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은 강정호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베이스볼 Lab.] 2015 KBO리그 미리보기 <9> 넥센 히어로즈

스토브리그: ‘쩐의 전쟁’ 시즌 2에서도 멀찍이 물러나 다른 구단들의 돈으로 터뜨리는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FA 미아’가 될 뻔한 자체 FA 이성열과는 딱 성적 기대치에 맞는 금액에 계약.

외국인 선수 중 에이스 밴헤켄은 재계약하고 소사, 로티노와는 결별했다. 성적에 비해 몸값이 비싼 소사는 타 구단이 집어가게 두고, 미리 점찍어둔 좌투수 피어밴드와 저렴한 금액(30만 달러)에 계약했다. 포수 마스크 쓴 것 외에는 존재감이 없던 로티노 대신 LG에서 반시즌 활약한 스나이더를 데려왔다. 결과적으로 스나이더와 소사를 맞트레이드한 셈이 됐다. 투수 김정훈, 외야수 박정음, 내야수 장영석 등은 군복무를 마치고 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평화왕 강정호는 세계 평화를 위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예상 라인업 (2014 wOBA, wRC+)

포수 – 박동원 (0.332, 80)
1루수 – 박병호 (0.470, 168)
2루수 – 서건창 (0.439, 148)
3루수 – 김민성 (0.357, 96)
유격수 – 김하성 (0.310, 66)
좌익수 – 스나이더 (0.309, 66)
중견수 – 이택근 (0.400, 123)
우익수 – 유한준 (0.404, 126)
지명타자 – 이성열 (0.356, 95)
지난 시즌 넥센의 타격은 무시무시했다. KBO리그 역대 한 시즌 팀 최다루타(2257루타), 최다타점(786점), 최고 장타율(0.509), 최고 OPS(0.891)을 모두 넥센이 차지했다. 또 역대 최초로 한 구단이 OPS 0.900 이상 타자를 5명이나 배출한(박병호, 강정호, 서건창, 유한준, 이택근) 것도 넥센이 처음. 이전까지는 1999년 삼성과 해태, 2000년 한화의 4명이 최다였다. 타고투저를 감안해 역대 구단들과 조정 득점생산력(wRC+)으로 비교해도 5위(111)에 해당할 정도로, 2014 넥센은 역대 최고의 강타선 중 하나였다. 넥센이 연속경기 2득점 이하에 그친 건 시즌 내내 단 두 차례 뿐이었으며, 무득점 패배도 9팀 중 가장 적은 1패에 불과했다(최다 두산 7패).
이런 넥센 타선에서 강정호가 빠져나갔다. 작년 팀 내 최고이자 리그 최고의 선수가 사라졌다.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 기준 7.6승짜리 선수가 빠졌으니, 이제 넥센은 약해진 걸까? 그렇지가 않다. 이유는 세 가지다.
1) 강정호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넥센은 4강권이다.
지난 시즌 넥센은 78승으로 리그 2위에 올랐다. 혼자 힘으로 7.6승을 만들어낸 강정호의 자리를 못 채우더라도 (다른 요소가 동일하다면) 128경기 기준으로는 71승, 144경기에서는 80승으로 포스트시즌 안정권(승률 0.550)에 드는 전력이다. 이는 얼토당토않은 계산이 아니다. 2012년 롯데가 좋은 예다. 롯데는 2011년 WAR 6.6승으로 대활약한 이대호의 일본 진출로 큰 타격을 입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2년에도 롯데는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2012년 롯데는 정확히 2011년보다 7승이 줄어든 65승을 거뒀다. 강정호가 빠졌다고 포스트시즌에 탈락하기엔, 기존 넥센 전력이 워낙 좋다.
2) 강정호 외의 타자들 쪽에서 반등 요소가 많다
강정호가 빠졌다고 넥센의 다른 선수들이 가만히 손 놓고 있을 리가 없다. 넥센 타선에는 반등을 기대할 만한 요소가 많다. 외국인 타자 쪽이 대표적이다. 작년 넥센은 리그에서 가장 약한 외국인 타자를 데리고 최강 타선을 자랑했다. 물론 로티노는 포수 마스크까지 써가며 애를 썼지만, 방망이가 약해 큰 도움이 되질 못 했다. 로티노의 2홈런은 1998년 OB 캐세레스와 함께 외국인 타자 한 시즌 최소홈런(200타석 이상)이다. 로티노가 넥센에 대체선수 대비 보태준 승수는 WAR 0.5승에 불과했다. 지난 시즌 외인타자들의 평균 WAR은 1.8승이다.
넥센은 로티노 대신 LG에서 뛰던 스나이더를 영입했다. 스나이더는 정규시즌에서는 부진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완벽하게 (말 그대로) ‘개안’한 모습을 보였고, 깜짝 놀랄 장타력도 선보였다. 넥센은 작년 포스트시즌에서 스나이더의 모습을 진짜라고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 가장 홈런팩터가 낮은 잠실(0.744)을 벗어나 홈런공장인 목동(1.159)에서 뛴다면, 충분히 두 자릿수 홈런 이상을 기대할 만하다. 또한 스나이더는 드넓은 잠실구장에서도 수준급의 외야 수비력을 보여줬다. 넥센 외야수비에 주는 플러스 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또 시즌 넥센의 방망이가 엄청나긴 했지만, 모든 타자가 최고의 시즌을 보낸 것은 아니다. 2013년에 비해 다소 주춤했던 타자들도 있었다. 김민성, 문우람, 서동욱, 이성열 등이 그런 예다. 53홈런을 때려내긴 했지만, 박병호도 작년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다.


