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을 현실의 법정에서 처벌하진 못했지만 역사의 법정에는 세워야 합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1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지난 11년간 이어진 대작 <반헌법행위자열전>을 시작한 문제의식에 대해서 이렇게 밝혔다. 해방 이후부터 1992년까지 헌법 질서를 파괴한 인물 312명을 특정해 기록한 이 작업은, 단순한 인물 열전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역사의 공소장'으로 평가된다.
총 12권 가운데 1차로 이달 말 1~4권이 출간되며, 대통령·법원·검찰 등 권력 핵심이 우선 공개됐다. 특히 상징적인 대목은 1권 '대통령 편'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부터 군사정권 시기 대통령까지 이승만·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 5명 전원이 포함됐다.헌법 수호를 선서한 최고 권력자가 모두 '반헌법행위자'로 기록된 셈이다. 2권 '법원편'에는 민복기, 유태흥, 양승태 등 전직 대법원장과 정치판사 27명이 올랐다. 3∼4권 '법무·검찰편'에는 김기춘 등 전직 법무부 장관·검찰총장과 정치검사 등 49명이 수록됐다 1∼4권 수록 인물 81명 중 생존자는 36명이다.
5대 범죄 기준..."국가폭력의 구조를 드러내다"
"가해자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습니다. 피해는 있는데 반성이 없습니다."
한 교수는 기존 과거사 정리가 '피해자 중심'으로 흘러간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처음으로 국가폭력의 '행위자'를 실명으로 기록했다.
열전에 포함된 기준은 민간인 학살, 내란 및 헌정 파괴, 고문 및 간첩 조작, 부정선거, 언론 탄압 등 5가지로 이 영역에서 중대한 반헌법 행위를 저지른 인물들이 대상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 비판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어떻게 반복적으로 헌법을 훼손해 왔는지를 구조적으로 드러내는 기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한 교수는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왜 무너지지 않았나"…'정의와 치유'가 목적
한 교수는 이 프로젝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꼽았다.
"세월호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 역사와 연결됐어요. 이승만이 한강다리를 폭파할 때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세월호의 죽음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민간인 학살'까지 포함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이로 인해 작업량은 두 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한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교사들이 학생을 구하다 희생된 일과 20대 비정규직 승무원이 끝까지 대피를 돕다 숨진 일, 이 두 장면에서 한국 사회의 본질을 봤다고 말했다.
"세월호 선장은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이 책임을 다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온 것은 이들 덕분입니다."
이 인식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이 됐다. 권력의 역사만이 아니라, 저항과 책임의 역사까지 함께 보는 시선이다.
이 책이 단순한 고발서가 아닌 이유는 또 있다. 한 교수는 본인이 국가폭력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강조했다.
"아내가 국가폭력 피해자예요. 박정희 정권에서 7살 때 아버지가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에 연류돼) 사형을 당했습니다 (…)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과입니다.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 진짜 치유는 가해자의 사과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책 출간 전 당사자 이의신청과 정정 기회를 제공하고(편찬위는 오는 10일까지 수록 당사자 또는 유가족으로부터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 작업은 '복수'가 아니라 '정의와 치유'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왜 정부 돈을 받지 않았나"
2015년 시민사회 전문가 33명의 제안으로 꾸려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는 2017년 반헌법 사건 연루자 3000명을 찾아내 이 가운데 집중 검토 대상자 405명을 가려냈다. 편찬위는 수사기록·공소장·공판조서·판결문 등 공식 문서와 신문 기사, 피해자 증언 등을 검토하는 등 540여차례 회의를 거쳐 312명의 반헌법 행위자를 최종 발표했다.
이 과정은 정부 지원 없이 시민 후원으로만 진행됐다. 한 교수는 한 달 5000원, 1만원씩 모은 시민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과정이 "출판 프로젝트가 아니라 역사의 판단을 시민이 직접 수행한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을 배제한 이유에 대해 한 교수는 "국가는 가해자"라는 역사적 사실과 "정권이 바뀌면 작업이 중단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설명했다.
"기억의 형벌, 정의로운 미래를 위한 예방주사"
한 교수는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정의로운 미래를 위한 예방주사"라고 표현했다. 또 "가해자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것은 기억의 형벌"이라고 강조했다.
"가해자를 특정한 최초의 집단 기록이며, 국가폭력의 구조를 드러낸 연구이자 미래를 향한 경고입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고문이 진행했으며,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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