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일베'의 테러, 신은미·황선이 끝 아니다

[정욱식 칼럼] 사상의 자유를 묵살한 '종북몰이'의 섬뜩한 귀결

'북한에 대한 신은미와 황선의 얘기는 북한을 싫어하는 내 생각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종북이다. 종북은 척결 대상이다.'

어처구니없는 삼단 논법이 무서운 테러를 가져왔다. 10일 저녁 익산시에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 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토크콘서트에서 벌어진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범인이 고교 3학년 학생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을 자아낸다.

이번 테러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 개인적 일탈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학생은 범행 전날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발견했다'거나 심지어 윤봉길 의사를 빗대 '봉길센세의 마음으로' 등의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특히 "집 근처에 신은미 종북콘서트 여는데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난줄 알아라"라며 범행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리곤 경찰 조사에선 "평소 북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던 중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범행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 관련 기사 : "신은미 폭사당하면 난 줄 알라" 범행 예고)

▲ 범행을 저지른 오모 학생이 인터넷 사이트 '네오아니메'에 올린 범행 준비 모습. 인터넷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이 게시글이 캡처되어 올라와 있다. ⓒ 일간베스트저장소 갈무리

사회적 흉기

왜 일까? 필자는 보수언론의 마녀사냥식 종북몰이에 상당 부분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굶주린 늑대처럼 종북 사냥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신은미-황선의 토크쇼를 그 먹잇감으로 삼았다. 그리곤 지면과 인터넷, 그리고 종편을 총동원해 대대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테러를 가한 학생은 이러한 언론 보도나 이를 실어 나른 일베 등 과격 사이트를 보고 신은미 씨와 황선 씨에 대한 적개심을 키웠을 것이다. 사회적 공기여야 할 언론이 사회적 흉기로 둔갑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정부의 대응도 한심하다. 신은미 씨와 황선 씨를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죄 조항을 들어 소환을 통보하는 등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그런데 신은미 씨는 작년 9월에 통일부의 유니TV(UniTV)에 두 차례 출연한 바 있다. 최근 보수언론이 '종북 논란'을 일으키자 통일부는 11월 25일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신은미 씨의 경험담이 "UniTV가 기획한 프로그램 취지와 맞는다고 판단하고 섭외하여 현재의 평양 모습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신은미 씨가 출연하는 토크콘서트 내용이 이념적 편향성 문제가 제기되어 해당 동영상을 UniTV에서 삭제했으며, 앞으로 이념적 편향성 여부에 대해 보다 면밀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필자가 알기 로는 신은미 씨가 쓴 글이나 발언이 작년과 올해에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조선> 등 보수언론이 종북 논란을 일으켰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통일부의 태도이다.

우리 사회에 울린 심각한 경종

이번 테러 사건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적 가치와 헌법상의 권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문화 속에서 그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정부와 언론이 이러한 문화 형성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와 권리는 '종북'이라는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 앞에선 곧잘 질식하고 만다.

최근 일선 학교, 군대, 예비군, 민방위 교육 현장과 종편을 비롯한 여러 언론에선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기 바쁘다.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종북 딱지를 붙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 속에서 앞서 언급한 무서운 삼단 논법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몰이해와 불관용이 판치는 사회에서 백색 테러는 또다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정부와 언론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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