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뒷골목에서 중국의 내일을 보다

[中國探究] 타이캉루(泰康路)와 머간산루(莫干山路)

올해 6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선 세계무역박람회인 엑스포가 개막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중국에서 개최되는 지구촌 행사에 중국인들은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올림픽이 중국의 국력과 스포츠의 수준을 보여주는 행사였다면, 상하이 엑스포는 중국이 지난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한 이후 수십 년간 숨 가쁘게 달려온 경제 성장의 결정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도시 베이징과 상하이, 이 거대한 두 도시의 경쟁적인 대형 행사의 유치 와중에서, 정작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상하이의 조그만 골목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조짐이었다.

오늘날 상하이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동아시아의 허브 중심지로 우뚝 섰다. 1990년 덩샤오핑이 푸동(浦東) 지구를 개발하라고 지시한 이래로 20년이 채 되지 않는 광음 속에서 일구어낸 성과이기에, 그 속도와 기세는 매우 무섭다. 그러나 좀 더 멀리 상하이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최근 들어 두드러진 상하이의 약진은 결코 후래거상(後來居上)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상하이는 1842년 아편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난징조약(南京條約) 이후 개항되어 일찌감치 국제적인 감각을 익혀왔다. 1920년대 상하이는 세계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드는 항구도시이자 금융 중심지였다. 그들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전 세계를 향해 열린 소통의 방식과 자유분방한 살롱 문화를 체험했다.

1930년대 상하이는 안팎으로 어지럽게 출렁였다. 아편과 매춘이 기승을 부렸고, 일제의 침략으로 상하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와 명분을 따라 지리멸렬했다. 살롱의 불빛은 퇴폐적으로 흔들렸고 거리에는 폭력과 불법이 난무했다. 국공 합작과 결렬의 여파가 상하이를 고스란히 휩쓸고 지나갔다. 옆 동네 난징(南京)에서는 30만 명의 시민이 일제에 의해 학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흑사회의 분출과 퇴폐적인 거리, 애국지사의 분노와 절규, 이데올로기의 투쟁과 전쟁의 상처는 이 시기 상하이탄(上海灘)의 복잡한 정서였다. 저우룬파 주연의 영화 '상하이탄'과 탕웨이 주연의 영화 '색계(色戒)'는 당시 상하이의 얼룩진 분위기를 잘 보여주었다.

1949년 신중국 출범 이후 상하이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세계적인 항구였던 영광을 뒤로한 채 계획경제의 틀 속에서 긴 잠에 빠졌다. 1980년대 대륙의 연안 도시들이 경제특구로 낙점받아 용트림을 하던 시기에도 상하이는 꼬리를 내린 채 잠잠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상하이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불과 10년밖에 안 되는 세월 속에서 상하이는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듯이 탈바꿈했다. 빼곡하게 들어선 수천 개의 마천루 빌딩, 시속 400km가 넘은 자기부상열차, 충칭까지 연결되는 창장삼각주 물류노선, 장쑤성과 저장성에 포진된 거대한 제조업 단지, 이미 홍콩의 야경을 넘어선 황푸강(黃浦江)의 눈부신 야경, 500개가 넘은 다국적 기업의 상하이 진출 등은 상하이가 이미 국제금융, 국제경제, 국제물류, 국제소비의 중심지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올해 열리고 있는 상하이 엑스포는 약 20년 만에 일구어낸 경제 기적을 과시하는 압축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상하이에서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집중시키는 박람회가 개최되는 즈음에, 오랜만에 상하이를 다시 찾은 외국인들은 정작 다른 곳에서 상하이의 색다른 매력을 찾아내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이후 단지 노가(老街)로 남아있거나 이미 폐쇄된 공장지대였던 거리들이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상하이의 오래된 거리와 골목이 새롭게 단장하면서 21세기 상하이 문화의 조용한 변신을 주도하고 있다.

▲ ⓒ프레시안
여러 골목의 변화 중에서 '타이캉루(泰康路)'의 변신은 특히 주목을 받는다.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타이캉루'는 단지 서민들이 거주하는 허름한 밀집촌에 불과했다. 1998년 12월 가난한 소수의 예술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6개의 공방(工房)을 차렸다. '타이캉루' 210롱(弄)은 특히 '티엔즈팡(田子坊)'으로 불리는데, 여러 공방들이 몰려 있고 점차 개성 넘치는 카페와 상점이 입점하면서 예술 거리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450m 남짓한 이 거리에는 현재 홍콩의 저명한 도예가 정웨이(鄭褘)가 공방을 차린 것을 비롯하여 20여 개 국가와 지역의 예술인들이 입점하여 자신만의 예술 둥지를 틀었다.

이미 상하이의 명소가 된 카페거리 '신티엔띠(新天地)'가 정부의 주도하게 정밀하게 구획된 멋스러움을 지니고 있다면, '타이캉루'는 오래된 상하이의 옛 골목을 그대로 살리면서 그 위에 예술가의 현대적 영감을 불어넣은 고전과 현대의 조화가 돋보인다. 예술가의 개성과 창의가 마음껏 발휘되는 이 거리에선 관방의 입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단지 이 거리를 예술가의 활동 거리로 개방하고 장려하였을 뿐이다. 상점의 간판에서부터 커피와 차를 파는 카페의 탁자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주인의 혼이 서려 있다. 다국적 출신의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공방과 상점의 인테리어도 창의성과 아이디어로 반짝인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마치 1920년대 상하이의 거리 골목과 유사하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넘실댄다.

'타이캉루'가 공방촌으로 유명하다면 '머간산루(莫干山路)'는 현대미술의 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1930년대 방직공장 터였던 이곳 역시 1998년을 즈음해 신진 미술가들이 들어오면서 점차 현대미술 갤러리로 변모했다. 지금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의 유럽 작가들과 한국, 타이완, 홍콩 등지의 아시아 작가들이 이곳에서 스튜디오를 차리고 갤러리를 열고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뒤섞여 있는 '타이캉루'에 비해 이곳은 더 조용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멋을 지니고 있다. 골목길은 개성 넘치는 화랑으로 가득하고 화가의 손을 거친 벽들은 저마다 작은 미학을 담아내고 있다.

▲ ⓒ프레시안

과거 우리는 상하이를 방문할 때마다 먼저 황푸강에서 배를 타거나 동팡밍주(東方明珠)에 올라 상하이의 야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잔 마시곤 했다. 그리곤 어김없이 난징루(南京路) 거리를 거닐며 명품으로 즐비한 상점들의 화려함을 만끽하곤 했다. 이때 우리가 접한 상하이는 빠른 경제 성장을 보여준 중국의 '위용'이었고, 이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효과'이자 '전시(展示)'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선 상하이의 거리와 골목에선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동양과 서양 문명이 교차하며 개성과 창의가 넘치는 '현재 진행형'의 문화가 피어나고 있다. 상하이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지금, 골목골목에선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원 속에 개성이 숨 쉬고 과거의 공간과 오늘의 영감이 만나며 실험과 창의 정신으로 가득한 간판과 벽들을 보면서, 새롭게 도래할 상하이의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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