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세스 시위대'와 아폴로11호, 이재명노믹스의 관계는…

[프레시안 books] 마리아나 마추카토 <미션 이코노미>

지난 6.3 대선 당시의 'K-엔비디아' 논쟁을 기억하는지. 보수진영에서 '공산당식 발상'이라고 거칠게 비난하기도 했던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의 이 정책 제안은, 국부펀드가 엔비디아 같은 혁신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얻을 경우 이를 국가 재정으로 쓰자는 아이디어가 골자였다. 이제 취임 한 달을 맞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이 구상은 '소버린AI' 등 실제 추진되고 있는 정부 정책에서도 그 일단이 엿보인다.

이런 접근은 전통적인 주주 자본주의나 이전 정부가 추구했던 '야경국가' 와는 지향점이 다르다. 정부는 경제에 관한 한 2선으로 빠져 있어야 하고, 시장에 문제가 생길 때만 규제나 구제금융 등을 통해 개입해야만 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정부가 재정으로 기업에 투자를 하고 심지어 그 수익을 현실화한다는 것은 보수적 관념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충격을 줄 만한 주장이기는 하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경제정책 구상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 학자 중 하나가 마리아나 마추카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마추카토 교수의 <기업가형 국가>(2015. 매경출판 펴냄)를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꼽기도 했다.

한국 대선 기간 전인 올해 2월 발간된 마추카토 교수의 신간 <미션 이코노미>(이음 펴냄. 이하 '책')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이 대통령의 'K-엔비디아' 구상에 깔린 저변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국가는 설거지·뒷정리 담당이 아닌 시장의 최초 투자자가 돼야 한다'는 도전적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특히 책의 어떤 부분들은 흡사 이재명 대선캠프에서 낸 정책공약 자료집처럼 느껴지거나, 이 대통령의 말과 글을 지켜봐온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기시감을 느끼게도 한다. 예컨대 "공공부문은 미래 기회에 대한 인식을 형성함으로써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고 '승수 효과'를 높일 수 있다"(책 148쪽)는 서술은 지난 문재인 정부 때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함께 이번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이 대통령의 '호텔 경제학' 논쟁을 상기시킨다.

미국의 코로나19 당시 긴급 재정지원 중 많은 부분이 기업 구제금융으로 흘러들어간 것을 지적하며 "2000년대 들어 평균적으로 약 50만 명의 미국인들이 집이 없었다. 왜 의회는 그동안 그들에게 집을 마련해줄 돈을 마련하지 못했을까? 수백만 명의 굶주린 아이들을 먹이는 것은? 오염된 식수원으로 수년 동안 괴로워하는 장소에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는 것은? 왜 의회는 전염병이 오는 상황에서 전체 인구를 충분히 포괄하는 의료돌봄체계를 마련할 수 없었을까?" (책 206쪽)라고 꼬집는 대목은 이번 추경으로 전 국민에게 '소비 쿠폰'을 지급한다는 계획과 겹쳐진다.

역시 이번 추경안에 담긴 '배드뱅크' 즉 악성 부채 탕감 사업은 책 저자의 "누군가는 채무 탕감도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도 틀린 말이다. 전통적인 거시 모형을 활용하여 미국 학자금 대출 탕감의 경제 효과를 분석한 모델에 따르면, 물가 상승 유발 가능성은 (최대) 겨우 0.3%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209쪽)라는 주장과 공명한다.

"(재분배가 아니라) 선분배는 사전에 불평등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평한 성과를 달성하려면 둘 다 필요하지만, 선분배는 애초에 조건을 제대로 만들어 사후에 수습을 위한 재분배를 덜 필요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사회의 노력으로 가치가 공동으로 창출된다면, 모든 행위자들이 위험 감수, 투입 및 창의성에 비례해 공정한 몫을 받아야 한다"(211쪽)는 부분은 이 대통령의 브랜드 정책 '기본사회'와 통하는 점이 있다.

