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이 '미생'의 희망일까?

[생협평론]협동‧① 조합에 대한 단상

약 4만5000년 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이 지구 표면의 일부에 본격적으로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의 먹고 입고 쓰는 생활이 존재하는 한 '경제체제'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왔고, 또 계속 끼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 세상이 '천년왕국'이나 '불국정토'가 된다 한들 이러한 사정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도 먹지 않으면 안 되고, 입지 않으면 안 되며 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경제체제, 앞으로의 경제체제도 마찬가지로 그것은 일정한 규칙 내지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 다른 모양을 띠게 되지만 특정한 공통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경제사 내지, 진보론자들의 경우에는 사적 유물론 영역의 주제들과 관련된다. 필자는 경제체제에 대한 논의에서 언제나 다음의 두 가지 요소에 주목하는 편이다. 그 하나는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지배구조'이다.

'시장'은 생활재의 교환이 일어나는 그 모든 영역과 관련된다. 농업문명이 발생하기 전 약 3만5000년 동안 사람들에게 교환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규모의 씨족 공동체 안에서는 자급자족적인 생활이 이루어졌고 극히 예외적으로만 씨족 간의 물물교환이 일어난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러한 양상은 약 1만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문명, 즉 농업문명이 발생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사람들은 점점 더 시장에 의존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약 300여 년 전 자본주의적 시장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었다. 1900년대 약 70여 년 동안 특정지역에서 시장을 제한하고 계획적인 물물교환에 의탁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전 세계인들은 점점 더 시장에 의존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하던 지역에서도 이미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사실상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다를 바 없는- 가 통용되기에 이르렀으며,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에 편입되고 말았다.

▲ 전국 처음으로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협동조합을 꾸려 직접 운영하는 학교매점 '복스쿱스'(Bok's Coops:복정고 협동조합). ⓒ연합뉴스

시장과 기업지배구조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고 패자에게 가차 없는 '시장'의 불완전성 내지 비인간성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고, 심지어 칼 폴라니가 지적하는 '허구적 시장', 즉 노동시장과 화폐시장이 시장 참여자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고 점점 더 경제 전체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이러한 시장체제 전반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혹은 그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적어도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러하다. 물론 필자는 우리의 후손들이 언젠가는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발견 내지 발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체제의 다른 하나의 구성요소, 즉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기업지배구조'의 문제는 '시장'보다는 좀 더 만만해 보인다. 자급자족적인 경제생활단위든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경제생활 단위든 어쨌든 무언가를 생산하고 그것을 유통하는 주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러한 주체를 광의의 '기업'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은 특정한 지배구조를 갖게 된다. 그리고 기업의 지배구조는 그 기업의 특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의 창(窓)'과 같은 것이다.

농업문명이 발생하기 전 약 3만5000년 동안 수렵, 어로, 채취 중심의 경제활동에 집중했던 사람들의 작은 씨족단위는 엄마를 최고 정점으로 하는 모계 기업으로 운영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협동조합 같은 것이었는데,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적이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그런데 특별히 비민주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부의 분배과정은 매우 평화적이었다. 노동의 소외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실은 이것이 이 지구상에 가장 길게 존재했던 기업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농업문명이 시작되고 300여 년 전, 자본주의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전까지 소위 개인기업-오늘날의 개인사업자- 천국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개인기업의 주인은 농민 개인이거나 혹은 상인 개인뿐 아니라 대토지 소유자, 무사, 봉건영주, 혹은 왕이라고 지칭되던 자들이었다. 후자의 사람들이 훨씬 더 강력한 기업지배권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데, 민주적일 필요는 전혀 없었으며 기업자산의 분배과정 또한 매우 폭력적이고 극렬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굶어 죽거나 굶주렸다. 기업 간 합병과정은 전쟁을 수반하는 과정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지배권과 관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 나갔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기에 그것은 공장주나 광산주들이 독점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개인 기업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일정한 규모를 갖추게 되면서, 그리고 더 큰 규모로 성장하기 위해 오늘날 보편화된 '주식회사'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물론 이 시기에 주식회사와 다른 형태의 기업, 즉 협동조합기업들 또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한 이와 함께 사회주의 국영기업을 포함하여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진화하는 비협동조합기업의 지배구조
이제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존재하는 매우 다양한 주식회사와 국영기업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우리의 주제, 즉 기업지배구조의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들을 다루고자 하는데, 이 논의를 통해서 필자는 주식회사나 국영기업의 지배구조가 특정 형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시대마다, 지역의 사정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1) 미국과 영국의 주식회사

잘 알다시피 주식회사의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차원의 문제를 포함한다. 첫째, 주식회사의 주인들인 주주들의 관계와 질서 문제, 둘째, 주주의 대표와 전문경영인, 그리고 종사자들–노동자들-의 관계 문제이다. 첫째 문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원리상 별로 다를 것도 없고 달라질 개연성도 별로 없다. '1주 1표'라는 철의 원리는 가장 기초적인 원리로 관철된다. 여기에는 예외가 별로 없다.

