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빌딩 즐비한 상하이 푸동, 30년 전에는…

[차이나 프리즘] 개혁기 상하이 금융중심지 개발 과정

1990년대 상하이 개혁개방의 핵심, 푸동지역

중국 최대의 경제중심지인 상하이 푸동(浦東)지역이 1990년 중앙정부에 의해서 국가급 개발구로 지정되면서 상하이는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다. 중국공산당은 1992년 제14차 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푸동지역 개발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상하이 푸동개발을 필두로 창장(長江) 연안 도시들의 개방을 진일보시키고, 상하이를 최대한 빨리 국제적인 경제, 금융, 무역의 중심지 중 하나로 만들어서, 창장 삼각주와 창장 유역지역 전체를 새로운 비약으로 이끈다."

상하이는 1840년 아편전쟁 패배 이후 중국이 굴욕적으로 체결한 난징조약에 의해 강제적으로 개항됐다. 이후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중국 최초의 근대적 산업이 시작됐으며 일본에 의해 점령된 동북지역과 함께 줄곧 중국 공업의 중심지였고, 사회주의 시기에도 이러한 지위에는 변동이 없었다. 따라서 1990년대에 들어서 푸동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기존의 공업경제에 대한 시장화 개혁을 강화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언에는 기존 공업 위주의 상하이 산업구조를 다른 것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금융중심지 개발이었다.

루자주이 금융무역구와 국제 자문단

1992년 기존의 현(縣)에서 신구(新區)로 행정구역 상의 지위가 바뀐 푸동은 서울시 면적의 2배가 넘는 거대한 농촌지역이었다. 이러한 푸동에서 금융중심지로 계획된 곳이 바로 루자주이(陸家嘴)였다. 상하이에 제국주의 세력들의 조계가 있던 시대에 세워진 각종 서방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한 와이탄(外灘) 지역에서 강 건너로 보이는 지역이 바로 루자주이로, 정식 명칭은 루자주이 금융무역구(金融貿易區)이다.

중요한 것은 1990년대 상하이 푸동지역이 중국 최초이자 유일한 금융무역구 명칭이 붙은 개발구로 지정될 당시 이 지역을 금융중심지로 개발하기 위한 노하우와 경험을 중국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해외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다. 크리스 올즈(Kris Olds)의 관련 연구에 따르면, 상하이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푸동지역에 금융중심지를 만들기 위한 구상을 하고 있었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1990년과 1991년에 걸쳐 상하이 시 정부와 공산당위원회의 시장과 서기였던 주룽지(朱鎔基)와 황쥐(黃菊)는 1992년~1994년 시기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적인 자문단을 적극적으로 조직을 주도하였다.

루자주이를 금융중심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선진국가들의 개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했고, 이를 전수받기 위해서 베이징의 중공중앙과의 교감 하에서 상하이 시 정부와 공산당의 최고지도자들은 상하이 자체적인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해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자문단을 구성한 것이다. 이 국제자문단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상하이 시정부 도시계획설계원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해외전문가들은 향후 루자주이 금융중심지 건설에 관한 계획안을 내놓았고 몇 차례의 경쟁과 국제적인 차원의 공개논의를 거쳐서, 1994년 루자주이 개발에 관한 최종적인 마스터플랜이 확정된다.

▲ 상하이의 상징인 동방명주를 비롯,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는 푸동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국제자문단 구성의 효과

루자주이 금융무역구 개발을 위해서 상하이 시 정부와 공산당 지도부가 적극 주도한 국제자문단 조직과정이 가져온 효과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미 30여 년 전에 자본주의와 결별하고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중국으로서는 자본주의 선진국의 금융중심지 개발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받는 것은 실제적인 개발과 운영을 위해서 필수적인 지식이지만, 그것과 별도로 이러한 국제자문단 조직과정이 가져 온 외부적인 효과도 상당했다. 크리스 올즈는 이러한 외부적인 효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상하이 시 정부가 이러한 국제적인 자문단 조직과정을 통해서 국내외 미디어의 주목을 효과적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 황푸(黃浦)강변의 낙후된 공장과 노동자 거주지역이 밀집해있던 루자주이는 이러한 국제자문단 조직과정에서 유포된 금융중심지로서의 미래상에 의해서 단기간에 하이테크 도시로의 이미지 전환을 이룰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향후 개발을 위한 국내외의 장기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둘째, 마스터플랜 확정을 위한 국제적인 논의와 회의를 통해서, 상하이는 뉴욕 런던 도쿄 파리 등의 국제적인 메트로폴리스 반열에 오르고 이를 통해서 해외투자자들의 집중적인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국제적인 자문과정은 이와 같은 물질적인 투자를 유도한 것 외에도 국제적인 금융 무역 하이테크 중심지라는 이미지 조성을 통한 상징자본 축적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징자본 축적은 단기적인 투자와 비교할 수 없는 유무형의 효과를 가져와서 "고품격 도시브랜드" 달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자문단 조성과정은 이러한 "긍정적" 효과 말고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21세기 동아시아 금융중심지, 하이테크 도시, 쾌적한 도시환경, 세련된 글로벌시티 등의 이미지 투사와 이에 의한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 투자로 이곳에 살던 주민의 존재는 무시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식 젠트리피케이션