'미션 이코노미'란?

마추카토 교수의 주장은 시장 기능에 모든 것(내지는 많은 것)을 맡기자는 주류 경제학계의 주장과는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책의 제목인 '미션 이코노미'는 경제와 시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시장경제 자체가 유능한 프로젝트 리더가 주도하는 하나의 미션처럼 상정될 수 있고 또 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 번역자 서문의 다음 문장은 이같은 주장을 절묘하게 담아낸다. "언제까지 경제만 살릴 것인가. 그만큼 살렸으면 이제는 경제가 우리를 살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

주주와 자본소유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의 관성 대신 "경제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나서 우리가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중심으로 경제 체계를 설계하는 방식"인 "미션 중심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어떤 문제를 고쳐야 할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시장을 원하는지 묻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24~25쪽)

"돈이 얼마나 있고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제대로 된 질문은 이것이다 : 목표가 무엇이며, 그 목표를 달성할 예산은 어떻게 짤 것인가?" (26쪽)

저자는 그 '미션'은 한 사회·국가·경제공동체 전체 또는 상당부분에 대해 현재적 미래적 이득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이같은 미션, 즉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것은 정부여야 한다. '시장에 맡긴다'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정부는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나서서 해결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13쪽. 미국·영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며)가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는 기껏해야 시장실패를 교정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외주를 주는 입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할 것이 아니라, 생산역량, 조달 가능성, 순수한 공익 목적의 민관협력 및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유지를 포함한) 디지털 및 데이터 전문성 등의 핵심적 영역에서 내공을 쌓는 데 투자해야 한다"(16쪽)라고 주장한다.

"흔히들 정부를 혁신할 수 없는 딱딱한 관료주의적 기계로 그리"며 정부가 할 일은 "시장이 잘못 가고 있을 때 이를 바로잡는 일"로 여기지만, 저자는 "이러한 편협한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의 다양한 행위자들로부터 나오는 투자, 혁신, 협력을 촉진할 정책을 설계해 기업과 시민 모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을 정부 말고 달리 누가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부만이 필요한 규모로 변화를 이끌어 갈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제 조직을 좌우하는 방식과 경제 조직들 사이의 관계, 경제 행위자와 시민사회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주체는 정부뿐이다." (42쪽)

저자는 "문제를 풀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라며 "주류 경제이론은 공공 영역이 가치를 창출하거나 형성한다고 보지 않고, 사회적으로 형성된 목적을 시장이 수행해야 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가 '시장 기제'로 움직인다고 가정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이어 "주류 경제이론에서는 시장이 전체적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할 때, 정부가 (기초 연구 같은) 긍정적 외부효과 또는 (오염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조절하는 등의 개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정부는 대응적으로 시장을 고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직접 나서서 시장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최초의 투자자로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경제의 방향을 이끌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정부는 목적을 달성하도록 시장을 다듬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40쪽)

역사적 '미션 이코노미'의 사례 : 아폴로 11호, 인터넷, 그리고…

자칫 '그럴듯해 보이지만 허황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이처럼 정부가 혁신경제를 선도하고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창조한 것은 "무작위적이고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많은 역사적 사례가 이미 있다고 제시한다.

전작 <기업가형 국가>에서도 이미 '실리콘 밸리는, 민간부문은 보통 뒤로 물러설 법한 기술발전 초기 단계의 큰 위험 부담을 국가가 기꺼이 지면서 고위험 투자를 한 결과'라고 주장한 바 있는 저자는, "(미시경제학과 경영학 등 주류 경제학계의) 설명은 모두 정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한다"고 꼬집었다.

'미션 이코노미'의 실제 사례로 이 책에서 중점 제시된 것은 1960년대 미국의 유인 달 탐사 계혹인 아폴로 계획이다. 아폴로 계획은 소련과의 냉전으로 인해 촉발됐으나, 엄청난 정부 예산을 빨아들이며 그 자체로 많은 일자리와 기술발전을 만들어냈고 나아가 개발 과정에서 파생된 기술은 새로운 시장을 수없이 열었다.