영국과 미국의 주식회사들, 특히 증권시장에 공개된 거대 규모의 주식회사들은 매우 많은 수의 주주들로 구성된다. 압도적인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존재하는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주주 총회에서 뽑히는 주주들의 대표, 즉 이사회 구성원들은 매우 다양한 주주들의 이해를 대변한다. 혹은 주주들의 이해를 대표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회사들에서 기업지배권의 핵심문제는 소위 전문경영인과의 관계 문제다.

미국 주식회사에서 주주들의 대표들보다 훨씬 큰 권한을 갖는 사람은 전문경영인, 즉 CEO다. 이들은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인데, 보통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서 경영을 지칭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주주들의 대표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비전문가 이사들은 업계의 전문가들인 이들을 당해내기 힘들다. 문제는 이들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가 매우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위해 지불되는 비용을 '대리인 비용'이라고 한다.

이들은 종종 회사를 망하는 길로, 주주들이 가진 주식을 휴지조각, 혹은 반 토막 주식으로 만든다. 대표적으로 휴렛팩커드(Hewlett-Packard Company)의 전문경영인이었던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의 경우가 언급된다. 그는 주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컴팩과의 합병을 추진했는데 그 결과 휴렛팩커드의 주가는 반토막 나고 말았다. 그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으나 수억 달러의 퇴직금을 챙겨갔다. 2007년 월가에서 벌어졌던 리먼 쇼크 직후 정부의 구제 금융으로 간신히 회생한 BOA의 전문경영인은 여전히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아 챙겼다. 이것은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의 촉발제가 되었다.

미국의 주식회사에서 주주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것은 이러한 '대리인 비용'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20여 년 전부터 이들에게 스톡옵션을 주면서 주주들의 이익과 전문경영인의 이익을 공동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이것이 그다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의 주식회사에서 노동자들의 소유참여와 경영참여는 주주들의 지지를 받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해 주주들은 전문경영인을 견제할 수 있는 현업종사자 주주들을 동맹군으로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기업에서 종업원지주제를 통해 노동자들이 일정한 지분을 소유하고 경영에서 발언권을 행사하는 경우, 주가는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주주들이 이를 반기는 이유다. 다른 나라에서 이러한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2) 독일의 주식회사

전 세계의 주식회사 중 대부분이 미국과 영국 주식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대리인 문제를 겪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주식회사에서 기업지배권 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독일의 주식회사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정 규모가 되는 모든 기업에서 노동자들에게 50퍼센트(%)의 경영권을 할애한다. 소위 말하는 '독일식 공동결정제도'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 노동자뿐 아니라 채권은행들에도 일부 경영권을 할애한다. 즉, 주주와 노동자, 채권은행이 공동으로 경영하는 모양의 기업지배권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매우 특이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가 정착된 것은 히틀러와 연관이 있다. 세계대전 이전, 혹은 그 기간 독일의 거대기업들은 대부분 나치정권에 부역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 당시 기업지배권을 가지고 있던 대주주들이 나치정권의 부역자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종전 후 미국과 유럽연합군은 이들의 재산권을 뺏거나 제한할 수 없었다. 단지 이들이 계속해서 기업지배권을 행사하도록 두는 일은 불가능했으며, 이것이 일종의 전 사회적 합의(consensus)를 이루게 되었고 그 결과 독일의 주식회사에서 전혀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노동자들이 기업지배권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경제민주주의에서 획기적인 모범이 되는 독일의 주식회사 기업지배모델은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반복되기 힘든 독일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스웨덴과 한국의 주식회사

대주주 혹은 대주주 가문이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대를 이어 행사하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업 집단을 구성하여 거대 규모의 기업 집단에 대한 가문의 지배권이 행사되는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 이것은 전체적인 사회적 합의하에 진행된다. 스웨덴 정부는 이들 가문이 기업지배권을 잃지 않도록 '황금주'를 주는 제도까지 만들어 가문의 경영지배권을 인정한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이들 가문은 절대 탈세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지목하는 전문경영인을 내세우는 방법을 사용한다.

한국에서 재벌가문은 기업 집단을 구성하여 순환출자방식을 통해 작은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대를 이어 지배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 승계를 위해 수시로 탈세하고 횡령하면서도 별 탈 없이 지내는 매우 특이한 기업지배구조를 형성했다.

