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감독, ‘사람 좋아도 일등’은 가능할까

[베이스볼 Lab.] 2015 KBO리그 미리보기 <6> - SK 와이번스

스토브리그: 2014 후반기 눈부신 질주에도 아쉽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만수 감독 시대를 끝내고 김용희 육성총괄을 새 감독에 선임했다. 신임 감독 앞에는 으리으리한 취임 축하 선물이 주어졌다. 최정, 김강민, 조동화, 나주환, 이재영 등 자체 FA 전원을 눌러 앉히는데 성공했다. ‘대어’ 최정, 김강민에 군침을 흘리던 타 구단 팬들은 SK 잔류 소식에 시무룩. 포스팅으로 미국 진출을 시도한 에이스 김광현도 다시 돌아왔다. kt 특별지명에서도 젊은 유망주들 대신 외야수 김상현이 빠져나간 덕분에, 이번 오프시즌에서 SK의 실질적인 전력 손실은 ‘0’에 가까웠다.

SK는 지난해 성격 특이한 외국인 선수들 때문에 임성한 드라마급 황당한 사태를 여러 차례 겪었다. 이에 새 외국인 선수 영입에서는 화려한 메이저리그 경력 대신 내실을 택했다. 새 외국인투수 메릴 켈리는 메이저리그 경험은 없지만 최근 2년간 트리플 A에서 수준급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앤드류 브라운도 메이저 경력은 길지 않지만 트리플 A에서 .298/.380/.555(타율/출루율/장타율)을 기록한 거포 외야수다. 그동안의 커리어만 놓고 보면, NC의 에릭 테임즈 못지 않은 활약이 기대된다.


2012년 한꺼번에 입대시켰던 젊은 선수들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투수 정우람, 서진용, 박종훈, 김태훈에 포수 김민식, 최정민이 군복무를 마치고 팀에 합류했다. 이 중 정우람은 당장 불펜 필승조 역할이, 박종훈과 김민식은 1군 즉시전력으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올 시즌 SK는 두산과 함께 ‘예비역 효과’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군입대 선수로는 투수 허건엽과 타자 한동민, 김도현이 있지만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예상 라인업 (2014 wOBA, wRC+)

포수 – 정상호 (0.322, 74)
1루수 – 박정권 (0.402, 125)
2루수 – 박계현 (0.356, 95)
3루수 – 최정 (0.403, 125)
유격수 – 김성현 (0.352, 93)
좌익수 – 이명기 (0.403, 125)
중견수 – 조동화 (0.307, 65)
우익수 – 브라운 (기록없음)
지명타자 – 이재원 (0.405, 127)
SK의 마지막 우승 시즌인 2010년 베스트 9과 올해를 비교해 보면, 여전히 남아 있는 선수는 박정권-최정-김강민 세 명뿐이다. 당시 백업이던 정상호는 주전 포수로 성장했고, 김성현-박계현-이명기 등은 최근 3년 이내에 새롭게 솟아오른 선수들이다. 지난해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은 김성현은 2009년 나주환(0.288) 이후 SK 유격수 최고 타율(0.284), 2001년 브리또(0.425) 이후 최고 출루율(0.376)을 올리는 대활약을 했다. 작년 팀 내 내야수 중 박정권-최정 다음으로 좋은 공격생산력(wOBA 0.356)을 보여준 박계현도 올해는 ‘FA’ 나주환을 제치고 주전 2루수로 뛸 전망. 후반기 4할대 타율(0.413)을 기록한 이명기의 성장도 놀라웠다. 이만수 감독 체제의 중점 과제였던 타선 ‘리빌딩’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2014 시즌 전체 성적만 갖고 보면 SK 공격력은 리그 중하위권 정도(조정 OPS 97, 6위). 그러나 후반기만 떼어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타자가 없는 가운데서도 젊은 국내 타자들이 분발한 결과, 넥센 다음으로 좋은 공격력을 후반기에 선보였다. 단적인 예로 SK의 전반기 두 자릿수 득점 경기는 83경기를 치르는 동안 9번에 불과했지만, 후반기엔 45경기에서 9번이나 10점 이상을 뽑아냈다. 올 시즌 SK의 공격력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다만 중견수 김강민이 부상으로 2달가량 결장하게 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수비 때문이 아니라 타격 때문이다. 김강민의 자리를 대신할 조동화는 지난해 리그에서 가장 타격이 약한 외야수였다(조정 OPS 64, 400타석 이상).