아폴로 계획은 단지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내고 끝난 것이 아니라, 휴대폰 카메라와 동결건조식품, LED조명, 진공청소기, 귀 체온계, 무선 헤드셋, 메모리폼, 컴퓨터 마우스 등 많은 파생기술을 남겼다. 2024년말 찾아온 '탄핵의 겨울'에 나타난 '키세스 시위대'가 둘렀던 은박 담요 역시 NASA가 우주에서 우주선과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한 경량 절연체의 후손 격이다.

▲2025년 4월 2일 서울 안국역 인근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24시간 철야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아폴로 계획뿐 아니라 인터넷, GPS, 음성인식기술, 터치스크린 등도 공공부문의 재정지원을 받아 개발된 것임을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는 정부가 그저 민간 위험부담자들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왜 틀렸는지를 보여 주는 완벽한 사례"라며 "DARPA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 인터넷의 발명에 재정을 지원했다. 위성들을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 하나에만 전념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또 "미 해군은 미사일의 위치를 보다 정확히 추적하기 위해 GPS 발명에 드는 재정을 지원"했으며 "최근 DARPA는 제약회사인 모더나와 이노비오가 각각 RNA 및 DNA 방식의 백신을 만드는 데 초기 연구개발 재정을 지원했다. 많은 과학자와 투자자들이 위험 부담이 크다고 생각했던 기술이지만 DARPA는 핵산 기반 백신을 개발하는 편이 기존 기술보다 훨씬 빠를 것이라고 믿었고, 그들의 모험은 보상을 받았다(145쪽)"는 사례도 언급됐다.

저자는 이와 함께 "제약 산업 분야에서의 초기 단계 고위험 투자도 사실 미국 국립보건원 등 공공 부문에서 감당했다. 이러한 지원이 없었다면 굵직굵직한 약들도 개발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민간 금융 대부분이 너무 위험 회피적이거나 단기 상환에만 신경을 쓰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산업은 유럽투자은행이나 독일 KfW와 같은 공공은행 투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49쪽)고 지적한다.

▲아폴로 11호 발사 장면. ⓒpixabay.com

미래의 '미션 이코노미'와 그 장애물은?

저자는 앞으로의 '미션'의 보고(寶庫)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들을 들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린 뉴딜" 즉 "경제를 녹색으로 만드는 일"을 제안한다. 그는 "시장이 알아서 녹색으로 전환할 수는 없다"며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무기력한 (탄소) 전환 속도는 정부가 시장이 문제를 찾도록 내버려 두면서 사회에서 기업가의 역할을 맡기를 꺼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교훈을 보여준다. 이는 정부의 시범사업과 투자가 중추 역할을 하면서 기술적·사업적 격변이 가장 전환적으로 이루어졌던 IT 혁명 사례와도 상반된다"고 비판했다.

또 하나의 미래 '미션' 사례로는 보건 분야가 제시됐다. 저자는 "공공부문은 백신, 치료법 및 진단에 이르기까지 핵심 기술 개발에 중요한 투자자이자 참여자로서 시장을 형성하는 입장에서 약품 혁신 과정을 관리해야 한다"며 "혁신을 이끌고, 공정한 가격을 매기고, 특허와 경쟁이 원래 의도한 효과를 거두도록 보장하고 의약품 공급을 보호해야 한다"고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에도 '미션 이코노미'를 가로막아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이는 장애물들이 있다. 첫 번째는 경제활동 참여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의 관념들이다. 주류 경제학이 강요하는 신화 중 '기업은 가치를 창출하고 위험을 감수한다. 정부는 위험을 없애고 조정할 뿐이다'라는 것이 있다면서, 저자는 특히 대처리즘 이후 영국에서 만연한 공공부문 민영화 문제를 지적했다.

