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에 순방 가는 朴 대통령,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의 눈] 청와대, '눈치'만 있고 '신뢰'는 없다

아쉽다. 뒷 맛이 깔끔하지 않고 텁텁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4월 16일 오후, 라틴아메리카(중남미 4국)로 순방을 떠난다. 9박 12일 일정이다. 아직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이날 오전에는 세월호 관련 추모 행사에 어떤 식으로든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4월 16일은 특별한 날이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자리를 잠시 비운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느냐"고 주장해도 정치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정치는 생물이다. 의미는 자생한다. 기자는 그 의미를 예측하고, 짚어야 한다.

4.16의 의미, 박 대통령은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 있는가?

'비극'의 성분은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다른 참사와 비교해 보자. 순식간에 무너져내린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참사, 화재 발생 불과 수 분만에 192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대구지하철 참사 등은 충격과 슬픔으로 우리 가슴을 후려쳤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비유하자면, 비극의 '슬로우모션'이었다.

이 사건을 지켜본 사람들은 "배가 기울고 있다"는 첫 신고가 들어온 이후 15시간 7분 동안 "사망자 6명"(지난해 4월 17일 자정, 정부 공식 발표)이라는 소식만을 접할 수 있었다.

사고 발생 만 3일이 지난 후에 겨우 구조팀이 선체에 진입했다. 이후 무려 365일동안 295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우리는 느리게 확인해야 했다. 끝이 아니다. 아직 9명이 바닷속에 남아 있다. '지금 여기'의 이 참사는 '종결'된 것도, 화석이 된 것도 아니다. 진상규명에는 착수조차 못했다. 지난 1년간, 고통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긴 시간 그것을 감내하느라 너덜너덜해졌다.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의 행보는 어땠나. 오후 5시 15분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았다. 학생들이 갇혀 있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보이는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이 도마에 올랐다. 한참 후에 청와대가 대통령에 대한 보고 및 대통령 조치 사항을 공개했지만, 이미 불신은 커질대로 커진 상황이었다.

정부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근원을 알 수 없는 고통들이 시작된 날이다. 그런 게 '16일'의 의미다.

청와대의 입장도 일면 이해는 간다. 청와대에 따르면 원래 박 대통령은 오는 18일에 순방을 떠날 계획이었다고 한다. 4월 16일의 의미를 나름 무겁게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일정은 콜롬비아 대통령이 박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내 15~16일 방문을 적극 요청한 데서 변동이 생겼다. 청와대는 고심 끝에 16일 오전 세월호 관련 추모 일정을 소화한 후 떠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일정을 조정한 끝에 콜롬비아 방문 일정을 순방 후반기 스케줄에 넣지 못하고 전반기 스케줄에 포함시키느라, 출발 일정이 당겨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의문은 불가피하다. 16일의 의미가 박 대통령에게는 '2순위'일 뿐인가. 이랬으면 어땠을까. 콜롬비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16일은 대한민국에 중요한 날이다. 이 일정 때문에 방문 일정을 뒤로 미루겠다. 정 안되면 콜롬비아 방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대통령에게는 국민을 위한 일정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면? 박 대통령의 진정성은 더 빛나지 않았을까? 콜롬비아 대통령도 박 대통령을 다르게 보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말들이다.

세월호 추모 행사에 어떻게 참여할 지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고민할만한 일인가? 정치는 상대, 혹은 유권자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행보를 보일 때 감동을 준다. 이런 국민 감동은 국정 운영의 동력이기도 하다. 지금, 청와대는 감동이 부족하다.

신뢰 보여줬다면 눈치 볼 일 따윈 없었을 것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세월호 참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박 대통령의 '무능'이라면 그것은 유능한 사람들을 기용해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당시 '무능'한 정부라는 화두는, 지난 1년을 보내면서 '신뢰'의 문제로 옮겨갔다. '신뢰'는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가 아니었던가.

그런 박 대통령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신의 대상으로 인식됐다. 강력한 상징 자본이 불과 1년 만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박 대통령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진행되는 1년간, 박 대통령은 많은 말들을 내놓았다. 눈물도 보였다. 그런데 왜 유가족들은 더욱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됐나. 그들의 눈물은 왜 1년 내내 흘러야 했나. 그들의 가시같은 몸 속 어디에 그토록 많은 액체가 쟁여 있었던가.

청와대는 순방 날짜 선택의 '기술적 어려움'만 설명했을 뿐이다. 청와대가 그런 '정무 기술'을 고민했다는 것은 그나마 '국민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신뢰를 잃어버린 지도자는 앞으로도 계속 눈치나 보며 지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요구 수준은 높아졌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선출직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선출해준 유권자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국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내뱉은 말에 대한 '신뢰'를 지켜왔다면, 순방 날짜 따위로 뒷말이 나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4월 16일 아침에 순방을 떠나도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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