3) 넥센은 강정호의 공백을 일찌감치 대비해 왔다.
강정호의 해적단 합류,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도전 선언은 넥센이 전혀 예상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게 아니다. 넥센은 재정 구조상 강정호-박병호급 선수가 FA 시장에 나왔을 때 잡기 어려운 게 사실. 그렇다면 국내 다른 구단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해외 진출로 구단은 포스팅비를 챙기고 선수는 꿈을 이루는 쪽이 서로 윈윈하는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실제 넥센은 수년 전부터 선수들의 해외진출을 예상하고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왔다. 매년 신인드래프트 때마다 내야 공백을 채울 자원들을 발탁했다. 올해 1군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김하성-임병욱이 대표적이다. 파워히터 공백도 준비해 왔다. 퓨처스리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발 빠른 외야수를 주고 파워히터 윤석민을 데려온 트레이드가 여기에 속한다. 또 강지광 같은 선수를 발굴한 것도 파워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다.
미리 준비해온 만큼 대비책도 확실하다. 기본적으로는 김하성이 유격수로 나선다. 밴헤켄-피어밴드 등 에이스급 투수들 등판일에 선발로 출전할 예정. 적은 점수로도 승리가 가능한 경기에서는 유격수 수비와 주루플레이로 승리 확률을 높인다는 계산이다. 반면 3선발 이후 다득점이 필요한 경기는 공격력에 중점을 두고 윤석민 유격수 카드가 나올 수도 있다. 강정호 이적으로 줄어든 홈런도 윤석민, 스나이더, 강지광 등의 선수가 십시일반에서 채울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야구와 정치는 생물과도 같아서,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해서 항상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윤석민과 김하성이 1군 유격수 불가로 판명날 수도 있고, 스나이더가 가면을 벗자 로티노가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명단장 브랜치 리키의 말처럼 “운은 계획에서 비롯되는” 법.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도, 미리 준비한 자에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쪽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나곤 한다. 그때가 되면 넥센은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예상 투수진 (2014 FIP)

1선발: 밴헤켄
2선발: 피어밴드
3선발: 한현희
4선발: 문성현
5선발: 하영민
불펜: 손승락(마무리) / 조상우 / 마정길 / 김정훈 / 김대우 / 김택형 / 김영민 / 이상민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2014년 넥센은 투수 5명으로 한 시즌을 보냈다. 옛날 프로야구팀 사장님의 “투수는 9명만 있으면 된다”를 뛰어넘어, 투수는 5명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줬다. 투수 WAR 순서대로 보면 밴헤켄(6.3승)-조상우(1.7승)-손승락(1.6승)-한현희(1.6승)-소사(1.6승) 순. 팀 내 투수 WAR 2-3위를 선발이 아닌 불펜투수가 차지한 팀은 넥센 한 팀 뿐이다. 그만큼 선발투수가 약하고, 주축 투수 둘과 불펜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건 지난해 포스트시즌. 믿고 낼 투수가 없다 보니 여차하면 6회부터 조상우가 등장했고, 시리즈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달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144경기를 치르는 올 시즌에는 지난해 방식으로는 승부를 걸기 어렵다.