저자는 "공공 부문은 기업과 함께 적극적으로 공공 문제를 풀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공공 재정을 아낄 요량으로 사업을 민영화하고 공공 계약을 외주화했다"며 "민간 부문의 목적은 사실 자신들의 이윤을 내는 것인데도 민간 부문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신념을 잘못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그 결과 "민영화와 외주화의 이데올로기는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고비용, 서비스 질 하락, 일부 기업의 정부 계약 독식, 민간 기업에게 이전된 줄 알았던 위험을 납세자들이 떠안아야 하고 보상은 사유화하면서도 위험은 사회화하는 계약 등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또 주류 경제학은 '정부가 승자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 시장이 선택하게 두어야 한다'는 교리를 설파하지만 이 역시 근거가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정부가 최초 투자자로서 역할을 하면서 디지털 혁명이나 녹색 전환과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어 가려면, 당연히 입찰도 붙이고 승자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승자를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1976년부터 2003년까지 운행한 영국-프랑스 합작 초음파 비행기인 콩코드 등을 예로 든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의 '솔린드라'라는 태양광 전기 패널 스타트업으로, 2009년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5억3500만 달러의 보증 대출을 받았으나 4년 후 도산했다. (중략… 그러나) 미국 정부는 솔린드라에 5억3500만 달러의 보증 대출을 해 주었던 같은 해, 테슬라에도 4억6500만 달러 규모의 비슷한 대출을 했다. 테슬라는 현재 자동차 업계를 바꿀 전기차 혁명을 세계적으로 이끌고 있다." (74쪽)

저자는 이같은 사례를 들며 "정부 입찰이 없었다면 인터넷이나 테슬라는 없었을 것"(75쪽)이라며 "문제는 위험은 사회로 돌리고 보상은 사유화하는 관행이다. 정부는 실패한 기업(솔린드라)을 구제했지만 성공한 기업(테슬라)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미디어에서 널리 퍼뜨린 덕에 미국 시민들은 솔린드라의 실패에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고 있지만, 민간 부문의 성공으로 마케팅되고 있는 테슬라의 성공에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른다"는 점도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정부가 시장의 도우미 역할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저자는 정면으로 부인한다. "정부를 최후 채권자로 보는 서사에서 최초 투자자로 보는 것으로 바꾸어, 납세자들이 자신이 기여하는 가치의 몫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션에 막대한 투자가 들고 실패 위험도 수반됨을 감안하면, 정부로서는 투자의 편익을 최대한 많은 시민들과 나눌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며 "실제로 혁신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고 투자는 상환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보상을 둘러싼 공공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것은 시장을 창출하고 형성하는 데 있어 정부의 역할을 법제화하는 데 있어서의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투자 편익을 실현할 "방법은 다양하다"면서 저자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은 활동에 대한 보상이나 공공 투자의 혜택을 본 기업의 지분을 국부펀드로 직접 쌓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이러한 활동에서 얻은 보상은 시민 배당을 통해 분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대선에서 불거진 K-엔비디아 논쟁의 원류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 방식은 정부 투자가 위험은 사회에 돌리면서 보상은 사유화했던 일반적인 상황과는 반대"라며 "특히 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이 회복하고 나면 이윤을 사유화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부펀드는 정부가 공공투자의 혜택을 입은 회사의 지분을 유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충당할 수 있다"며 "테슬라가 4억6500만 달러의 보증대출 혜택을 볼 때, 희한하게도 미국 에너지부에서는 미공개 협상을 통해 '테슬라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정부가 3백만 주를 유지'하기로 명시했지만 미국 정부가 2009년 이루어진 해당 투자에 지분을 갖고 있었다면 2013년 솔린드라로 인한 손실을 메우고 다음 투자의 재정을 충분히 댈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민간기업의 주식을 갖는다는 생각은 자본주의 세계의 많은 부분에서는 저주로 여겨질 것"이라며 "하지만 정부가 이미 민간 부문에 투자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투자의 보상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지배적 수준으로 지분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배당 우선권을 갖는 우호 지분이나 인수와 같은 특정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golden share) 형태로 지분을 갖고 있을 수는 있다"며 "이렇게 얻은 보상은 미래 혁신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션 이코노미'의 두 번째 장애물 : 자본주의 그 자체

