쪽에 대한 피곤함을 동시에 표출할 수 있는 셈이다.

▲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4.29 재보궐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 정동영·천정배 후보. 정 후보는 '야권 교체'를 내세우는 국민모임과 함께하고 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패색'에서 시작된 계파전…내년 총선까지 이어지나

물론 작금의 계파 전이 훗날 '유의미한 악재'였다고 실증되기는 어렵다. 동교동계의 '머뭇거림'이 관악을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나 국민모임의 정동영 후보의 득표로 얼마큼 이어졌는지를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계파전은 곧잘 '해석 투쟁'이란 연장전으로 이어지곤 한다. 동교동계가 주판알을 튀기고 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일 것이다. 전략적 후퇴냐, 전략적 전진이냐.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동교동계가 장기전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당장의 책임론에 부딪치더라도, 총선과 대선 시기 동교동계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발판으로 이번 선거를 삼는 것이란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적당히 '몸값'을 끌어올린 후 지원 유세에 나올 가능성도 여전히 열어두고 있다. '선당후사'란 DJ 정신과는 별개로 선거 패배가 동교동계 자신에게도 이로울 것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다.

여기서 다시 처음으로 얘기를 돌려보자. 이런 양측의 갈등은 '패색'에서 시작됐다. 만약 새정치연합이 이번 선거의 '승리'를 확신했다면 격화되지 않았을 갈등이다. 문 대표로선 '발등의 불'을 끄듯 'SOS'를 칠 이유가 없었고, 동교동계로서도 선거 지원을 둘러싼 '세 과시'를 길게 끌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 연이은 선거 패배로 약체가 된 새정치연합이기에 벌어지는 일들이란 얘기다.

당이 처한 어려운 조건은 내부의 계파 갈등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을 넓힌다. 이 명제는 여당 야당 모두에서 성립한다. 문제는 이 같은 계파전이 번번이 새정치연합을 '약체'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호남 민심을 향한 무소속과 여당 소속 후보의 자성(磁性)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선거판이다. 문재인-박지원 갈등이 격화됐던 지난 2·8 전당 대회가 비슷한 시기 치러졌던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보다도 주목 받지 못했던 일을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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