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 기회 차 버린 문창극, KBS 비난 자격 없다

[정책쟁점 일문일답] KBS의 문창극 친일 보도, 왜곡이 아니라 ‘진실’

1. 지난 24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내정된지 14일만에 사퇴했습니다. 그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언론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는데요. 25일 여야도 문 후보 낙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KBS의 보도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25일 S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KBS가 문 후보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국민들이 싸늘하고 차가운 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도록 몰아갔다고 비난했습니다. KBS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KBS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언론의 속성상 제한된 시간 내에 보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부분을 잘라서 보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KBS 보도가 결코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2. 홍 소장은 여야의 공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 저도 11일 KBS 9시 뉴스를 보았고, KBS가 홈페이지에 올린 뉴스 녹취록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MBC가 20일 방송한 43분간의 문 후보 강연 동영상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KBS 보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론인들이 부분 인용을 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물론 부분 인용으로 인한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취재 대상에게 반론이나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KBS도 11일 9시 뉴스에서 자신들이 사전에 문 후보에게 반론이나 해명할 기회를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문 후보자는 발언 취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말을 아꼈습니다. 
문창극 : "(한일합방과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은 어떤 취지입니까?) 여기서 대답할 수 없고 청문회에서 답하겠습니다." (11일자 KBS 보도)

즉 KBS가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 후보자에게 반론이나 해명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것을 스스로 발로 차 버렸던 겁니다.

3. KBS가 이와 관련하여 자신들 입장을 발표했다고 하는데요. 그 내용도 간략히 소개해 주시죠. 
⇒ KBS는 24일 ‘문창극 전 후보자 보도와 관련한 KBS 입장’을 발표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KBS 취재기자는 11일 오후 2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강의실을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고, 4시쯤에는 정부종합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문 전 후보측이 응하지 않아 인터뷰를 하지 못했습니다. 또 KBS 기자는 총리실 공보실장에게 문 후보자의 답변을 듣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답변한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이에 KBS 기자는 공보실장에게 보도 핵심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다시 한번 반론을 구했지만 역시 같은 답변만 들어야 했습니다. KBS 기자는 저녁 8시에는 퇴근하던 문창극 전 후보자를 재차 찾아가 질문했지만 역시 “청문회에서 답변하겠다”는 대답만 들어야 했습니다. KBS는 문창극 전 후보자만 원한다면 그의 반론만으로 리포트 한 개를 만들 생각도 있었다는데요. 문 후보 스스로 반론 기회를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자신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KBS측의 설명입니다. 

4. 일부 극보수 인사들은 K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이 문 후보 강연 동영상 전체를 방송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논쟁을 하거나 토론을 할 때 가장 한심해 보이는 논객이 바로 “제 책을 읽어 보세요.”라거나 “제 글을 읽어 보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글이나 책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면 반론 기회를 얻어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면 됩니다. 세상에는 책과 글이 넘치고 모든 이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요. 상대방더러 자신이 쓴 책이나 글을 다 읽고서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염치없는 요구입니다. 문 후보 동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사들이 그것을 전부 방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염치없는 것입니다. 또 일부 내용을 부분 인용했다 하여 이를 비난하는 것도 부당한 것입니다. 

5. KBS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부분 인용으로 문 후보의 진의가 왜곡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 저는 진의가 왜곡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 후보는 하나님의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국인들의 민족성을 비하했는데요. 그 비하 방식이 친일파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일제의 ‘식민지사관’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6. 지난 11일 KBS가 9시 뉴스에서 3꼭지로 보도한 문 후보의 모 교회 강연 내용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 주시죠.
⇒ 11일 KBS가 보도한 문 후보의 모 교회 강연 요지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나라 민족성에 관한 발언입니다. "조선 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 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둘째, 조선 500년 역사에 관한 발언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셋째, 독립운동을 폄하한 해방에 관한 발언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뜻밖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신 거에요. 미국한테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한테 거저 해방을 갖다 준거에요."

넷째, 친일파를 칭찬하고 민족성을 비하한 발언입니다. “ 이 사람(윤치호)은 끝까지 믿음을 배반하진 않았아요, 비록 친일은 했지만은 나중에, 기독교를 끝까지 가지고서 죽은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남북분단을 만들게 주셨어.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7. 문 후보자는 문제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자신은 친일파가 아니라며 억울하다고 했는데요.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 그가 친일파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역사관이 친일파들의 ‘식민지사관’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특히 그의 발언 중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 우리 민족의 DNA"라는 대목이었는데요. 이 발언은 극우 파시스트들의 ‘인종주의’를 떠올리게 합니다. 인류 역사상 인종주의적 시각만큼 반민주적이고 반인륜적인 시각도 없습니다. 아마 문 후보자가 신봉하는 ‘하나님’도 인종주의를 가장 나쁜 해악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8. 아마도 문 후보자는 발언에 담긴 단어 한두 개를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며 항변할 것 같은데요.
⇒ 단어 한두 개로 그의 역사관이 친일파들의 ‘식민지사관’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20일 MBC가 방송한 43분간의 동영상을 들여다 보아도 단어 한두 개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이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련’을 준 것이라 했습니다.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민족, 이런 것들이 바로 친일사관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의 역사관에 따르면 과거 전세계 모든 식민지들의 약자들은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통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실로 끔찍한 역사관입니다. 