저자는 책 속에서 '미션 이코노미'로 경제를 재개념화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재고하는 일"(17쪽)이라고 표현한다. "직접 투자, 간접 보조금, 세금 및 규제에 이르기까지 정부 활동은 거의 모든 관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를 다시 생각하는 일은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일" (27쪽)이라고도 한다. 왜일까? 다소 길지만 그 답에 해당하는 책 본문 내용을 인용해본다.

자본주의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기 훨씬 전에도 이미 정체되어 있었다. 자본주의는 수많은 문제에 아무 답을 주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중 아마 가장 심각한 문제가 환경 위기일 것이다. 지구 온난화에서부터 생물다양성 손실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활동은 사회와 환경의 안정에 꼭 필요한 조건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현재의 완화정책대로라면 세계 지표면 온도는 여전히 산업혁명 이전 시기보다 3°C 이상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 정도 온도 상승이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것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멸종은 과거보다 100배에서 1000배 늘었고, 일부 과학자들은 인류가 여섯 번째 대멸종을 경험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아닌 위험한 거품을 만들어 내는 경제를 구축했고, 이미 충분히 부유한 1%의 배를 불리며 지구를 망치고 있다. 많은 서구 및 서구형 자본주의 경제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실질 소득은 10년 이상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중략) 1995년부터 2013년 사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들의 노동 생산성은 1.5% 증가한 반면 실질 중위소득은 연간 0.8% 증가했다.

이들 경제는 또한 2008년 이후 중앙 은행이 경제 전체에 대규모 유동자금을 푸는 양적 완화라는 마약에 사로잡혔다. 그럼에도 경제성장과 생산성 증가는 여전히 약한 상태다. (중략) 많은 기업이 저조한 투자, 단기 관점의 경영 및 주주와 기업주에 대한 높은 보상으로 썩어 가고 있다.

(중략) 권위주의적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t) 사회에서도 어려움은 나타난다. 오늘날 가장 큰 권위주의 국가 경제인 중국 경제는 비효율적이고 심각한 부채를 지고 있는 국유산업, 엄청난 좀비' 대출을 끼고 있는 은행 체계, 인구 고령화, 과도한 수출 의존에서 벗어나 내수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경제를 전환하겠다는 대규모 과업에 계속해서 짓눌려 있다. (중략) 중앙계획 모델은 이 책이 그리는 민관협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력한 개혁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코로나19 위기 역시 자본주의가 실제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주었다. 긱 경제gig economy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한다. (중략) 팬데믹이 전 세계적으로 생산을 무너뜨리고 심지어 마스크와 같은 기본 품목마저 엄청난 생산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비용과 현지 노동자의 협상력을 줄이기 위해 세계 공급망에 의존하던 전략이 아킬레스건임이 드러났다. (28~31쪽)

이같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다양한 문제를 파생시키는데, 예를 들면 "국수주의와 국제주의, 민주주의와 독재, 효율적 정부와 비효율적 정부 사이에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정치적 균열은 더 벌어졌고, 뿌리 깊은 불공정, 무력감, 특히 기업 및 정치 엘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에 대한 불신은 민주주의 제도에 관한 신념을 약화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통을 겪으면서도 전 세계적 다자 체계를 구축하면서 구현하고자 했던 넓은 의미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가치는 유례없는 제한을 받고 있다. 국가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국제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앞서면서, 포퓰리즘의 흐름에 올라타 두려움의 분위기를 이용할 줄 아는 강성 지도자storngmen, 선동가들과 권위적인 정권만 신이 났다"는 정치적 문제까지 파생된다.