보통 미국의 주식회사들이 '대리인 비용' 문제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이들 기업은 '오너 리스크'(owner risk)에 노출되어 있다. 성공적인 경영자였던 아버지를 이어 취임한 아들이 아버지만큼 기업경영에서 뛰어난 실적을 내리라는 것은 전혀 보장할 수 없다. 아들이 무능할 경우, 회사는 망하고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던 다른 주주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런 회사에서 노동자들의 소유참여와 경영참여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금기 같은 것으로 여겨지거나, 아니면 무슨 공산주의 놀음 정도로 치부된다.

4) 러시아의 주식회사

1990년대 초반 소련 사회주의가 몰락한 자리를 러시아 자본주의가 대체했다. 기존 국영기업들은 민영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러시아식 주식회사들이 등장했다. 가난한 소련 인민들은 민영화 과정에서 이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는 '바우처'를 정부로부터 받았지만 이 주식회사 주식을 살 돈이 충분치 않았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바우처는 헐값에 구소련 KGB 출신 폭력배들에게 팔렸는데, 결과적으로 이들 폭력집단이 가스, 석유회사 같은 알짜 국영기업의 기업지배권을 쥐게 되었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와 결탁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하고 기업지배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아직 이 폭력배들의 나이가 젊은 관계로 2세 경영까지 넘어가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재벌가문의 기업지배 역사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청년들이 모여 만든 '청년연대은행 토닥' 조합원들. 자신들이 직접 쓰는 가계부를 들고 웃고 있다. ⓒ청년연대은행 토닥

5) 중국의 국영기업과 향진기업

1980년대 중국 사회주의의 개방 이후 정치권력은 공산당이, 기업권력은 공산당 간부들과 그 자식들이 대를 이어 행사하는 구조로 재편되었다. 아직 알짜 국영기업들은 여전히 민영화되지 않고 국영기업으로 존재하지만 그 기업지배권은 당 간부의 자녀들과 친인척들에게 양도되었다.

농촌 지역에서 인민공사를 대체하면서 등장한 소위 향진 기업들 또한 그 소유권은 마을주민들에게 있지만 경영권은 그 지역의 공산당 서기에게 주어졌고 이는 현재 간부들의 자식들 손으로 승계되고 있다. 이미 사회주의 중국의 기업지배 역사는 한국 재벌가문의 그것을 베끼고 있다.

6) 베네수엘라와 차베스의 국영기업 변화 실험

얼마 전 타개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자신을 볼리바리안 사회주의자로 밝히고 사회주의 혁명프로그램들을 가동했다. 그 핵심 골자는 집권 이전 미국자본에 의해 지배되던 베네수엘라의 대형 석유기업들을 국영기업으로 바꾸고–빼앗고– 국영기업의 노동자들에게도 일정한 기업지배권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국영기업 노동자들에게 이사 추천권을 주려고 했던 이러한 시도는 소련이나 중국이 사회주의체제로 운영되던 시기에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참신한 시도였다.

하지만 이 시도는 '형평성의 문제'에 직면하여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 국민들과 차베스의 동료들조차도 전 국민 상위 10% 소득자에 해당하는 국영석유기업 노동자들에게 기업지배권의 일부까지 양도하는 것은 전 국민적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6가지의 사례들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비협동조합기업 전체의 90% 이상을 포괄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같은 시대에 주식회사의 형태, 국영기업의 형태로 유지되는 기업들의 지배권 양상이 이토록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다. 필자도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가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읊조린다. "기업지배구조는 진화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어디로 진화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단지 진화론으로가 아니면 이러한 다양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주식회사라는 줄기에서 다른 토양과 환경에 맞게 다양한 종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또한 진화하는 협동조합기업의 지배구조

협동조합이라는 줄기에서도 다양한 종들이 발생한다. 그 변수는 비협동조합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첫째, 협동조합의 주인들인 조합원들의 관계와 질서 문제, 둘째, 조합원 대표와 전문경영인, 그리고 종사자들–노동자들-의 관계 문제이다.

1) 조합원 간의 관계 문제

첫 번째 변수에서 다양한 사례들이 관측된다. 그것은 먼저 조합원 규모와 관련된 문제이다. 규모가 작은 협동조합, 즉 노동자협동조합이나 사업자 협동조합 같은 경우 조합원 총회는 소수의 조합원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경우 조합원 총회는 이사회를 구성하지만, 논의의 대부분은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총회에서 진행되고 의사가 결정된다. 하지만 조합원 규모가 커질 경우 조합원 총회는 대의원 총회로 갈음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신용협동조합은 대의원 총회를 구성하지 않고 300명 이상의 조합원들만 모이면 총회 구성 요건이 되는 것으로 인정된다. 반면, 새마을금고는 대의원총회를 구성하여 이사장도 선출하고 사업진행을 결의한다. 한국농협의 경우 조합장은 조합원 모두가 직선으로 뽑지만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대의원 총회로 갈음되어 진행된다.

