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란에 허덕이는 서민들, 벗어날 묘수는?

[해설] 박근혜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확대정책 효과는?

1972년 5월 9일, 서울 구로구 개봉동 개봉아파트 청약 당첨자 추첨식이 열렸다. 42㎡형 아파트 월세는 보증금 7만8000원, 월임대료 6500원이었다. 시세보다 저렴했다. 당시 대기업 월급은 3만 원이었다. 임대기간 1~2년 뒤에는 분양전환까지 가능했다. 당장 목돈이 없어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아파트 청약은 ‘대박’을 쳤다. 250가구 모집에 3339명이 몰렸으며 경쟁률은 13대1까지 치솟았다. 이 아파트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가 공급한 최초의 공공임대 아파트였다.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임대주택으로 방향을 틀었던 게 대박이 났다.

LH는 개봉아파트 공급 이후 1984년에 '임대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면서 5년 임대주택을 짓기 시작했고, 1990년에는 최초로 서울 번동에 영구임대주택을 공급했다. 이후 지금까지 전국에 75만 가구에 이르는 임대주택을 공급해 왔다. 2020년까지 100만 호 공공임대주택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 집이 아니지만 가장 안전한 주거 형태는 공공임대주택이다. 공공기관이나 비영리기관이 소유한 주택을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또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하다 보니 내 집 다음으로 안정적인 주거형태로 꼽힌다. 선진국들도 공공임대주택이 비율이 높은 나라는 대체로 국민의 주거가 안정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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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평균 임대주택 물량은 12%, 한국은 5.6%에 불과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전셋값으로 서민들의 허리가 휜다는 언론보도가 신문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정부는 대출금 이자 인하로 전세에서 자가로 수요자를 유도하면서 전세대란을 해결하려 하지만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부작용도 심각하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 39세 이하의 대출 잔액이 2014년 2월 44조4000억 원에서 올해 2월 54조8000억 원으로 1년 새 23.6% 증가하는 등 젊은 세대 대출이 급증했다. 정부 의도대로 전세난에 시달린 젊은 세대들이 빚내서 집을 산 셈이다.
이러한 증가세는 40대(11.6%), 50대(7.9%), 60대 이상(7.7%)의 증가율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올해 3월 기준 시중은행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18조4000억 원으로 가계부채 총액의 약 40%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정부의 '꼼수'가 가계부채라는 폭탄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전세대란의 근본원인인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 관련 기사 : [전세대란 곱씹기‧上]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전셋값, 대체 왜?)
(☞ 관련 기사 : [전세대란 곱씹기·下] 전세난 허덕이지 말고 집 사라? 그 진의는…)

그렇다면 공급 부족 해결책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정책은 임대주택 확대다. 정부 주도의 임대주택 확대를 통해 공급과 수요를 맞추는 방식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이미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임대주택 부족 국가다.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하위다. 2012년 공개된 OECD 국가 평균 임대주택 물량은 전체 주택의 12%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5.6%로 평균치를 크게 밑돈다.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20% 내외다.

무엇보다 시급한 게 임대주택 확대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물론, 역대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을 주요 정책으로 삼아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국민임대주택 100만 호 건',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주택 150만 호(분양 포함) 공급',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행복주택'을 기본 정책으로 삼고 있다.

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 뒤를 이을까

하지만 제대로 실현됐는지는 의문이다. 일례로 이명박 정부 때 공공임대주택 공급관련 재정지원을 보면 2008년 1조4220억 원에서 2012년 9156억 원으로 35.6% 줄어들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영향을 주는 국민주택기금 지원 실적도 마찬가지다. 2008년 3조2729억 원에서 2012년 4조1709억 원으로 늘긴 했지만 2009년 6조1430억 원에 비하면 32.1% 줄어들었다. 결국,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 집권 동안 공공임대주택 신규공급량은 사업승인기준 56만3265호로 연평균 11만2653호였지만, 착공 지연 등으로 지난 4년간 실제 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은 18만6430호로 연평균 4만6607호에 머물렀다. 여전히 우리나라 임대주택 보급률이 5%대에 불과한 이유다.

박근혜 정부도 임대주택 공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3월 올해 전국적으로 공공임대주택 7만 가구와 매입·전세임대 5만 가구 등 모두 12만 가구의 공공임대주택에 입주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공공임대 입주자 모집 물량 8만8000가구보다 36% 증가한 역대 최대 수준이다.

하지만 제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정부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의지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늘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도시개발보다 뒤늦게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펼쳤다는 게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임대주택건설촉진법'을 제정한 1984년는 이미 도심화 현상이 가속화될 때였다. 도심화가 한창 진행 중인 도시 내에는 집 지을 땅이 거의 없을뿐더러 국공유지마저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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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남아있는 공공임대주택 확보 방안도 없애는 박근혜 정부

그러다 보니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서 공공임대주택을 늘릴 방법은 기존 주택을 재개발하거나, 다시 지을 때 늘어난 용적률 일부를 활용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나마 남아있는 공공임대주택 확보 방안을 없애는 모양새다. 지난 16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수도권 민간 재개발 사업 때 의무비율로 정해놓은 임대주택건설을 사실상 없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에서 수도권 민간 재개발사업 때 기존 임대주택건설 의무비율인 가구수 기준 8.5∼20%를 0∼15% 범위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결정하도록 했다. 이는 다음 달 29일부터 적용된다.
발표가 나자마자 인천시는 재개발사업 활성화를 위해 임대주택건설 의무비율을 0%로 고시한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기존안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나 경기도는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개발 사업의 수익성 하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수도권 지자체의 경우, 의무비율을 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도심과 인접한 소규모 그린벨트 규제를 풀어 민간투자를 통해 임대주택을 확보하는 방안을 골자로 하는 '개발제한구역의 조정을 위한 도시관리계획 변경안 수립 지침' 개정안을 지난 1월 발표했다.
한마디로 민간투자를 통해 임대주택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이는 애초 신규 공공택지에 임대주택을 지을 경우 발생하는 문제, 즉 통근 거리가 멀다는 점, 또 비교적 큰 규모로 집단회됨으로써 사회적 격리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 등이 우려된다.
게다가 이렇게 지어진 임대주택은 서울지역은 80만 원, 수도권은 월 60만 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서민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임대주택이 되는 셈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건설사만 배불리고 정작 서민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단기적이고 인위적인 공급확대가 아니라 서민층을 겨냥한 중장기적인 계획에 의한 안정적인 임대주택 공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조언을 귀담아 듣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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