저자의 통찰이 놀라운 이유는,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것은 올해 2월이지만, 영어 원문판은 2021년에 쓰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바로 위 인용문의 내용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2024년)과 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이스라엘에 의한 2개의 중동전쟁(2025년), 유럽 제국에서 이어진 극우정당의 선거 승리(2022~24년)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혹시나 하는 우려에서 말하자면, 마추카토 교수가 반자본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영향을 줬다는 점으로 봐도 그렇고(일부 보수적 독자들에게 이 점은 오히려 추가적 우려의 요소이겠으나), 자본주의에 '목적 의식'을 가질 것을 주문하거나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화할 것을 촉구하는 이들은 매우 많고 심지어 그들 중 다수는 자본가들로 자본주의 체제의 옹호자들이다.

"2019년 8월, 애플, JP모건체이스 등 영향력 있는 기업 대표 180명이 모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25에서 회원들은 성명서에서, 자본주의가 기능을 보다 잘 발휘하게 하려면 이윤을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보다 널리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주요 이해관계자라는 것이다." (책 26쪽)

다만 저자는, 이들 기업인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부를 창출하는 과정의 중심에 공공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탐욕에 기반을 둔 월가 중심의 금융자본주의 옹호자들과는 구별된다. "가치의 분배는 (사후)재분배redistribution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전)선분배predistribution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경제 행위자들이 관계를 맺고 협력하며 서로 나누는, 더욱 상생적인symbiotic 방식"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독자들로서는 다소 간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정부가 미션을 달성하려면 목적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과 함께 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기업의 구조를 바꾸어 사익을 단기적인 금융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재투자하게 만들어야 한다"(229~230쪽)라는 당위적 주장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기업과 투자자들의 맹목적 이윤추구 본능을 다스리는 것이 과연 굶주린 맹수에게 눈앞의 고기를 먹지 말라며 '기다려'를 훈련시키는 것보다 쉬울 것인가.

"긴축재정(공공 지출 삭감)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저금리와 낮은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의 일반적인 이분법은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231쪽)면 그 두 그룹 간의 현실적 타협점은 어디에 있을까.

"자본주의를 다르게 만들려면 공공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공공 부문의 온전한 잠재성이 무엇인지 새롭게 그려야 한다"는 관점은 신선하지만, 그에 따르면 "투자와 혁신이 함께 이루어져 사회가 충족해야 할 분명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민주적으로 결정"돼야 하는데 최근 미국과 유럽, 한국에서 나타난 일련의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 현상을 보고도 '민주적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이 도출되리라고 낙관적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특히 어떤 의제·영역을 '미션'으로 선정할 것인지 그 의사결정 과정도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저자는 책의 종장에서 알렉시스 토크빌과 한나 아렌트를 원용하며 "활동적 삶"과 "참여하는 대중"의 개념을 언급했지만 그 참여의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됐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예컨대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그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텍사스에 대규모 석유 정제 시설을 짓고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킬 산업적 클러스터를 만든다면(물론 트럼프는 그런 재정투자에 기반한 '산업정책'의 개념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MAGA 버전의 미션 이코노미'를 미국 시민사회는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 가지 더. '정부 주도의 혁신경제'라는 아이디어는 최근 수십년 월가와 '시티'의 탐욕을 지켜봐온 미국·영국 사회에서는 전향적인 울림을 줄 수도 있겠지만, 독재정권이 밀어붙인 개발독재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동아시아에서 '정부 주도'라는 아이디어는 자칫 묵은 상처를 건드릴 우려가 있다. 당장 K-엔비디아 논쟁 당시 이 대통령의 가장 영악한 정적이 그에게 가한 비판은 "박정희주의"라는 것이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미션 이코노미> (이음 펴냄)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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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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