9. 또 그는 “어느날 갑자기 뜻밖에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셨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저는 MBC가 공개한 43분간의 동영상을 보면서 그가 해방과 관련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에 관해 어떤 말을 하는지 유심히 살폈습니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는 해방에 관해 말하면서 독립운동의 ‘독’자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많은 시간을 친일파 윤치호에 할애했는데요. 그는 친일파 윤치호를 일컬어 “믿음을 배반하지 않”은 사람이라 추켜 세웠습니다. 친일파가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니, 윤치호가 “비록 친일은 했지만 기독교를 끝까지 가지고서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믿음을 배반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어처구니 없는 친일사관입니다.   

10. 조선 500년의 역사를 허송세월의 역사로 치부하는 것도 지나치게 편향적인 것 아닌가요?
⇒ 국내외 역사가들 중에 친일사관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조선 후기에 들어서서 사회지도층들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도 생로병사가 있듯이 한 왕조에도 생로병사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일찍 근대화를 이루었는데요. 그것은 그들이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 민족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1. 문 후보자는 자신이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을 존경한다며 자신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 문 후보자가 개인적으로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 하여 그가 친일사관을 가졌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조도 관우를 존경했습니다. 제갈량도 존경했을 겁니다. 그러나 각기 가는 길이 달랐습니다. 

12. 일부 보수 논객들은 문 후보가 교회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강연을 한 것이므로 그것의 특수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교회에서 설교자가 역사왜곡을 일삼는 것이 과연 교회 발전에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또 하나님이 역사왜곡을 일삼는 설교를 듣고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한국인의 민족성을 비하해도 된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교회 안이든 교회 밖이든 역사왜곡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진실과 충돌하고 국익과 충돌하는 역사관을 가진 사람은 총리직을 수행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역사왜곡을 해서라도 한국 기독교의 업적을 부각시키고 싶으면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과 함께 폐쇄된 공간에서 역사왜곡이나 하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면 됩니다. 

13. 국민들이 특히 문 후보자에 분노했던 것은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안해도 된다는 과거 발언이었습니다. 
⇒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안해도 된다는 문 후보의 과거 발언은 ‘이적 행위’에 가깝습니다. 일본의 극우신문들이 문 후보 발언을 대서특필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4. 2000년대 들어와 친일파들의 친일사관과 유사한 의견을 내놓는 국내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친일파들의 친일사관과 유사한 의견을 내놓는 국내 인사들 중 대다수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입니다. 문 후보는 공개적으로 뉴라이트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강연 동영상을 보면 그들과 생각이 많이 유사한데요. 뉴라이트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4년입니다. 저는 이 운동을 2000년대 초반 왕성하게 일어난 ‘안티조선운동’과 조중동 반대운동에 대한 반작용 운동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티조선운동’과 조중동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일제시대 친일행위를 파헤치고 폭로하는 것이었는데요. 이것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주는 타격이 매우 컸기 때문에 보수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친일행위 물타기’운동을 하기로 했던 겁니다. 그것이 바로 뉴라이트운동입니다.

15. 세계 각국의 경제체제 중에서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체제가 바로 중남미체제입니다. 빈부격차가 매우 심하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큰 약점인데요. 이 지역 빈부격차가 심하게 나타나는 주요 원인이 식민지 잔재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지요?
⇒ 대다수 중남미 국가들은 400년 이상 유럽국가들의 식민지 치하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기간 침략국에 부역한 세력들의 물적 토대가 상상 이상으로 확대되어 독립 후에도 식민지 잔재가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 잘 묘사된 ‘토지개혁’이 식민지 잔재 청산의 요체인데요. 중남미에서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식민지 잔재 세력이 제국주의 세력의 기득권을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이들 국가들은 독립은 되었으되 대다수 국민생활에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16. 군사정부 때는 지금처럼 친일파들의 친일사관과 유사한 의견을 내놓는 인사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1961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2개 있었습니다. 하나는 친일 경력, 다른 하나는 좌익 경력입니다. 그는 이 치명적인 경력이 정치생명을 단축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더 가혹하게 덜 우파적인 사람들을 탄압했고, 친일파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친일파들의 친일사관과 유사한 의견을 내놓는 인사들이 많이 등장한 시기가 노무현 정부 때라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째, 노무현 정부가 조중동과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수파들은 자신들의 든든한 이데올로기 기반인 조중동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겁니다. 그래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치명적인 약점인 친일문제를 희석시키기 위해 ‘친일행위 물타기’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둘째, 우리나라 정치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 언론권력, 교육권력 등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친일파의 후손들이 많습니다. 또 과거에 비해 영향력과 여론조작 능력이 엄청나게 커진 재벌들이 ‘친일행위 물타기’운동을 적극 후원할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친일파들의 친일사관과 유사한 의견을 내놓는 인사들을 늘려 놓은 겁니다.

16. 최근 제3기 방통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학과 명예교수가 임명되었는데요. 박 위원장은 뉴라이트운동의 핵심인물 아닌가요? 
⇒ 박 위원장은 과거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제작을 목적으로 결성된 '교과서포럼'의 준비위원장과 상임대표를 맡아서 친일논란을 일으킨 역사 교과서 집필을 주도한 인물인데요. 걱정 많이 됩니다. ‘친일행위 물타기’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이 방송을 장악한다는 것은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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