푸동지역 전체는 농촌이 압도적인 다수였지만, 루자주이는 상하이 도심인 푸시(浦西)지역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공장과 노동자 거주지역이 많았다. 그런데 "생산자의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사회주의 도시관에 의해 건설된 노동자 거주지역들은 개혁기인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열악한 판자촌(棚戶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현재 루자주이 지역을 남북으로 지나가는 푸동남로(浦東南路)와 푸동대도(浦東大道) 일대는 판자촌 밀집지역이었고, 2003년 입주가 시작되어 현재 평균 매매가가 1제곱미터 당 10만 위안에 달하는 초고가 고층아파트인 스마오빈장화원(世茂濱江花園) 일대 역시 1990년대 초에는 거대한 판자촌이었다.

상하이 시 정부와 공산당 지도부가 루자주이를 개혁개방의 상징이자 21세기 상하이의 미래상인 금융중심지로 만들기 위해서, 기존에 이곳에 살던 10만 명에 달하던 주민들은 철거이주민이 되어 떠났다. 대신 기존의 판자촌과 공장을 밀어내고 새로 올린 초고층 호화아파트에는 개혁기에 부를 축적한 사회집단들이 거주하게 됐다. 중국식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진행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런던 도심의 노동자 거주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원주민은 쫓겨나고 상류계층이 들어와서 고급주택에 거주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 가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책임이 국제자문단을 구성한 해외의 도시계획 엘리트에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국제자문단의 조직과 홍보, 루자주이 개발 마스터플랜의 논의와 최종적인 채택 과정은 상하이 시 정부 소속 도시계획설계원의 도시계획전문가들을 내세운 상하이 시 정부와 공산당에 의해 주도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푸동지역 개발과 맞물린 구도심인 푸시(浦西)지역 재개발 과정에서 대량의 철거민이 생겨났는데, 기존 구도심의 재개발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상당 부분이 지방정부의 재정수입으로 귀속된다. 중국 측 연구에 따르면 토지 개발사업으로 생겨나는 수입 중 많게는 70%까지 지방정부의 재정수입으로 책정되는데, 이는 지방정부가 관할 지역의 토지소유권을 보유하고 그 사용권을 양도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특정 지역의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를 둘러싸고 참여 주체가 개발 수익을 공유하는 일종의 동맹을 '성장연합'이라고 한다면, 중국에서의 성장 연합은 주로 지방정부와 부동산개발회사로 구성된다. 부동산개발회사도 때로는 해당 지방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국유기업인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에 개발수익의 상당 부분은 지방정부가 보유하게 된다.

2007년 3월 물권법(物權法) 통과로 사유재산권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확정된 중국에서 지역주민은 해당 부동산에 대한 물권을 가지지만 토지는 제외된다. 토지에 대해서는 사용권만을 한시적으로(보통 70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중국에서 지역주민이 특정 지역의 토지개발을 둘러싸고 정부나 부동산개발회사와 동등한 지분을 가지고 성장연합을 구성하기는 힘들어지고, 성장연합은 지방정부에 의해서 주도된다.

1990년 루자주이 금융무역구 개발공사로 설립되어 현재 이름을 바꾼 루자주이 주식유한공사는 상하이 시정부가 출자하여 설립된 주식제 국유기업으로 루자주이 금융중심지의 개발을 실제로 진행한 부동산개발회사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1990년대 초반 상하이 시 정부와 공산당 지도부는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금융중심지 개발을 해 본 노하우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해외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상하이 자체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함께 국제자문단을 만들어서 루자주이 금융중심지 개발 마스터플랜을 제출하게 했는데, 이 과정 전체를 국내외 미디어와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노출시켜서, "사회주의 생산자의 도시"를 하이테크 도시, 금융중심지, 글로벌시티로 단기간에 전환하는 이미지 투사를 했고 이를 통해서 실제적인 투자를 이끌어 낸 것이다.

동남연해의 몇몇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1980년대 내내 탈사회주의 시장화 개혁을 실험하던 중국이 개혁의 중심을 내륙의 도시지역으로 옮기기 시작한 때가 1990년대였다. 이 시기 도시지역 개혁의 핵심목표는 시장경제의 본격적인 도입이었지만, 이와 함께 사회주의 시기와 개혁기 초기까지 유지되고 있던 중국식 사회관리체제인 단위(單位)를 사구(社區)로 바꾸고, (지방)정부의 역할을 관리주의에서 기업가주의로 바꾸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했는데, 바로 상하이 푸동지역에서 이 실험이 진행됐다. 이 실험은 판자촌, 부두, 농촌으로 이뤄진 공간을 금융중심지로 바꾸는 것이었고,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공간도 상품처럼 사회적으로 생산된다는 점을 개념화한 '공간생산'(production of space)이 루자주이에서 중국식 성장연합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박철현 교수는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에서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서도 '차이나 프리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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