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러한 것들과 더불어 '민생은행의 실험'과 같이 자연과학에서 사용되던 낯선 표현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아니 실험이라는 말보다는 "시험구(試驗區)"라는 말이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중국 어느 지역에서는 새로운 시험구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개혁‧개방정책의 실천을 위하여 전략적으로 수립된 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특정한 지역을 일컫는 시범사업지역을 시험구라고 부르는 것이다.
▲ 지난 10월 1일 출범한 중국 첫 자유무역지대인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연합뉴스 |
위에서 말하는 모델, 시험구, 실험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부분 개방정책과 관련되어 있다. 중국에서의 개방은 "4연(沿)개방"이라고 하는데, 처음엔 바다(沿海)와 연접된 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어서 강(沿江)을 낀 도시들이 문을 열었고, 최근에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연결된 국경도시와 내륙지방에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점(點; 선전)에서 선(線; 연해 항구도시)으로 다시 면(面; 내륙도시)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선전모델, 충칭모델, 광둥모델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연해 지역의 개방은 개혁개방 초기부터 이룬 성과에 이어 각종 특구의 확대, 보세구 확대 등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선전(深圳)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1979년 7월 대외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시범지역으로 광둥(廣東)성의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 및 푸젠성(福建)의 샤먼(廈門), 1988년 7월 하이난다오(海南島)를 경제특구로 추가 지정함으로써 5개가 되었다. 이러한 경제특구의 성공은 개방의 확대로 이어졌는데, 과거 중국이 전통적으로 외국과 무역활동을 전개하던 다리엔(大連), 옌타이(煙台) 등 14개의 연해 항구도시가 개방하였다. 선전을 포함한 중국 남부 경제특구와 상하이를 순방하고 개혁개방의 성과를 실감한 덩샤오핑이 이른바 '흑묘백묘론'과 '남순강화'로 중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선전시는 2012년 말 GDP 1조 2950억 위안으로 중국 성시 가운데 4위에 오르는 거대도시로 탈바꿈하였으며, 이제는 시민단체 등의 역할과 공공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중국식 정치 개혁' 실험도 진행 중이다.
다음으로 연강 지역의 개방은 창강(長江)을 따라 이어지는 상하이 푸둥(浦東)지구, 우한(武漢), 충칭(重慶)을 창강경제벨트로 건설하여 내륙의 주요 도시로 확대되었는데, 특히 충칭모델은 중국의 주요한 공업기지이자 물류중심지로서 중국의 새로운 성장을 주도하는 모델로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대외무역, 외자 유치와 대기업 중심의 중국모델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이하면서 내수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충칭이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2009년 1월 국무원에 의해 확정된 우대정책은 충칭시가 중앙에 요청한 12가지에 더하여 중앙정부가 충칭시에 추가로 결정한 우대정책 10가지를 더한 "12+10" 우대정책으로 국유기업의 시장경쟁력 제고와 정부관리 하의 토지거래제도가 확립되었다. 지난 11월 9~12일에 열린 제18기 중국공산당 3중전회에서 제시된 청사진은 상당히 많은 것들이 충칭모델에서 실험된 정책이 담겨있다는 데서 시진핑 정부의 "중국의 꿈" 실현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서부대개발의 핵심 지역인 충칭은 최근 몇 년 사이 경제적으로 초고속 성장을 이루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충칭의 GDP는 1조 1459억 위안으로 중국의 31개 성(省)급 지역별 GDP 총량 순위에서는 아직 23위에 불과하지만, 전년 대비 GDP 증가율은 13.6%로 14.1%의 증가율을 보인 쿤밍(昆明)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한편 광둥성은 개혁개방의 1번지이면서 중국에서 집단시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다. 2007년 12월 왕양이 서기로 부임하면서 대두한 광둥모델은 사상과 사회‧경제 각 분야의 개혁을 통해 성장 동력을 찾는 모델로서, 그가 2011년에 내세운 '행복 광둥'은 규제개혁, 시장과 사회의 역할 강화, 경제성장 모델의 업그레이드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2011년 9월 광둥(廣東)성 루펑(陸豊)시 우칸(烏坎)촌에서 주민 7000여 명이 부패한 지방정부의 토지 불법 매각에 항의해 3개월여 동안 시위를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하고, 촌민위원회 직접선거를 통하여 촌 지도자를 선출하는 개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2년 광둥성의 GDP는 5조 7100억 위안으로 중국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중국의 개혁개방을 위한 실험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제안과 협력, 그리고 상호경쟁을 통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중국 3.0의 장래는 밝아 보인다. 한중관계라는 관점에서 미국, 일본, 북한 변수가 녹록하지 않은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지를 고려할 때 중국의 진도는 상당히 앞서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라도 몇 가지를 챙겨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중국의 점진적 개혁개방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정착시켜나가고 있는데, 우리의 대응은 대부분 연해 지방에 쏠려 있어 내수시장 중심의 시장개척에 어려움이 있다. 후한 음식대접에 묻혀 겉치레에 치중하기보다는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도 실질적 교류와 합작에 참여하여야 하며, 이제 각 성시의 특성과 연계된 차별적 대응이 절실한 실정이다.
둘째, 중국의 다양한 실험을 들여다보면 주요 성(省)별로 많은 모색과 노력을 찾을 수 있는데, 가장 최근에 지정된 상하이 자유무역 시험구의 주요 내용은 금융을 비롯한 전문서비스시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린 논의만 진행하다가 지지부진한 실정을 생각한다면 답답한 지경이다. 좀 더 전략적 실천이 시급하다고 본다.
셋째, 중국의 실험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에 기반을 두고 있고 해외시장 공략에서 내수시장 확대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듯이 우리도 지방경제 활성화를 통하여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을 다져야 할 것이다.
오늘도 원칙만 부르짖고 자신의 위치에서 소임의 수행에는 "내 일, 네 일"로 울타리 지키기에만 안주하고 있는 한 중국의 실험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의 '시장 탐색'에 그치고 말 것이다.
*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홈페이지에서도 '한중관계브리핑'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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