이에 넥센은 투수진을 대폭 개편했다. 소사를 포기하고 대신 좌완에 제구력이 뛰어난 피어밴드를 데려왔다. 피어밴드는 시범경기에서 12이닝 동안 1볼넷에 14탈삼진을 잡아내며(ERA 1.50) 대활약을 예고했다. 이에 밴헤켄의 올해 성적이 지난해 대비 다소 하락하더라도, 피어밴드의 활약으로 상당 부분 만회할 것으로 보인다.

또 데뷔 이후 주로 불펜에서 활약한 한현희를 과감히 선발로 전환했다. 선발 전향이 성공할 경우, 불펜에서 다소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한현희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한현희는 이미 경남고 시절에도 밥먹듯이 완투를 했고, 시범경기에서도 선발에 잘 적응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4선발 문성현과 5선발 하영민도 지난해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경기에 따라, 상대팀에 따라 기복은 있겠지만 무난히 선발 역할은 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현희가 빠진 불펜은 기존 투수들에 신인과 군제대 선수들이 가세해 채운다. 위력적인 구위를 자랑하는 김정훈, 신인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김택형, NC에서 건너온 좌완 이상민이 불펜에서 좋은 역할이 기대된다. 노장 마정길도 올 시즌 들어 부쩍 구위가 좋아져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올해부터는 야구에만 전념할 김영민이 잠재력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지난해 3명으로 굴러갔던 넥센 불펜이 올해는 질과 양 모두 더욱 풍성해진 느낌이다.

강정호의 공백을 반드시 타격 쪽에서만 채울 이유는 없다. 야구는 상대보다 많이 득점하고 실점을 줄이면 승리하는 경기다. 투수 쪽에서 실점을 줄이면 그만큼 팀의 승리는 늘어난다. 이대호를 보낸 2012년 롯데도 그랬다. 롯데는 2011년 투수진 WAR 합이 9.8승으로 타격에 비해 투수 쪽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외국인 투수들도 하나같이 부진했다. 하지만 2012시즌에는 투수들이 도합 12.5승을 벌어다 주면서, 타격에서 잃은 승수를 상당 부분 만회했다. 그해 새로 가세한 유먼의 호투, 이용훈과 이명우의 분발이 투수력에 큰 도움이 됐다.

넥센도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넥센의 외국인 투수를 제외한 국내 투수들은 9개 구단 중 한화(WAR -0.9) 다음으로 적은 2.5승을 기여하는데 그쳤다. 이제 강정호가 떠난 만큼, 투수 쪽에서도 팀의 승리에 더 많은 기여가 필요하다. 타선에 비해 기여가 적던 투수들이 분발하고, 새로 가세한 피어밴드가 시범경기처럼 호투한다면 넥센으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타격 일변도의 팀에서 투타가 조화를 이룬 균형 잡힌 팀으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
2015 전망: 지난 시즌 넥센은 대권 코앞에서 아쉽게 물러났다. 운이 따르지 않는 순간도, 경험부족이 드러난 장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팀 전체 ‘힘’의 차이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드러났다. 특히 투수력과 수비력의 차이가 삼성과 넥센의 운명을 갈랐다. 9점 주고 10점 내는 야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그 옛날 삼성이 그랬듯이) 넥센도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그 때문일까. 이번 시즌 넥센은 약점이던 투수력과 수비력이 부쩍 좋아진 모습이다. 외야수비가 좋은 스나이더는 목동을 홈으로 삼아 타격에서도 한 몫을 할 것이다. 투수 쪽도 외국인 투수 보강과 한현희의 선발 전환, 새로운 불펜 투수들의 가세로 업그레이드됐다. 강정호가 떠났지만, 오히려 더 짜임새 있고 탄탄한 팀으로 성장했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야구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팀이 가진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프런트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프런트뿐만 아니라 현장 지도자들의 역량도 뛰어나다. 넥센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박철영 배터리 코치, 손혁 투수코치 등 새로운 코칭스태프를 영입했다. 기존 염경엽 감독, 심재학 코치 등도 그렇지만 새로 가세한 코치들도 야구계에 소문난 공부하는 지도자들. 넥센 코치들끼리 아카데미를 개설해도 될 정도다. 항상 고민하고 앞서나가는 코칭스태프의 존재는, 넥센 선수들이 짧은 기간 만에 눈부신 성장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다. 넥센은 시대에 뒤떨어진 지옥훈련 없이도, 선수단을 강제적으로 끌고 가지 않아도 스스로 매년 강해지고 있다. 넥센은 이 시대 프로야구단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구단 중 하나다.

올 시즌 넥센이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해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KBO리그의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예상 순위:
1-2위

기록출처: www.baseball-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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