새 사령탑 김용희 감독은 뛰는 야구를 선호하는 사령탑이다. 김 감독이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이끈 1995년 당시, 롯데는 역대 팀 최다인 220개 도루를 성공한 바 있다. 그해 롯데는 스피드스코어(SPD)도 역대 최고인 6.9를 기록했다. 당시 롯데 사령탑이던 김용희 감독과 조 알바레즈 주루코치는 지금 SK 유니폼을 입고 있다. 시범경기에서 SK는 15도루로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도루에 성공했다. 올 시즌 SK가 보여줄 공격 컬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상 투수진 (2014 FIP)

1선발: 김광현 (4.31)
2선발: 밴와트 (4.64)
3선발: 켈리 (기록없음)
4선발: 윤희상 (4.15)
5선발: 백인식 (10.55)
불펜: 윤길현(마무리) / 정우람 / 문광은 / 진해수 / 전유수 / 고효준 / 박종훈 / 채병용
2014시즌 SK 마운드는 처참했다. 시즌 시작하자마자 선발투수 윤희상과 마무리 박희수가 부상으로 이탈했다. 레이예스, 울프 등 외국인 투수들도 팀에 손해만 끼치고 떠났다. 어금니와 송곳니가 빠진 상태에서 잇몸으로 128경기를 씹은 결과, SK 마운드는 팀 평균자책 7위(5.51)라는 너덜너덜한 기록을 남겼다. 올해는 다르다. 윤희상이 무사히 돌아왔고 SK 벌떼야구의 주역 정우람이 제대해 마운드의 앞뒤가 튼튼해졌다. 외국인 투수도 작년 후반 잘해준 밴와트에 메릴 켈리(왠지 이름부터가 착할 것 같다!)를 추가해 정상적으로 2명을 가동한다. 켈리만 기대만큼 잘 던져준다면 1~4선발까지는 어느 팀과 붙어도 밀리지 않는 경쟁력을 갖췄다.

문제는 5선발. 일단 시범경기를 거친 결과 5선발 자리는 백인식에게 돌아가는 분위기다. 지난 시즌에는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8.32로 무너졌지만, 올해는 스프링캠프부터 좋은 구위로 기대를 모은 뒤 시범경기 마지막 등판에서 호투로 확실한 도장을 받아냈다. 사이드암으로 140km/h 후반대 강속구를 던지는 백인식이 선발로 살아남으려면 좌타자 승부(2014 좌타자 피안타율 0.412 2피홈런)가 관건이다. 만약 백인식이 실패하면 지난해처럼 채병용, 문광은, 박종훈 등으로 물량공세를 펼쳐야 한다.

불펜진도 양과 질 모두 우수하다. 작년 선발로 기회를 받았던 투수들(문광은, 박민호, 채병용)이 불펜에 합류하면서, 지난해 허전했던 SK 불펜이 북적북적하게 됐다. 여기다 5월 이후에는 마무리 박희수, 박정배도 부상에서 돌아올 예정이다. 어쩌면 SK는 문학구장 불펜을 넓히는 공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용희 감독이 밝힌 불펜 운영 계획도 투수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김 감독은 1군 엔트리에 불펜 투수를 7~8명 정도 두고 휴식일을 철저히 보장해줄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 시즌에는 투수들의 줄부상에 포스트시즌 경쟁이 겹치면서 불펜 투수들이 다소 무리한 감이 있었다.
2015 전망: 지난해 후반기 SK는 놀라운 질주를 펼쳤다. 하나로 뭉친 젊은 선수들이 한번 분위기를 타기 시작하니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비록 바라던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SK의 투혼은 박수를 받아 마땅했다. 올 시즌도 진짜 승부는 시즌 중반부터다. 부상 선수들이 빠진 시즌 초반을 잘 넘긴다면, 김강민과 박희수가 복귀하는 5월을 기점으로 상승곡선을 그릴 수 있다. 5월 이전까지 중상위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SK는 넥센과 함께 삼성의 5연패를 저지할 가장 강력한 후보다.

SK 김용희 감독은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덕장으로 꼽힌다. 대학교 야구부 기강이 군대보다도 쎈 시절인 1981년, 3년 후배가 ‘야자타임’을 핑계로 상욕을 퍼부었는데도 웃으면서 “네 선배님,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라고 응수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화를 칼럼에서 소개한 고 이종남 기자는 김 감독을 “야구계에서 가장 욕 안 먹는 인물”이자 “야구계의 도덕군자”라고 평가했다.

롯데에서 지도자로 데뷔한 김 감독은 ‘자율야구’를 표방하며 취임 2년만인 1995년에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끄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이후에는 구단의 간섭과 부족한 지원 속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전임 감독 시절 주력 선수들의 군입대를 미뤄둔 탓에, 김 감독 부임 이후 선수들이 한꺼번에 공익근무로 빠져나가면서 전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성적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면서 ‘자율’과 ‘덕장’이라는 자신의 본래 스타일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1998년을 마지막으로 롯데 감독에서 물러난 김 감독은 2000년 삼성에서 다시 감독직을 맡았지만, 이번에는 승률 0.539로 3위를 기록했는데도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앞서 김 감독의 일화를 소개한 이종남 기자는 칼럼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아무리 도덕군자라도 그런 자질만으로는 선수단을 훌륭히 운영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프런트의 일사불란한 지원이 필요한 때다. 김 감독에게는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도록 해줄 사람은 과연 누구이겠는가.” 15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멀리 돌아온 끝에 김용희 감독은 다시 기회를 얻었다. 감독생활 내내 불운했던 그에게 이번에 주어진 팀은 ‘우승후보’로 꼽히는 막강 전력의 SK 와이번스다. 김 감독이 이번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자율’의 야구를 아무런 방해 없이 실현해 낼 수 있을지, ‘사람 좋아도 일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예상순위: 2-3위

기록출처: www.baseball-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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