첫 번째 변수에서 발생하는 두 번째 문제는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의 문제이다.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은 2012년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에서 인정하는 협동조합 유형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조합원 30명과 소비자조합원 3000명으로 이루어진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에서 노동자조합원과 소비자조합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지배구조의 문제와 관련된다. 노동자조합원과 소비자조합원을 대표하는 이사회, 대의원회를 어떤 비율로 구성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다. 소비자조합원과 생산자조합원, 그리고 노동자조합원들로 구성된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에서의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게다가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을 전제로 구성되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경우 후원자조합원과 자원봉사자조합원들에게 어떤 정도의 대표권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고차방정식이 될 수 있다. 현재까지는 아직 초기 단계에서 '좋은 게 좋은' 시절이지만 이 시절이 영원히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2) 선출권력과 임명권력의 문제

협동조합이 규모가 작고 조합원들의 참여도가 높은 경우 1인 1표에 의해 선출된 선출권력은 협동조합의 대표권을 전일적으로 행사하는 경향을 가진다. 어떤 협동조합이나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규모가 커지고 경영 문제가 주요문제로 등장하는 순간 경영전문가들이 힘을 발휘한다. 이 경우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된 조합원대표들의 발언권은 약화되는 경향을 갖는다.

미국과 영국의 주식회사에서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 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한 정도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혹은 임명된 전문경영인들이 선출권력의 선출과정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 경우 전문경영인들의 권력은 수십 년 지속되고 선출권력은 이들에 의해 적당히 조정되기도 한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신협운동에서 볼 수 있었다. 신협의 경우 설립 초창기부터 전문경영인으로 참여한 핵심 경영인들–보통 전무라고 한다–은 20여 년 이상 그 직위를 유지하면서 여러 명의 이사장을 겪었다. 실질적인 권한은 전문경영인들에게 집중되고 선출권력과 임명권력 사이의 비대칭구조는 심화되었다.

협동조합이든 국가든 민주주의 수준이 낮은 경우, 이러한 문제는 더 커진다. 아직 임명직 관료들의 힘이 선출권력보다 더 지속적이고 강하다고 볼 수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 문제는 별로 낯선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인 임명직 권력인 검찰 권력, 심지어 임명직 권력조차도 아닌 언론의 권력이 선출권력들을 뒤흔드는 사태는 사실 납득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협동조합에서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경우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한 경향은 해당 협동조합의 체질을 점점 약화시킬 것이며 결국 협동조합의 경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사실 간단하다. 선출권력의 권위를 인정하고 선출권력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실질화시키는 것이다. 협동조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렛대 중의 하나는 협동조합의 감사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감사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행동하는 주식회사의 감사와 달리 조합원들에 의한 선출권력으로서 권한을 가질 수 있고 이 권한을 통해 협동조합 경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결국 조합원들의 조합경영에 대한 참여의지와 욕구가 높을수록 이 문제가 해결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조합원들이 무관심하고 관여도가 낮으면 임명 권력에 의한 전횡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3) 협동조합에서의 노동자 문제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대표와 노동자들의 관계는 주식회사에서 주주대표와 노동자들의 관계와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 로치데일 소비조합 이후, 협동조합의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조합원대표와 협상하는 전통을 세웠다. 한국의 농협과 수협, 신협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한국의 생협운동 또한 이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 이미 노동자들의 숫자가 4000여 명을 넘었기 때문이고, 이들의 처우문제와 조합원의 이해관계는 서로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약 20년 전부터 주장해왔는데, 한국의 생협운동에서 이 문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자대표를 협동조합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법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조합을 양성화시키는 방법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어물쩍거리다가 실기할 수 있다.

협동조합기업의 지배구조는 앞으로 계속 변화될 것이다. 다양한 변종들이 생겨날 것이고 아주 창조적인 형태를 보이는 종들이 탄생할 개연성 또한 배제하기 힘들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비협동조합기업의 지배구조 변화만큼이나 여러 가지 문제를 함축하면서 진행될 것이란 사실이다.

또 한 가지, 협동조합기업의 지배구조가 진화한다고 표현했을 때 이미 전제된 것은 어떤 시대 어떤 지역에나 통용되는 일목요연하고 공통된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우리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혹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나을지에 대해서 고민할 뿐이다. 진화의 끝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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